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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대차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검색하는 이유 및 소개 (채용,생산직,주가,스펙)

by Nomangs 2023.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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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현대자동차
現代自動車 | HYUNDAI MOTOR COMPANY
기업명
정식: 현대자동차 주식회사
영문: Hyundai Motor Company
설립일
1967년 12월 29일
업종명
승용차 및 기타 여객용 자동차 제조업
국가
 
대한민국
 
(다국적 기업)
기업 규모
대기업
대표자
정의선, 장재훈, 이동석
자본금
1조 4,889억 9,300만 원 (2021년 기준)
매출액
연결: 117조 6,106억 2,600만 원 (2021)
별도: 55조 6,051억 2,000만 원 (2021)
영업 이익
연결: 6조 6,789억 4,900만 원 (2021)
별도: 6,616억 2,300만 원 (2021)
순이익
연결: 5조 6,930억 7,700만 원 (2021)
별도: 6,455억 2,600만 원 (2021)
자산 총액
연결: 233조 9,464억 1,500만 원 (2021)
별도: 79조 7,583억 원 (2021)
부채 총액
연결: 151조 3,306억 2,600만 원 (2021)
별도: 27조 832억 8,800만 원 (2021)
부채 비율
연결: 183.17% (2021년 기준)
별도: 51.42% (2021년 기준)
시가 총액
35조 8963억 원 (2022년 10월 20일 기준)
직원 수
122,821명 (2021년 12월 31일 기준)
상장 여부
상장 기업
상장 시장
유가증권시장 (1974년~ )
편입 지수
코스피
KRX100
KOSPI200
주식 코드
005380

1. 개요

 

현대자동차의 시판 차량Progress for Humanity현대자동차그룹 산하 대한민국의 자동차 기업.현대자동차그룹의 모체이자 그룹을 대표하는 회사이며 더 나아가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회사이다.

 

2. 영문 표기와 발음

 

  • 미국: 휸디, 현다이 등 온갖 발음이 중구난방으로 쓰이다가, 2009년 현대 제네시스가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되면서 자신감을 얻었는지 그해 슈퍼볼 광고를 통해 헌데이라는 발음을 홍보했다. 미국에서 고유 명사란 철자와 전혀 상관없이 장본인이 발음해 주기 원하는 대로 발음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현대의 'ㅕ'를 도저히 미국인이 발음하지 못하니 맞든 틀리든 브랜드 네임을 통합하기라도 하는 차원에서 이런 발음을 홍보한 모양이다. 이후로는 이 발음이 정착해서 미주 광고 모델이나 저널리스트들은 다 헌데이라고 발음해준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현대를 '현대'라고 불러도 다른 사람들이 '헌데이'로 교정해주는 광경을 볼 수 있으며, 한국어를 배우는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유머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다만, 한국인 배우자가 있거나 주한미군에서 복무했던 경력이 있는 등 한국과 인연이 있는 현지인들은 "현대"라고 부르는 경우도 간혹 있고, 한국어로 만들어지는 미국 내 한인 대상 광고에서는 당연히 그냥 '현대자동차'다.
  • 영국: '하이윤다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으며, 현대차 영국법인에서도 계속 하이윤다이라고 하다가, 2022년 영국 내 시장점유율 10%를 넘어서면서 현대라고 불러달라는 광고를 냈다. 자막 버전
  • 일본: 처음 진출했을 때는 HYUNDAI를 일본식으로 읽은 ヒュンダイ(휸다이)를 썼으나, 철수 후 재진출하면서 한국어 '현대'를 옮긴 ヒョンデ(횬데)를 사용한다.

 

2.1. 오해

 

