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엄홍식란? 어떤 일이 있어서 핫할까? (기타,조지운,엄준식,남친)

by Nomangs 2023. 2. 23.
반응형

 프롬스의 최근 이슈 

엄홍식

유아인
劉亞仁 | Yoo Ah-in
본명
엄홍식 (嚴弘植)
출생
1986년 10월 6일 (36세)
대구직할시 남구 (現 대구광역시 남구)
거주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국적
 
대한민국
 
본관
영월 엄씨 (寧越 嚴氏)
신체
179.5cm, A형
가족
부모님, 누나 2명
반려묘 도비, 장비
종교
무종교 (무신론)
학력
대구남덕초등학교 (졸업)
상인중학교 (졸업)
경북예술고등학교 (서양화과 / 전학)
서울미술고등학교 (서양화전공 / 중퇴)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 (합격)
단국대학교 (연극학 / 중퇴)
건국대학교 (영상영화학 / 학사)
병역
병역면제 (골종양)
데뷔
2003년 농심 '쫄쫄면' 광고
(데뷔일로부터 +7286일, 19주년)
소속사
UAA (United Artists Agency)
아티스트
그룹
스튜디오 콘크리트 (Studio Concrete)
MBTI
ENFP
별명
홍시기, 어몽식, 엄다정

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다.

 

2. 소개

 

1986년생으로 본명은 엄홍식이다.
대구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0대 후반 교문 앞 캐스팅을 당해 상경한 후 2003년 라면 광고로 데뷔했다.
2004년 성장 드라마 《반올림》에 출연하며 인상적인 캐릭터와 훈내나는 외모로 인기를 얻었고, 2006년 독립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로 스크린 데뷔를 치렀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신인으로서 인지도를 쌓다가 2010년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과 2011년 영화 《완득이》를 통해 기대되는 라이징 배우이자 충무로 블루칩으로 부상했다.
2014년 《밀회》, 2015년 《베테랑》, 《사도》, 《육룡이 나르샤》의 연이은 성공과 함께 각종 시상식에서 두각을 보이면서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주목받는 톱배우로 자리잡았다.
이후에도 드라마, 오락 영화뿐만 아니라 《버닝》, 《소리도 없이》와 같은 예술성 짙은 영화의 사이를 오가며 굵직한 필모를 쌓아가고 있다.
2014년에는 아티스트 집단이자 동명의 미술 갤러리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며 예술가로서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3. 연기 활동

 

유아인은 배역을 감당하는 배우가 아니라 배역으로 자신을 창조해가는 배우다.
자기로서 배역을 소화한다기보다 배역으로써 자기를 살찌워간다.
본래 배우는 해석자다.
배우는 자신의 지성과 감성, 경험과 신체로서 영화의 인물을, 장면을, 스토리를 해석하여 체화하는 ‘해석 창작자’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는 일종의 ’비평 주체’다.
) 그런데 배우 유아인은 자기의 감각과 경험을 가지고 대상을 해석, 창작하는 사이에, 그 과정을 통해 만난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다시 자기에게로 가져오는 듯하다.
자기를 인물로 만드는 동시에 인물을 자기로 흡수해버리는 것 같다.
그의 연기가 궁극적으로 해석하고 창조한 것은 배역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그는 연기보다, 삶에 더 뛰어나다.
삶에 뛰어나다니, 이게 가능한 말인가. 무엇이 뛰어난 삶인가. 한 인터뷰에서 유아인은 “이 순간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 사실 난 다 잘 모르겠고, 혼란스러움을 온전히 노출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정답도 결론도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건 이 혼란스러운 상태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는 것”, “끊임없이 찾고, 구하고, 괴로워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에게 삶의 능력은 결론을 내리고 혼란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혼란을 지속하려는 용기로써 그는 결론 없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이것이 그가 “자기를 부정하면서 자기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본연의 자기를 유지하면서 다른 삶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을 자기 본연의 것으로 살려내는 일, (‘본연’이란 원래의 모양이 아니라 항상 변화 가능한 움직임일 것이다), 이것이 배우 유아인의 연기이자 삶이다.
그는 자기 본연을 잘 드러내는 편인데, 그의 말에선 연기 뒤의 삶이 읽히고, 그의 연기에선 배역 너머 배우가 보이는 까닭이겠다.
그는 간혹, 연기와 삶 모두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진지하단 소리를 듣는다.
당연하다, 진부해지지 않으려면 진지해져야 한다.
고색창연하게도 ‘청춘의 아이콘’이라 불릴 때도 많다.
괜찮다, 그는 여전히 자기 창조 중에 있고, ‘대변하는’ 배우의 역할도 잘 알고 있으니까. ‘아인시대’라니 좀 호들갑스럽게도 들리지만, 좋다, 유아인이 대세라면 청년이 대세인 것이다.
반갑다, 이런 대세, 어쩌면 세대. 오랜만에 청춘이 대세다.
아님 대세니까 청춘인가.백지은 문학평론가, 〈사람과 글〉 통권 54호 「이런 대세 혹은 세대 ― ‘아인시대’」다.

 

3.1. 데뷔 계기

 

경북예술고등학교 서양화과 1학년 재학 시절 교문 앞 캐스팅을 당했다.
당시 매니지먼트 관계자가 대구에 들른 김에 예고에 찾아왔고 유아인에게 일해 보지 않겠냐며 제안했다고 한다.
부모님의 반대가 거셌지만 무작정 홀로 서울에 가게 되는데 이처럼 꽤 용기 있는 결정을 한 것에 대해 유아인은 “뭔가 끌어당기는 게 있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이후 서울미술고등학교로 전학했으나 곧이어 자퇴했고, 후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런 이력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는지 신인 시절 인터뷰를 보면 기자가 자퇴 이유에 대해 항상 물어본다.
유아인은 자퇴 이유에 대해 “학교는 내 인생에 별 의미를 주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11년 《완득이》 개봉 당시에는 사제 관계라는 영화 소재로 인해 학창 시절과 자퇴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유아인은 제작 보고회에서 자신의 학창 시절에 대해 “선생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회의적인 학생이었다”며 “고등학생들이 스트레스 풀 데가 없다.
억눌린 스트레스가 자퇴로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서울에서 홀로 생활하게 된 유아인은 고시원이나 기획사 숙소에서 지냈다.
학교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친구가 많지 않아서 한동안 외로운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서울 생활 초반에는 자금 관리에 서툴러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호기롭게 말하고 집을 나왔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의지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유아인은 이러한 독립적인 태도가 “좋은 자산이 됐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배우나 연기에 대한 거창한 꿈이 있던 것은 아니었고, 무작정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데뷔를 준비했다.
2013년에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그때는 연예인이 되어야겠다는 꼬맹이의 마음이었다”며 “적당히 생긴 얼굴 믿고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데뷔 전에는 무려 솔로 아이돌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재능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가수 준비를 그만뒀다.

 

3.2. 2003년~2005년

 

