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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에 민감한 당신을 위한 강동원에 대한 모든 것

by Nomangs 202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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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필

출생 : 1981년 1월 18일 (41세), (정부 직할) 부산시 서구(現 부산광역시 사하구)
국적 : 대한민국
본관 : 진주 강씨
신체 : 186cm, 70kg, B형
가족 : 외증조부 이종만아버지 강철우, 어머니, 누나 강현주, 조카
종교 : 무종교
학력 : 경원중학교 (졸업)거창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기계공학 / 학사) 상명대학교 대학원 (영화학 / 석사)
병역 : 공익근무요원 소집해제(現 사회복무요원 소집해제)(2010년 11월 18일 ~ 2012년 11월 17일)
데뷔 : 2003년 MBC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
취미 : 맛집 기행, 목공, 운동, 음악감상, 웹서핑
특기 : 축구, 검술
MBTI : INTJ
별명 : 강참치, 참치 오빠, 강딩언

2. 개요

대한민국의 패션 모델 출신 영화 배우.

3. 데뷔 전 ~ 모델 시절

중학교 때는 전교 2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굉장히 잘했었다.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어릴 적 별명은 '오골계'였다고 한다.
어렸을 적엔 평범한 외모였고, 밖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해서 까맣게 그을렸기에 그런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실제로 위의 졸업사진을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까지는 까무잡잡하고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아이의 모습이다.
지금의 외모로 자리잡힌 건 고등학교 시절로 보인다.
위 사진 중 잘못된 정보가 있는데,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나온 사진은 사실 대학 졸업 사진이다.
자율학교인 거창고를 입학고사에서 200점 만점에 192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받고 입학한다.
(단, 강동원이 입학할 당시엔 자율학교가 없었다.
그땐 그냥 지역 명문고였다.
) 어릴 적 부모님에 의해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하게 된 것이 한이 됐었는지 고등학교 입학 후 축구부에 합류할 기회를 잡자 제대로 활약하게 되면서 학업에 소홀했다고 한다.
이 당시 반항심에 시험지를 거의 백지로 내다시피 한 적이 있는데 전교 200명 중 198등을 한 적도 있다고. 고3 때, 부모님의 기대를 거스르기 어렵다는 생각에 독하게 공부를 다시 시작해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기계공학과에 특차로 입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공계 쪽에 재능을 보였고, 수와 셈에 능해 당연스럽게 기계공학과로 진로를 정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강동원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과에 온 문과생'.다.
강동원에겐 대학시절이 썩 유쾌한 기억으로 남은 것 같진 않다.
연예계 데뷔도 용돈 벌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거다.
대학교 때 1주일에 용돈이 5만원이라 몇 달 진짜 아껴서 옷 한 벌 사는 처지였다.
친구들이 프로필 사진 찍어서 모델 에이전시에 보내보자고 하긴 했는데 연기자가 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대학 생활 재미도 별로 없었고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에 남녀공학을 다녔더니 대학에 와도 특별한 점이 없었다.
기계과에 입학해서 기계를 만질 줄 알았는데 온갖 수학과 역학만 하다 보니 심심풀이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저도 예전에 집안형편이 안 좋을 때, 대학교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 봤지만 힘들지는 않았어요. 어떤 일을 해 봤냐고요? 골프연습장에서 공 줍고, 가방 나르고.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해봤죠.” 출처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던 강동원은 대학교 2학년 때 지하철에서 모델 제안을 받아 모델계에 입문했으며 모델계에서도 꽤나 알아주는 탑모델이었다.
한국 모델 최초로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 섰고 프라다 런웨이에 초청받기도 했으나 거절했다.
그때 이미 배우를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2002 GQ 대한민국을 뒤흔든 18인' 중 설경구, 거스 히딩크 등과 함께 선정된 유일한 남자 모델이자, 일본 언더커버, 넘버나인같은 당시 유명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그가 원하는 옷이라면 뭐든지 주겠다'고 인터뷰했을 정도. 버버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디자이너 우영미의 뮤즈. 속옷모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은 모델보다는 배우에 뜻을 품고 있었어서 모델에서 배우로 전업하게 된다.
훗날 다시 모델에 복귀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모델계에 미련은 조금 있지만, 모델 시절 연예인들의 쇼 출연으로 신인 모델들이 제약을 받는 일이 많아 자신은 절대 캣워킹을 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아무래도 이건 자신이 경험했던 일이기 때문인 듯하다.