항간에는 현대의 영문 명칭이 Hyundai인것을 두고 일본의 혼다(Honda)와 비슷하게 발음되기 위해서 그렇게 지었다는 괴상한 썰이 돌아다니지만 거짓이다.
요즘이야 'ㅐ'발음을 'ae'로 적지만 당시에는 'ㅐ'를 'ai'로 적는게 보편적인 표기였고 현대도 그 방식을 따랐을 뿐이다.
'백'씨 성을 가진 사람들 중 연령대가 좀 있는 사람의 경우 자신의 성을 Baek가 아닌 Paik로 표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혼다라는 사명이 처음 등장한게 1946년 10월 혼다기술연구소의 설립이었는데 현대라는 사명이 처음 등장한 현대자동차공업사는 이보다도 6개월 앞선 1946년 4월 설립으로 오히려 현대가 6개월 더 먼저 빠르다.
따라서 현대의 영문 표기가 혼다와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서라거나 일본 기업처럼 보이기 위해서 라는 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게다가 한국에서 반일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현대차의 설립이 광복 후 겨우 1년이 지난 후였다는 시기를 감안하면 'ㅐ'를 'ai'로 표기하는 것이 일제시대 표기의 잔재일 수는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했듯 그 당시 한국에서는 그게 보편적이었고 표준적인 표기였다.
이미 고유명사로 굳어진지 오랜 시간이 지난 상황에서 단순히 현 시대의 표준 표기법과 맞지 않다고 해서 그것을 바꾸거나 비난의 대상이 될 이유는 없다.

 

3. 역사

 

 

3.1. 아도서비스~舊 현대자동차

 

쌀가게 '경일상회' 주인이던 아산 정주영이 일제강점기인 1940년 3월에 인수하여 경기도 경성부 아현정(現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운영했던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정비소를 그 근원으로 볼 수 있다.
정주영은 빨리, 완벽하게 고치고 수리비는 많이 받는 방침으로 사업 성공의 토대를 닦았다.
1940~1942년 당시 조선에서는 자동차는 극소수의 부유층이나 가지고 탈 수 있는 매우 비싼 사치품이었다.
당시에는 간단한 수리여도 수리일을 늘려서 공임을 더 받거나 일부러 부실한 수리를 해서 당시 정비소에 찾게 하려는 관행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정주영은 '자동차가 고장나면, 차 주인이 발이 묶여 힘들어한다.
그러므로, 빨리 차를 고치는 게 고객을 위한 길이다'라며, 수리일은 아무리 큰 고장이라도 무조건 3일 이내, 다시 고장이 나지 않게 완벽하게 수리한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대신 수리비용은 다른 공장에 비해 3~5배를 받았다.
그러나 위에 언급했듯 자동차는 당시 부유층이나 소유할 수 있는 사치품이었고, 이들에게는 그저 수리비 돈 몇푼보다 빨리, 정확하게 수리하는게 더 중요했기 때문에 비싼 가격에도 순조롭게 사업을 이어나갔다.
밤 12시까지 작업소에 머물면서 고객들 차를 빨리 빨리 수리했다.
이처럼 "빨리 빨리"와 "빠르고, 정확하고, 납기 준수"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경영은 순조로워 수익을 많이 냈다.
그러나 초창기의 공장은 25일만에 불타 없어졌다.
새벽에 밤새도록 일을 하고 난 한 공원이 기름투성이 손을 씻기 위해 시너로 불을 지펴 물을 데우다가 그만 잘못해 불이 나고 말았다.
그 이후 아도서비스는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의 조그만한 공터에서 다시 공장을 세워 운영했다.
다행히도 그동안의 신뢰가 있었기에 고객들이 다시 찾아와줬으며, 상당히 흥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쟁까지 일어나자, 다시 사업이 어려웠다.
결국 일제는 기업 통제정책인 '기업정비령'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 종로 5가에 있는 '일진공작회'로 정주영이 소유하던 아도서비스가 강제 흡수·합병되었다.
정주영은 어쩔 수 없이 자동차 수리업을 그만두었다.
이후 아도서비스를 정리한 자금으로 트럭을 구입하여 석탄운반업을 하였으며, 해방 이후 중구 초동의 적산대지 등을 불하받아 1946년에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한다.
설립 직후에는 미군 병기창에서 하청을 주로 받았으나 점점 수요가 늘었고, 이 회사를 현대토건사가 흡수해서 현대건설로 변모한다.
다.

