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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핫한 한반도에 대해 대한 모든 것 (지도,면적,호랑이,일러스트)

by Nomangs 2023.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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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한반도
조선반도 | 韓半島 | Korean peninsula
대륙
인문
동아시아 - 동북아시아
지질
유라시아 (혹은 아프로-유라시아)
위치
동북아시아 중앙

1. 개요

 

한반도는 동아시아에 위치한 반도이다.
대한민국과 대만을 제외한 한자문화권에서는 조선반도(朝鮮半島)로도 부른다.
백두대간을 따라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동고서저의 경동성 지형을 띠며, 북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이 있어 중국 대륙과 나뉘어진다.
오늘날에는 휴전선을 기준으로 대한민국과 북한 두 나라가 위치하고 있다.
다.

 

2. 특징

 

한반도 이미지 위성사진 한반도 이미지 지형도
한반도의 위성 사진과 지형도

 

3. 경계

 

식생이나 환경을 기준으로 청천강~영흥만(함흥만) 이남만을 '반도'라 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으며, 지질학적으로는 추가령 구조곡을 경계로 나뉘기도 한다.
그러나 인문학적 국경선을 반영한 반도의 경계는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으로, 인문학적 한반도의 경계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분명한 것은 고려 중기의 북쪽 경계선(압록강~도련포)이 현재까지 내려왔다면 당시 현행 교과서 기준으로는 고려 영토가 아니지만, 현재 북한이 실효지배중인 함경도(동북면)의 땅을 한반도라 칭하지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남북국시대 (신라)의 국경이 이어져 내려왔다면 한반도는 그 이남이었을 테고, 거꾸로 경계선이 더 북상해 요동이 지금까지 한민족 국가의 영토였다면 요동반도가 한반도의 부속 반도로 인식되었을 여지도 있다.
조선 초 세종대왕 때에도 북방 방비의 어려움을 들어 '마천령 산맥을 국경으로 삼자.'는 건의가 있었는데 세종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나, 이게 인정됐더라면 함경북도 땅은 반도가 아니라 대륙에 속한 지역으로 간주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보면 반도의 '면적'을 어떤 기준에 근거해서 구해야 할지도 생각할 문제. 두만강의 상류 문제에서 불거진 백두산 분할 문제에서 보듯이, 사실 한반도의 경계는 모호하다.
다만 이 강들이 제법 유량과 너비가 상당하고, 산맥들을 가르니 지금의 한반도 경계 자체가 아예 지도 상으로 답도 안 나오는데 억지로 나눈 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문제는 다른 반도나 지리학적 개념에도 흔히 적용되는 문제라서 특별한 것은 아니다.
발칸 반도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경계가 대부분 국경선을 따라서 확정된 것이나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터키가 주장하는 아나톨리아의 경계 등 지리학적으로는 약간 오차가 있어도 국경선 또는 행정구역의 경계를 따라서 지형의 경계가 확정되는 건 흔한 일이다.
예외라면 자국 영토의 대륙부분 전부를 이탈리아 반도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루비콘 강 이남 부분만을 이탈리아 반도로 정의하는 이탈리아 정도인데, 이것도 직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반도의 경계인 제노바-베네치아선을 따르지 않고 로마 공화국 시대 '본토 이탈리아'의 경계선을 상당부분 따르고 있다.
그러나 한국 헌법대로 하면 이게 순환논리가 된다.
헌법대로 하면 '한반도나 부속도서에 속하면 대한민국 땅임', '한반도에도 부속도서에도 속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땅이 아님'임을 알 수 있는데, 한반도의 기준을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잡은 이유가 바로 대한민국이 거기까지를 영토라고 주장하며 벗어나면 영토로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므로. 압록강과 두만강은 이어져 있지 않으므로 그 사이의 경계는 더욱 모호하며, 실제 대한민국의 명목상 영토 중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실질 영토도 포함된다.