4. 배우 활동

본인의 연기 겸 드라마 데뷔작은 2003년 3월부터 방영한 MBC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 다음으로는 2003년 7월부터 방영한 드라마 《1%의 어떤 것》으로 싸가지 없으면서도 잔정 있는 꽃미남 재벌 2세로 출연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2004년 1월에 개봉한 《그녀를 믿지 마세요》 에서 최희철 역을 맡았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구수한 목소리와 김하늘과 치고받는 억척스러운 억양이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2004년 7월에 개봉한 《늑대의 유혹》에서 정태성 역을 맡았다.
여기서 제대로 꽃미남 이미지로 꽂혔고 강동원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 이 영화에서 강동원이 우산 들어주는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심쿵' 장면으로 남았으며 이후 많은 매체에서 패러디되고 있다.
강동원 본인은 우스갯소리로 이 광경을 극장에서 직접 목격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언급했다.
본인은 이 당시, 신인으로서 얻은 폭발적인 인기에 '이 영화에서 얻은 인기가 얼마나 갈까'라는 회의감에 젖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부담이 되는 동시에 배우로서 자극이 되었다고 밝혔다.
2004년 8월에는 SBS 드라마 《매직》에서 차강재 역을 맡았다.
이는 마지막 드라마 작품으로, 강동원은 열악한 드라마 현장이 본인이 드라마를 하지 않는 이유라고 밝히기도 했다.
2005년 9월에 개봉한 사극 영화 《형사 DUELIST》에서 슬픈 눈 역을 맡았다.
본인도 상당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 중 하나이지만 생각보다 흥행이 많이 되지 않아서 상심이 컸던 듯. 흥행은 잘 되지 않았지만 청룡영화상 조명상, 미술상과 영평상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10대영화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강동원이 시상식에서 꽤나 기뻐했던 걸로 아는데.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형사의 칼싸움 신이 오마쥬되기도 했다.
2015년 10주년 행사에도 참여했다.
본인은 훗날 이 영화를 가장 인생터닝포인트였다고 말했다.
2006년 9월에 개봉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형수 정윤수 역을 맡았다.
2007년 2월에 개봉한 《그놈 목소리》에서는 유괴범 목소리 역을 맡았다.
2007년 10월에 개봉한 《M》에서는 한민우 역을 맡았다.
2009년 12월에 개봉한 《전우치》에서는 도사 전우치 역을 맡았다.
2010년 2월에 개봉한 《의형제》에서는 북한 간첩 송지원 역을 맡았다.
송강호와 훌륭한 케미를 형성하며 이 영화를 기점으로 이후 강동원은 김윤석, 황정민과 작품 내에서 훌륭한 케미를 이뤄내 남남 케미의 끝판왕으로 군림한다.
2010년 11월에 개봉한 《초능력자》에서는 초능력자(초인) 역을 맡았다.
2010년 11월 18일 사회복무요원 이행을 위해 훈련소에 입소했다.
2010년 《러브 포 세일》에서 제이 역을 맡았다.
2010년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었던 옴니버스 영화 카멜리아(Camellia)에 수록된 단편 중 하나로 《지구를 지켜라》로 유명한 장준환 감독의 작품. 이후 도쿄 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으나 한국 개봉은 하지 않았다.
2013년 《더 엑스》에서 X 역을 맡았다.
김지운 감독의 단편영화.2014년 7월에 개봉한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 악덕 관리 조윤 역을 맡았다.
강동원의 악역 연기와 한복 자태, 검술 등이 특히나 호평받았다.
2014년 9월에 개봉한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선천성 조로증을 앓는 아이의 철부지 아빠인 한대수 역을 맡았다.
2015년 11월에 개봉한 《검은 사제들》에서 최준호 부제 역을 맡았다.
한국 영화계에서는 새로운 소재의 오컬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544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으며 연기력 또한 인정받았다.
2016년 2월에 개봉한 《검사외전》에서 꽃미남 사기꾼 한치원 역을 맡았다.
약 970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크게 흥행하며 황정민과 함께 서로의 티켓파워를 입증하는데 성공했다.
2016년 11월에 개봉한 《가려진 시간》에서 실종되었다가 갑자기 어른이 되어 돌아온 소년인 여성민 역을 맡았다.
개봉 시기가 좋지 않아 흥행엔 실패했지만 한국 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함과 동시에 흔치 않은 소재로 인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해외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2016년 12월에 개봉한 《마스터》에서 지능범죄수사대 팀장 김재명 역을 맡았다.
2017년 12월에 개봉한 《1987》에 잘생긴 남학생 역으로 특별출연했다.
팜플렛이나 CM 등에서 등장 관련 이야기가 전혀 없었기에 상영관마다 강동원이 등장하는 씬에서 웅성이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강동원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 전,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로 불이익을 받을 것을 감수하고 1987 제작진에게 제일 먼저 달려왔다고 이한열 기념사업회에서 밝혔다.
저예산 영화로 제작될 뻔 했던 1987은 제일 먼저 참여 의사를 밝힌 강동원 덕분에 투자자가 모여 지금의 규모로 제작되었고, 강동원이 맡은 이한열의 기념사업회에서는 강동원에게 감사를 표했다.
배우 강동원님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CGV 용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와 함께 영화를 관람한 후, 무대인사를 하는 도중에도 계속에서 뒷모습을 보이며 눈물을 훔쳤다.
다른 무대인사 진행 도중에도 울고있는 관객을 보며 자신도 같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
2018년 2월에 개봉한 《골든슬럼버》에서 평범한 택배기사 김건우 역을 맡았다.
《쓰나미 LA》에서 보 역을 맡았다.
강동원의 첫 할리우드 출연작이며,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서퍼로 출연할 예정이다.
배급사 측은 영화 속에서 서핑하는 모습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정의로운 시민 역할로 스펙터클한 액션과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캐릭터라며 전부 영어대사로 연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이먼 웨스트 감독이 연출을 맡았었는데, 스콧 만 감독으로 바뀐 뒤 다시 닉 카사베츠 감독으로 교체된 듯 하다.
미국 LA 역사상 가장 강력한 쓰나미가 도시를 강타한다는 소재의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이다.
영국과 멕시코에서 번갈아가며 촬영하며 유럽 로케는 루마니아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2018년 4월에 크랭크인하고 2019년 북미 개봉 예정이었지만 일정 문제로 제작이 지연되고 있다.
2022년 7월 13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쓰나미 LA》 프로젝트가 무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관련 기사2020년 7월에 개봉한 《반도》에서 초토화된 땅에 다시 발을 들이게 되는 군인 출신 한정석 역을 맡았다.
반도는 영화 부산행의 속편으로, 부산행의 시점으로부터 4년이 지난 뒤 국가 기능이 멈추고 재난으로 폐허가 된 반도에서 탈출하기 위한 주인공들의 사투를 그린다.
부산행, 서울역으로 세계관을 이어온 연상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2019년 6월 24일 크랭크인 & 2019년 10월 31일 크랭크업. 코로나로 인해 극장 상황이 좋지 않았음에도 흥행에 성공했다.
2022년 6월에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에서 베이비박스 운영 단체의 비정규직 직원인 동수 역을 맡았다.
2021년 4월 14일 서울과 부산 일대에서 크랭크인 했으며, 6월 22일 크랭크업했다.
2022년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 출품, 최초 공개되었는데 배우 송강호의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화제가 되었다.
이요섭 감독의 차기작인 《엑시던트》에 영일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동명의 홍콩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2022년 2월 15일 크랭크업했다.
김성식 감독의 데뷔작 《빙의》에 천 박사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동명의 네이버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2022년 9월 14일 크랭크인하여 현재 촬영 중이다.

