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프롬스의 최근 이슈
김무성
대한민국 제47대 내무부 차관
|
|
출생
|
1951년 9월 20일 (72세)
|
경상남도 부산시 용당동
|
|
거주지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대우트럼프월드1차아파트 |
본관
|
김해 김씨 (金海 金氏)
|
현직
|
국민의힘 상임고문
사단법인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회장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 이사 |
재임기간
|
제47대 내무부 차관
|
1994년 12월 26일 ~ 1995년 9월 21일
|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가문 출신 정치인.대한민국의 제15대~20대 국회의원으로, 15대~18대까지는 부산 남구 - 남구 을 지역의 국회의원이었으며, 19대~20대는 영도구 - 중구·영도구의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소속 정당은 국민의힘이다.
새누리당의 2대 대표 최고위원 출신으로, 이 시절에는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예상되었던 거물 정치인이었다.
당시 선호도. 하지만 당시 비박계의 좌장(座長)으로서 항상 새누리당 내의 고질적인 친박계와 비박계 간 계파 갈등의 중심에 서있었으며, 이로 인한 옥새 파동, 그 뒤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참패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대선주자 유력 후보군에서 사실상 제외된다.
원래는 '친박계 좌장'이었으나, 200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자금 문제, 이명박 정권이 출범 초기 김무성에게 제의한 특임장관, 원내대표 추대를 박근혜가 반대하면서 둘은 큰 금이 가고 만다.
같은 해 치뤄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친박 무소속 연대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둘 사이가 봉합된 듯 했으나, 김무성이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박근혜 뒷담화하는 일이 벌어지고, 2009년 세종시 파동으로 둘은 사실상 결별한다.
그리고 2010년 김무성이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되면서 김무성은 사실상 친이 그룹에 참여했으며, 그 자신도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자 공공연히 원래 이명박과 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 뒤에는 박근혜 탄핵을 주도했으며, 19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비박계의 구심점으로 활동하며 새누리당 탈당과 바른정당 창당에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보수 개혁에 앞장서는 듯했다.
그러나 2017년 11월 9일. 새누리당을 탈당한 지 채 1년도 안 지나서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함에 따라 "보수당의 재건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2020년 2월 기존의 불출마 선언을 뒤집고 (통합신당이 출범한다면) 호남이든 어디든 당이 원하는 험지에 출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이에 광주광역시 출마도 거론됐지만, 최종 불발되면서 21대 총선은 출마하지 않게 되었으며 이후로는 국민의힘 상임고문을 맡으며 사실상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2022년 8월 윤석열 정부에서 다선 원로 의원들이 주로 맡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내정되었다.
그러나 내정 철회 가능성이 언급되고 결국 김 전 의원 본인이 고사하였다.
이후 김무성 본인의 기자회견에서 정계 복귀를 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자 70살 먹고 표 달라는 것은 옳치 못한다며 정계 복귀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소속 정당은 국민의힘이다.
새누리당의 2대 대표 최고위원 출신으로, 이 시절에는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예상되었던 거물 정치인이었다.
당시 선호도. 하지만 당시 비박계의 좌장(座長)으로서 항상 새누리당 내의 고질적인 친박계와 비박계 간 계파 갈등의 중심에 서있었으며, 이로 인한 옥새 파동, 그 뒤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참패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대선주자 유력 후보군에서 사실상 제외된다.
원래는 '친박계 좌장'이었으나, 200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자금 문제, 이명박 정권이 출범 초기 김무성에게 제의한 특임장관, 원내대표 추대를 박근혜가 반대하면서 둘은 큰 금이 가고 만다.
같은 해 치뤄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친박 무소속 연대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둘 사이가 봉합된 듯 했으나, 김무성이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박근혜 뒷담화하는 일이 벌어지고, 2009년 세종시 파동으로 둘은 사실상 결별한다.
그리고 2010년 김무성이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되면서 김무성은 사실상 친이 그룹에 참여했으며, 그 자신도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자 공공연히 원래 이명박과 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 뒤에는 박근혜 탄핵을 주도했으며, 19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비박계의 구심점으로 활동하며 새누리당 탈당과 바른정당 창당에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보수 개혁에 앞장서는 듯했다.
그러나 2017년 11월 9일. 새누리당을 탈당한 지 채 1년도 안 지나서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함에 따라 "보수당의 재건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2020년 2월 기존의 불출마 선언을 뒤집고 (통합신당이 출범한다면) 호남이든 어디든 당이 원하는 험지에 출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이에 광주광역시 출마도 거론됐지만, 최종 불발되면서 21대 총선은 출마하지 않게 되었으며 이후로는 국민의힘 상임고문을 맡으며 사실상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2022년 8월 윤석열 정부에서 다선 원로 의원들이 주로 맡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내정되었다.