 

4. 극점

 

 
최북단
함북 온성군
남양면 풍서동
 
최서단
평북 용천군
용암포읍 신흥동 하촌
정중앙
강원 회양군
난곡면 현리
최동단
함북 경흥군
노서면 토리동
 
최남단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땅끝마을)
 

 

5. 자연지리

 

산(山)이 많다.
그래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 손 꼽을 정도로 적다.
백두산과 그 인근의 산지에서 개마고원을 거쳐 태백산맥에 이르는 긴 능선이 동쪽을 따라 남쪽 해안까지 이어진다.
이 때문에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이른바 '동고서저' 지형을 이룬다.
평지가 비교적 드물고 산지가 흔하다는 인식이 오래 전부터 있었고, 현대에도 산림청 기준에 따라 한반도는 산지가 64%, 거의 7할에 달한다고 대중에게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2013년의 논문에 따르면 지형학적 기준에서 따지면 한반도 전체에서는 실제 산지가 42% 정도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출처는 대한지리학회지 제48권(2013) 1호, pp.1-18, <<지형학적 산지의 분포와 공간적 특성에 관한 연구>>(탁한명 등 3인)에서 나온 것인데 이 논문에 따르면, 남한에서는 산지가 31%, 북한에서는 51%이다.
즉, 실제로는 한국인들 대다수의 인식과는 달리 대략적으로는 한반도의 절반 이하만이, 한반도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한 지역에서는 불과 전 국토의 1/3 지역만 산지인 셈이다.
이런 변화는 한반도의 산지들이 생성된 지 오래된, 평지나 구릉지에 가까운 산지가 많아서 그렇다.
이런 지형 때문에 한반도의 주요 강은 동쪽 산지에서 발원하여 서해안을 향해 흐른다.
이러한 대표적 수계로는 북쪽으로부터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한강, 금강, 영산강이 있다. 남북으로 긴 반도 특성상 남해로 흐르는 강은 비교적 적으나 섬진강과 낙동강이 백두대간 줄기 남단을 따라 흐르는 물을 모아 남동부 수계를 이룬다.
요 하천들은 동쪽에서 꾸준히 깎은 퇴적물을 주기적으로 범람시켜 서해 및 남부에 평지를 가꾸어왔으며, 주요 도시들은 이 영향으로 동쪽 산맥으로부터 방사상 형태로 자리잡았다.
국립해양조사원이 제작한 한반도의 해류모식도.오늘날 지구의 해수면이 높기 때문에 비록 황해는 바다를 이루지만, 사실 황해는 큰 대륙붕의 일부이며 지질학적으로는 대륙의 일부이다.
지질학적 측면에서 중국과 한반도는 한 덩어리 대륙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동해는 그 특성이 무척 다르다.
천만 년에 걸쳐 일본이 동쪽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지각이 벌어지고 이에 따라 수심이 무척 깊은 바다, 즉 동해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동해는 해안으로부터 아주 가까운 거리에 대륙 사면이 놓여 있다.
이 때문에 동해와 서해, 나아가 동해안과 서해안은 서로 이질적인 특성을 갖는다.
한반도의 모양만 보아도 이 특성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반도 동쪽은 강한 단층 활동으로 해안선이 단조로운 반면, 서쪽 해안선은 과거 대륙의 일부였던 만큼 해침하면서 선이 복잡하다.
동쪽은 깊은 수심으로, 비록 대양으로 열려 있지는 않지만 제법 높은 파도, 복잡하면서도 지속적인 해류를 가진 반면, 서해는 얕은 수심과 서쪽 대륙에서 유입되는 다량의 퇴적물로 정적이고 혼탁한 것이 큰 차이다.
서해안은 그런 요소로 인해 조간대, 즉 갯벌이 잘 발달해 있다.
한반도의 서해, 남해는 대륙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빙하기에는 종종 중생대 때처럼 일본, 대만과 이어졌었다.
그 당시에는 황해는 육지였고, 남쪽으로는 일본이 대마도 방면 등에서 한반도와 이었고 북쪽으로는 홋카이도-사할린이 아프로-유라시아 대륙과 이어져있었다.
즉, 동해는 호수였다.

 

5.1. 지질

 

한반도 고생대 지층 분포 한반도 신생대 지층 분포
한반도의 고생대 지층.
한반도의 신생대 지층.