5. 평가

전형적인 배우의 루트를 거치지 않았고 데뷔 초기에 보여준 다소 어색한 연기로 인해 배우로 인정받기 어려워 보였으나 배우로서의 목적 의식을 갖고 묵묵히 노력한 덕분에 이제는 대중들에게 연기력 또한 인정받았다.
특히 꾸준한 작품 활동이 큰 인정을 받고있다.
일부 인기 영화배우들이 신비주의로 인해 대박 영화 한 두 편 찍고 나면 몇 년씩 쉬면서 CF만 찍는 반면, 강동원의 경우 매년 한두 편 꾸준히 영화를 찍고 다양한 배역을 맡으려는 노력을 보여주기에 그런 부분에서 평가가 높다.
추가로, 그는 한 매체의 인터뷰에서 영화를 많이 찍기 위해 광고 촬영은 줄이려 한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광고로 인한 수입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특히 연기할 때.필모그래피를 보면 출연작 속 캐릭터가 겹치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해왔다.
본인은 배역이 겹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맡은 배역들에 대해서 다른 배우가 대체할 수 없을 것 같은 독보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캐릭터를 본인의 스타일대로 개성있게 살려내며 표정 연기 또한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특히, 액션 연기 분야에서 칭찬받은 적이 많다.
본인도 액션에 있어서는 자신감을 드러낸다.
다만 그의 작품을 본 대중들의 반응이 연기보다는 외모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씁쓸한 사실 역시 존재한다.
연기를 매우 잘 하지만 외모 때문에 연기가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은 대표적인 배우이다.
안정적인 길보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에 꾸준히 출연하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강동원의 행보는 앞으로도 기대가 크다.
본인도 연기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많다.
영화계에서의 높은 입지와 타율이 괜찮은 필모그래피 및 스타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치에 비해서 수상 경력은 빈약한 편이다.
데뷔 초에 신인상과 인기상을 여러 개 받은 이후 2010년 제3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의형제》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본인은 상 받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듯. 또한, 아직 1,000만 관객을 모은 적이 없지만 강동원은 오롯이 혼자서 티켓 파워를 발휘하는 배우로 평가 받는다.
2016년 CGV리서치센터가 관객 1,01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관객들이 믿고 영화를 보게 만드는 배우 2위(28.2%)를 차지했다.
하지만 본인은 천만 배우 타이틀에 대해서도 아쉬운 것이 없고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한다.
2016년 인터뷰에서는 '향후 5년이 자신의 연기인생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말했고 YG로 이적한 이유가 '열악한 영화 환경에 대한 싫증과 한국 영화의 세계화, 아시아 시장에 대한 겨냥'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이 배우의 행보에 더 기대를 갖고 눈여겨 볼 만하다.
영화계에서는 '강동원은 이미 브랜드나 마찬가지다'라는 말까지 있다고 한다.
실패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강동원이 출연하면 못해도 본전은 뽑는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이다.