 

3.2. 현대자동차 초기

 

현대자동차의 공식적인 역사는 1967년 자동차 제조업에 뛰어들면서부터 시작한다.
1967년 12월 정주영의 동생 정세영이 정식으로 회사를 설립하여 당시 자동차 최강국인 미국의 포드 모터 컴퍼니와 기술제휴를 체결했으나 포드와 소형차에 대한 협력에 문제가 생겨서 독자 모델 개발을 추진했지만 마땅한 기술제휴 회사를 구하지 못했다.
1970년대 중후반에는 메르세데스-벤츠와도 기술제휴를 맺었고, 1974년 현대자동차서비스를 세워 자동차 수리사업에도 진출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미쓰비시 자동차에서 소형차 개발을 도와주겠다고 1973년 기술제휴를 체결하며 차체와 엔진 변속기에 대한 생산기술을 얻어 마침내 1976년 1월 포니를 판매하게 되었다.
이후 독자적인 모델의 생산을 위하여 자체개발을 시작했으며, 영국 최대 자동차 회사 브리티시 레일랜드 부사장이었던 조지 턴불을 영입하고 1974년 7월부터 1억 달러의 공사비를 들여 연산 56,000대 규모의 종합 자동차 공장 건설에 들어갔다.
같은 해엔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상장했다.
1975년 울산공장 준공 후 1976년 1월 대한민국 자동차공업의 자립화를 선언한 고유 모델인 포니를 시작으로 독자모델 생산을 시작하여 쏘나타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최대 자동차 기업으로 떠올랐고, 아시아에서 2번째로, 독자 자동차 모델 생산국이 되었다.
1977년 당시 리처드 스나이더 주한 미국 대사는 정주영 회장을 만나 “현대가 자동차 독자 개발을 포기하면 포드든 제너럴 모터스든 원하는 조건으로 조립생산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다해 현대를 지원하겠다.
중동 건설에서도 현대를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정주영은 "자동차는 달리는 국기나 다름없고, 일생에 번 돈을 다 들여 실패하더라도 후대에 자동차 공업을 성공시킬 디딤돌을 놓는다면 후회는 없다"며 거절했다.
관련기사 아무래도 대한민국이 언젠가는 미국 자동차 산업을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주영은 결국 모든 압력을 무시하고 독자개발을 밀어붙였다.
다만 독자개발은 현대에게 있어서도 사운을 건 도박과도 같은 일이였는데 동생 정인영은 정주영에게 독자개발하려면 자기자본의 20~30배나 되는 돈이 필요하고 돈을 구한다 해도 타산이 맞으려면 최소 50,000대는 팔아야 한다.
그런데 1973년 대한민국 전체 자동차 판매량이 승용차, 버스, 트럭 다 합쳐봐야 겨우 18,000대를 넘길정도 였고 현대는 그중 겨우 4,000대를 팔았다.
내수시장에서도 겨우 이정도 밖에 못파는게 현실이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포니는 개발후 출시 전 부터 62개국 228곳의 상사에서 수입을 희망했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엄청난 대박을 치게되고 정인영의 걱정은 다행스럽게도 기우로 끝나게 된다.
1976년에 에콰도르에 포니 6대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국산차를 해외 시장에 내놓았다.
1983년 캐나다 현지법인을 세워 해외판매망 구축을 시작했고, 1985년에 자동차 시트 제조업체 효문산업을 합병하고 1986년에 포니엑셀을 북미 지역으로 수출해서 북미 시장에 진출하여 1989년 캐나다 퀘벡 주 브로몽에 현지 공장을 세웠으나 잇따른 부진으로 1993년에 해당 공장을 닫았고, 1995년에는 전북 전주공장, 1996년에 충남 아산공장을 각각 세웠으며, 같은 해에는 인도 현지법인을 세웠다.
사실 이 기간 동안은 현대자동차의 사활이 걸린 기간이었다.
정주영은 1960년대에 현대자동차 내부에서 자동차 엔진을 자체 개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의 엔지니어들의 전문성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편이었고, 정부에서도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중에서 무엇을 택할 것인지 압박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정주영은 여기서 중공업은 나중에 투자하여 키워도 된다고 판단했기에 현대자동차를 택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자체 엔진 개발에 착수하기 위해 해외에서 GM에 근무중이던 이현순 박사를 불러 엔진 자체 개발 연구에 참여하도록 설득했다.
이때 정주영은 이현순 박사에게 자체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지원을 하겠다면서 설득했고 결국 이 박사가 이 제안을 수락하자 정회장은 연구소를 건설해주기 시작했는데, 이 연구소가 바로 현대자동차 마북리 연구소이다.
물론 성공확률은 낮았고, 주변에서의 실패할 거라는 무시, 그리고 당시 미쓰비시에서 엔진 설계도를 사와서 제조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미쓰비시에서의 압박도 상당했다.
하지만 이현순 박사의 끈기있는 노력 덕분에 현대자동차는 국내 최초로 자체 엔진을 개발해냈다.
프로젝트 내 이 엔진의 이름은 알파엔진이다.
이후 베타엔진, 감마엔진을 설계, 개발했다.
하지만 감마엔진은 당시 현대자동차의 경영진이 미쓰비시의 시리우스2엔진과 관련하여 계약을 맺는 바람에 설계만 하고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
이후 이현순 박사는 감마엔진에서 성능을 더욱 향상시킨 세타엔진을 개발해냈고, 이 세타엔진은 바로 기아 로체와 NF소나타에 장착되게 된다.
이후 2008년까지 타우엔진을 개발하게 된다.
현대자동차그룹에서 개발한 자동차 엔진의 자세한 목록은 하단 둘러보기 문단을 참고.다.

