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로필
2. 개요
Nan Madol 난 마돌미크로네시아 연방의 폰페이(Pohnpei) 섬 남동부에는 템웬(Temwen)이라는 작은 산호섬이 있는데 이곳에는 12세기 무렵에 화산암을 쌓아 만든 인공섬 92개로 구성된 오세아니아 최대 규모의 해상 유적지가 있다.
유적의 이름인 난마돌은 "간격 내"를 뜻한다.
(인공섬 사이의 작은 수로, 운하를 지칭)난마돌의 인공섬은 산호섬 위에 있어 수시로 바닷물에 잠기게 되는데 물이 빠지면 무릎 아래로, 물이 차면 허리 높이 수준으로 올라와 카누를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유적 바깥쪽으로 크고 너른 돌을 쌓아 최대 15m의 높이로 거대한 성곽을 형성했기 때문에 유적 안쪽 바다는 대체로 잔잔하다.
돌 자체는 기둥처럼 길게 깎은 현무암 돌을 젠가처럼 수직으로 교차하며 쌓아올렸다.
인공섬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은 마돌 포웨(Powe) 구역에 있는 높이 7.5m의 난도와스(Nandauwas)라는 왕족의 무덤이다.
난마돌은 이곳에 존재했던 사우델레우르 왕조(Saudeleur Dynasty)가 1628년에 이소켈레켈에 의해 멸망하면서 버려졌고, 이후 폐허로 방치되었다.
그러다 1899년 독일이 이 섬을 스페인에게서 구입한 후 독일령 뉴기니에 편입하면서 조사가 시작되었고 그 뒤를 이어 이 섬을 점령한 일본과 미국의 학자들이 제한적으로 발굴 및 조사를 하였다.
그러한 고고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폰페이 섬에는 이미 1~2세기 경부터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나타났고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을 이용한 결과 난마돌은 12세기 무렵부터 축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즉 이 유적을 만든 사람들은 폰페이 섬의 화산암을 채취해 뗏목에 싣고 가져와 쌓는 일을 수 세기에 걸쳐 반복한 것이다.
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이렇게 거대한 석조 유적을 만드려면 섬 자체에 상주하는 인구가 상당히 많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아주 강력한 왕권이 성립되어 있어야 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난마돌은 그 구조상 식량과 식수조차 자체 수급이 불가능한 곳이라 폰페이 섬에서 생필품을 공급했을 것으로 보여, 난마돌의 거주자들은 어마어마한 권력을 지녔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미크로네시아 일대는 문자가 전파되지 않아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우델레우르 왕조와 난마돌 유적에 대한 기록도 당연히 남아있지 않고, 대개 구전설화와 고고학적인 발굴을 토대로 추측과 짐작만 할 뿐이다.
또한 탄소 연대측정법으로 측정한 결과에서도 8~9세기의 축조 흔적과 단 900여년 전의 축조 흔적도 있어, 사우델레우르 왕조가 주로 축조한 것은 맞지만, 그 전후로도 이 지역을 신성시한 것은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
비록 왕국은 사라졌지만 이곳 원주민들에게는 사우델레우르 왕조와 난마돌에 대한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어 그들은 지금도 이곳을 신성한 곳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똑같이 미스터리한 유적이라도 기록은 커녕 원주민들에게도 구전 설화조차 없는 나스카 지상화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전설화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가득한데, 이 설화에 의하면 난마돌은 마법사 형제가 농업의 신을 섬기기 위해 마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문제는 난마돌은 산호초 위에 세워진 데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바닷물이 형성하는 운하가 가득해서 농사가 불가능한 지역이라 도저히 농업의 신과는 무슨 연관인지 찾을 수가 없다는 것. 현지인들에게는 귀신이 나오는 곳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지인들은 야간에는 난마돌 내부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며 주간에도 들어가기 전에는 꼭 악령을 쫒는 의식을 치른다.
이 유적은 수로가 바다에 잠겨 매몰되고 맹그로브 숲이 번성한데다 구조물들의 지반이 침식되면서 세계유산에 지정됨과 동시에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도 등재됐다.
3. 매체에서 등장
- 대항해시대 온라인에 관련 퀘스트가 존재한다.
- 문명 6에서는 도시국가로 등장한다.
- Europa Universalis IV에서는 기념물로 등장한다.
- 정글의 법칙에서 두 차례 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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