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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에 대한 상세 정보 및 소식

by Nomangs 2023.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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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이스라엘 왕국 제3대 국왕
솔로몬
שְׁלֹמֹה
늙은 솔로몬 왕. 구스타브 도어. 1866년 작(作)
이름
히브리어: 슐로모(שלמה, /ʃlomo/)
그리스어: 솔로몬(Σολομών)
라틴어: 살로몬(Salomon)
출생
기원전 990년
이스라엘 왕국 예루살렘
사망
기원전 931년 (향년 58-59세)
이스라엘 왕국 예루살렘
재위 기간
이스라엘 국왕
기원전 970년 ~ 기원전 931년 (40년)
지파
유다 지파
전임자
다윗
후임자
이스라엘 왕국: 여로보암 1세
유다 왕국: 르호보암
부모
아버지 : 다윗
어머니 : 밧세바
가족관계
아들: 르호보암
손자: 아비얌
증손자: 아사
현손: 여호사밧
이복형: 암논, 길르압, 압살롬, 아도니야 등
이복누나: 다말
묘소
예루살렘 다윗성

1. 개요

 

젊은 시절의 솔로몬야훼께서 그 날 밤 기브온에 와 있던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다.
하느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중략)...  "그러하오니 소인에게 명석한 머리를 주시어 당신의 백성을 다스릴 수 있고 흑백을 잘 가려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감히 그 누가 당신의 이 큰 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이러한 솔로몬의 청이 야훼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장수나 부귀나 원수 갚는 것을 청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옳은 것을 가려내는 머리를 달라고 하니 자, 내가 네 말대로 해주리라. 이제 너는 슬기롭고 명석하게 되었다.
너 같은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뿐만 아니라 네가 청하지 않은 것, 부귀와 명예도 주리라. 네 평생에 너와 비교될 만한 왕을 보지 못할 것이다.
공동번역성서, 열왕기상 3장 5~13절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개역개정 성경, 전도서 1장 2절성전, 지혜 등으로 성경 내에서 최고의 번영을 구가했으며, 그 자체가 유대교나 그리스도교, 이슬람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지혜로운 사람의 대명사로 쓰이는 인물이다.
그의 치세 아래 이스라엘은 최대의 번영을 구가했으나 실책도 적지 않아 쇠퇴와 분열의 징조가 보였다.
'지혜의 왕'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성경에 등장한,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의미의 예디드야(여디디야)(ידידיה, Jedidiah). 구약성경 중 시편의 시 중 상당수, 잠언 구절 중 상당수를 집필했고 코헬렛(전도서), 아가의 작자로 알려졌다.
부왕이 지으려고 했으나 짓지 못한 예루살렘 성전을 완성시키기도 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수많은 잠언과 시를 남겼다고 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시편을 남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도 시에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작 시편 중에서 솔로몬 왕이 썼다고 명확하게 나와있는 구절은 별로 없다.
세계사에서 솔로몬과 유사한 인물으로는 당현종이 있다.

 

2. 왕이 되다

 

그 유명한 다윗 왕의 아들. 어머니는 장군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본래 그가 다음 왕의 자리를 이을 가능성은 희박했는데, 비록 다윗의 총애를 받는 밧세바의 소생이었지만 왕위 계승 서열은 낮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다윗의 아들 중 계승 서열이 가장 높았던 이는 넷째였던 아도니야였는데, 첫째 아들이었던 암논은 셋째 압살롬의 칼에 살해당했고, 둘째인 길르앗은 요절했으며, 압살롬은 무리하게 왕위 계승을 시도하다가 요압의 창에 살해당했다.
게다가 아도니야의 배후에는 이스라엘의 군대 사령관 요압과 대제사장 아비아달이 지원하고 있었다. 특히 요압은 다윗의 전성기를 이끈 불세출의 명장이자, 부왕의 정치기반이라 할 수 있는 유다 지파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어 다윗조차 그를 제거하려다가 실패한 전적이 있던 희대의 권신이었다.
솔로몬을 지지하던 제사장 사독과 근위대장 브나야가 있었지만, 아도니야 쪽의 대제사장 아비아달이 비록 사울 왕에게 일족이 학살당하기는 했어도 판관 시절부터 쭉 이어져 오고 있던 엘리 계열의 지체높은 명문 제사장 가문이었던 것에 반해, 솔로몬 쪽의 사독은 아비아달만큼 그 가문의 입지가 빵빵하지 못했고, 브나야 역시 군부의 수장인 요압과 정면으로 대치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밧세바와 선지자 나탄이 다윗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다윗은 전에 밧세바와 한 약속도 있었기 때문에 또 다른 대제사장 사독과 브나야를 불러들인 뒤 아도니야 일파가 손을 쓸 틈도 주지 않고 직접 왕위를 넘겨줘버렸다.
이로 인해 아도니야 일파는 한 순간에 역적으로 몰려서 공중분해되었다.
역사적으로 왕에게 사랑받는 아내가 기존의 후계자를 몰아내고 자기 아들을 세우려 한 경우는 많았는데, 그 시도가 성공한 예 중 하나. 만일 솔로몬이 암군이었다면 다윗은 '애처의 꾐에 홀려 띨띨한 후계자를 정해 나라를 망쳤다'라는 평을 들었겠지만 솔로몬이 명군이라서 다윗의 선견지명이 발휘된 것으로 남게 되었다.
허나 솔로몬은 이스라엘 왕국 최대 전성기를 이룩하긴 하지만 동시에 쇠퇴의 원인도 제공하기도 했다.