 

3.3. 경영권의 이동

 

1998년 12월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하여 거대 자동차 재벌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으나, 1999년 초, 현대차는 정세영의 리더십으로 가파르게 성장하여 세계 11위까지 오른 상황이었다.
그런데 당시 정주영의 건강이 크게 악화된 상황이었고, 이에 차기 후계구도를 중심으로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정몽구였다.
이에 대응하여 정세영(당시 현대자동차 명예회장), 정몽규(당시 현대자동차 회장) 부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현대차 보유지분을 일년만에 4%에서 8.3%까지 끌어올리며 경영권 방어에 나서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99년 2월 26일 치뤄진 현대차 주주총회에서 정몽구와 정세영이 대립했다.
결과는 정몽구의 측근들이 이사로 선임되는 데 실패했고 그 자리에 모두 정세영 측 인물이 선임되었다.
얼핏 이날 주총은 정세영 부자의 승리로 막을 내린 듯 했다.
그러나 이는 정주영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다.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정세영의 쿠데타라 표현하기도 했다.
곧바로 정주영은 명예회장실로 정세영을 부른 뒤 극대노했다.
당시 정주영은 정세영을 향해 "야! 몽구가 집안 장자인데 장자한테 자동차 물려주는게 뭐 잘못 됐어?"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평소 정주영의 말이라면 법처럼 떠받들던 정세영이었기에 정주영의 극대노를 그대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정세영의 자서전에도 등장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결국 주총 이후 불과 나흘이 지난 3월 2일 현대그룹은 정세영 명예회장이 현대차 경영에서 완전히 퇴진하며 현대자동차는 정몽구 체제로 개편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매일경제신문에 따르면 이 발표는 정세영과도 미리 조율되지 않은 내용이었다.
보도된 바로 다음날인 3월 3일 곧바로 정세영 현대차 명예회장의 이임식이 거행되었다.
정세영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장자인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를 이어받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라고 덤덤히 말했으나 현대차 사가(社歌)를 부르던 순간 끝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어 3월 10일 정몽구의 현대차 회장 취임식이 진행되었다.
현대차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된 정세영 부자에게는 현대산업개발이 주어졌다.
이익치의 자서전에 따르면 정세영은 형인 정주영의 의견을 크게 거스른 적이 없었으나 1999년 초 대북사업을 두고 이견이 생겼다고 한다.
정주영이 개성공단에 소형차 공장을 세울 것을 지시했으나 정세영이 이를 크게 주저, 반대했다는 것이다.
이에 정주영이 그럴거면 경영권을 정몽구에게 넘기라고 했고, 정세영은 정몽헌에게 넘기라면 넘기겠지만 정몽구에게는 절대 현대차를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현대차 주총이 치뤄졌고, 나흘 후 정세영의 전격 퇴진으로 이어졌다.
시사저널, 매일경제 등 당시 언론 기사를 보면 정주영은 오랫동안 현대차를 장남인 정몽구에게 넘겨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세간에는 현대차는 정세영이 키운 기업이라는 인식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동생이 키운 기업을 빼앗는다는 여론의 부정적인 시선을 상당히 의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999년 2월 26일 주총에서 대립하게 되었고, 현대그룹 측에서는 이를 '정세영의 쿠데타'라고 표현하며 정세영으로부터 경영권을 빼앗아 정몽구에게 줄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3.4. 현대자동차그룹으로

 