그러나 내정 철회 가능성이 언급되고 결국 김 전 의원 본인이 고사하였다.
이후 김무성 본인의 기자회견에서 정계 복귀를 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자 70살 먹고 표 달라는 것은 옳치 못한다며 정계 복귀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 성장과 가족
'전남방직주식회사'의 창업주인 아버지 김용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금수저 정치인 중 한 명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경남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중동고등학교(64회)와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한양대학교 재학 시절 이미 자가용 승용차를 몰고 다녔다.
자가용 승용차는 현대 코티나였다.
지금이야 대학생 중에서도 자기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꽤 있는 시대지만, 그 당시는 교수들도 시내버스로 출근하였으며, 대학 총장 정도 되어야 승용차를 탈 수 있던 시대였다.
병역은 방위병 출신이라고 한다.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는 것 못지 않게 자전거도 매우 좋아하여 대학생 시절 여름방학 때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하기도 했다.
26세에 (주)동해제강이라는 회사의 상무이사가 되었고, 그리고 32세에 (주)삼동산업이라는 회사의 사장으로 일했다.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로 본격적인 정계 입문을 하기 전까지는 상술한 동해제강과 삼동산업의 경영인으로서 재계에서 활동했다.
김무성이 젊은 나이에 상무와 사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잘 나가는 경영인이 된 이유는 그가 전남방직 소유주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김무성은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외삼촌이다.
큰 누나 김문희의 둘째 딸이 현정은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할아버지는 같고 할머니가 다른, 즉 배 다른 외삼촌이다.
김문희 이사장은 전처 소생이고 김무성 대표는 후처 소생이다.
그러니까 김 대표의 이복 누나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 현정은 회장의 생모다.
그리고 형 김창성은 전방(전남방직)을 경영하였다.
부인 최양옥 씨는 피아니스트이자 명지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로, 이승만 대통령의 비서관과 자유당 정권 공보처장, 이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 3선 국회의원을 했던 최치환 씨의 딸이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는데, 아들은 배우 고윤이다.
드라마 아이리스 2로 데뷔했고 영화 국제시장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바 있으며 영화 오늘의 연애에서 주인공 이승기의 절친인 재중 역을 맡기도 했다.
KBS 드라마 오늘부터 사랑해에서 천재 바리스타인 정윤호 역을 맡기도 했고 꾸준히 여러 드라마에 조연으로서 활동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오대수 역할을 맡았다.
차녀인 김현경 씨는 수원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었으나, 너무 젊은 나이에 교편을 잡았다는 것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
이후 남편이 여러 마약 전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교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경남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중동고등학교(64회)와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한양대학교 재학 시절 이미 자가용 승용차를 몰고 다녔다.
자가용 승용차는 현대 코티나였다.
지금이야 대학생 중에서도 자기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꽤 있는 시대지만, 그 당시는 교수들도 시내버스로 출근하였으며, 대학 총장 정도 되어야 승용차를 탈 수 있던 시대였다.
병역은 방위병 출신이라고 한다.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는 것 못지 않게 자전거도 매우 좋아하여 대학생 시절 여름방학 때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하기도 했다.
26세에 (주)동해제강이라는 회사의 상무이사가 되었고, 그리고 32세에 (주)삼동산업이라는 회사의 사장으로 일했다.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로 본격적인 정계 입문을 하기 전까지는 상술한 동해제강과 삼동산업의 경영인으로서 재계에서 활동했다.
김무성이 젊은 나이에 상무와 사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잘 나가는 경영인이 된 이유는 그가 전남방직 소유주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김무성은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외삼촌이다.
큰 누나 김문희의 둘째 딸이 현정은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할아버지는 같고 할머니가 다른, 즉 배 다른 외삼촌이다.
김문희 이사장은 전처 소생이고 김무성 대표는 후처 소생이다.
그러니까 김 대표의 이복 누나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 현정은 회장의 생모다.
그리고 형 김창성은 전방(전남방직)을 경영하였다.
부인 최양옥 씨는 피아니스트이자 명지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로, 이승만 대통령의 비서관과 자유당 정권 공보처장, 이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 3선 국회의원을 했던 최치환 씨의 딸이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는데, 아들은 배우 고윤이다.
드라마 아이리스 2로 데뷔했고 영화 국제시장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바 있으며 영화 오늘의 연애에서 주인공 이승기의 절친인 재중 역을 맡기도 했다.
KBS 드라마 오늘부터 사랑해에서 천재 바리스타인 정윤호 역을 맡기도 했고 꾸준히 여러 드라마에 조연으로서 활동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오대수 역할을 맡았다.
차녀인 김현경 씨는 수원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었으나, 너무 젊은 나이에 교편을 잡았다는 것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
이후 남편이 여러 마약 전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교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3. 정치
3.1. 정치 성향
여러가지 막말에다 꼰대 발언으로 논란을 만들긴 했지만 2010년대 중후반까지 생존해 있는 대표적인 새누리당 내 비박 및 민주계(김영삼-이회창의 노선을 따르던 개혁보수 세력) 인물이다.