‘유아인’이라는 예명을 짓고 2003년 쫄쫄면 광고로 데뷔했다.
같은 해 10월 《반올림》 오디션을 봤으나 낙방했지만 나중에 다시 연락을 받았고, 좋은 반응을 얻자 고정 캐릭터로 출연하게 됐다.
당시 오디션은 토너먼트 형식으로 매우 치열했다고 한다.
《반올림》 종영기념 스페셜 방송에서 당시 오디션을 보는 유아인의 모습을 짤막하게 볼 수 있다.
그리하여 2004년 1월부터 KBS 성장드라마 《반올림》에 주인공 이옥림과 사귀는 미술 전공 고등학생 유아인 역할로 출연하기 시작하여 연기자로 정식 데뷔했다.
본인의 예명과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극중 캐릭터는 미술을 전공하고 나이에 비해 진지한 얘기를 하는 등 유아인의 실제 모습이 상당 부분 투영돼 있다.
2004년 4월에는 KBS 수목드라마 《4월의 키스》에 조한선의 아역인 강재섭 역으로 출연했다.
단 1회만 나오는 분량이지만, 카프카의 시를 읽는 문학 소년의 모습을 보이거나 좋아하는 여자에게 제대로 고백하지 못하는 등 이후 유아인이 맡은 여러 캐릭터들과 연관성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4월의 키스》에서는 순박한 시골 소년으로 나오는지라 머리를 짧게 잘라서 당시 출연하고 있던 《반올림》에는 베레모를 쓰고 등장한다.
드라마 《반올림》은 2005년 2월까지 방영됐다.
유아인이 연기한 ‘아인 오빠’ 캐릭터는 그림, 피아노, 공부 등에 능통한 엄친아이자 여자친구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매너 있는 미소년이었다.
여기에 다소 어른스러운 성격으로 든든한 매력을 보여줘 청소년들 사이에서 아인 오빠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종영 직후에는 팬카페 회원 수만 15만 명에 육박할 정도였다.
유아인은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2004년 8월 15일 생애 첫 미팅을 치렀다.
다수의 지면 광고와 CF에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스쿨룩스, 블루테일 등 교복 및 청소년 의류 모델로서 전국 팬사인회를 했다.
그러나 이후에 웬일인지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 연기 활동을 잠시 접는다.
전술했듯 데뷔 전 유아인은 연기에 대한 제대로 된 생각 없이 무작정 연예인이 되고 싶어했었다.
하지만 《반올림》으로 배우의 길을 걷고 나서는 ‘어떤 배우가 될래?’라는 질문이 떠올랐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인기에 “내가 원했던 것인지 고민되고 혼란스러웠다”며 일부러 작정하고 공백기를 가졌다고 밝혔다.
게다가 “많은 기회와 유혹이 있었다.
제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옳다는 걸 거스르고 옳지 않은 걸 해야 한다는 게 견디지 못할 만큼 힘들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백기 동안 “남들에게 비춰지는 내가 아닌 진정 나를 위하는 게 무엇인지, 배우 유아인의 길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할 수 있었고, “앞으로의 그림을 차근차근 그리며 ‘사람’에 대한 생각”을 오래 할 수 있었다.
당시 본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대처할지도 몰랐으나, 공백기를 통해 “내게 밀려드는 어떤 현상에 몸둘 바 몰라 하고 휘청거리다 무너지면 안 된다, 내가 앞서 나가 단단히 발을 딛고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나중에 유아인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잠적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과연 배우로 살 수 있을까? 《반올림》 오디션을 보면서도,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연예계나 연기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이 덜컥 오디션에 합격해서 배우로 살게 된 것이다.
일이나 사회생활에 대해 무지한 채, 인간으로의 정체성 또한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1년간 《반올림》에 출연했다.
그 후 나는 쉬기로 했다.
스스로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 볼 시간이 필요했다.
많은 생각 속에서 연기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연기에 열정을 갖기 시작한 나를 발견했다.
잡지 《인스타일》 2011년 7월호 「유아인의 배우 1막 1장」다.

 

3.3. 2006년~2009년

 

활동을 재개하면서 2006년 노동석 감독의 독립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 출연한다.
같은 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고 2007년 5월 개봉 당시에는 전국 3개 관에서 상영된 작은 영화다.
이 영화에서 유아인이 맡은 종대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진짜 총을 찾아 헤매는 소년이다.
노동석 감독은 인터뷰에서 유아인의 캐스팅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배우들에게 종대 캐릭터에 대해 물어보면 보통 ‘어떤 옷을 입을 것 같고 무슨 머리 스타일에 이런 성격일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아인이는 창밖을 한참 바라보더니 살짝 울컥하면서 ‘슬프죠’ 한마디를 하는 거다.
그 순간 ‘종대는 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유아인은 이 영화에 대해 데뷔작으로서 애정을 종종 드러내는데, 2007년 기자 간담회에서 “배우라는 앞날에 대한 꿈을 꾸고 그림을 그렸다면 그 그림 속에 꼭 있어야 할 영화”라고 표현했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제 첫 영화이기도 했지만 정말 현실적인 고민들을 하게 해준 작품이었고, 제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깊이까지 저 자신을 끌어준 영화였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영화 속 대사 ‘훌륭한 소년이 될 거예요?’는 배우 유아인을 구성하는 ‘소년성’을 설명할 때 기원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사는 유아인의 필모그래피 전반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본인도 꾸준히 자신의 데뷔작을 언급하면서, 배우로서 고유한 소년성을 갖게 해 준 ‘첫 활시위’ 같은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심사위원 특별언급상 받았고, 유아인은 이 영화로 부산영평상과 평택피어선영화제에서 남우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는 정윤철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좋지 아니한가》에 출연한다.
정윤철 감독은 개봉 후 인터뷰에서 자신의 전작 《말아톤》의 오디션에서 유아인을 눈여겨 봤었고, 《좋지 아니한가》 제작 초기부터 유아인의 캐스팅을 염두에 뒀다고 밝혔다.
정윤철 감독은 유아인에 대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바로 유아인을 떠올렸다.
완벽하게 잘생긴 얼굴보다 무언가 결핍이 있는 얼굴을 좋아하는데 유아인이 그랬다”라고 표현했다.
유쾌한 가족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유아인은 아들 심용태 역을 맡았다.
전생에 왕이라고 믿으며 짝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는 캐릭터다.
유아인은 이러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엉뚱함이 억지로 꾸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배어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우울한 청춘 역할과 《좋지 아니한가》의 4차원 소년 역으로 좋은 연기를 선보이며 기존의 아이돌스러운 이미지를 벗고 신인 배우로서 호평을 얻었다.
2008년 드라마 《최강칠우》에서 흑산 역을 맡아 양반집 자제와 냉혹한 자객을 오가는 연기를 펼쳤다.
유아인에게는 첫 사극 도전이기 때문에 많은 부담이 있었지만 “하나씩 배워나가면서 촬영에 임하고 있다”며 제작발표회에서 소감을 밝혔다.
촬영 현장에서 진행된 ‘아리랑TV’와의 인터뷰에서는 오랜만의 드라마 촬영으로 힘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배우로서의 직업의식과 함께 프로 연기자로서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든다고 말했다.
유아인은 고독하고 어두운 캐릭터를 통해 유망주로서 새로운 매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얻었고, 냉소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의 아픔을 간직한 연기를 선보여 ‘완소 자객’이라는 호응을 얻었다.
종방 기념 드라마 팬미팅에서는 극 초중반까지 등장인물들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을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설득력 있게 소화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모든 분들이 잘 이끌어 주셨기에 잘 해낼 수 있었다”면서 “혼자 촬영하는 신이 많아서 선배분들과 가까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에 개봉한 민규동 감독의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서는 전직 복서인 파티시에 견습생 양기범 역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는 요시나가 후미의 동명 만화를 각색한 것으로, 유아인이 맡은 역할은 미소년이자 건강한 청년이지만 성격은 다소 다혈질인 캐릭터다.
케이크를 좋아한다는 설정으로 인해 영화 속에서 유아인의 케이크 먹방을 끊임없이 볼 수 있기도 하다.
또한 역할을 위해 복싱과 파티시에 수업을 들었는데, 공개된 메이킹 영상들을 통해 그 노력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는 남자배우 네 명의 조화가 잘 어우러지는 영화다.
그럼에도 본인의 분량에 대해 아쉬움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맛있는 영화에 적당량의 재료로 쓰였다고 생각해요”라고 답했다.
이 영화로 유아인은 충무로의 차세대 기대주로 손꼽혔고 제11회 디렉터스컷 어워즈에서 올해의 남자신인연기자상을 수상했다.
2009년에는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는 입사 1년차 박현규 역을 맡았다.
지속되는 야근으로 힘들어하지만 일적으로 한 단계씩 성장하려 하고, 여자친구와 소소하게 떡볶이 데이트를 하는 등 유아인의 필모그래피에서 흔치 않은 밝고 평범한 캐릭터다.
같은 해 장나라가 출연하여 화제가 된 영화 《하늘과 바다》에서는 피자 배달부 진구 역을 맡았다.