6. 기타

  • 좌우명은 공자의 명언인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으로, 데뷔 이후 변함없는 좌우명이라고 한다.

 

  • 매력적인 짝눈을 가지고 있다.
    다.

 

  • 이정진이 사무실에서 사투리 연기를 하는 모델을 보고 생김새가 맘에 들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사투리가 안 고쳐져서 그랬던 건데 연기하는 걸로 착각했었다고.. 지금도 연기 외에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 사투리 억양이 묻어 나온다.
    인터뷰 영상을 보면 안다.
    여담으로 여욱환이 《강심장》에서 한 얘기로는 2002 한일 월드컵이 한창일 때 이탈리아에서 생쇼를 한 적이 있다고. 동영상다.

 

  • 가수 주형진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강동원은 주형진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고, 주형진은 강동원의 발성 연습을 돕는 등 현재까지도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나이 때문인지 친분은 배우들보다는 감독과 더 많은 듯. 2012년 11월 강동원의 대체 복무 소집 해제 당일 공백 기간을 기다린 팬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주형진의 노래에 강동원의 하루를 담은 강동원 in a day를 영상과 무료 음원으로 공개했다.
    10년이 넘는 서울 생활 내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남산타워와 63빌딩, 노량진 수산시장 등에 나타난 강동원을 만날 수 있다.
    2016년, 화보를 찍는 도중 주형진의 신곡 '비밀을 말하다' 발표 소식을 듣고 본인이 먼저 뮤직비디오 출연을 제안해 노개런티로 다시금 출연하며 우정을 과시했다.

 

  • 활동 초기에는 《해피투게더》, 《공감토크쇼 놀러와》 등에 출연한 적이 있었지만 이후에는 작품 활동 때문에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한 꼭지에 출연하는 것을 제외하면 노출이 정말 없다.
    공식 팬미팅도 없다.
    무대인사 등을 제외하면 접할 기회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사생활 노출도 꺼리는 편이다.
    때문에 지인들의 인스타그램 등 SNS에 근황이 뜨면 팬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운 편이다.

 

  •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했지만 가수를 시키려고 했다.
    가수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온갖 잡일 시키면서 밥도 안 사 주는 거다.
    소속사 가수 CD 돌리다가 맨날 빵에 컵라면 먹으며 살았다.
    좀 기분 나쁜 티라도 내면 집에 안 보내주는 거다.
    안산까지 차 끊기면 끼어 잘 데도 없는데. 말 그래도 '노예 계약'을 해서 결국 부모님이 물어줄 거 물어주고 잘 해결했다.
    없는 살림에 정말 죄송했다"며 옛날 이야기 하니 재미있다고 소리 내어 웃었다.
    출처 https://m.news.nate.com/view/20100103n00970?mid=e03다.

 

  • 과거에는 팬카페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생일파티 겸 팬미팅을 했었다.
    수많은 팬들이 소액씩 모아 장소 대관과 생일선물 준비 등 행사를 진행하고 참여한 팬들에게 나눠줄 여러 굿즈를 제작했다.
    그 후 강동원의 설득으로 생일선물은 받지 않기로 하고 기부 등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당시 생일파티에 다녀온 팬들의 후기에 의하면 강동원은 선물을 받지 않는 이유를 열거하며 자신한테 이런 거 하지 말라고, 솔직히 필요한 것은 자신이 사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선물 대신 영화를 봐달라고 했다고. 그 후 2015년을 마지막으로 강동원의 요청으로 생일파티도 하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열린 생일파티 겸 팬미팅은 무료로 진행되었다.
    현재는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팬들과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단관 행사를 진행한다.
    2015년 검은 사제들 단관 행사에 다녀온 팬들이 강동원의 말을 옮긴 후기에 의하면 강동원은 몇 년간 생일파티를 그만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도 생일이 방학이라 생일파티를 거의 안 해봐서 아직도 민망하고, 사실 생일파티가 너무 부담스러웠다고. 처음 생일파티를 시작할 때도 강동원이 거절했지만 카페 운영진들이 팬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고 혼냈다고 한다.
    그 후 중간에 한 번 더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또 운영진들이 혼내서 계속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고. 그렇다고 생일파티가 싫었다는 얘기는 아니고 팬들을 만나서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생일파티는 하지 않지만 단관 행사는 언제든지 참여할 것이고 오히려 영화 얘기를 많이 할 수 있고 할 말도 더 많아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 2007년 소속사인 더맨 모델 매니지먼트와 결별한 후 2013년 uaa에 들어가기 전까지 개인 매니저와 활동했다.
    2016년 YG 엔터테인먼트로 옮기며 혼자 활동하는 것이 힘들어 큰 기획사로 들어갔음을 밝혔다.
    해외 프로젝트 추진 등을 홀로 감당하는 건 더 이상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uaa는 소속 연예인이 5인 이하인 소규모 기획사이다.