이전의 민주계들은 이회창의 은퇴 후 보스를 잃어 혼란을 맞게 되었고, 이명박때 18대 총선에서 수가 많아진 친박의 견제를 받다가 박근혜 시점 들어서는 거의 새누리당에 남아있지 못 했는데, 유승민과 같이 비박의 대표 이미지를 맡았다.
김무성은 상도동계, 유승민은 이회창계 였다는 점이라는 특징도 있다.
그 외에는 80년대에는 통일민주당(현재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의 개혁보수/민주계/상도동계 세력의 근원)에서 3당 합당에 반대하여 중간에 떠난 인물들과는 달리 김영삼을 계속 모셨다.
과거만 하더라도 논란 항목에 써있듯 '난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상태를 의심해봐야 한다.
', '5.16은 혁명이다' 등 보수 진영의 대표적인 저격수로 명성을 떨쳤으나, 비박계의 대표 주자가 된 2010년대 중반쯤부턴 노 전 대통령이 묻힌 봉하마을도 들르고 '임을 위한 행진곡' 열창과 함께 5.18 민주화 운동도 치켜세우고 있다.
과거 발언들에 대해서도 '내가 돌 맞아도 할 말 없다'는 식으로 사과하는 등 급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난 그분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하며 고인의 차남인 김현철 교수와 함께 상주를 섰을 정도다.
어찌되었든 유승민과 더불어 여태껏 살아있던 입지있는 민주계/개혁보수 세력이었고, 유승민과 함께 비박을 상징하는 유력 정치인이었기에 새누리당의 민주계는 박근혜의 횡포에 맞서 필사적으로 김무성을 당 대표로 올려놓고 유승민을 원내대표로 세웠다.
박근혜 정부동안 국민들이 박근혜의 능력에 대해서 여론이 안 좋아지는 시기에, 비박으로서 보수진영에서 유력한 대선주자로 뜨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김무성-유승민을 박근혜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친박과 연대한 단체인 어버이연합이나 박사모 등이 유승민과 김무성을 향해 깽판을 부렸고, 결국 친박은 민주계를 어떻게든 밀어내고 축출하면서 민심도 잃게 되어 김무성도 몰락, 민주계의 마지막 기대도 사라진다.
의외로 사형에 반대하는 등, 진보적인 면도 있다.
2016년엔 새누리당에 '난 경제는 중도, 안보는 보수'라며 경제적으로 좌클릭해야 한다는 뉘앙스도 내비쳤다.
이에 대해 '대권병 걸려서 좌우 가리지 않고 있다'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으나, 대권을 생각해 중도 & 진보 쪽의 마음을 얻기 위한 행보인 것인지 아님 진짜로 심정적 변화가 있는 건지는 본인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사실 김성태, 오신환, 하태경 등 김무성 대표와 가까웠었던 의원들이 대체로 온건파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아 그들과 보조를 맞추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바른정당으로 이적하고 나서는 과거와는 달리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은 삼갔다.
이후 복당하면서는 예전대로 우경화하는 중이다.
2017년 5월 캐리어를 보좌관에게 '노 룩 패스'하는 병크를 터트렸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권위주의 타파가 정계에서도 중요한 트렌드가 된 현실을 완전히 역행함으로서 본래 있던 '권위적인 꼰대' 이미지를 완전히 굳혀버렸기 때문이다.
정말 보좌관과 그만큼 격의없는 관계였다면 억울할 소지가 있겠지만 공인으로서는 분명 경솔한 행동이었고 해명 요구에도 신경질적으로 대응하며 더 논란을 키웠다.
국회 내 가장 대표적인 개헌론자 중 하나이다.
여기서 개헌이란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뜻하며, 본인 스스로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다고 한다.
대개 대권과 먼 인물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를 추진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무성의 경우 한창 대권주자 1위를 하던 당대표 시절부터 개헌을 주장했다.
이런 것을 보면 소신을 가지고 행동하는 편으로 보인다.
이전의 민주계들은 이회창의 은퇴 후 보스를 잃어 혼란을 맞게 되었고, 이명박때 18대 총선에서 수가 많아진 친박의 견제를 받다가 박근혜 시점 들어서는 거의 새누리당에 남아있지 못 했는데, 유승민과 같이 비박의 대표 이미지를 맡았다.
김무성은 상도동계, 유승민은 이회창계 였다는 점이라는 특징도 있다.
그 외에는 80년대에는 통일민주당(현재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의 개혁보수/민주계/상도동계 세력의 근원)에서 3당 합당에 반대하여 중간에 떠난 인물들과는 달리 김영삼을 계속 모셨다.