 

3.4. 2010년~2013년

 

2010년에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 걸오 문재신 역으로 캐스팅됐다.
제작 초기에는 다른 역할로 제안이 왔지만 대본을 받고 걸오 역에 매력을 느껴 해당 역할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제작사 래몽래인의 김동래 대표는 “처음에는 유아인에게 다른 역할을 맡기려고 했지만 서너 번이나 걸오 역할을 맡겨 달라며 오디션을 보기 위해 찾아왔었다”라고 회고한다.
머리를 풀어헤친 콘셉트나 의상, 메이크업도 배우 본인이 설정한 것이라 한다.
《성균관 스캔들》은 정은궐 작가의 인기 로맨스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사실 유아인이 걸오 역에 캐스팅됐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는 원작의 ‘걸오’가 지닌 거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원작 팬들의 반대 여론이 일기도 했다.
당시 그의 이미지는 일명 두부상으로 여리여리한 미소년이자 꽃미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아인은 제작발표회에서 “미소년 느낌의 이미지가 강해 연기를 하면서 그로 인한 아쉬움과 갈증이 있었다”며 드라마를 통해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드라마가 시작하고 뚜껑이 열리면서 초반의 우려를 씻어냈고 이처럼 방영 전과 후의 온도가 달라졌다.
그가 연기한 걸오는 세상을 바꾸려는 청춘이면서 좋아하는 여성을 묵묵히 지켜주는 캐릭터다.
결국 이 캐릭터의 이름을 딴 신조어 걸오앓이를 만들어 내며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고, 방영 기간과 종영 후에도 걸오와 관련한 각종 2차 창작물이 양산됐다.
유아인은 걸오 캐릭터에 대한 생각과 자신과의 공통점을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특히 걸오가 홍벽서로서 사회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해줘서 좋았으며,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걸오의 마음이 궁금했고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 연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걸오에 대해 “올라가도 산속의 나무가 아니라 명륜당 앞 나무에 올라가고 누워도 들판이 아니라 중이방 툇마루에 누워 있잖아요? 내부에 온전히 발을 못 담가서 어떻게든 멀어져 있으려고 높이 있으려고 하지만, 그 경계를 벗어나면 동떨어져 있으려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해져 버리는 아이”라고 분석하면서 이러한 모습이 “배우로서 제 모습이기도 하거든요”라고 설명했다.
또한 걸오의 인물소개에 ‘조선판 짐승남’이라 써진 것에 대해 “날이 설 때는 확 서지만 평소에는 힘이 없는 짐승”으로 평소에는 “몸에 힘을 풀고 있는 아이”로 해석해 연기했다고 말했다.
《성균관 스캔들》은 유아인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20대 대표 배우로서 주목받았고 배우로서 지닌 고유한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팬덤의 크기 역시 확장됐다.
유아인 역시도 《성균관 스캔들》 이후 작품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배우로서 살아나가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한 인터뷰에서는 다소 늦게 대표작을 만난 아쉬움이 없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8년 됐다는 얘기할 때마다 창피하고 끔찍해요.(웃음) 주변에서 아쉬워하는 분들도 많고요. 하지만 뭐 그래도 전 굉장히 만족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건방져 보이겠지만 24살, 이제 뭔가 펼치기 위해 그간 남부러울 것 없는 커리어를 쌓아왔다고 생각해요. 매니저 말을 들었으면 더 돈도 많이 벌고 더 빨리 인기를 얻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제 나름대로는 그런 부분은 포기하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작품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걸오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고요.2010년 10월 13일 ‘연합뉴스’ 인터뷰2011년에는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 《완득이》의 주인공 얌마 도완득 역을 연기했다.
유아인은 극중 혼혈 설정을 위해 매일 얼굴에 검은 분장을 하며 촬영했다.
운동을 워낙 싫어했지만 역할을 위해 킥복싱 훈련을 받았다.
영화에서는 편집됐으나 시나리오에는 야구를 하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에 투구와 타격 연습도 했다.
후에 이한 감독은 GV에서 말하기를, 캐스팅 당시 유아인은 야구나 축구를 해본 경험이 없었고, 발차기를 시켰더니 발이 허리까지밖에 올라오지 않아 걱정이었다고 한다.
이에 유아인은 아침 8시부터 해 질 녘까지 킥복싱 훈련을 받아 머리 위까지 발차기하는 등 실력을 발전시켜 감독의 걱정을 타파했다고 한다.
《완득이》는 개봉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에게 미리 공개됐고, 같은 해 10월 개봉했다.
이듬해인 2012년에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 제너레이션 14플러스 부문에 초청되어 수정곰상 후보에도 올랐다.
유아인은 소설 속 도완득과 높은 싱크로율을 선보이며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고, 선배 배우 김윤석과의 앙상블 역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당해 슬리퍼 히트작으로서 전국 관객 531만 명을 동원하고 제3회 올해의 영화상에서 올해의 발견상을 수상했다.
또한, 부일영화상을 통해 처음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에서도 대표작을 만든 셈인데, 이후 함께 연기한 배우들이나 그를 캐스팅한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완득이》를 통해 유아인을 주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아인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너무 착해서 불쌍했어요. 기껏 엄마를 만나서도 애인처럼 구두 사주고, 마침내 버스정류장에서 포옹할 때에도 제 안의 응어리를 먼저 풀지는 못하고 우는 엄마한테 (두팔을 벌리며) ‘제 품에 안기세요’ 하는 모양이 너무 조숙해서 불쌍했어요”라고 말하면서 완득이를 아이다운 아이로 만들어주지 못하고 성인처럼 살 수밖에 없도록 몰아붙이는 상황이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영화가 완득이의 깊숙한 내면까지 비추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완득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굳이 거기까지 들쑤실 필요가 없는 리듬으로 흘러가는 영화예요. 우리 영화의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불우한 환경에 처한 인물을 그리면서 왜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냐고 투정부리지 않고 미끈하게 다뤘다는 점이 만족스러워요”라고 말했다.
사실 《완득이》는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의외의 선택이었다.
대부분 그가 《성균관 스캔들》 이후 트렌디한 로맨스물의 첫번째 남주인공을 연기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유아인은 다시 고등학생을 연기한다는 점에 대해 “요즘 학생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연기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앞섰다”고 털어 놓으면서도 “부담이 되긴 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저의 진로를 깨고 싶기에 도전했다”면서 “《성균관 스캔들》 이후 사람들의 기대치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이미지를 깨면 더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연기 변신’ 그런 거창한 말보다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연한 순서를 따르지 않고 싶었어요”라고 덧붙였다.
한편 개봉 즈음에는 영화 잡지에 에세이를 기고하면서 걸오앓이로 유명세를 탄 소회와 《완득이》를 차기작으로 선택한 이유를 밝혔는데, 특기할 만한 문단은 다음과 같다.
나는 정확히 내가 겪은 시간과 경험만큼만, 생경하게 찾아온 인기를 이해하고 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만큼 닳은 채로 ‘완득이’를 만났다.
영화다.
그것도 열일곱 살 소년이란다.
기껏 성인 연기자의 타이틀을 달았는데, 이 아이는 처음 연기를 시작하며 맡았던 드라마 《반올림》의 ‘아인 오빠’보다 더 어린 친구다.
배우의 운명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의되고 또 그렇게 흘러가는가 보다.
나는 아역 이미지를 벗지 못한 풋내기 배우였고, 미디어는 ‘걸오’ 캐릭터야 말로 성인 연기자로의 진정한 발돋움이니 뭐니 하는 식상한 말들로 내 운명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어쩌면 《완득이》는 당시 나를 향한 눈들의 기대와 예상을 배신하면서, 동시에 내가 그것들을 떨쳐내고 초연해지도록 돕는 필연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겐 그런 상태가 절실했다.
잡지 <무비위크> 496호 「유아인 완득이를 만나다 1」2012년 드라마 《패션왕》에서 주인공 강영걸 역으로 출연했다.
성공에 집착하여 비겁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불운의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는 평을 얻었다.
패션을 모티브로 젊은이들의 성공과 사랑을 그리는 줄거리와 주목받는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초반에 비해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개가 이어지다 비극적이고 다소 충격적인 결말로 막을 내렸다.
유아인은 이미 엔딩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러티브와 캐릭터가 잘 섞이지 못해서 아쉬웠고, 시청자 반응을 흡수하는 것과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것의 균형을 맞추지 못해 시청률 반등의 기회를 놓친 것 같다고 자평했다.
또한 자신의 성공만을 바라보는 현실적인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인상을 주기도 했지만, 이로 인해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찌질하고 허세적인 모습을 보여줘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이에 대해 유아인은 본인의 캐릭터가 멋있는 척을 하지 않아 좋았고, 판타지에서 벗어난 인물이라 신선했다고 밝혔다.
허세적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힘이 잔뜩 들어간 연기를 의도했지만, 시청자들이 보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매력 있게 연기하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패션왕》은 마지막 회 촬영 후에도 수정 대본이 나오는 등 힘든 여건 속에서 진행됐는데, 대본상 이야기의 흐름이 이해하기 어려울 때 유아인은 신세경에게 “이게 우리의, 배우의 운명이야. 우리는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든 이해해내는 수밖에 없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종영 후 인터뷰에서는 주어진 대본대로 연기해야 하는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작가와 감독은 내 세계의 신, 내 주인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해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동의할 수 없다 해도 그가 쓴 곳에 내가 가 있어야 하고, 그가 쓴 말을 내가 내뱉어야 하니까”라고 말했다.
또한 “현실적으로 나의 신이 불완전할 수도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동안 나는 나의 신들이 불완전조차도 완전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걸 의심하면서 일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니까. 그게 배우의 운명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이번에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2013년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는 숙종으로 출연했다.
새로운 장옥정을 보여주려고 야심차게 기획되었지만 착한 장옥정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그리 열광적이지 않았고 역사 고증에 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남자인 동시에 왕권 강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카리스마를 내뿜는 정치 10단의 절대 군주를 표현하는 유아인의 연기는 호평 받았다.
왕이 섹시한데 비주얼도 폭발한다 특히 드라마에서 김태희와 함께 일명 ‘순정커플’의 달달한 애정씬을 선보여 시청자들을 설레게 하기도 했다.
이처럼 역사극이 아닌 로맨스 사극의 관점으로 본다면 드라마팬들에게 상당히 만족스러운 드라마였기 때문에 종영 이후 커플팬들을 위한 DVD가 발매되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영화 《깡철이》가 개봉했다.
부산 출신인 안권태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부산 올로케이션 영화이며 유아인을 비롯 대부분의 배우가 부산 사투리를 사용한다.
유아인이 연기한 강철은 부두 하역장에서 일하며 치매에 걸린 엄마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이다.
유아인은 영화의 제목이 《완득이》와 비슷해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읽어 보지도 않았지만, 《완득이》보다 훨씬 더 인물의 내밀한 세계로 들어가는 영화이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밝혔다.
특히 본인의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컸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유아인은 선배 김해숙과 엄마와 아들로 만나 훌륭한 앙상블을 이뤘고 강도 높은 액션과 감성 연기를 동시에 보여줬다는 평가를 얻었다.
만족스러운 흥행 성적을 얻지 못했지만, 첫 원톱 주연을 맡아 영화를 이끌어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담으로 김해숙은 촬영 이후에도 유아인에 대해 공공연히 애정을 드러냈는데, 유아인이 김해숙의 생일에 자필 카드와 함께 선물을 사줬고 사석에서도 엄마라고 부른다고 한다.