 

5.2. 동고서저와 서남다도

 

한반도의 지세는 '동고서저(東高西低)'와 '서남다도(西南多島)'로 요약할 수 있다.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으며, 서남쪽에 섬이 많다는 의미다.
이에 한반도의 서남해안은 다도해(多島海)라고 불린다.
동고서저인 이유는 신생대 제3기에 있었던 비대칭 요곡 운동(경동성 요곡 운동) 때문이며, 서남다도인 이유는 황해와 동중국해 일대가 빙하기에 육지였다가 해수면 상승으로 만들어진 리아스식 해안이기 때문이다.
동해는 빙하기에도 거대한 호수 지역이었으며, 간빙기 이전에 이미 바다와 연결되었다.
때문에 삼면의 바다가 가운데서도 유독 서해안과 남해안 쪽에 크고 작은 섬들이 많고, 동해안은 울릉도와 독도 등의 일부를 제외하면 섬이 매우 적다.

 

5.3. 기후

 

  • 시기별 강수량의 편차가 심하고, 이에 따라 하상계수도 매우 크다. 1년 강수량의 50~60% 이상이 여름에 집중되는 반면 겨울에는 강수량이 매우 적고, 이 때문에 하상계수도 따라서 커지는 것. 한강이나 낙동강 등의 경우 하상계수가 최소 100:1에 달하는데 그나마 이것도 홍수조절용 댐 건설과 같은 치수 사업을 통해 줄인 게 이 정도다. 이보다 하상계수가 더 큰 사례는 중동의 와디 정도밖에 없다. 따라서 하천을 이용한 수상교통을 이용하기 힘들다. 사실 중국보다는 덜 극단적이라 그렇지, 여름을 뺀 나머지 3계절은 거의 비가 안 오는 건기란 소리다. 실제로도 서울의 겨울 강수량은 3달 합해서 68 mm에 불과하며, 이는 사막 국가인 카타르의 1년치(71 mm)와 비슷한 수준이다. 치수(治水) 시설이 열악한 북한의 경우 매 겨울마다 물 부족에 시달린다. 대한민국에서도 제한급수가 가장 잦은 계절은 겨울이다. 기온을 제외하고 보면 사바나기후와 유사한데 실제로도 빙하기 시대 한반도는 완전한 사바나기후였다고 본다.
  • 기온의 평균 연교차가 매우 크다. 중부지방의 경우 월별 연교차가 섭씨 27~28도 이상을 넘나드며, 북부지방으로 갈수록 이 연교차는 더욱 커진다. 개마고원과 같은 북부 산악지역의 연교차는 시베리아에 맞먹는다. 특히 일별 연교차는 심한 한파와 폭염이 모두 있었던 2018년의 경우 남한은 69°C였으며 아예 한반도의 연교차는 무려 81.1 ℃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태백시같은 일부 고원지대를 제외하면 냉대기후라도 부채, 선풍기, 에어컨 같은 냉방도구가 꼭 필요하다. 큰 연교차는 만주나 요동 지역도 공유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 반면 일조량은 매우 균등한 편이다. 오히려 타 북반구와 달리 강수가 집중되는 여름에 일조시간이 매우 짧고, 봄과 가을에 일조시간이 길어 남반구가 연상되는 수준이다. 일례로 서울의 1월 일조시간은 같은 시기에 여름이 되는 멜버른의 일조시간과 같다. 그래서 한국은 중~고위도의 다른 지역들과 달리 여름 장마철에 비교적 시원해지고 자외선 피폭량도 다소 줄어들긴 하지만 우울증 위험이 높아진다.
  • 그 중에서 강화군 이남에서 영광군 이북에 이르는 경기도, 충청남도, 충청북도, 전라북도, 강원도, 경상북도 지역은 쾨펜의 기후 구분을 다양하게 경험하게 되고, 냉대동계건조기후의 특징인 한파, 냉대 습윤 기후의 특징인 대설과, 온대하우기후의 특징인 폭염과 온난 습윤 기후의 특징인 집중호우가 매번 온다.

 

5.4. 자연재해

 