과거만 하더라도 논란 항목에 써있듯 '난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상태를 의심해봐야 한다.
', '5.16은 혁명이다' 등 보수 진영의 대표적인 저격수로 명성을 떨쳤으나, 비박계의 대표 주자가 된 2010년대 중반쯤부턴 노 전 대통령이 묻힌 봉하마을도 들르고 '임을 위한 행진곡' 열창과 함께 5.18 민주화 운동도 치켜세우고 있다.
과거 발언들에 대해서도 '내가 돌 맞아도 할 말 없다'는 식으로 사과하는 등 급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난 그분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하며 고인의 차남인 김현철 교수와 함께 상주를 섰을 정도다.
어찌되었든 유승민과 더불어 여태껏 살아있던 입지있는 민주계/개혁보수 세력이었고, 유승민과 함께 비박을 상징하는 유력 정치인이었기에 새누리당의 민주계는 박근혜의 횡포에 맞서 필사적으로 김무성을 당 대표로 올려놓고 유승민을 원내대표로 세웠다.
박근혜 정부동안 국민들이 박근혜의 능력에 대해서 여론이 안 좋아지는 시기에, 비박으로서 보수진영에서 유력한 대선주자로 뜨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김무성-유승민을 박근혜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친박과 연대한 단체인 어버이연합이나 박사모 등이 유승민과 김무성을 향해 깽판을 부렸고, 결국 친박은 민주계를 어떻게든 밀어내고 축출하면서 민심도 잃게 되어 김무성도 몰락, 민주계의 마지막 기대도 사라진다.
의외로 사형에 반대하는 등, 진보적인 면도 있다.
2016년엔 새누리당에 '난 경제는 중도, 안보는 보수'라며 경제적으로 좌클릭해야 한다는 뉘앙스도 내비쳤다.
이에 대해 '대권병 걸려서 좌우 가리지 않고 있다'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으나, 대권을 생각해 중도 & 진보 쪽의 마음을 얻기 위한 행보인 것인지 아님 진짜로 심정적 변화가 있는 건지는 본인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사실 김성태, 오신환, 하태경 등 김무성 대표와 가까웠었던 의원들이 대체로 온건파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아 그들과 보조를 맞추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바른정당으로 이적하고 나서는 과거와는 달리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은 삼갔다.
이후 복당하면서는 예전대로 우경화하는 중이다.
2017년 5월 캐리어를 보좌관에게 '노 룩 패스'하는 병크를 터트렸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권위주의 타파가 정계에서도 중요한 트렌드가 된 현실을 완전히 역행함으로서 본래 있던 '권위적인 꼰대' 이미지를 완전히 굳혀버렸기 때문이다.
정말 보좌관과 그만큼 격의없는 관계였다면 억울할 소지가 있겠지만 공인으로서는 분명 경솔한 행동이었고 해명 요구에도 신경질적으로 대응하며 더 논란을 키웠다.
국회 내 가장 대표적인 개헌론자 중 하나이다.
여기서 개헌이란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뜻하며, 본인 스스로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다고 한다.
대개 대권과 먼 인물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를 추진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무성의 경우 한창 대권주자 1위를 하던 당대표 시절부터 개헌을 주장했다.
이런 것을 보면 소신을 가지고 행동하는 편으로 보인다.
4. 성품
김무성 대표는 갈등을 부드럽게 만드는 통합의 리더십 갖췄다.
- 정의당 심상정김무성은 누구보다 폐활량이 큰 정치인이다.
- 이윤석계파와 인맥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한국형 정치 리더라고 볼 수 있다.
좌성태 우학용으로 대표되는 좌장들을 중심으로, 그의 주위에는 그를 따르는 비박계 의원들이 즐비해 있다.
비단 계보원들 뿐 아니라 문재인, 박지원, 심상정 같이 성향상 정 반대의 진영과도 인간적으로는 가까이 지내는 걸 보면 상당한 친화력과 붙임성의 소유자로 보인다.
그의 측근이었던 장성철 시사평론가는 김무성 전 대표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만큼 김무성의 인격을 긍정적으로 평했다.
다른 의원들과 달리 확실히 주말 휴무를 보장했고, 야근을 할 일이 있다면 보좌관들은 전부 집으로 보내고 혼자 사무실에서 일을 하던 스타일이었다.
이 때문에 근속 연수도 상당히 긴 편에 속했고 관례를 깨고 인턴들에게도 퇴직금 정산까지 확실히 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사안이 있으면 의원실 전 직원을 불러서 지위고하 막론하고 의견을 구하고, 그 의견에 대해서 가부로 부쳐 결정한다고 한다.
이렇게 비일비재하게 사안을 결정하다보니, 말단 직원들도 눈치 안보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또한 김무성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런 사안 결정방식에는 김무성이 속해있었던 상도동계 방식을 착안한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김영삼 대통령도 이러한 방식으로 사안을 결정했다고 한다.