 

3. 솔로몬의 지혜

 

종교를 떠나서, 솔로몬은 지혜로운 왕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창녀 둘이 왕에게 나와 섰다.
그 가운데 한 여자가 말을 꺼냈다.
"임금님, 이 여자와 저는 한 집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아이를 낳을 때에 이 여자도 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해산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이 여자도 아이를 낳았습니다.
집에는 우리 둘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이 여자는 자기의 아들을 깔아 뭉개어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여자는 한밤중에 일어나 이 계집종이 잠자는 사이에 제 곁에 있던 제 아들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제 아들을 가져다 자기 품에 두고 죽은 자기 아들을 제 품에 놓고 간 것입니다.
제가 아침에 일어나 젖을 먹이려다 보니 아이는 죽어 있었습니다.
날이 밝아서야 그 아이가 제 몸에서 난 아이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느냐? 산 아이는 내 아이이고 죽은 아이가 네 아이야." 하고 우겼다.
첫 번째 여자도 "천만에! 죽은 아이가 네 아이이고 산 아이는 내 아이야." 하고 우겼다.
그렇게 그들은 왕 앞에서 말싸움을 벌였다.
그 때 왕이 입을 열었다.
"한 사람은 '산 이 아이가 내 아들이고 네 아들은 죽었다.
' 하고 또 한 사람은 '아니다.
네 아들은 죽었고 내 아들이 산 아이다.
' 하는구나."그러면서 왕은 칼 하나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신하들이 왕 앞으로 칼을 내오자왕은 명령을 내렸다.
"그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쪽은 이 여자에게 또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그러자 산 아이의 어머니는 제 자식을 생각하여 가슴이 메어지는 듯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임금님,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시고 아이를 죽이지만은 마십시오." 그러나 다른 여자는 "어차피 내 아이도 네 아이도 아니니 나누어갖자." 하였다.
그러자 왕의 분부가 떨어졌다.
"산 아이를 죽이지 말고 처음 여자에게 내주어라. 그가 참 어머니다.
"온 이스라엘이 왕의 이 판결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왕에게 하느님의 슬기가 있어 정의를 베푼다는 것을 알고는 모두들 왕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공동번역 성서, 열왕기상 3장 16~28절한 명의 아이를 가지고 다투는 두 여인 앞에서 아이를 반으로 나누자고 함으로써 진짜 어머니를 찾아 내고 거짓말을 한 여인을 처벌을 내리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이슬람교의 쿠란에도 등장하며, 특히 사람과 진(마신), 모든 동물들을 마음대로 다스리는 능력과 반지가 유명하다.
아랍어로는 술라이만(سليمان). 마찬가지로 이슬람권인 터키어로는 쉴레이만(Süleyman)이다.
버튼이 번역한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진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에는 정말 한 번도 안 빠지고 이 이름이 나온다.
특히 이슬람교의 경우, 선지자 이전의 예언자 중 하나이며, 신에게 인정받은 왕으로서, 부친 다윗과 둘 카르나인(Dhul Qarnayn)과 함께 항상, 가장 훌륭한 세 명군 중 하나로 존경받는다.
덧붙여, 이슬람교에서는 후술할 솔로몬의 타락이나 우상 숭배 같은 것은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사망 시의 묘사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서서 잠들었으며, 신이 그가 짚은 지팡이를 서서히 약하게 하여 천천히 잠들듯 뉘였다고 한다.
여러모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이상적인 왕" 유형의 인물로 묘사된 듯. 또 성경에서는 그냥 단역에 지나지 않는 시바의 여왕과 관련된 많은 전승이 아랍에 내려오고 있다.
또한, 같은 아브라함 계통 종교로 분류되는 바하이 교에서도 예언자로서 대우받는다.
정교회에서는 "올바른 예언자이자 왕"으로서 성인으로 인정받는다.
그 외로, 기독교권 성경 인물 중 지혜와 번영, 그리고 성전 헌당으로 가장 유명한 "왕"인 만큼, 후대의 (다분히 세속적이던) 중세 교황이나 왕들의 모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펠리페 2세는 솔로몬을 모방하여 그의 성전을 따라 스페인에 엘 에스코리알(El Escorial) 을 만들었으며,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하기아 소피아의 헌당식에서 "솔로몬이여, 나는 그대를 이겼노라"고 했다고 한다.