 

3.5. 2014년~2016년

 

 

 

3.6. 2017년~현재

 

external/gifyu.c... external/gifyu.c...
1회
2회

 

4. 예술 활동: 스튜디오 콘크리트

 

 

4.1. 개요

 

2014년 11월 21일 ‘스튜디오 콘크리트(Studio Concrete)’라는 아티스트 그룹을 결성했다.
웹사이트 인스타그램 유아인은 공동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전시회 서문에서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Founder라고 소개되며, 브랜드 잡지 <톰 페이퍼(Tom Paper)>의 편집장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브랜드 잡지의 발간을 시작으로 아티스트들의 전시회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5년 5월 1일 갤러리, 라이브러리, 아틀리에 및 숍과 카페가 복합된 동명의 오픈 스튜디오도 열었다.
내부에 카페가 있어서인지 SNS를 통해 ‘유아인 카페’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예술의 문턱을 낮춰 모두에게 개방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카페로 운영하고 무료로 전시를 진행하는 것이라 한다.
유아인은 공동 대표인 차혜영, 아티스트 권철화, 김재훈, 권바다, 큐레이터 김지은, 에디토리얼 디렉터 박노섭과 머리를 맞대 이 공간을 만들었다.
평소 친한 친구 사이였던 이들은 어느 날 술자리에서 함께 뭉치면 무언가 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얻었고, 6개월간의 회의를 거쳐 북한남 삼거리에 공간을 마련했다.
유아인과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창립 크루들유아인은 스튜디오 창립 배경에 대해 “크루들이 다 제 친구들이지만 전 그들의 작품에 감동을 받았고 인간성에 감동받았거든요. 이 보석 같은 친구들을 세상에 더 널리 알리고 싶었어요. 우리가 아이돌은 아니지만 그룹으로 뭉쳐보면 어떨까 싶었던 거죠(웃음). 혼자서는 발을 뻗기도, 몸을 누이기도 힘든 세상이지만 뭉치면 뭔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힘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라고 답했다.
2015년 인터뷰에서는 “똑같이 일해도 내가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누리는 게 있다”며 “똑같이 대단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시장 논리로, 나이로, 혹은 직업의 특수성으로 인해 상황이 갈라지는 게 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나눠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밝혔다.
앞으로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하고자 하는 일은 대중과 예술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 유아인은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하는 게 아니고 발견에 가깝거든요.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예술품을 구매하는 일은 내 주변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거기에 프레임을 씌우고 무엇을 예술이라고 부를 것인가를 결정하는 행위인 것 같아요”라며 “엽서 하나를 사서 침대 머리맡에 붙이든 마음에 드는 잡지 페이지를 찢어서 책상 옆에 붙이든, 그로 인해 아무것도 아니었던 평면에 깊이가 생기잖아요. 저는 특정한 어떤 걸 팔고 싶다기보다 그런 행위에 동참하고 싶은 거예요. 사람들이 예술이라는 개념을 쉽게 느끼게 하는 것이 지금 저의 가장 큰 숙제이자 과제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또한, 대중예술인으로서 자신의 유명세를 순수 아티스트들의 활동 저변을 넓히는 데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스튜디오 콘크리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인터뷰(<그라치아> 2015년 5월 제2호)를 보면 알 수 있다.

 

5. 개인 활동

 

 

5.1. 글쓰기 활동

 

  • 2009년 <야심만만2>에 출연하여 즉흥적으로 시를 쓴 후 낭독하기도 했다. 고화질 영상을 원한다면 여기로.
  • 2016년 시 전문 월간지 <시(詩, see)> 1월호에서 유아인이 시를 즐겨 쓴다는 사실을 특집기사로 실었다. 여기서 편집자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배우의 일상과는 전혀 무관한 자아를 찾아가는 그 아름답고도 맑고 깨끗한 가벼운 호흡이 느껴져 읽는 내내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해당 월간지에 실린 유아인의 2개의 시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 20대 초반에 썼던 수필 ‘편의점이 폐업했다’는 넷상에서 자주 공유된다. 또한 이 수필을 한 블로거가 만화로 그린 것이 있다.
  • 초등학교 6학년 때 썼다는 시가 커뮤니티에 공개되기도 했다. 학교 문집에 실려 있다고 한다.

 

5.2. 디자인 협업 등 패션 관련 활동

 

external/s-media... external/t1.daum...
러브 시티 티셔츠
Series 1 to 10 티셔츠

 

5.3. 방송 및 기타 연예 활동

 