한반도는 심심하면 화산과 지진이 발생하는 주변국에 비하면 지진이나 쓰나미, 화산 분화 등 지질학적인 자연재해는 드문 편이다.
주요 재난 구역인 환태평양 조산대에서 조금 떨어져 있으며, 형성된 지 굉장히 오래되어 나름 안정된 지각이기 때문이다.
단, 이 지구상에 안심할 수 있는 데는 없다.
최근만 해도 2016년 경주 지진과 2017년 포항 지진이 발생한 바 있다.
또한, 백두산과 한라산이 활화산이므로, 항시 주의가 필요하기는 하다.
반면 강수량의 60~80%가 여름에 집중되는 특성상, 기상학적 자연재해는 해마다 일상인 수준. 매 여름~초가을마다 장마와 태풍으로 인한 집중호우때문에, 반대로 겨울과 봄에는 가뭄과 황사, 산불이 큰 피해를 준다.
다만 지질학적 자연재해에 비하면 그렇다는 것이지 기상학적 자연재해도 중국, 일본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아무래도 평야는 좁고 산지만 널려있는 한반도 특성상 슈퍼셀 속 메조사이클론이 제대로 발달할 수 없다보니 용오름도 아무리 세봐야 겨우 EF1 정도 선에서 턱걸이 할 수준이다.
한편 완연한 가을인 10~11월에는 기온도 내려갔지만 심하게 내려가지 않고 강수량도 적은편이라 폭설, 한파, 폭염, 태풍, 호우 피해도 적으며 게다가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가뭄, 황사피해도 없어 비교적 재해에 안전한 달이다.

 

5.5. 생태계

 

다양한 기후의 분포 및 변화, 그리고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서 면적에 비해 다양한 생물종이 분포하는데 현재 파악된 종은 5만 2628종이다.
특히 기후와 지형을 살펴보면 동남아의 혹서에 가까운 여름과 러시아 시베리아의 혹한의 겨울이 교차하는 극한의 기후대와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어 있는 동고서저 지형으로 인해 동부와 북부는 고산지대 서부와 남부는 저지대에 대부분 큰강을 끼고 있으며 리아스식 해안이 대부분으로 인해 다도해가 형성되어 있어서 여러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들었고 다른 나라에서도 생존 할 수 있게 만들었을 정도이다.
그러한 이유로 한반도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고유종은 적고 생물다양성은 낮은 편이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열대지방에 한정한 것이며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생물다양성은 비교적 높은 편이고, 개체수나 밀도가 적거나 분포도가 좁은 종들이 서식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고라니, 아무르표범, 가창오리, 무당개구리, 굴등이 이 사례에 속한다.
포유류는 인위적인 영향에 따른 개체수의 변화가 매우 크다.
특히 휴전선 이남의 대한민국 영토에선 더욱 그러한데 시베리아호랑이, 우수리불곰, 반달곰, 몽골늑대, 승냥이, 스라소니, 아무르표범 등 대형 육식 포유류는 이미 일제강점기를 전후해서 절멸했다.
담비, 삵, 수달, 족제비, 너구리, 오소리, 여우등 소형 육식 포유류 역시 개체수가 크게 줄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실정이었지만 지금은 개체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는 서식지의 파괴 뿐만 아니라, 사람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동물들을 포획, 살상한 사례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라니, 멧돼지, 노루와 같은 일부 발굽동물들은 천적이 사실상 없어져서 개체수가 크게 늘어났지만 꽃사슴이나 사향노루, 산양의 경우 수가 줄어든 편이다.