1999년 현대정공 자동차부문과 현대자동차써비스를 합병했고, 같은 해 2002 한일월드컵 및 유로 2000 후원사로 선정돼 세계적으로 위상을 드높였다.
2000년 8월 다른 계열사 9개와 함께 현대그룹에서 분리되어 현재의 현대자동차그룹을 형성하였다.
본사 등기도 그 해 12월에 양재동으로 이전하면서 현대그룹과 분리되었다.
2002년 중국 베이징기차와 합작해 '베이징현대'를 세웠고, 2004년 현대상용엔진을 합병한 후 이듬해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 공장을 세워 북미 현지생산을 재개했다.
2009년 정몽구의 아들인 정의선이 부회장에 취임하였다.
같은 해 현대 제네시스는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되었으며 2011년에도 현대 아반떼(엘란트라)가 선정되었다.
2015년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출범하였다.
2019년에는 제네시스 G70과 현대 코나가 다시 북미 올해의 차와 SUV 부문을 수상하였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으로 인해 중국산 부품 공급에 차질이 생겼고, 결국 2월 7일부터 울산, 아산, 전주 등 현대차의 모든 공장이 셧다운되기에 이르렀다.
2020년 1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 2020에서 우버와 공동 개발한 항공 모빌리티를 선보였다.
현대자동차는 도심 항공 모빌리티, 목적 기반 모빌리티, 모빌리티 환승 거점의 3가지를 선보였다.
정의선 수석 부회장은 항공과 지상에서의 이동수단을 결합한 미래 모빌리티 사업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2020년 3월 제너럴 모터스, 포드 모터 컴퍼니, 크라이슬러와 함께 미국 현지 공장이 가동을 일시중단했다.
2020년 3월 27일 앱티브와 함께 자율주행자동차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50 대 50 지분으로 현대자동차 그룹과 앱티브(Aptiv)가 참여하는 자율주행 전문 조인트벤처(Joint Venture)를 설립하고 조인트벤처 운영은 이사회 동수 구성 등 공동경영 체제를 갖췄다.
다른 기사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현금 16억 달러와 연구개발 및 지적재산권을 공유하고 앱티브는 지적재산권 및 자율주행 기술과 개발 인력 700여 명을 출자한다.
2020년 5월 28일에 소니 픽처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번 전략적 파트너십은 현대 자동차의 미래 모빌리티에 소니의 영화, 애니메이션과 같은 디지털 콘텐츠를 결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21년 7월에 상영되었던 영화 언차티드(Uncharted)와 2022년 10월에 예정된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현대 자동차 모빌리티 비전에 접목할 계획이다.
전라북도 전주시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공장에 첫 수소 충전소를 설치했다.
환경부와 전라북도는 수소탱크, 압축기, 냉각기 등 설비 구축비용을, 완주군은 운영비용을 부담하고 전북테크노파크는 운영 주관업무, 현대자동차는 충전소 건축비 및 건설 부지를 담당했다.
2020년 5월 판매량이 전년 대비 39.3% 감소했다.
해외는 코로나19의 영향이고 국내는 다행히 소폭 반등했는데 신형 모델이 약진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2019년 5월과 비교해 2배에 가까운 판매세를 보였으며, 그랜저 역시 7개월 연속 국내 시장 베스트 셀링카에 등극하며 2019년 5월 대비 61.1%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
해외 시장 판매는 감소했고 2019년 5월보다 49.6% 감소한 146,700대를 판매했으며, 이는 수요 위축과 일부 해외 공장 가동의 영향으로 분석됐다2020년 3월 19일에는 정몽구 회장이 등기이사직을 사임했으며 같은 해 10월 14일에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현대자동차 및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직에 추대되었다.
정몽구 前 회장은 그룹 명예회장직을 유지하며 여생을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2021년 1월 8일, 한국경제TV에서 Apple과의 Apple Car 생산 협력 단독 보도 기사가 떴다.
애플카, 현대차와 공동 개발한다…2027년 출시 하지만 이날 한겨레에 따르면 현대차는 "다수의 기업으로부터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공동개발 협력요청을 받고 있으나 (애플과의 협상은) 초기단계로 결정된 바 없다"고 부인하였다.
현대차 “애플카와 생산 협력, 결정된 바 없다” 그럼에도 애플과의 전기차 협력 소식으로 인해 이날 현대차의 주가는 206,000원에서 246,000원으로 무려 19.42% 폭등했다.
이후 2021년 1월 19일, 이데일리에서 산하 회사 기아자동차와 Apple과의 Apple Car 생산 협력 단독 보도 기사가 떴다.
그러나 2월 6일, 블룸버그는 애플이 현대차그룹과 진행해왔던 애플카 위탁생산 관련 협의를 일시적으로 중단했다는 보도를 냈다.
비밀 유지를 굉장히 중시하는 애플에서 애플카 협의 소식이 유출된 것에 매우 화가 났다는 것이다.
결국 2월 8일,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는 각각 "자율주행 전기차 사업 관련 다수의 해외 기업들과 협업을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면서 "애플과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공시했다.
이날 현대차그룹 계열사 주가는 폭락해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현대위아 등 주요 계열사 시가총액이 13조원 정도 증발했다.
다만 이 공시가 협상의 전면 중단을 의미하는지, 잠정 중단을 의미하는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애플 입장에서 전기차 개발을 위해 협업할 수 있는 완성차 업체가 그닥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애플과 자율주행차 협의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두고, 전기차 협의의 여지는 남겨두었다는 해석도 나왔다.
한편 업계에서는 애플 입장에서는 비밀주의가 깨진 것도 있지만 현대차와 기술을 공유하는 것을 기피하고, 반대로 현대차 입장에서는 애플의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것을 거부하니 협상이 중단된 것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애플의 갑질에 당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오히려 애플카 논란으로 갑자기 주가가 급등한 것이 비정상적이고, 애플카 협상 중단 얘기가 나오자 시가총액이 다시 내려간건 어디까지나 비정상적인 상승을 종결시키고 다시 정상화되는 수순이라는 평도 있다.
비단 현대기아뿐만 아니라 닛산이나 폭스바겐 등 많은 업체들이 애플카 협상 물망에 올랐지만 하나같이 애플의 갑질을 문제삼으며 파토난 것을 보면 문제는 애플 쪽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2022년엔 조지아에 전기차 공장을 설립을 추진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감사를 표하면서 진출 기회를 잡았지만, 8월 중순에 세액 공제에 전기차를 제외하면서 전기차 공장을 추진하는 현대에겐 큰 부담이 생긴 상황이다.
다.