또한 바티칸에 있는 시스티나 경당의 도안(치수) 또한 솔로몬 신전의 치수를 본떴으며, 내부 프레스코에서는 르네상스식으로 해석한 성전이 그려져 있다.
그 유명한 샤를마뉴 또한 앨퀸의 기록에 따르면, 스스로를 다윗이자 솔로몬으로 여기고, 또 그러한 찬사를 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지배층의 인식 이외로도, 14세기의 주교 Jacobus de Teramo가 법률을 설명하기 위해 집필한 책 에서는 모세가 변호하는 예수와 악마 벨리알의 재판의 판관으로 놓여지는 등 중세 서양에서는 아버지 다윗과 함께 존경(혹은 좋은 이미지)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의 지혜는 야훼에게서 받았다고 한다.
성경을 디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윗 말기에 그의 아들로서 왕위를 받게 된 솔로몬은 일천번제라는 걸 신께 드렸다고. 이는 소 1,000마리를 번제라는 형식의 제사로 드린 것을 말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크고 아름다워 경악할 지경인데, 문제는 번제라는 게 그냥 태우기만 해서는 안되고, 소를 도살하는 방법부터 나누는 방법에까지 꽤나 품이 들어가는 제사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렇게 잡은 제물이 제사 율례에 따라 제사장과 그 휘하 성직자들(레위 지파)에게 나뉘어졌음을 생각하면, 성직자들로서는 고된 일이 아니라 좋은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레위 지파라는 거대한 지파는 성직자 계층으로 묶여 있어 재산도 없고 사회 활동이 제한된 상황이었기에, 소 1,000마리를 처리하는 것은 그들로서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딸린 식솔도 많았고, 일단 제사장에게 주고 나면 제사장이 그것을 일반 백성들에게 나눠줘서 같이 먹는 것도 가능하니, 1,000마리 분량의 쇠고기 처리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솔로몬이 좋은 왕이 되길 바라는 백성들의 기도를 들은 건지, 솔로몬이 소를 1,000마리나 태운 정성이 갸륵해서인지 신이 솔로몬의 제사에 답하여 무엇을 원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다른 것도 아니고 그저 나라를 잘 다스리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했다.
'나라를 잘 다스릴 지혜'는 누구나 수긍하겠지만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에는 조금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구약에서의 관점을 보면 선악의 구별은 매우 중요하다.
솔로몬이 말한 선악은 단순히 옳고 그름을 뜻하는 게 아니라, 야훼를 잘 섬기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구약, 신약, 쿠란 가리지 않고 아브라함 계통 종교는 하나같이 야훼/하나님/알라가 최고존엄이기에 그를 잘 섬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애초에 이 계통 종교에서는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신의 뜻이다.
) 예시로 후세의 연구로는 괜히 아시리아에게 시비걸었다가 남유다 전체가 초토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던 걸로 추정되는 히즈키야는 야훼를 잘 모셨다는 이유만으로 선하다고 평가받은 반면, 박살난 남유다를 되살린 것뿐만 아니라 중흥기를 가져온 므나쎄는 아시리아에 굽실거리고 그들의 신을 받아들였다며 악하다고 평가받는다.
또 성경에서 최초의 남녀인 아담과 이브는 신이 직접 창조한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선악과를 먹어 죄악을 저질렀고 이스라엘, 유다 가리지 않고 최고의 평가를 받는 그 다윗마저 소소한 잘못을 저지르고 그 후손들 중에서 악하다는 평을 받는 왕이 여럿 나왔을 뿐더러 북이스라엘은 아예 재위했던 모든 왕들이 악하다고 평가받는다.
신은 그의 바람에 만족했고, 지혜롭다고 칭찬하며 그에게 더한 지혜와 함께 솔로몬 이후로 그와 같은 지혜를 가진 자는 없을 것이라고 복을 내렸고, 솔로몬이 청하지 않았던 부귀영화, 그리고 장수까지 덤으로 줬다.
"깨어나 보니 꿈이었다"는 성경의 구절을 볼 때 신과 만났던 것은 꿈 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세 이후에 신을 직접 본 인물이 없다고 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때, 솔로몬이 신에게 부탁한 지혜는 히브리어 원문으로는 לֵ֤ב שֹׁמֵ֙עַ֙ 즉, 이해력이므로 지혜가 아닌 지식습득능력으로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