연기 경력에 비해 예능 프로그램 등 방송 출연이 드물다.
2007년 EBS <시네마 천국>의 ‘영화처럼’(영상) 혹은 2018년 KBS <영화가 좋다>의 ‘나는 영화인이다’(영상)와 같은 영화소개 프로그램이나 연예정보 프로그램에 간간히 등장했던 정도. 무대울렁증뿐만 아니라, 본인의 표현대로 예능울렁증 역시 심하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2008년에 출연한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나 2009년에 출연한 SBS <야심만만2>에서 극심하게 떠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이때도 청심환을 먹고 왔다고 고백한다.
<놀러와>에서는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의 홍보차 동료 배우들과 출연해 막내미를 보여줬고, <야심만만2>에서는 즉흥시를 짓거나 짧게 노래도 불렀다.
2008년 10월에는 <이주연의 영화음악>를 통해 생애 처음 라디오에 출연했다.
긴장한 와중에도 심야방송에 맞게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들려줘 한동안 팬들의 소장 리스트에 있었다.
2011년에는 <유아인의 론치 마이 라이프>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홍콩 재벌과의 클립 영상이 종종 회자돼 출구 방송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사실 팬들 사이에선 프로그램을 끝까지 다 보면(총 4부작) 오히려 출구가 봉쇄된다는 입구 방송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유아인은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방송을 보면서 ‘유아인 싸가지 없어’, ‘개념 없어’, ‘성격 참 더럽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고 반대로 ‘아 진짜 시원해’, ‘솔직하다’고 해주는 분들도 있더라. 그 자체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남자 배우는 항상 멋있고 착하기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지 않나. 배우이기 때문에 가져야 할 무게감이 있고, 진중함을 잃어선 안 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무겁고 심각하고 우울하면서도 너무 밝고 어리고 재미있고 유치하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한 사람 속에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지 않나”라고 말하면서 시청자들이 일부 오해할 수 있음에도 “나 또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2016년 인터뷰에서는 “《성균관 스캔들》 이후 하도 나를 멋있게 봐 주셔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그 이미지를 깨려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완득이》 개봉 즈음 SBS 라디오 <파워타임>에 김윤석과 출연해 처음으로 보이는 라디오를 경험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연한 YTN 라디오 <뉴스! 정면승부>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다.
팬들이 가장 열광한 라디오 출연은 2013년의 <씨네타운>이다.
당시 진행자였던 공형진을 대신해 민규동 감독이 임시DJ를 맡았는데, 유아인은 휴식기였던데다 작품 홍보할 때가 아니였음에도 출연해서 팬들이 놀라워했다.
사실은 둘이 미쟝센 단편영화제 때 만났을 때 민규동이 출연을 제안해서 이뤄진 것. 이 방송에서 유아인은 보이는 라디오인 줄 모르고 방송 전 2시간 동안 사우나에 있다가 민낯으로 출연했다.
티브이잡스 영상 같은 해 9월 <런닝맨> 추석특집에 김해숙과 출연했다.
플라잉체어 미션에서 출연진들이 아인이 안녕~이라고 예언할 때마다 물 속에 빠지고, 오감푸드배틀에서 젤리튀김을 단번에 맞혔다.
송편찾기 미션에서 열심히 레이스를 펼치고 마지막에는 매운갈비찜을 능숙하게 만드는 등 야외 버라이어티 예능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14년 다큐멘터리 <날고싶은 완득이>로 내레이션 데뷔를 했다.
다문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제78회 이달의 방송기자상 지역보도부문 기획보도상을 수상했다.
풀영상 2017년에는 6.10 민주 항쟁 30주년 다큐멘터리 <6월 이야기>의 내레이션을 했다.
2017년의 청년 세대가 1987년의 청년이었던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내용으로,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시청자들의 작품들을 묶어서 방영했다.
또한, 2018년에는 시리아 내전 7년을 조명한 <시리아의 목격자들>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한편, 2004년 티오(T.O)의 ‘발자국’으로 첫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한창 《반올림》 방영 시기였는데, 여기서도 그림을 그리는 10대이자 삼각관계의 주인공으로 나오며 같은 드라마에 등장했던 이은성과 출연한다.
2016년에 출연한 ‘ㅎㅎㅎ(흥부야)’는 페기 구의 음악을 활용하는 아트필름으로, 흥부를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인물로 위트있게 재해석했다.
배경의 그림은 캐스퍼 강 작가의 작품이다.
이후 2019년 페기 구의 첫 번째 뮤직비디오 ‘Starry Night’에 짧은 시간 우정출연했다.
사진작가이자 영상 디렉터인 요나스 린드스트룀이 연출한 작품으로, 상당히 실험적이고 독창적이라 국내외로 주목을 받은 영상이다.
2019년 1월 5일부터 3월 23일까지 KBS 1TV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도올아인 오방간다>에 출연했다.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특집 프로그램으로 도올 김용옥과 출연했다.
도올이 강의를 맡았다면, 유아인은 젊은 세대의 시각으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현재적인 관점으로 그 의미를 되묻는다.
또한 본인의 경험를 솔직하게 털어놓거나 방청객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여 여러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끌어낸다.
이렇게 방청객들의 참여와 호흡이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이라 박동민 PD는 “조명이나 음향도 관객과 강연자가 마음껏 자유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연출한다”고 말했다.
한편, 프로그램의 제목은 유아인의 아이디어였고, 오방신으로 출연한 이희문의 출연도 유아인이 제작진에게 추천한 것이다.
유아인은 무대공포증이 있음에도 매회 250명의 관객 앞에서 3~4시간씩 진행을 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배우로서 득이 없을 것 같은데 왜 그걸 하냐거나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을 했지만, 유아인은 마지막회에서 “우리가 함께임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어갑니다”라고 말하며 프로그램 참여 의미를 밝혔다.
사실 그는 2018년 즈음 고민이 많아서 부모님, 친구들,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다가, 자신의 주변에서 가장 연장자인 도올에게 연락한 것이다.
이후 프로그램 출연을 제안받고 관객들과 함께 대화하며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어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총 12회의 방영분에는 어느 때보다도 유아인의 개인적인 얘기들과 진심어린 고백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 혼란스러운 시기 들었던 어머니의 말(영상다른 영상)을 털어놓으며 우리 모두 특별한 존재라 생각하며 살아가자는 말을 했고, 아버지와의 일화를 통해 가족 간의 역할 강요와 성 평등에 관해 운을 띄웠다.
또한 ‘부끄러움’이란 주제로 자신이 10년 전 쓴 글을 읽었는데, 본방 후 요청에 따라 무편집 버전으로 영상이 올라왔다.

 

5.4. 기부 활동

 

2013년 1월 유아인이 아름다운 재단에 7,700만 원을 기부했다.
보육시설 아동들의 급식비 인상을 위한 ‘나는 반대합니다 시즌2’ 캠페인에 참여한 것이다.
캠페인의 목표액에서 1%를 남겨두고 기부했는데, 이는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여 더 많은 기부 참여를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아름다운 재단을 이를 두고 ‘채움을 위한 비움’으로 표현했으며,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참여로 목표액을 100% 달성했다.
또한 기부와 동시에 아름다운 재단에 보낸 이메일의 전문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명인은 기부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보람을 느끼고 그 일을 널리 알려 더 많은 사람들이 뜻 깊은 일에 동참하게 하는 시너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선진 기부 문화이고, 좋은 뜻을 가지고도 주저했던 저와 같은 많은 분들이 이제는 주저 없이 그러한 기부 문화를 만드는 일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좋은 일에 앞장서신 선배님들의 발꿈치에라도 따라가고자 애쓰는 저처럼 많은 분들이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의를 가지고 행동하건 행동함으로써 선의를 갖게 되건 기부라는 행동은 그 자체로 사회의 음지를 밝히는 등불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름다운 재단이 공개한 유아인의 이메일 중에서, 전문은 여기에서 확인2014년 1월에는 ‘러브 시티’ 티셔츠의 수익금을 기부하면서 아름다운 재단에 뉴키즈유아인기금을 조성했다.
유아인과 브랜드 노앙(NOHANT)이 론칭한 서브 레이블 뉴키즈노앙(newkidz nohant)은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는 ‘From new kidz to new kids’ 캠페인을 벌였는데, 소외계층 아동 청소년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기금을 조성한 것이다.
뉴키즈유아인기금은 문화 소외 지역의 아동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체험기회를 제공하는 ‘아동청소년 문화체험 지원사업’과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거나 퇴소한 후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학비와 학업보조비를 지원하는 ‘아동양육시설 퇴소거주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에 기부금을 사용한다.
유아인은 기금을 개설하는 취지를 설명하는 글을 썼는데, 그의 팬들 역시 이러한 뜻에 맞춰 해당 기금에 지속적으로 기부를 하고 있다.
삶의 가치를 스스로 깨우치며 실현케 하는 참된 교육의 장으로 아이들을 인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저마다 다른 개성과 특성을 가진 소중한 우리 아이들. 하지만 너무 일찍 불편한 현실을 불행으로 짊어진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며 ‘특별한 아이들’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유아인의 뉴키즈유아인기금 개설 취지 중에서, 전문은 여기에서 확인2014년 8월 가수 백지영으로부터 아이스 버킷 챌린지 다음 주자로 지목받았는데, 당시의 아이스 버킷 챌린지 열풍은 놀이와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의 시각도 많았다.
이에 유아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캠페인을 너무 꼬아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리면서, 분장을 한 채로 영화 촬영 중인 관계로(당시 《사도》를 촬영 중이었다) 챌린지 대신 승일희망재단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2015년 5월 어린이날을 맞아 스튜디오 콘크리트 차원에서 자선바자회를 열었다.
유아인은 바자회에 개인 소장품을 내놓았는데, 구매자들에게 설명하면서 사이즈를 체크하며 직접 옷도 골라줬다고 한다.
바자회의 수익금과 수익금의 5배수가 되는 금액을 유아인이 추가 기부하여 기부금을 마련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기부금 중 50%는 한국 백혈병 어린이 재단에 기부되고 나머지 50%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어린이․ 청소년 예술교육 지원사업처 설립을 위해 사용됐다.
한국 백혈병 어린이 재단에 기부하여 환아들의 수술비가 지원된 사실은 10월 14일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기사를 보면 DC 유아인 갤러리가 해당 재단에 지속적으로 후원한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유아인이 이런 팬들의 뜻에 동참해 후원을 시작한 것이다.
유아인 갤러리는 2010년부터 정기 후원 및 기념일 기부를 이어왔으며, 2017년에는 유아인이 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2016년 어린이날에도 자선 바자회를 열었다.
유아인이 바자회에서 구입품을 포장해주고 직접 계산도 해줬다는 후문이다.
이 자선바자회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유아인뿐만 아니라 그의 지인들도 참여해 어린이날마다 열리는 연례 행사로 자리잡았다.
같은 해 12월에는 본인이 오디오가이드로 참여한 전시회의 티켓 4,000만 원 상당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했다.
유아인은 자신의 기부금이 항상 아이들을 위해 사용되길 바란다며 많은 아동 청소년에게 문화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이와 같이 급식비 인상 캠페인 참여부터 뉴키즈유아인기금, 한국 백혈병 어린이 재단 후원, 매년 주최하는 자선 바자회에 이르기까지 유아인은 직접 언급한 대로 '미래세대'인 아동 청소년이 겪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관심까지 이끌어내며 꾸준한 기부 활동을 펼쳐 왔다.