 

4. 특징

 

 

 

4.1. 품질

 

IQS
산업평균
현대
제네시스
기아
VDS
산업평균
현대
제네시스
기아
2008
36개사 / 118
13위 / 114
-
18위 / 119
2011
34개사 / 151
10위 / 132
-
19위 / 160
2009
37개사 / 108
4위 / 95
-
16위 / 112
2012
32개사 / 132
10위 / 125
-
25위 / 169
2010
33개사 / 109
7위 / 102
-
26위 / 126
2013
32개사 / 126
22위 / 141
-
21위 / 140
2011
32개사 / 107
11위 / 108
-
19위 / 113
2014
31개사 / 133
27위 / 169
-
20위 / 151
2012
34개사 / 102
18위 / 107
-
19위 / 107
2015
31개사 / 147
26위 / 188
-
21위 / 158
2013
33개사 / 113
10위 / 106
-
11위 / 106
2016
32개사 / 152
19위 / 158
-
17위 / 153
2014
32개사 / 116
4위 / 94
-
7위 / 106
2017
31개사 / 156
6위 / 133
-
11위 / 148
2015
33개사 / 112
4위 / 95
-
2위 / 86
2018
31개사 / 142
7위 / 124
-
5위 / 122
2016
33개사 / 105
3위 / 92
-
1위 / 83
2019
31개사 / 136
9위 / 124
-
10위 / 126
2017
32개사 / 97
8위 / 88
2위 / 77
1위 / 72
2020
32개사 / 134
13위 / 132
1위 / 89
14위 / 132
2018
31개사 / 93
3위 / 74
1위 / 68
2위 / 72
2021
       
2019
32개사 / 93
3위 / 71
1위 / 63
2위 / 70
2022
       
2020
31개사 / 166
10위 / 153
5위 / 142
1위 / 136
2023
       

 

4.2. 신차 수송

 