 

  • 태연, 한승연, 수지, 효린, 서현 등 많은 여성 연예인의 이상형이다.
    특히 태연은 《친한친구》 마지막 방송에 육성 녹음으로 출연했는데, 막방 슬픔의 눈물을 순식간에 마르게 할 정도. 일본 성우 히로하시 료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이다.
    성우 여행사 한국 편에서 히로하시는 강동원 사진만 계속 사댔다.
    그리고 대만 편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은 강동원이라구요!"라고 따지는 신이 있는 것을 봐서는 확실한 팬. 그리고 한국에 개인적으로 방문할 때도 강동원이 출연한 영화 DVD를 사들고 갈 정도. 그리고 만화 《해파리 공주》의 작가 히가시무라 아키코도 8권 후기에서 강동원 팬임을 인증. 뿐만 아니라 일본 패션지 SPUR 2013년 7월호의 강동원 특집코너에서 강동원과 직접 만난 이야기를 만화로 그렸다.
    이 만화 내용에 따르면 《배가본드》와 《원피스》를 좋아한다고 한다.
    히가시무라 만화도 읽어본 적이 있다고. 더불어 여타의 인터뷰들을 보면 덕력이 상당한 것 같다.
    덧붙여 건프라 덕후이다.

 

  • 인기가 상승하던 중에 여자 친구가 있음을 밝혔다.
    6~7년 정도 사귀고 결별한 듯. 이후 공개연애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원빈과 이나영의 열애설이 보도된 날 두 사람과 함께 덩달아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에 랭크되었다.
    여성들의 공공재였던 강동원빈 중 원빈이 열애를 인정했으니 이제 남은 건 강동원뿐이라며 강동원은 평생 공공재 솔로로 남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원빈 이나영 열애가 알려졌을 때 강동원 공공재가 함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 연애는 그렇게 많이 해보진 못한 듯하다.
    본인 말로도 지인들의 말로도 여자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듯. 한 인터뷰에서는 ‘연애에 자신이 없다.
    여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연애도 이런데 결혼은 정말 먼 세상 이야기로 생각하는 모양.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엄청난 책임과 부담을 느낀다고.다.

 

  • 부산 출신답게 돼지국밥, 밀면을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음식들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데, 한정식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가던 곳만 갔지만 이제는 맛집을 다니며 새로운 음식을 접해보는 게 좋다고. 미식가 기질이 있는 듯하다.
    2015년 인터뷰에서는 맛이 없는 음식을 먹으면 공허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 2022년 기준 한국나이 42세로 굉장한 동안이다.

 

  •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의 팬이다.
    과거에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NC 경기를 직관하는 사진과 2016년 7월 NC 고척 원정경기 때 키움 팬의 목격담이 있었기 때문에 NC 팬으로 추정만 되었었는데 2020년 6월 한 유튜브 라이브에서 KBO 리그에서 어떤 구단을 응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NC를 응원하고 있으며, 최근 성적이 좋아 기분이 아주 좋다"라고 답했다.
    또 누나 가족들도 응원하고 있다고 답해 오피셜. 관련영상다.

 

  • 이탈리아 세리에 A의 AC 밀란의 골수 팬으로도 유명하다.
    축구경기를 하거나 운동을 할 때 밀란의 레플을 입는다거나, 생일 케이크 커팅 때 밀란 유니폼을 입고 자른 짤이 널리 퍼진 적이 있다.

 

  • FC 서울의 U-18 유소년 팀인 오산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수비수 최준영이 조카라고 한다.
    오산고의 부주장을 맡고 있으며, 2018년 제 30회 차범근 축구상 베스트 11 수비수 부문 수상자다.
    링크 2022년엔 K리그 유스 챔피언십 U-18 부문에서 우승도 했다.

 

  • 강호동과는 종씨에 파까지 같다고 한다.

 

  • 2015년 11월 4일 JTBC 뉴스룸 2부에 출연해서 손석희 앵커와 대담을 나누었다.
    링크 11년 만의 방송출연인 데다가, 생방송이라 그런지 매우 긴장해서 땀까지 뻘뻘 흘렸다.
    사투리 억양까지 튀어나온다.
    그래도 벌벌 떨면서도 할 말은 조곤조곤 했다.
    평소 팬들 외에는 노출되기 힘들었던 면모를 많이 보여 호평이 많다.
    그리고 대담이 끝나고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남아서 오늘 출연하신 강동원씨가 아직 안 가고 계십니다 일일 기상캐스터가 되어 날씨예보를 하고 돌아갔다.

 

  • 정려원과의 열애설이 찌라시를 통해 돌았다.
    박효신의 소개를 통해 교제 중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강동원은 정려원은 사적으로 모르는 사이라며 그분에게 누가 될까 죄송하다며 부인했고 정려원 측도 부인해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강동원은 지금껏 이런 식의 찌라시에 별 대응을 하지 않았으나 꽤나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고 새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최초 유포자를 잡아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한다.