 

6. 유아인에 관한 정보

 

 

6.1. 배우 유아인을 구성하는 대중적 이미지들

 

필모그래피를 보면 초기작부터 불우하고 반항적인 인물을 자주 연기했다.
이러한 이유로 ‘반항아’라는 단어가 유아인의 수식어로 자주 인용된다.
개인적으로도 “유독 성장통을 심하게 겪었고 사회에 불만도 많았다”고 한다.
사실 유아인은 그간 맡은 반항아 캐릭터들이 이미지만 거칠 뿐 오히려 현실 순응적이었다며, 《사도》의 사도세자 역할이 진짜 반항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본인의 캐릭터에 있어서 정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11년 《완득이》 언론 시사회에서는 반항아 캐릭터를 연달아 연기한 것에 대해 “내가 맡았던 캐릭터가 공통적으로 반항아이거나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는 인물, 부모에 반기를 드는 역할, 불우한 환경에 있거나 가슴 속에 응어리가 한가득 있는 캐릭터였다”며 “내가 생각하는 현실이 그것이고 내가 그 시기에 놓여 있다.
아직 매끈하게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인물들에 관심을 쏟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5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기존 질서의 의문을 던지는 게 반항아의 역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미지 덕인지 이준익 감독은 《사도》의 제작기 영상에서 유아인에게 존재하는 반골 기질이 사랑스러워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반항아의 연장선으로 아웃사이더의 이미지 역시 강했다.
학교를 자퇴하는 등 제도권에 어울리지 못했던 유아인의 개인적인 경험도 얹어준 듯. 특히 커리어적으로 성공을 거두기 전에는 비주류적 느낌도 존재했다.
그러다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이후 유아인은 스스로 주류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시작했고, 전에는 아웃사이더밖에 할 수 없는 아웃사이더였다면 이후에는 안과 밖을 오갈 수 있는 아웃사이더가 되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기사. 2015년에는 “욕심도 나고 잘 됐으면 좋겠고 인정도 받고 싶다.
반항심이었을까. 예전의 내가 동네 돌아다니는 개처럼 어슬렁어슬렁하며 '나를 어루만져주든 밥을 주든 마음대로 해, 흥' 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요즘엔 ‘쓰담쓰담 해줘’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이 유아인을 또래 배우들과 구분 짓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독보적 이미지를 구축한 것 아니었느냐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난 늘 아웃사이더였다.
다른 또래 배우들을 보면 참 친근하고 예쁜데 나는 왜 이렇게 모났나 싶었다.
남들하고 같이 있으면 3등도 못할 것 같으니까 내 운동장에서 나 혼자 달려서 1등 하겠다는 야심으로 살았다.
잡지 <매거진 M> 124호덧붙여, 유아인은 한때 인터넷에서 가난미가 있는 배우로 꼽히기도 했고, 왕족과 재벌 역할을 연달아 맡으면서 여러 이미지를 겹쳐놓기도 했다.
본인은 소외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또한 비극적인 스토리를 좋아하고 비극을 연기하는 데 매력을 느낀다고 종종 밝혀왔다.
필모그래피상 대부분의 작품들이 무거운 편이고 극 중 캐릭터는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랑에 있어서도 짝사랑으로 끝나거나, 불륜처럼 파국이 예상되거나, 쌍방으로 사랑해도 어느 한쪽이 죽었다.
고아이거나 결손가정에서 자란 경우도 많았고, 선악의 구분이 없거나 광인으로 변하는 등 절대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들을 맡아 왔다.
그래서인지, 커리어 초반 작품을 함께 했던 노동석 감독은 “외모와 대조적으로 격정적인 내면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고, 정윤철 감독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서 광적인 느낌까지 변화의 폭이 굉장히 넓다”고 유아인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또래 배우들과 구분되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편이다.
젊은 배우임에도 자녀를 둔 아버지 역할을 몇 차례 맡기도 했고, 다소 가벼운 터치의 작품들에도 항상 비극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특히 젊은 배우로서 본격적인 로코물이나 트렌디한 작품 없이 아역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오면서 인기를 얻은 점이 인상 깊다.
물론 배우로서의 커리어가 향상되고 상업적인 노출이 잦아지면서 비주류적 이미지는 많이 지워진 편이다.
또한 ‘패셔니스타’라는 수식어나 아티스트 그룹 활동 등이 배우 자체를 트렌디하게 만든 점도 있다.
하지만 유아인은 여전히 마이너적인 것이 본인의 근본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마이너 감성으로 메이저 배우가 됐다는 점 자체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불안한 청춘과 소년성 역시 배우 유아인을 구성하는 이미지 중 하나다.
스스로 ‘번외편’이라고 밝힌 조태오에 소년성을 부여하고 사도세자 역할 역시 청춘 캐릭터로 접근하는 등 모든 캐릭터를 소년스럽게 해석하는 면이 있다.
백은하 기자와의 <무비스타 소셜 클럽> ‘스타 프리뷰’ 인터뷰에서는 캐릭터에 소년성을 끊임없이 부여하고, 소년성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연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강유정 평론가는 “유아인이 돋보이는 작품들에선 언제나 소년이 공존한다”면서 유아인의 매력은 어른과 아이가 공존하는 “애매성과 양가성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김선영 칼럼니스트는 “어딘가에 갇히고 붙박인 모습은 유아인의 청춘들을 지배해 온 대표적 이미지”라고 분석했다.
이어서 “구속하고 억압하는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는 태도는 ‘소년성’의 핵심”이라면서 “유아인의 배우로서 성장은 이 청춘 성장물이 사라진 시대, 정확히는 젊은이들의 성장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유아인의 인물들이 그 불가능성에 좌절하면서도 기어코 온몸으로 맞서는 소년들이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
기사 그렇기 때문에 청년을 다룬 영화 《버닝》을 해석하는 건 ‘유아인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표현도 나온 적 있다.
기사유아인은 줄곧 청춘물에 대한 갈증이 크다고 말했다.
2007년에는 “규정지어지지 않고, 안정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어찌 보면 위태로운” 청춘의 이미지가 좋다고 인터뷰했다.
또한, 청춘의 얼굴로 동시대 청춘을 대변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한다.
주된 관심사가 청춘들이 성장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맡은 캐릭터들이 청춘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청춘의 액기스는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순간의 모습을 담은 멜로물에도 욕심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18년 인터뷰에는 순수함에 대한 지향, 불안함, 정제되지 않은 것들, 그 시기 아름다움에 많이 집중했었다고 밝히며, 보다 현실적인 청춘의 실질적 감정들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버닝》 등에서의 청춘을 연기할 때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인하거나 제 발자취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청춘을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책임감을 가지고 이 시대의 청춘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호불호가 선명하다는 이미지 역시 존재한다.
주관이 뚜렷하고 솔직하지만 까칠하다는 이미지는 다소 거침없는 SNS의 멘트들로 인한 영향이 큰 듯 하다.
이은주 기자가 “SNS에서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이 때론 그를 곤경에 빠트리기도 했지만 기획사에 틀에 갇히지 않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는 결과적으로 그에게 플러스로 작용했다”고 얘기하듯기사 유아인의 SNS 활동은 그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반면에 최재욱 평론가가 지적하듯 “종종 SNS상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지나칠 정도로 여과 없이 드러내는 화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가 스타 의식이 넘치고 버릇없고 거만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최 평론가가 이어서 얘기하듯이 유아인은 다소 자아가 강하고 고집 있으며 약간의 ‘똘끼’도 남아 있으나,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안다고 한다.
대중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이들과 약간 차이가 있고 투박할 따름”일 뿐 유아인은 “좌충우돌하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성장해왔다는 것이 요지다.
기사이렇듯 유독 선입견이 많은 편이다.
2014년 잡지 <엘르> 인터뷰에서 “나에 대한 소스를 많이 제공하다 보니 세간의 잣대가 생긴 것 같다”고 선입견이 생긴 이유를 스스로 말한 적도 있다.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는 시선에는 “진짜 자신 없다.
뭐가 맞는 말인지, 또 정답은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내가 보는 것, 아는 것, 해석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내 일이고 생각하고 표현할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그냥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니까” 대중들에게 자신이 “별난 아이로 비치는 것 같다”고 인터뷰한 적도 있다.