반면 (다람쥐나 청설모, 들쥐류, 멧토끼 등) 설치류는 소형 육식포유류가 늘면서 감소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실정이다.
조류의 경우 522종인데 그중 90% 이상이 철새, 나머지가 텃새이다.
주로 도시에 가면 볼 수 있는 텃새 종류는 참새나 박새, 오목눈이 등 소형조류인데 까치, 까마귀가 그 다음 우점종이다.
물까치나 어치, 꿩이나 메추라기도 산에 가면 볼 수 있다.
바닷가에 위치한 항구에서는 괭이갈매기가 우점종으로 서식한다.
오리류는 텃새인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가 많지만 대부분은 겨울철새이다.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해 백로나 왜가리, 해오라기가 하천에서 텃새로 정착하고 있다.
여름철새로는 제비나 꾀꼬리 등이 있는데, 최근에는 군함조나 쇠물닭등 일부 열대 새들이 한반도로 오고 있는 실정이다.
겨울철새로는 가창오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전세계 가창오리의 90%가 한반도에 도래할 정도이나 나머지 두루미등 일부 조류는 희소한 상태이다.
맹금류는 대부분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소형종인 새매나 말똥가리, 청소부인 독수리의 경우수가 안정적인 상황이다.
파충류는 32종이며 도마뱀이나 뱀, 거북류이다.
이 중 독사는 바다뱀 4종에 살모사 3종, 유혈목이 정도인데 열대지방 독사에 비하면 덜 위험한 편이다.
양서류는 21종인데 독이 있는 양서류는 두꺼비나 무당개구리등 몇 종 안 되는 편이다.
또한 양서류 특성상 행동반경이 좁은 탓에 고유종도 많은데 주로 이끼도롱뇽이나 제주도롱뇽, 고리도롱뇽 등 도롱뇽류가 많으며 개구리류 중에서는 금개구리나 수원청개구리등도 존재한다.
담수 어류의 경우 212종으로 특히 하천이나 저수지등에서 흔하게 사는 종은 붕어나 잉어등 잉어목의 어종, 가물치나 메기, 미꾸라지등 3급수에서도 사는 어종 등이 많다.
고유어종이 학술적으로는 생태학, 지리학 등에 꽤나 연구 가치가 있는 편인데, 민물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에 동물 중에서 행동 반경이 가장 좁기 때문이다.
민물고기는 강의 지류에서 이동하는 정도밖에 할 수 없다.
이런 지엽적인 서식 환경을 생태학이나 지리학 연구에 이용한다.
한반도 고유종은 총 61종이며 이중 5종은 북한에만 서식하는 종이다.
한반도 고유종에는 잉어과가 33종, 미꾸리과가 13종으로 이들이 전체의 75%를 차지한다.
곤충류는 딱정벌레목 3538종, 나비목 3166종, 벌목 2149종, 노린재목 1869종, 파리목 1594종, 날도래목 202종, 메뚜기목 161종, 잠자리목 107종, 하루살이목 80종 정도이다.
그중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종은 장수말벌 등 말벌이나 농작물을 먹어치우는 메뚜기목 곤충류 정도일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장수하늘소나 상제나비 등 북방계 곤충들은 입지가 좁아지고 꽃매미 등 남방계 곤충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실정이다.
한번 걸리면 아예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주혈흡충(Schistosoma)은 일본, 중국을 포함하여 전세계에 상당히 분포해 있지만 다행히도 한반도에는 안산다.
이유는 중간 숙주가 한국에 없기 때문이다.