 

  • 탈모가 아니냐는 의혹이 구글에서 강동원을 치면 가장 먼저 연관검색어가 뜰 정도이다.
    강동원이 작은 얼굴에 비해 넓은 이마를 가졌다 다.

 

  • 강동원의 팬 서비스는 《검사외전》 쇼케이스 현장에서 잘 나타났는데, 영상 13분 45초에 팬과 눈빛교환을 하는 장면에서 행사장이 환호로 난리가 난다.

 

  • MBTI유형은 INTJ라고 한다.

 

  • 한양대학교 축제 때 각 학과별로 주점을 열었는데, 기계과에서 강동원을 내세워 장사를 하는 바람에 여자 손님들이 죄다 기계과로만 몰려가 다른 학과 주점들이 전부 망해버렸다고 한다.

 

  • 김은숙 작가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끊임없이 강동원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딱히 작가가 원한다는 인터뷰나 배우가 출연 제의를 받은 것이 아님에도, 둘이 만나게 되면 흥행 배우와 흥행 작가의 만남이다 보니 주위에선 같이 작업하길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 난시가 심해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을 경우 안경을 끼고 다니며, 양쪽 어깨가 안 좋다고 한다.

 

  • "강동원 효과"로 유명한 것이 있다.
    이는 강동원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실제 장면과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를 말한다.
    "강동원 3대 환각", 혹은 "착각"이나 "최면"이라고 하기도 한다.
    《군도》에서 하정우와 함께 나오는 장면에서 강동원에게만 벚꽃을 뿌려준다 → 실제로는 둘 다 공평하게 뿌렸다.
    《검은 사제들》에서 강동원 뒤에 후광이 비치고 종소리가 들린다 → 실제로는 후광도 없고 종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1987》에서 강동원이 두건을 내리는 장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나온다 → 실제로는 슬로우도 없거니와 매우 빨리 지나간다.
    추가로 이와 비슷하게 《검사외전》에서 왜 강동원만 다른 옷을 입히냐는 얘기도 나왔었는데 실제로는 똑같은 죄수복이다.

 

  • 2021년 12월, 모노튜브에 강동원이 직접 목공을 하는 영상이 올라와 알고리즘을 타고 여성 팬들의 호응을 크게 얻었다.
    킬링 포인트가 한두 군데가 아닌 모양이다.
    강동원의 목공 라이브는 두 번에 걸쳐서 진행되었는데 한 편은 유튜브에 풀버전이 공개되었으며, 다른 한 편은 12월 24일부터 31일까지 NFT로 판매되었다.
    판매 수익금은 기부 예정이라고. 본 영상에 댓글로 달린 "이런 거 있으면 재난 문자 보내줘야 할 거 아냐" 드립이 유명하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생일을 2년째 축하해줬다고 한다.
    감독의 트위터에서도 강동원과의 인증샷을 공개했다.
    다.

7. 금수저 오해

금수저 배우로 알려져 있어 데뷔전 부유한 삶을 누렸다는 말이 널리 퍼졌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데뷔 당시 인터뷰에 의하면 어릴 적 집안 환경은 넉넉지 않았으며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반 사원에서 시작해 강동원이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부사장까지 올라간 신화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어 태어나자마자 유복하게 살아온 금수저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2008년, 선박왕을 소재로 한 드라마 <내 여자> 측에서 드라마를 홍보하기 위해 <내 여자>의 주요 촬영지인 SPP 조선의 부사장이 강동원의 아버지라는 것을 기사화하며 강동원이 금수저라는 보도가 처음 나오게 되었다.
강동원 측에서 여러번 사실이 아니라고 입장을 밝혔지만 이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2017년 외증조부 친일파 논란으로 인해 금수저라는 오해가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강동원의 인터뷰와 부친 강철우의 프로필에 따르면 강동원의 부친은 중견기업 대선조선, 대기업 기아중공업의 평사원으로 근무하다 IMF 때 실직하여 중소기업인 부산산업기계로 이직하였다.
그리고 중견기업 SPP조선과 합병하고 8년 뒤 부사장으로 고속 승진했다고 한다.
이는 강동원이 배우로 데뷔하고 5년 후의 일이다.
SPP조선은 2017년에 폐업했다.
아래의 인터뷰를 보면 강동원은 어린시절부터 금수저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다.
■ 데뷔 초에 밝힌 일화 (2004, 스타고백)----어린시절 일화당시 부모님은 맞벌이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아버지는 조선소에서 근무하셨는데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다.
일터에 나가셨던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의 연락을 받고 병원에 달려오셨고, 나는 수십바늘을 꿰매는 치료를 받은 끝에 손가락을 잃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
지금도 내 손가락에는 낫에 베인 흉터가 남아 있다.
어렸을 때 유치원에 공짜로 다니는 행운을 얻었다.
박봉의 샐러리맨이었던 아버지는 내 유치원 등록금까지 지원해줄 사정이 안됐다.
누나만 유치원에 정식으로 다녔다.
머리가 커 누나와 ‘맞먹기’ 전만 해도 난 누나의 뒤를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순한 동생이었다.
누나가 유치원에 가면 집에 혼자 있어야 했기 때문에 날마다 유치원에 쫓아갔다.
그런 나를 보고 당리유치원의 정옥주 선생님이 유치원에 무료로 다니도록 배려해주셨다.
그 덕분에 난 유치원 졸업장도 갖게 됐다.
----중학생 때 일화그날의 내 옷차림은 이랬다.
초등학교 때부터 입던 추리닝(트레이닝)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대부분이 청바지를 입고 맵시를 뽐내고 있는데 나만 뒤떨어져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날 반 대표로 장기자랑대회의 사회를 봤다.
수십명의 친구들 앞에서 추리닝 차림으로 서 있으려니 솔직히 창피했다.
추리닝 패션이 10년 후인 현재 이렇게 유행할 줄 알았으면 ‘패션의 선구자’인 척 자랑을 할 걸 그랬다(^ ^). 당시 난 옷이라곤 추리닝 두벌밖에 없었다.
그것을 갈아입으며 살았고, 별로 불만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소풍 날 옷 때문에 빚어진 아픈 기억으로 ‘(옷)브랜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소풍 갔다온 뒤 철딱서니 없이 엄마한테 옷을 갖고 한바탕 투정을 부렸던 모양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소풍을 앞둔 어느날 내 방안에 곱게 포장된 옷 한벌이 놓여있었다.
비싼 니트 상의였다.
돈도 없었을 텐데 엄마가 왜 그랬는지. 가슴이 찡해 한동안 말을 잃었다.
난 그 옷이 닳도록 고등학교 때까지 입었다.
----대학생 때 일화1학년 겨울방학 때 서울 이모부 집에 기거하며 골프연습장에서 고된 아르바이트를 했다.