초면인 기자에게 격의 없이 반말을 하는 모습이나 깊은 고민 없이 직설적인 말을 툭툭 내뱉는 모습만 보면 권위주의에 찌든 정치인으로 비춰지는 면도 있으나, 실제로는 국회 내에서 그 누구보다 타협을 중시하는 면도 있다고 하며 김무성-유승민 투톱 체제 당시, 국정 운영이 원활해 야당에서도 평가가 꽤나 좋았다고 한다.
직접 만나 겪어 본 사람들은 인간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고 평하기도 하며, 따뜻함을 느낀다고 한다.
정치 행보나 스타일은, 이상과 신념에 집착하지 않고 힘에 부치면 뜻을 접는 현실주의형이다.
좋게 말하면 현실주의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든 주장을 뒤집는 모습에서 비굴함이 엿보이는 건 사실이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로 고개를 숙이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러 모로 연구 대상인 입체적인 캐릭터다.
더불어, 가정에 대한 애착에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도 아내도 모두 반대했던 정치 일에 뛰어든 탓에, 밤 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경우가 잦아 아내와 자식들에게 심리적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SNS에서 게재되는 사진들 역시 정치 행보보다는 가족, 특히 손주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많다.
- 정의당 심상정김무성은 누구보다 폐활량이 큰 정치인이다.
- 이윤석계파와 인맥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한국형 정치 리더라고 볼 수 있다.
좌성태 우학용으로 대표되는 좌장들을 중심으로, 그의 주위에는 그를 따르는 비박계 의원들이 즐비해 있다.
비단 계보원들 뿐 아니라 문재인, 박지원, 심상정 같이 성향상 정 반대의 진영과도 인간적으로는 가까이 지내는 걸 보면 상당한 친화력과 붙임성의 소유자로 보인다.
그의 측근이었던 장성철 시사평론가는 김무성 전 대표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만큼 김무성의 인격을 긍정적으로 평했다.
다른 의원들과 달리 확실히 주말 휴무를 보장했고, 야근을 할 일이 있다면 보좌관들은 전부 집으로 보내고 혼자 사무실에서 일을 하던 스타일이었다.
이 때문에 근속 연수도 상당히 긴 편에 속했고 관례를 깨고 인턴들에게도 퇴직금 정산까지 확실히 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사안이 있으면 의원실 전 직원을 불러서 지위고하 막론하고 의견을 구하고, 그 의견에 대해서 가부로 부쳐 결정한다고 한다.
이렇게 비일비재하게 사안을 결정하다보니, 말단 직원들도 눈치 안보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또한 김무성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런 사안 결정방식에는 김무성이 속해있었던 상도동계 방식을 착안한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김영삼 대통령도 이러한 방식으로 사안을 결정했다고 한다.
초면인 기자에게 격의 없이 반말을 하는 모습이나 깊은 고민 없이 직설적인 말을 툭툭 내뱉는 모습만 보면 권위주의에 찌든 정치인으로 비춰지는 면도 있으나, 실제로는 국회 내에서 그 누구보다 타협을 중시하는 면도 있다고 하며 김무성-유승민 투톱 체제 당시, 국정 운영이 원활해 야당에서도 평가가 꽤나 좋았다고 한다.
직접 만나 겪어 본 사람들은 인간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고 평하기도 하며, 따뜻함을 느낀다고 한다.
정치 행보나 스타일은, 이상과 신념에 집착하지 않고 힘에 부치면 뜻을 접는 현실주의형이다.
좋게 말하면 현실주의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든 주장을 뒤집는 모습에서 비굴함이 엿보이는 건 사실이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로 고개를 숙이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러 모로 연구 대상인 입체적인 캐릭터다.
더불어, 가정에 대한 애착에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도 아내도 모두 반대했던 정치 일에 뛰어든 탓에, 밤 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경우가 잦아 아내와 자식들에게 심리적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SNS에서 게재되는 사진들 역시 정치 행보보다는 가족, 특히 손주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많다.
5. 여담
- 2015년 말쯤 인터넷상에서 원피스에 나오는 천룡인 중 차를로스 성하고 닮았다는 얘기가 나오더니 결국 저런 짤방이 탄생했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의 전 대표이자 대권 경쟁자인 문재인 대통령도 몇 년 전부터 명왕과 외모가 비슷하다며 합성짤 등이 나돌았다. 사실 두 사람은 경남중학교 1년 선후배 사이로, 사적으로는 서로 반말로 말을 주고 받을 정도로 매우 친분이 두터운 사이이다. 새누리당 대표 시절 김무성 대표 딸의 결혼식에 문재인 전 의원이 불쑥 찾아왔는데, 자당 의원들조차도 구설수에 오른다며 오지 말라고 했던 김무성 대표가 문재인만큼은 환영해줘 딸과 인사도 시키고 반갑게 맞이해줬다고 한다.