 

6. 인문지리

 

 

6.1. 인구

 

지역
총 인구
남성
여성
대한민국
51,459,626
25,649,509
25,810,117
북한
25,598,000
12,524,000
13,074,000
합계
77,057,626
38,173,509
38,884,117

 

6.2. 지정학적 가치

 

북쪽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이 있고 강폭이 좁은 곳을 개마고원이 막고 있으며 한반도 내에는 청천강, 대동강, 임진강, 한강 같은 넓은 강들이 줄줄이 있고 이 강들이 좁은 곳은 백두대간이 막고 있기에 근대 이전까지는 강이 얼어붙는 겨울이 아니면 공격하기 어려웠다.
영향력이 전세계적이라 해당 관련국들이 목숨걸고 사수하는 지브롤터 해협, 말라카 해협,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 바브엘만데브 해협, 호르무즈 해협, 보스포루스 해협등과 비교했을 때 중요성이 덜하지만 적어도 동아시아 대륙에서는 태평양으로 뻗어나가고, 동시에 태평양에서 동아시아 대륙으로 확장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최고의 거점이다.
한반도의 분수계 형세. 백두대간이 천혜의 방벽 역할을 한다.
한반도에 있던 국가들은 지리적 조건을 활용하면서 대륙에 위치한 중원 국가 및 만주의 국가들과 외교전을 벌여왔으며, 해양 국가인 일본과도 외교 관계를 맺어 왔다.
한반도 지리를 보면 수-당의 대군이나 북방 유목민들이 고전한 이유와 일본이 임진왜란 때 경남 지역에 필사적으로 왜성을 구축한 이유, 이순신의 보급로 차단이 가져온 전략적 성과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이 오랜 전란을 끝내고 강력한 통일국가로 변모할 경우, 가장 먼저 밖으로 눈을 돌리는 곳이 바로 한반도였다.
한나라, 수·당제국은 통일 후 바로 한반도로 눈을 돌렸고, 거란, 몽골, 후금은 중원을 공략하기 전에 후방 안정화를 위해 한반도를 공략했다.
.만 위에서 서술된 수많은 침략사례들의 결말에도 나오듯 한반도의 지리가 천혜의 요새나 다름없었기에 한반도를 점령하는데 성공한 세력보다 털리고 간 세력이 훨씬 많았고, 외세에 완전히 정벌당해서 약탈된 건 131년 정도이다.
수나라, 거란은 실제로 탈탈 털려서 멸망 또는 하락세에 접어들었고, 당나라와 몽골은 몇십년간 고생하다가 겨우 눌러놓고 조용히 시키는데 성공했으나 그나마도 당은 백제와 고구려를 먹고 신라마저 집어먹으려다 오히려 크게 패배해서 한반도에서 쫒겨나서 발해의 건국을 막지 못했고 몽골 또한 고려를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고 부마국으로 삼는데에 그쳤다.
또한 16세기 일본 또한 조선이 명의 도움을 받긴 했으나 결국에는 패전 후 돌아갔다.
점령에 성공한 경우는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설치한 한나라, 고려 왕조를 굴복시키고 한반도를 간접적으로 지배했던 몽골제국, 35년간 한반도를 강점한 일본제국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나라와 일본제국이 마냥 쉽게 먹은 것까지는 아니기는 하지만 말이다.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중간지인 한반도.이렇게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통일을 한 후, 해양세력은 대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북방세력은 중원공략 전 후방안정화를 위해 틈만 나면 한반도를 공략했다.
또한 근, 현대에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그리고 미국, UN과 중국이 참전한 6.25 전쟁 등 1900~2000년도까지 국제급 전쟁이 한반도 인근에서 수차례 터졌다는 것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예일 것이다.
하지만 19세기~20세기까지 해양국가인 일본의 국력이 대륙국가인 중국의 국력을 앞섰기에 해양국가와 대륙국가의 길목이라는 의미가 커졌던 것이지 근대 이전에는 섬이라는 고립된 위치는 일본이 문물을 수용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주었고 발전의 속도가 한반도에 비해 현저히 늦었다.
이로 인해 국력이 한반도의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낮았기 때문에 일본이 백제의 요청으로 군사를 보내거나 왜구들이 약탈하는 것을 제외하면 일본이 공식적으로 한반도를 침략한 것은 임진왜란이 근대 이전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임진왜란도 명나라가 희대의 암군인 만력제의 시대였고 조선도 선조 시기인데 일본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군사력이 최고조였고 조명 연합군의 지휘권을 가진 명나라군이 전투에 적극적이기 보다는 협상으로 전쟁을 끝내려 했고 일본도 초기의 대륙 진출보다는 삼남 지방 지배로 목표를 수정했기에 조명연합군과의 전쟁에서 7년을 끌 수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지정학적 의미가 근대 이전에도 작진 않았다.
대륙의 패권교체기에 북방유목민족이 중원을 칠때 후방에서 가장 위협적인 세력이 한반도 세력인 고려와 조선이었다.
그래서 북방 유목민족들은 중원을 치기 전에 꼭 한반도를 공격했고 한반도 공략에 실패한 세력은 결국 중원 전체를 손에 넣지 못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주변에 러시아, 중국, 일본이라는 강대국 3국이 자리잡았고, 보너스로 동해와 태평양을 통해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도 동맹을 맺는 골때리는 상황이 펼쳐졌다.