신차 탁송을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가 맡고 있다.
정씨일가가 최대주주인 비상장기업으로 자사내 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로 급성장한 계열사이다.
탁송에 드는 비용은 차량과 지역에 따라 다르며 보통 수십만원선.2018년 이전까지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철도로 완성차를 수송하던 회사다.
자동차 전용 화차를 40량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를 이용해 울산공장에서 생산한 차를 태화강역에서 화물열차에 실어 광운대역(舊 성북역) 인근의 성북출고센터로 수송했다.
그러나 현재는 성북출고센터가 폐쇄되고, 화성 남양연구소 인근의 남양출고센터가 신설되면서 사용이 중지되어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아산공장의 경우에는 철도 수송을 이용할 수 없어, 34번 국도와 43번 국도를 통해 차량으로 신차를 배출한다.
인근 지역으로의 수시 탁송 이외에도 일주일에 두세번씩 전국의 주요 출고 거점까지 대량 수송을 할 경우가 있는데, 이 때에는 34번 국도의 인주공단 교차로에 수십대의 탁송 차량이 비상등을 켜고 국도에 올라온다.
이 광경은 마치 장대화물열차가 지나가는 듯할 정도로, 긴 행렬로 이어진다.
이런 대량 수송 시에는 공장 측 인력이 동원되어 교통 상황을 관리해준다.

 

5. 지배 구조

 

주주명
지분율
현대모비스
21.43%
국민연금
8.89%
자사주
6.13%
정몽구
5.33%
정의선
2.62%

 

6. 역대 임원

 

  • 명예회장정세영 (1998~1999)정몽구 (2020~ )
  • 정세영 (1998~1999)
  • 정몽구 (2020~ )
  • 대표이사 명예회장정세영 (1996~1998)
  • 정세영 (1996~1998)
  • 대표이사 회장정세영 (1987~1995)정몽규 (1996~1999)정몽구 (1999~2020)정의선 (2020~ )
  • 정세영 (1987~1995)
  • 정몽규 (1996~1999)
  • 정몽구 (1999~2020)
  • 정의선 (2020~ )
  • 대표이사 수석부회장정의선 (2018~2020)
  • 정의선 (2018~2020)
  • 대표이사 부회장전성원 (1996~1997)김동진 (2003~2008)윤여철 (2008~2009)
  • 전성원 (1996~1997)
  • 김동진 (2003~2008)
  • 윤여철 (2008~2009)
  • 부회장박병재 (1998~1999/1999~2004)설영흥 (2004~2014)서병기 (2007~2009)이정대 (2007~2012)이현순 (2008~2011)최재국 (2008~2009)최한영 (2008~2014)정의선 (2009~2018)윤여철 (2009~2012/2013~2021)김억조 (2012~2013)
  • 박병재 (1998~1999/1999~2004)
  • 설영흥 (2004~2014)
  • 서병기 (2007~2009)
  • 이정대 (2007~2012)
  • 이현순 (2008~2011)
  • 최재국 (2008~2009)
  • 최한영 (2008~2014)
  • 정의선 (2009~2018)
  • 윤여철 (2009~2012/2013~2021)
  • 김억조 (2012~2013)
  • 대표이사 사장정세영 (1967~1987)이양섭 (1987~1989)전성원 (1989~1995)박병재 (1996~1998)이계안 (1999~2001)김동진 (2001~2003)전천수 (2004~2005)윤여철 (2006~2008)양승석 (2009~2011)김억조 (2011~2012)김충호 (2012~2016)윤갑한 (2013~2018)이원희 (2016~2021)하언태 (2019~2021)장재훈 (2021~ )이동석 (2021~ )
  • 정세영 (1967~1987)
  • 이양섭 (1987~1989)
  • 전성원 (1989~1995)
  • 박병재 (1996~1998)
  • 이계안 (1999~2001)
  • 김동진 (2001~2003)
  • 전천수 (2004~2005)
  • 윤여철 (2006~2008)
  • 양승석 (2009~2011)
  • 김억조 (2011~2012)
  • 김충호 (2012~2016)
  • 윤갑한 (2013~2018)
  • 이원희 (2016~2021)
  • 하언태 (2019~2021)
  • 장재훈 (2021~ )
  • 이동석 (2021~ )
  • 대표이사 부사장정몽규 (1994~1995)강호돈 (2009~2010)윤갑한 (2012~2013)
  • 정몽규 (1994~1995)
  • 강호돈 (2009~2010)
  • 윤갑한 (2012~2013)

 

7. 사내 아나운서

 

  • 서혜영
  • 장정하
  • 이예빈
  • 이혜원
  • 안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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