 

4. 성군이자 명군으로서의 모습

 

솔로몬의 통치하에 통일 이스라엘은 최대 번영기를 구가하였는데, 예루살렘에서는 하도 은이 많아 마치 돌 같이 여기며 귀하게 보지도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조공으로 받는 금만 해도 매해 666 달란트(39,960 파운드 = 약 18,000 kg)였다고. 금 666달란트 정도면 지금 기준으로 약 "1.3조 원"에 해당한다.
또한 시대마저 잘 만났는지, 당대 중동의 맹주 위치에 있던 이집트 제 21왕조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며 솔로몬 통치하의 이스라엘은 보다 더 자신들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전 건축을 할 당시에는 페니키아(레바논에 있던 고대 국가)의 중심이었던 티레에서 히람 왕이 보낸 기술자가 와서 도왔는데, 목재로 쓸 엄청난 양의 백향목들을 벌목하여 여러 개의 뗏목으로 엮어 공수했다고 한다.
티레는 히람 시절 때 번영했는데, 솔로몬은 그와 결혼동맹을 맺고 서로 같이 무역을 하기도 하는 등 경제적 교류가 활발했다고 한다.
또한 성경의 묘사에 따르면 성전 이외에도 호화로운 궁을 건축하였으며, 전성기 이스라엘의 넓은 강역을 여러 개의 지역으로 구분하고 총독을 보내어 통치했다고 한다.
또한 홍해로 통하는 에시온게벨 등 여러 곳에 항구를 지어 무역을 활성화했으며, 동시에 국방에도 신경을 써 전략적 위치에 있는 므깃도 등지에 병거를 정비하고 성을 세워 일종의 요새 도시, 혹은 성새 도시로 만들었다.
다.

 

5. 평가

 