일본 측에선 원나라의 일본원정 등을 사례로 들어 한반도가 일본을 공격하기 좋은 위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오카쿠라 카쿠조(岡倉覚三)는 한반도에 대하여 '일본의 심장을 겨누는 단검'이라며 교두보로서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Okakura 1905: 280) 물론 러일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한 말이라고 하며 저런 주장 자체는 정한론을 펴는 자들이 한일병합을 밀어붙히는 근거로 써먹었다.
한편 지금은 예전과 의미가 조금 달라졌지만 러시아의 경우 한반도를 얻을 수 있다면 극동함대가 부동항을 얻을 수 있다.
중국의 경우 한반도를 장악할 수 있다면 동해와 서해를 내해로 쓸 수 있어서 미국 중심의 태평양 주도권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뿐더러 대표적 친미 국가이자 태평양 일대 군사력 구도에서 미국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사실상의 불침항모를 얻는다.
덤으로 대한민국 육군에 의한 위협도 크게 줄어드는 건 보너스. 반대로 한반도를 미국이 장악한다면 중국의 국가 역량 대다수가 집결된 동부 지역을 견제 및 타격할 수 있는 불침항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은 물론이요, 한반도를 배제할 경우 동부 연안 상륙 혹은 인도 및 동남아 국가와의 연계를 꾀할 수밖에 없는 중국 본토 공략에서 대륙에 다리를 놓는 결정적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
괜히 중국 측에서 대한민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을 지원하고 '미국 없었으면 진작에 손 봐줬을 나라'라며 거품을 무는 것이 아니다.
거기다 미국의 입장에선 보너스로 러시아까지 동시에 견제할 수 있고 중국과 러시아 이 둘을 육군을 통해서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잃으면 정말 뼈아픈 곳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처음부터 땅 밟고 가는 것과 공중전과 해전을 동시에 수행해서 생기는 틈 사이로 상륙을 해 교두보를 차지하는 것과 비교하면 난이도에서부터 차원이 다르다.
실제로 전쟁에서 공격자가 방어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불리한 형태의 작전 중 하나가 상륙작전이다.
다만, 이 복잡한 지정학적 조건이 꼭 나쁜 것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좋든 싫든 미중일러같은 세계적인 강대국들이 관심을 갖는 지역에 있기 때문에, 선진 문물을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는 한반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역사에 흐름에 아예 뒤쳐져 버려지지는 않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고대부터 중세까지는 중국으로부터 선진 문물을 잘 흡수했고, 근대와 현대에는 남한의 경우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최신 공업 기술과 자유민주주의를 습득해 선진국으로 부상했다.
실패 국가라 불리는 북한조차도 러시아나 중국으로부터 핵무기 제작 기술이나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고 특히 과거 중소 간 등거리 외교로 국체를 보전하기 쉬웠으니 지정학적으로 오직 저주만 받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자리잡은 국가들은 충분히 자기 입장을 내세울 수준의 지역강국은 될 수 있었으며, 땅덩어리의 크기를 감안하면 이는 지정학적으로 훌륭한 위치에 자리잡았단 증거로 볼 수 있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절묘하게 놓여있으면서 러시아 극동지역까지 커버할 수 있는 위치이다보니, 현대에 들어서는 대규모 인터넷망, 데이터센터, 철도, 항구, 공항 같은 정보통신과 교통 및 물류운반 시설들을 짓기 매우 좋으며, 경제적으로도 이러한 지정학적 조건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대표적인 예시 게다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나 인구 밀집도를 자랑하는 한중일 3국의 수도인 베이징-서울-도쿄 벨트지역과, 인근의 항구도시로 중국 상하이, 중국 톈진, 부산, 인천, 일본 오사카, 일본 나고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홍콩, 마카오, 대만의 가오슝 항(高雄港)이 있으며, 이 모든 지역들이 한반도 중심부를 기준으로 반경 약 1000~1500 km 이내에 존재하므로 전부 다 합지면 대략 10~12억 남짓한 인구와 20조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전쟁이 나면 수많은 사상자와 함께 이 모든 인프라가 전부 박살나버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은 문제아인 북한을 억제하려고 군사력에 상당히 집중하고, 한반도 주변 국가들도 어떻게든 한반도에 전쟁을 안 나게 하려고 분쟁을 하더라도 외교전으로만 진행하고 군사적 충돌은 안 일으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심지어는 북한도 판문점 도끼사건과 9.11 테러 이후의 분노한 미국을 두고 북한이 한 행동에서 보이듯, 자기네들 때문에 진짜로 전쟁이 날 것 같으면 알아서 꼬리를 내릴 정도다.
다.