게다가 연기 외적인 활동들이 상당수 배우 유아인의 이미지와 혼합되거나 작품 속 캐릭터를 통해 구축한 판타지를 희석시켜 버리기도 했다.
김혜리 기자는 2011년 씨네21 토크쇼에서 이러한 선택이 수반한 위험을 지적했는데, 유아인 본인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유아인은 규정할 수 없고 뭐든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혜리 기자는 <씨네21> 기사에서 이러한 유아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기도 했다.
표현과 삶이 동의어인 세대의 아이인 유아인은, 트위터와 미니홈피를 통해 들끓는 자신의 현재를 세상과 교신하며 청춘을 종단하는 전례없는 유형의 스타다.
(중략) 21세기 배우 유아인은 일방적으로 팬들이 그를 상상하고 욕망을 투사하도록 도무지 내버려두질 않는다.
뜻대로 알맹이를 채울 수 있는 이미지만 주는 게 아니라, 생각과 감정까지 바삐 타전한다.
“너의 스타인 나는 이런 사람이니, 함께할 수 있는 한 잘해보자”라고 말을 건다.
김혜리 기자, 출처.함께 작업한 사람들에 의하면 섬세하고 세심하다.
또한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는 편이다.
더불어 배우로서 유아인에 대한 공통적인 표현은 ‘영민하고 영리한 배우’이다.
배우 송강호는 유아인이 자신과 공통적으로 성격적으로 낯을 많이 가리는 등 비슷한 점이 많아 편했다고 인터뷰했다.
《밀회》를 연출한 안판석 PD는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기 머리로 사고하고 자기 입으로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아주 섬세하고 맑은 영혼인데 까칠하다거나 튄다는 얘기도 더러 듣죠. 하지만 개의치 않고 자기 길을 걸어가는 걸 보면 훌륭한 젊은이”라며 유아인이 섬세한 타입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기사.함께 호흡을 맞췄던 신세경은 유아인이 “앞뒤가 같은 스타일”이라며(2014년 연예가중계), 자기주관이 뚜렷하고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알아서 부럽다고 말했다(2015년 <나일론> 인터뷰). 2016년에는 “섬세하고 센스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까칠하고 당돌하다는 선입견은 다소 확고한 주관에 기인한 듯. 이와 관련해 이한 감독은 유아인을 “따뜻한 마음이 있는 착한 배우”라고 하면서 “일에 있어서 자기의 좋고 싫음을 명확하게 얘기 하는 게 아직은 나이가 젊은 연기자다 보니 까칠하게 비춰질 수 있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인터뷰. 류승완 감독은 유아인에 대해 “홀린다”고 표현했다.
이준익 감독은 유아인이 현재주의자이며 “과거와 미래를 함께 아는 친구”라면서 “그가 현실에 충실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미래에도 과거에도 얽매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버나드 쇼의 말과 달리 “젊음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배우 정유미는 유아인을 “산”으로 비유하면서 산처럼 많은 것을 담았다고 표현했다.
또한 2019년 장윤주는 그를 두고 “매력이 많은 친구”라고 말했다.
또한 종종 시크한 성격의 소유자로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친절하고 매너가 좋다.
1 2 3. 인사성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래서 2017년 라디오 두시탈출 컬투쇼에 출연한 배우 강홍석은 처음 만났을 때 유아인이 너무 공손하게 인사해서 놀랐다고 말한 적 있다.
팬서비스도 확실하게 하는 편이다.
무심한 듯 잘 해주는 츤데레 느낌이 있어서 팬들은 그를 두고 ‘엄다정’이라 부른다.
게다가 팬들 조련이 수준급 영상1 영상2. 영상3. 지인들에게 꽃선물과 함께 손편지나 카드를 자주 써주기도 하며, 기자들에 의하면 솔직하고 배려심이 있다고.1 2. 《성균관 스캔들》의 김원석 감독은 유아인이 섬세하고 자상하다며 일화를 공개했다.
촬영 중간 졸고 있었던 김원석 감독에게 유아인이 큰 종이에 편지를 써서 햇빛을 가려줬는데 ‘감독님의 피곤한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인터뷰 기사. 스튜디오 콘크리트 크루들은 그에 대해 순수하고 사랑이 넘치며, 따뜻하고 배려심 넘친다고 표현한다.
이렇게 이중적 이미지의 공존으로 인해 이런 영상에서 보이는 갭모에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느낌의 혼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유아인은 이렇게 사람마다 평가가 확연히 다른 연예인으로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이 오히려 흥미롭다고 밝혔다.
(2011년 <인스타일> 7월호) 배우로서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행동만 하지 않는 질문에 대해서는, “최대한 나인 채로” 사랑받고 싶고,(2013년 10월 ‘아이즈’ 인터뷰) 칭찬과 욕을 동시에 들어도 흥미로운 배우, 재미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2013년 10월 ‘텐아시아’ 인터뷰) 또한 사람들의 호오가 나뉠 지라도 “나 스스로를 드러내고 지키고 싶다.
그러면서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모델이 되고 싶다”면서 계속 표현할 것이라 했다.
(2018년 11월 ‘스타뉴스’ 인터뷰)저에게 ‘지 마음대로 하는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중략) 제가 인간적인 모습에 있어서도 거침없는 이미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중략) 누가 봐도 다 해석이 다르고, 정답이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심판대에 올라가는 직업이지만 심판되기 싫었고, 어디에도 규정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을 갖고 살았어요. ‘어디까지 갈까, 어떤 연기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은 욕망이 강박으로 변하고 거기에 혼란스러움이 더해져서 지금의 제가 된 것 같아요.2015년 9월 30일 ‘스포츠경향’ 인터뷰어떤 식의 대중적인 평가를 받는지도 알고 있고, 굉장히 호불호가 나뉘는 배우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어떨 때 사람들이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혼란스러워 하고 어떨 때 박수치고 어떨 때 야유를 보내는지 알고 있어요. (중략) 제가 하는 모든 행동들, 모든 말들이 ‘나를 예뻐해주세요’는 아니에요. 알면서도 모난 내 구석을 드러낼 때도 있고 조금 오그라들고 느끼할 거 알면서도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해볼 때도 있고. 그런 게 재밌지 않아요?2016년 2월 16일 네이버 V무비채널 ‘배우를 만나다’ 인터뷰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그동안 배우로서의 행보가 쉬운 길을 놔두고 먼 길로 돌아간다고 자주 설명되곤 한다.
본인 말대로 널뛰기하고 싶어하는 배우이며 하나의 장르에 갇히고 싶지 않은 것을 목표로 잡았기 때문인 듯하다.
연기를 지칭한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비단길 아니라고 투정부리지 않고 험한 길 내 발로 잘 걷고 있나 반성한다”고 표현한 적도 있다.
2013년 인터뷰에서는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굉장히 애쓰고 노력하면서 고통과 싸워왔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 그런 내 자신으로 비춰지고 이해받고 사랑받는 게 너무 행복하다.
오해도 많다.
내비춘다는 것은 동시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거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스로 “잘 하든 못 하든, 모습이 말쑥하든 울퉁불퉁하든 다른 재미를 주고 싶다.
참 흥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 주고 싶었다”고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모습들로 인해 대중들로부터 배우 유아인에 대한 여러 이미지가 덧입혀져 왔다.
이는 배우가 가진 특유의 개성이자 매력이나, 자칫 대중들이 유아인의 취향과 본질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럼에도 여러 작품들을 통해 유아인이 대중과의 친밀도가 높아진 것은 고무적이다.
배우 김윤석이 “아인이는 더디게 발을 내딛을지언정 엘리베이터를 안 탈 것 같아요”라고 말한 것처럼, 유아인 특유의 영역과 대중성이 더딜지라도 함께 확장하여 본인의 목표처럼 대중에게 혼란을 주면서 흥미로운 배우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유아인은 2011년 <더블유>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쉽고 빠르게 변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며 사람들에게 “유아인이라는 배우는 대수로울 게 없는 아주 사소한 흥밋거리”일 수도 있다고 말한 적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재미있는 걸 꺼내 보이며, 한두 작품이 아닌 큰 그림 안에서 ‘쟤는 뭐지’ 하는 느낌을 주고 싶다.
뭔지 알 수 없는 게 내 이미지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2016년에는 배우로서 “선입견을 만들고 깨부수는 과정의 반복”에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로서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스스로 만들고 다시 깨는 과정을 통해 “세상의 시선을 기꺼이 받으며” 세상 한복판에 살아갈 것이라 언급한 적도 있다.
따라서 ‘유아인’은 한 개인이라기 보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빚어내는 인물이라고 말하면서, “나같은 배우도 있어야 세상이 재미있지 않을까요?”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2018년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는, 즉각적인 사랑과 주목을 받는 것 보다 사람들이 관심있어 하는 대상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부분이 되는 것이 배우로서 의지이고 목표라고 말했다.