■ 재벌설 보도 당시 강동원 측의 반박기사강동원의 한 지인은 1일 "강동원의 아버지가 SPP중공업의 부사장이라는 게 알려지고 난 뒤, 마치 강동원이 재벌 2세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면서 "강동원의 아버지는 30여년간 중공업 분야에 종사했고, 말단 사원에서 출발해 올해 초 부사장에 이른 분"이라고 말했다.
(2008, 중앙일보)다.

■ 그 이후의 재벌설 반박1.<의형제>에서 강동원이 연기한 ‘지원’은 돈 때문에 ‘한규’(송강호 분)와 손을 잡는다.
현실 속 강동원도 극중 지원처럼 돈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었을까.그는 “돈 때문에 마음 고생한 적이 많다.
”고 말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자장면, 바나나 같은 음식도 잘 못 먹었어요. >외식도 자주 못했고요. 대학교 등록금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충당했을 정도로 어려웠어요.” (2010, 맥스무비)2."잘못 알려진 거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풍족한 생활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기아자동차에 다니셨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고 프라이드 소형차를 10년 넘게 탔다.
사원 아파트에 살면서 우리 집을 가져 본 적도 없다.
고등학교 때 IMF가 오면서 집안이 심하게 휘청거렸고 아버지가 실직하셔서 조그마한 중소기업으로 옮기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완벽주의자로 꼼꼼한 성격 덕에 일을 너무 잘하셔서 회사를 옮기시면서 정말 빠르게 승진하셨다.
아버지가 원래부터 중역이었던 것처럼 알려졌는데 내가 연예계 데뷔한 뒤에야 대기업으로 옮기신 거고 '그녀를 믿지 마세요' 하기 이틀 전에 아버지가 '나 부사장 됐다' 하면서 명함 주시더라. 솔직히 좀 황당했다" (2008년에 부친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고 알려져있는데 <그녀를 믿지마세요>는 2004년 작품이므로 강동원이 착각했거나, 기사에 잘못된 내용이 실린 것이라 추측된다.
)이어 강동원은 "연예계 데뷔도 용돈 벌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거다.
대학교 때 1주일에 용돈이 5만원이라 몇 달 진짜 아껴서 옷 한 벌 사는 처지였다.
친구들이 프로필 사진 찍어서 모델 에이전시에 보내보자고 하긴 했는데 연기자가 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대학 생활 재미도 별로 없었고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에 남녀공학을 다녔더니 대학에 와도 특별한 점이 없었다.
>기계과에 입학해서 기계를 만질 줄 알았는데 온갖 수학과 역학만 하다 보니 심심풀이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했지만 가수를 시키려고 했다.
가수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온갖 잡일 시키면서 밥도 안 사 주는 거다.
소속사 가수 CD 돌리다가 맨날 빵에 컵라면 먹으며 살았다.
좀 기분 나쁜 티라도 내면 집에 안 보내주는 거다.
안산까지 차 끊기면 끼어 잘 데도 없는데. 말 그대로 '노예 계약'을 해서 결국 부모님이 물어줄 거 물어주고 잘 해결했다.
없는 살림에 정말 죄송했다"며 옛날 이야기 하니 재미있다고 소리 내어 웃었다.
(2010, 마이데일리)3.'엄친아'설에 대해"우리집 사정을 아는 저의 고향 친구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배꼽을 잡고 웃어요. 아주 평범한 아이였어요. 또한 집안 형편도 기사에 난 것처럼 부유하지 않았어요. 그냥 중산층 가정이에요. 모델로 데뷔한 뒤에도 집안 형편이 나빠져 제가 돈을 보내드려야 할 때도 있었어요. 우리 가족은 공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인데 자꾸 기사가 나와 속상해요. 얼마 전에도 누나 가게 사진이 뜻하지 않게 나와 정말 황당했어요." (2009, 스포츠칸)4.“재벌 2세설이 계속되고 있어요. 아버지가 재벌이 아니라고 얘기해도 사람들이 안 믿어요. 아버지는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부사장이세요. 그런데 마치 재벌인 것처럼 알려졌죠. 재벌이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이세요. 때문에 당연히 저도 재벌 2세가 아니에요. 아버지 재벌설이 2~3년 전부터 나왔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부사장 되신 지도 2~3년 정도밖에 안 됐어요. 사실 가족 얘기를 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이미 아버지는 공개돼서.” (2010, 뉴스엔)5.어렸을 때 집이 그렇게 넉넉하진 않았는데, 누나는 자기 입고 싶은 옷 사는 대신 내 옷 사주라고 양보했다.