여러모로 공과 과가 명확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만든 결과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아버지 다윗이 물려준 탄탄한 국가를 나름 잘 유지하다가 끝에 가서 사치와 향락으로 망쳐버린 원흉. 즉 솔로몬 시대의 번영은 "속빈 강정"이였던 셈이다.
그는 분명히 명군의 자질이 있었고 즉위 이후에도 나라를 성실히 이끌어갔다.
그의 통치기는 이스라엘의 절정기였으며 은이 바닥에 굴러다닐 정도로 부강했던 시기였다.
대외적으로도 위상이 높아져서 이집트 제 21왕조와 결혼동맹을 맺고 주변국들로부터 조공을 받는 등 입지를 굳혀나갔다.
또한 국방과 행정에도 신경을 써서 군사력을 보강하고 지방에 총독을 파견하는 등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전제 왕권을 구축해나갔다.
성경만 봐서는 이해가 안될 수 있지만 역사책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군사력 보강과 지방관 파견은 왕권을 구축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해가 안된다면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제일 먼저 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문제는 그가 이렇게 만든 결과물을 가지고 축첩질을 일삼으며 놀아재꼈다는 것. 사실 그의 치세는 겉으로는 부강해 보였으나 속은 썩어가는 기아의 성세, 속빈 강정이었다.
앞서 언급된 신명기 17:16-17은 너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은 두개의 나라로 갈라질 것이나 다만 너의 아버지 다윗을 생각해서 네가 아닌 너의 아들 대에 갈라지리라고 언급한다.
다시 말하면 솔로몬 시대의 번영은 솔로몬이 단독으로 만든 결과가 아니라 아버지 다윗이 신과 함께함으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인 것. 즉, 다윗 대에 다져진 것을 바탕으로 솔로몬 대에 전성기를 누린 것이 맞다.
물론 솔로몬이 못하기만 했다는 것은 아니고 명군의 자질은 분명히 드러났으나 아버지 다윗에 비하면 역량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더욱히 그가 막대한 조공을 받고 그것을 바탕으로 축첩질에 골몰하면서 결과적으로 신을 섬기는 선민으로서의 본질을 스스로 버리게 되었고 예전의 보여왔던 지혜와 명군으로서의 자질 역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솔로몬의 타락에 대한 열왕기의 기록의 비판적 평가에 대해서는 견해 차가 있을 수 있다.
왕실 역사가들의 사관이 반영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역대기와는 달리 열왕기에는 예언자들의 사관이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예언자들의 사관은 아무래도 왕실 역사가들에 비해서는 왕국에 대해 비판적일 것이다.
가령 역시 예언자들의 사관이 반영되었을 사무엘서에서는 왕정 자체가 신정이 아니기에 신의 뜻에 어긋난다고 비판하면서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솔로몬의 정책들에 대해서도 열왕기는 비판적인 관점을 우선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솔로몬이 궁궐을 건축하고 사치와 호화를 누렸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왕실이 정당한 부와 영광을 누리고 드러내는 것을 공연히 문제삼는다고 항변할 수 있다.
사실 사치가 나쁜건 맞지만 전근대에는 사치가 곧 자기과시(=나는 이렇게 사치할 정도로 부유하다)인 경우도 많았고 이런 자기과시는 자신의 권위와도 연관되기에 군주들 중에서는 사치하는 왕도 종종 나오곤 했다.
외국 여인들을 첩실로 삼았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이는 외교의 일환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왕족과 귀족의 여인들과 혼인 관계를 맺는 것은 가장 확실한 동맹의 방법이자 효율적인 외교 전략이다.
순혈주의적인 예언자 전통의 관점에서는 문제이겠지만, 왕실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불가피한 외교적 선택이다.
신이 사랑한 왕 다윗도 암몬 왕의 딸이나 헷 사람의 아내 등 외국의 여인들과 결혼하였음은 마찬가지인데, 솔로몬만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부당하다.
하지만 혼인동맹이 확실한 외교적인 안전장치가 되지 않는다는 사례는 역사상 무수히 많고 솔로몬 또한 이집트 파라오의 딸과 결혼한것이 이집트의 왕조교체로 인해 의미가 없는 일이 되어 이집트의 반이스라엘 정책을 막지 못해 이집트가 여로보암의 망명을 받아주고 르호보암 치세때 예루살렘을 침공해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솔로몬이 우상을 숭배하고 우상을 위해 신전을 건축했다고 비판을 받지만, 솔로몬이 신앙을 버렸다기 보다는 다른 종교를 관용하는 정책을 채택한 것이 배타주의적 예언자들에게 그렇게 인식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예언자들의 입장에서는 솔로몬이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을 관용하는 것'이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을 장려하는 것'과 진배 없고, 나아가 그 스스로 '다른 신을 섬기는 것'과도 진배 없다고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상인들이 교류하는 중심지인 수도의 나라를 통치하는 왕으로서는 다른 종교에 대해 관용하고 존중하는 정책을 채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람 장군 나아만이 신을 믿으면서도 자신이 충성을 바치는 왕이 우상에 절을 할 때 어쩔 수 없이 그 옆에서 부축하는 일을 예언자 엘리사가 허용했던 취지를 고려하여 솔로몬의 행적도 평가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는 당시 이스라엘 왕국의 내부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설명인데, 다윗 왕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각 지파의 연계성은 상당히 느슨한 편이라, 각 지파간의 내전도 몇번 일어났다.
이 상황에서 왕정 이전시기에는 각 지파를 연결해 주는것이 종교지도자인 (사사/판관)이었듯이, 유대교는 각 지파의 연계성을 강화시켜주는 장치였다.
분열된 북 이스라엘 왕국이 초창기에 유다왕국과의 연계를 끊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한것중 하나가 제사지내는 곳의 위치변경이었던 점에서도 이런 부분이 드러난다.
그런데 타종교를 받아들이는 정책은 이런 연계성을 약화시키는 것이었지, 강화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걸 고려해도 솔로몬이 도를 많이 넘은 것은 맞다.
교류나 외교적 차원에서의 혼인은 그렇다 쳐도, 문제는 지나치게 방탕했다.
교류를 해도 지킬 건 지켜야 되는데, 왕이 앞장서서 놀아재끼고 있으니 나라가 망하는 건 당연하다.
결국 솔로몬은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하는 데 일조하게 되었다.
신생왕조에 불과했던 이스라엘은 솔로몬 사후 절단이 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여로보암의 북 이스라엘이 210년, 다윗 혈통의 남유다가 350년 정도를 유지했다는 점. 비록 성경에 묘사된 다윗-솔로몬 시절만큼 세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간간이 모압, 암몬, 에돔 등을 위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긴 했다.
정리하자면 여러모로 후대의 군주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만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명군의 모습과 암군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입체적인 인물이기 때문. 사실 군주의 자리가 여러모로 초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은 맞다.
전세계 어느나라를 봐도 군주가 초심을 잃고 타락한 사례는 많고 대놓고 십전노인, 신선이라고 자처한 건륭제 같은 사람도 있었으니 솔로몬 정도면 그나마 얌전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솔로몬을 통해 성경이 후대에게 말하고 싶은 바는 바로 겸양과 자아성찰의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솔로몬이 재위 초반에는 지혜를 구하며 근면하게 왕국을 통치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 이후에 자신의 욕심을 앞세워 다른 나라를 정복하며 영토를 확장하면서부터 안에서부터 서서히 곪아갔던 것은 지도자 한 사람의 교만과 타락이 얼마나 큰 재앙으로 이어지는지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역사가들이 과거에 나라를 크고 아름답게 만든 군주를 이상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내치와 경제력을 안정시킨 군주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시각과도 일치한다.
즉 솔로몬이라는 인물은 단순히 "놀아재꼈다"라는 측면보다는 나라를 크고 넓게 만들 능력은 있었으나 발전한 왕국을 다스릴 장기적으로 보는 안목이 부족해 현실에 안주한 것에 가깝다.