- 박지원과도 사이가 좋다. 같이 예능에서 호흡을 맞췄을 정도다. 희한하게도 박지원 파와 문재인 파는 사이가 나쁘다. 둘 다 상도동계, 동교동계 인물로 각각 김영삼, 김대중이 각별히 여기던 사람이란 걸 생각하면 계파가 사이좋을 리는 없긴 하지만, 사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독재에 맞설 때는 협력했던 관계였고 김무성도 YS를 도와 운동한 경력이 있다. 사실 그는 정치권의 대표적인 마당발로 통하는 인사 중 하나로, 심지어 정치적으로 거의 상극이나 다름없는 심상정 의원과도 다정한 스킨십을 나누는 것이 포착될 정도다. 다만 이후에는 박지원과는 사이가 틀어진 듯 박지원이 마리텔 방송에 나와서 '내 전화 안 받을 텐데?'하고 전화를 시도하나 받지 않았다.
- 김무성이 제20대 총선 직전까지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로 꼽히는 등 승승장구할 때는 '킹찍탈'이라는 유행어도 존재했다. '(선거에서) 킹무성 찍고 (해외로) 탈조선'이란 뜻으로, 새누리당 및 김무성에 대한 반감과 '헬조선'이 상징하는 자국 혐오가 결합된 용어다. 20대 총선 이후에는 당연히 사용 빈도가 많이 줄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아니 애초에 옥새런으로 박근혜의 정치인생에 대한 사형선고의 첫 타를 때리고 친박과 척을 지면서 사용되지 않는다. 피상적으로 박근혜의 후신처럼 알려진 사람 치고는 2년이 지난 지금은 꽤나 반전과도 같은 결말이다. 실제로 21대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았고, 이후로는 정치권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어지다시피했다.
- 윈도우 불법인증도구인 KMS를 김무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정확히 말해 KMS는 불법인증도구가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의 정품인증 방식이며, 이를 해킹한 툴에 'KMS 인증' 따위의 이름이 붙은 것이다. 항목 참조
-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14년 전에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하고 제 집을 트럼프 월드로 이사한 적이 있다"라고 개그를 쳤다. 아직도 여의도 트럼프 월드에 거주한다고 한다.
- 프로필에 적힌 키가 181cm으로 나이에 비해 상당히 키가 큰 편이다. 김무성이 1951년생이고 당시 한국 남성 평균 신장을 생각해 보면 상당한 장신에 속하며, 지금으로 치면 거의 190cm 이상에 해당되는 키다. 참고로 181cm이면 현재 20대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해도 큰 키에 속한다.
- 지금은 나잇살이 많이 붙었지만, (특히 나이 든 사람들 중에는) 김무성이 잘 생겼다는 이유로 지지하는 사람도 꽤 있다. 실제로 젊었을 적 사진들을 보면 위에서 언급된 덩치와 함께 풍채가 당당하고 호방한 외모의 소유자다. 관상학적으로도 귀골이라 한다. 아들이 연예인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현재의 체중은 85~90kg 정도라고한다.
-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넷 상으로 도화살이라는 카더라 썰이 퍼져 있다.
- 정치권에서 알아주는 주당이라고 한다. 한 때 유인태, 박희태, 이명박과 함께 정치권 4대 주당으로 꼽혔다고. 다만 2022년 기준 앞선 세 사람은 모두 정치계에서 떠났고, 김무성도 사실상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니, 네 사람 모두 정계를 떠난 셈이다.
- 주당이라는 이미지에 맞게, 김무성이 현역 의원시절에는 새누리당 내에서 소주 회담 이라는 문화가 있었다. 안주는 감자탕이나 삼겹살등의 가벼운 음식을 곁들이고 자신이 부른 의원들끼리 소주를 한 잔 들이키는 것을 기자들에게 공개하여 '다같이 한 잔 마시고 털어냈다.' 라는 이미지를 보인 것이다. 또한 유승민 의원에게는 부친상 때 조문하여 상주인 유승민에게 소맥을 타서 폭탄주를 즉석에서 두 잔 만들어 한 잔 하라고 건네줬다. 그리고 옥새런 파동 때도 부산으로 찾아온 원유철을 불러 횟집에서 나란히 앉아 그 소주회동으로 분위기를 이끌어나갔다. 에피소드를 보면 알겠지만, 새누리당 내에서 분열이 생길 때 김무성이 당사자와 만나 소주를 같이 마시고, 그걸 기자들 앞에 공개하는 것을 보면 그의 평가인 주당이면서 당 내의 조직 융화를 중시한다.라는 평가가 딱 맞아 떨어진다.