 

6.2. 연기와 예술에 대한 유아인의 생각들

 

  • 배우란 “불덩이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라 표현하면서 “어떤 작품 안에서도 그것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다. 늘 잔여물 때문에 속상해한다. 배우의 에너지라는 게 빠졌다 채우는 충전지 같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2016년 2월 GV에서는 작품에서 어떤 장면을 가장 다시 찍고 싶냐는 질문에, 연기를 하면 매순간 후회되고 모든 씬을 다시 찍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 본인 내면의 다양한 성분들을 수면 아래 두었다가 재조합하여 수면 위로 꺼내는 것이 연기 방식이라고 한다. 이러한 성분을 갈무리해 작품과 역할에 부합하는 독자적 인물로 조합한다고. 2016년 <홍콩 엘르맨> 5월호 인터뷰에 따르면, 본인에게 연기는 컨트롤 스위치나 피아노 건반 같은 것이라고 한다. 불빛은 본래 존재하지만 스위치를 누르면 들어오고, 건반 역시 눌러야 그에 맞는 소리를 내는 것이 본인의 연기 방식과 닮았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자신 안에 이미 모든 감정과 해석들이 정리되어 있고, “필요할 때 절절히 끄집어낸다”는 것이다.
  • 청춘 배우이자 반항적인 이미지를 지닌 배우로서 10대와 20대의 편에 서서 항상 기성세대에 맞서는 것을 좋아했다가, 점점 부모세대와 화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기성세대와 후세대를 동시에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배우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고, 배우로서 가치 있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단순히 작품이나 배역에 대한 공감을 넘어서서 어떻게 하면 작품, 배역 그 이상의 확장적인 이야기, 확장적인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면서 “‘유아인’이란 캐릭터를 의미 있게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지켜가는 것이 제 바람”이라고 전했다.
  • 배우 활동 외에도 아티스트 그룹에서 다양한 예술 콘텐츠를 기획하는데, 이러한 기획 활동은 “창조적인 아이디어들이 조화롭게 되는 상태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연기와 이런 예술 기획 일의 성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그 일들이 연기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주기도 한다. 다른 시각에서의 예술적 견해, 유아인이란 인물을 가져가고 만들어주는 것에 대한 큰 동력이 되는 것 같다. 내 타이틀만 달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지양하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경영자의 역할보다는 조금 다양하고 창조적인 일들과 호흡을 주고 받으며 시너지를 발생시키는 일을 하려한다.”
  • 배우로서 대중들을 향해 표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음과 같이 말했다.내가 하는 배우라는 일은 ‘멋있는 척’ 하는 일이 아니다. 나도 과거에는 더 유명해지고 싶고 더 인기를 갖고 싶고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연기라는 본질에 충실하고 싶다. 스스로도 만족하고, 대중에게도 만족을 줄 수 있게 말이다. 내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잘못하는 순간도 있겠지만 충분히 반성하고 느끼며 살아가도록 하겠다. 거기에 자연스럽게 따라갈 생각이다. 나는 배우로서 계속 인물을 창조할 것이고, 내가 해석한 세상을 표현할 것이다. 그 일이 재미있다.2016년 3월 23일 기자 간담회 중에서
  • 배우로 가장 잘 알려져 있기에 일각에서는 그가 하는 연기 외 활동을 외도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유아인은 연기든 글이든 그림이든 “직접 포착하고 해석한 것들을 제 방식으로 재창조하고 표현”하는 것이므로 “다양한 수단과 과정을 통해서 창조에 이바지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연기도 그 중 하나라고 말했다.
  • 스스로를 ‘퍼포머’라고 지칭한다. 그러면서 “배우 영역을 확장해가며 어떤 표현의 양식들을 사용해 대중과 호흡하고 의미 있는 순간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창조적인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런 점에 있어서 “좀 더 재밌고 유의미하고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 2019년 한 서면 인터뷰에서 10년 후에는 어떤 평가를 바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 존재는 내 행위에 고스란히 담길 수 있을까, 이 인터뷰는 제대로 번역되고 쓰일 수 있을까, 내 의도가 오독되지 않고 전달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이 곳은 10년을 성실하게 살아도 10년째 하루의 실수나 가짜뉴스 하나로 이미지가 추락하고 지난 10년을 부정당하는 그런 세계가 아닌가. 행위의 파장이 세상에 적용되고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 2019년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배우라는 직업은 최고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아무것도 안 될 수도 있다. 배우로 살다보니 주변에 일어나는 현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인간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내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습관이다. 내 직업적 소명의식이다.2019년 11월 30일 ‘헤럴드경제’ 인터뷰

 

7. 함께 작업한 사람들이 말하는 유아인

 

  • 민규동 감독
  • 배우 김재욱
  • 이한 감독
  • 배우 김윤석
  • 지상은 스타일리스트
  • 백종헌 씨네21 사진작가
  • 배우 이시언
  • 배우 김희애
  • 안판석 PD
  • 김소형 피아니스트
  • 류승완 감독
  • 이준익 감독
  • 배우 송강호
  • 배우 신세경
  • 김영현 작가
  • 차혜영 스튜디오 콘크리트 공동대표
  • 배우 전종서
  • 이창동 감독
  • 배우 김혜수
  • 화가 권철화
  • 경기민요 명창 이희문
  • 방송작가 문인희
  • 배우 유재명
  • 영화 제작자 김형옥
  • 홍의정 감독
  • 배우 김현주

 

내용이 도움이 되셨으면 공감 버튼 꼬옥 눌러주세요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