 

6. 기타

 

  • 아버지 다윗과 달리, 성경 이외의 기록으로 생존이 확인되지 않은 인물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시기에 번영했을 광산(부)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린 왕이 있다는 것은 타 기록이나 연구에도 존재하나, 그의 이름이 "솔로몬 혹은 여디디야"란 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원래 팔레스타인 자체가 기록이 적은 편이고 특히 솔로몬 시대의 기록은 발견된 양이 적어 연구가 쉽지 않다. 다윗 왕가의 실존은 텔 단 비문 발견으로 증명됐고 그로 인해 최소주의자든 최대주의자든 솔로몬이라는 인물 자체는 존재했겠지만 성경에 나온 부에 대한 묘사는 과장됐을 것이라 본다. 솔로몬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적어도 간접적인 증거는 존재하므로 학계에선 솔로몬의 부와 업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에티오피아의 솔로몬 왕조는 자신들의 조상이 솔로몬이라고 주장했다.
  • 성경에 등장히지는 않지만 솔로몬과 관련해서 돌아다니는 일화가 있는데, 악마에게 '다리를 건설해 주면 가장 먼저 건너는 것의 영혼을 네가 가져가게 해 주겠다'며 다리를 만들게 해 놓고는 염소를 가장 먼저 건너게 하고 "내가 언제 인간의 영혼이랬나? 난 그런 말한 적 없다."고 발뺌하는 등 악마마저도 지혜로 속여서 삥 뜯었다는 일화가 유명. 솔로몬의 72 악마, 솔로몬의 반지 등은 오컬트 계에서 상당히 이름 높다. 그가 썼다는 '솔로몬의 열쇠'는 중세 마법의 교본이며 큰 열쇠와 작은 열쇠로 나뉘는데, 작은 열쇠는 흑마법 계열로 통한다. 삼각형 2개가 겹쳐진 육망성은 '솔로몬의 봉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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