누나한테 두드려 맞기도 했는데 사이가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옛날에 누나가 이단옆차기 해서 내가 유리창에 처박혔을 때도 그때만 그랬지 사이가 좋았다.
(2010, 인터뷰365)6.지금 생각하면 웃긴데(웃음) 초등학생 때 아파트 15층에 살았었다.
어렸을 때부터 창밖을 내다보는 걸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국어선생님이 내 별명을 ‘꿈꾸는 소년’이라고 지어준 적도 있다.
“우리 동원이는 꿈꾸는 소년이야, 만날 창밖만 보고 있어….”(좌중 폭소) 언젠가 집에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방충망을 떨어뜨린 적이 있다.
15층에서 떨어져서 네 조각이 났더라. 방충망을 잇는 기역자 모양의 플라스틱 이음새가 박살이 났더라고. 난 죽었다.
엄마 아빠가 집에 오시면 창밖을 내다봤다고 혼날 텐데….집안 형편도 넉넉지 않아 방충망 사는 것도 엄청난 부담이고. 그래서 오만 가지 생각을 하다가 아무도 몰래 수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플라스틱 대신 끼워넣을 것을 찾다가 아파트 분리수거함을 뒤져 알루미늄 캔을 기역자 모양으로 다 잘라서 방충망에 연결했다.
한달 뒤에 아버지가 문득 베란다 창문을 보시다가 “어? 이게 뭐지?” 하시는 거다.
그거 제가 예전에 떨어뜨려서 고쳐놓은 거라고 그랬더니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그게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본 칭찬이었다.
(좌중 폭소) 그러다보니 이해하기가 상당히 쉬웠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감정이란걸. (2014, 한겨레)7.-엄친아라는 사실로도 꾸준히 화제가 되는 스타다.
아버지에게는 어떤 아들인가."재벌도 아닌데 계속 그러신다.
아버지는 지금 월급 부사장이다.
어릴 때에는 집안 형편이 좋지 못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연기 때려치고 공부하라고 하실 때 신경쓰지 말라고 했었다.
내 일에 가족들이 터치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보통 가족들이랑 똑같다.
만나면 잠깐은 좋은데 시간이 지나면 스트레스 받는다.
그래서 명절에 잘 안내려간다.
(웃음)" (2016, enews24)8."어느순간 사람들이 나를 부잣집 아들이라고 알더라"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에 논두렁길로 학교 다니고 기숙사 생활하고 데뷔해서도 한동안 회사에서 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느 순간 부잣집 아들이라고 기사가 나오고 방송에도 나오는데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기사를 써주지도 않더라"고 덧붙였다.
강동원은 "아버지가 대기업 부사장이라고 하는데 원래 중소기업 다니시다가 그 회사가 합병을 해서 부사장이 됐다.
그런데 대기업 부사장이란 기사가 그러고 두 달 뒤에 나왔다"면서 "그 회사도 대기업이라고도 할 수 없다" (2018, 스타뉴스)9."저는 진짜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랐거든요. 어렸을 때 논두렁으로 학교에 다니고, 연탄을 때면서 살았죠. 대학 시절에는 서울로 상경해서 기숙사와 하숙집을 전전했고, 연기자로 데뷔하고 나서도 사무실에서 지내다가 그 뒤 조금씩 삶이 바뀌었을 뿐이죠." 그러나 그는 귀공자 같은 외모 때문에 종종 여러 오해를 받는다.
그는 "무엇보다 '부잣집 아들'이라는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억울해했다.
(2018, 연합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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