- 주당이지만, 상당한 혐연가이기도 한데, 담배를 태우는 국회의원들을 공공연하게 비난하고, 몸에 좋지도 않은 그런 걸 왜 그리 태워대는지 모르겠다.라는 말과 담배 피는 남자를 안 말리는 부인에게도 책임이 있다.라는 발언으로 철저한 혐연 스탠스를 취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현역시절 상대 야당인 민주당계의 김한길과 이해찬 모두 술은 못 해도 알아주는 골초라고 한다.
- 위에 언급한 옥새런은 이후 엄청난 국가 비리 이후 드립용으로 재평가되었다.
- 출생지가 부산광역시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부산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김무성 본인은 포항시를 또다른 고향으로 여기며 포항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유년 시절을 포항에서 지냈으며, 청년기 동안 포항에서 동해철강 전무로 7여년을 살았다. 위에서 언급했듯 사실상 정치 활동을 처음 시작하려고 했던 곳 역시 포항이다. 지금도 종종 포항을 방문하며 포항 향우회 행사에 참여하는 중이다. 참조 기사
- 연세대학교 농구부 16학번에 동명이인의 선수가 있다. 마침 17학번에 박지원도 있다 보니 기사에 언급되면 덧글이 노룩패스로 도배되기 십상. 이후 김무성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 입단했으며 박지원은 부산 kt 소닉붐에 입단하여 프로에서 재회했다.
- 별명으로 김듬성, 김일성이 있다.
- 한 때는 차기 대권 후보로서 문재인보다 지지율이 더 높게 나온 적이 있다.
- 평소에 측근을 통해서 박근혜 확 받아버린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박근혜 탄핵에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정말 받아버렸다.
- 공적으로 보이는 모습과 별개로, 사적으로는 상당히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이념과 진영을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친분을 과시하는 이유다. 보좌진들이나 지인들의 증언으로는 그야말로 사람 좋은 스타일이라고 한다. 직설적이기로 유명한 하태경 의원 역시 그가 굉장히 수평적인 사람이라며 권위적인 꼰대와는 거리가 멀다 평가했다. 실제로 사석에서 그를 본 사람들은 하태경 의원이 이러한 평가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노룩패스의 주인공인 보좌관과는 정말 그만큼 편한 사이여서 그리 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물론 기자단을 의식하지 못한 점은 반박하기 힘든 실수다.
- 보수논객 전원책이 싫어하는 정치인 중 한 명인데 방송에서 언급할 때마다 노골적으로 씹는 경우가 잦다. 썰전에서 유승민과 만났을 땐 그 분 백수야?라고 하면서 은근히 싫어하는 기색을 표하더니 한 번은 하는 일 없이 뱃살을 타악타악 튕기고 다닌다며 비꼰 적이 있는데 이 때 오히려 감정이 안 좋다면 더 안 좋을 수밖에 없는 유시민이 전변호사님이 뱃살나온 사람의 고충을 아냐며 말렸을 정도다.
- 신고한 재산 내역을 보면, 2015년 기준 김무성의 재산 규모는 현금과 부동산 등을 모두 합쳐 137억 5,600만 원이라고 한다. 참고로 해당 재산 규모에서 부동산 재산의 가치는 공시지가로 신고되어 있어서 다소 낮게 측정되었을 경우가 높다. 이후 2017년 기준 고위공직자 재산목록을 보면 부인 명의 예금통장에 100억이 있다. 부부의 총 재산 합은 현재 130억으로 줄었다. 다만 2022년 기준 재산이 1,000억 원 규모로 알려지고 있다.
- 상당한 손주 바보다. 1남 2녀 슬하의 외손주들과 찍은 사진을 습관적으로 페이스북에 게재할 정도이다.
-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의 주인공, 프랜시스 언더우드와 닮은 꼴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남부 출신, 정치 베테랑에 다선 의원, 한 때 여당 실세급 의원,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진 이 후 의도적인 트롤링, 근데 그 대통령 뒤에서 비합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20년 지기 친구가 있음, 대통령 탄핵의 일등 공신이다. 이쯤되면 거의 평행이론 수준이다.
- 보수내에서 거물급 정치인임에도 상당히 특이하게 친박/비박 성향의 보수 지지자들 모두에게 부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정치인이다. 친박성향의 지지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불가피했다는 것만으로도 김무성은 일방적인 증오의 대상일 뿐이며, 비박 성향에서도 20대 총선의 옥새런 파동, 조선족 이민 대거 허용, 노룩 패스로 인하여 기성 꼰대 정치인이라는 반감이 상당하다. 과거 킹무성, 킹찍탈로 불리며 대권주자 1위였던 인물임을 생각하면 불과 몇 년도 채 안 돼서 위상이 급속도로 무너진 케이스다. 심지어 2020에는 일부 언론조사에서는 차기 대권주자 후보군에서도 빠졌다.
- 대권주자에서도 밀려나고 정치적 입지도 줄어든 탓인지 "국회의원은 안 하지만 정치를 은퇴한 것은 아니다"며 "2년 뒤 대선에서 정권 창출을 위해 킹메이커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 왕좌의 게임을 몰아보느라 며칠간 칩거했다고 한다.
- 2021년 4월 tvN 업글인간 3~4회에 아들 고윤과 함께 출연했는데 대학생 시절 이후 처음으로 캠핑을 했고 아들과 처음 대작도 해보았다. 그리고 고윤과 캠핑하면서 '이제 70이고, 건강하게 보낼 시기가 10년 남짓이다. 이제라도 가족에게 헌신하고 싶다. 특히 불편한 관계를 보냈는 고윤과 같이 하고 싶다.'며 사실상 정계 은퇴를 시사하였다.
- 2009년 국정감사 당시 '발열팩 사건' 때문에 지나치게 욕을 먹은 적도 있다. 당시 국방위원회에서 김무성은 전투식량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내구력이 약하고 쓰레기가 너무 많이 발생하며, 발열 과정에서 지나친 수증기가 발생해서 은엄폐 유지가 되지 않는다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이는 야전부대에서도 많이 올라온 건의사항이었다. 게다가 무턱대고 트집잡은 게 아니라 연구보고서를 작성하거나 관련 학회에서 토론도 했다.즉 국정감사에서 전투식량 성능 자체만을 지적했다기 보다는, 해당 전투식량이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개발하는 데 7년이 걸렸고, 3년 동안이나 기술시험, 부대운용시험을 거치며 총 개발비로 85억여 원이나 날려먹은 것을 좀 더 문제삼았던 것으로, 국방위원회 위원으로서 마땅히 할 일이었다. 하지만 자녀들 군대 빼주는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 풍조 및 말을 조리 있게 잘 못 한 덕분에 결과적으론 "니가 말하는 완벽한 전투식량인 미숫가루, 건빵이나 처먹어라" 같은 식으로 비난을 당했다. 정작 자기 아들은 현역병 만기전역자라는 걸 생각하면, 뭐지 이사람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케이스다.
6.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신민당(1967년) |
1978 - 1980
|
정계 입문
|
무소속
|
1980 - 1985
|
정당 해산
|
신한민주당 |
1985 - 1987
|
입당
정계 복귀 |
무소속
|
1987
|
탈당
|
통일민주당 |
1987 - 1990
|
창당
|
민주자유당 |
1990 - 1995
|
합당
|
신한국당 |
1995 - 1997
|
당명 변경
|
한나라당 |
1997 - 2008
|
합당
|
무소속
|
2008
|
탈당
|
한나라당 |
2008 - 2012
|
복당
|
새누리당 |
2012 - 2016
|
당명 변경
|
무소속
|
2016 - 2017
|
탈당
|
바른정당 |
2017
|
창당
|
무소속
|
2017
|
탈당
|
자유한국당 |
2017 - 2020
|
복당
|
미래통합당 |
2020
|
합당
|
국민의힘 |
2020 - 현재
|
당명 변경
정계 은퇴 |
7.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
전국구
|
통일민주당 |
4,680,175 (23.80%)
|
낙선 (15번)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
민주자유당 |
7,923,718 (38.50%)
|
낙선 (50번)
|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
부산 남 을
|
신한국당 |
38,970 (62.58%)
|
당선 (1위)
|
초선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
부산 남
|
한나라당 |
75,215 (66.93%)
|
재선
|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
부산 남 을
|
한나라당 |
38,826 (54.88%)
|
3선
|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
무소속
|
26,265 (49.69%)
|
4선
|
||
2013
|
상반기 재보궐선거
(국회의원) |
부산 영도
|
새누리당 |
27,981 (65.72%)
|
5선
|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부산 중·영도
|
43,447 (55.80%)
|
6선
|
- 잘 부각되지 않은 점이 있는데 지역구 선거에서 진 적이 없다. 전국구에서 두 번 출마했으나 거의 당선권 밖에 있는 번호라서 2전 2패지만, 지역구 선거는 6전 6승이며 이 중 5번이 득표율 과반을 넘었다. 무소속으로 나온 선거에서도 절반에 가까운 득표율을 얻었다. 이 정도의 경력이라면 국회의장급이다. 현재 여야를 통틀어 그를 뛰어넘을 만한 관록의 인물은 서청원, 이해찬, 이시종, 문희상, 정세균, 정몽준, 홍준표밖에 없는 수준이다. 다만 3당 합당 이후의 부산이 보수 강세 지역임을 감안하면 안방 챔피언으로도 볼 수 있다.
내용이 도움이 되셨으면 공감 버튼 꼬옥 눌러주세요 ♥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