 

6.3. 지역 구분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의 지역 구분

 

6.3.1. 북부지방

 

전통적으로는 평안도, 함경도를 가리켰다.
대략 북위 39° 이북지역이며 대체로 냉대기후에 속한다.
대한민국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가 포함되며 북한이 지정한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평양, 라선시, 남포시, 평안남도, 평안북도, 자강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량강도가 포함된다.
그러나 남북 분단의 현실을 반영하여, 원래 중부지방에 속하는 황해도, 미수복 경기도, 미수복 강원도를 포함하는 휴전선 이북 전체를 북부지방으로 보는 경향도 강해졌다.
즉 북한 치하에 있는 미수복 영역을 모두 북부지방으로 보는 것이다.
문화라든가 기후 면에서 일제강점기에 '북선'과 '서선'으로 구분되듯 평안도 권역과 함경도 권역의 차이가 심하다.
공통점이라면 외부의 적에 용맹하게 대응한다는 이미지가 있었고, 양반과 노비가 모두 드물어 대체로 사람들끼리 신분이 평등했다는 것이다.
고조선부터 시작하여 백두산과 평양 때문에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고,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는 상업이 발전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의 잡지인 '별건곤'에서는 평안도의 '색향'에 대한 이미지와 함경도 여성의 장사를 잘하는 모습을 설명하기도 한다.
평안남도를 제외하면 평균적으로 키가 크기도 했다.
장준하, 백선엽, 주현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고 평안남도 출신이지만 야구감독 김응용도 있다.
그러나 음식의 경우 평안도는 싱거우나 함경도는 맵짠 음식도 많으며, 식생도 중부지방 느낌이 어느 정도 나는 평안도에 비해 함경도는 종비나무 같은 나무를 보면 이국적인 느낌이 난다.
사투리의 차이도 어휘와 억양 차가 심해 처음 듣는 사람도 구분이 가능해 흔한 북한말의 이미지는 평안도 말투고, 함경도 말투는 요즘으로 따지면 경상도에 비유되는 경우가 많다.
화법도 예절을 중시하고 거절을 바로 잘 못하는 평안도와 달리 함경도는 솔직함을 중시하고 직설적이다.
소련이 영향을 행사하기 전 해방 직후까지는 정치성향도 정반대여서 평안도는 우파가 득세하였고, 함경도는 좌파가 우세한 고장이었다.
참고로 황해도는 중립적이었다고 한다.
사실 이 두 지방만 떼고 보면 동서로 상당한 거리 차가 있어 평양과 라선의 거리가 평양과 전라남도 해남의 거리와 비슷할 정도다.
역사적으로 북부지방을 얘기할 땐 백두산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면 십중팔구 평안도 이야기다.
사실 역사의 초창기에는 평안도 일대는 남만주 지역과 더불어 한민족의 중심지였다.
고조선이 나타난 곳도 논란은 많지만, 현재는 대체로 랴오닝강~평양 사이를 중심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고구려 시기에는 역사 내내 중심을 차지하던 지역으로, 국내성조차 압록강을 마주보고 현재는 만포시, 강계시와 붙어있다.
농토가 풍부하고 여러 정치적 이유로 평양으로 수도를 이전, 이후 250여년간 수도의 지위를 유지도 했다.
특히 고구려의 경우 삼국 중에서도 압도적인 국력을 가진 한민족의 대표주자였기 때문에 고구려 후기 시대의 평안도는 진정 전성기였다.
그러나 고구려 이후 한국 역사에서는 최고 중심지 위치에서는 밀려나고 제2, 제3의 지역으로 바뀐다.
이는 요동의 상실로 인해 평안도가 대북방의 최전선이 되어버려 더 이상 한반도 정주 국가의 중심지로서 기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려시대에는 고구려의 수도라는 점에서 크게 중시되었고 제2의 수도 서경으로 대접받았으며, 조선시대에도 여기에 기자의 봉토라는 인식까지 이어져 평양은 조선 제2의 도시로 군림할 수 있었다.
평안북도 의주군도 국경에 위치했기 때문에 중국과의 교역지라는 이점을 살려 경제적으로는 굉장히 번성하기도 했다.
현대에도 일제강점기에 신의주시가 그 기능을 맡아 북한에서 평양에 비슷한 수준으로 잘 산다.
다만 다른 곳은 소위 '밀무역'을 비롯한 여러 유형의 무역을 차단하는 경우가 흔해서 북한 치하에서 국경도시가 고난의 행군 무렵을 제외하고는 신의주, 라선을 빼면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다만 정치적으로는 중부, 남부 지방과 달리 당파를 형성하지 못해 조선 중기 이후부터 구한말까지 중앙권력에서 소외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함경도는 역사의 중심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강원도에도 궁예의 태봉국 철원성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수도가 없었던 황해도도 고려시대에 수도권의 배후지 역할을 했고 고구려 제2의 수도인 한성이 있었으며 평양을 수도로 한 국가의 배후지이기도 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함경도의 입지가 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평안도가 발전하던 시기에도 정조가 함경도는 평안·황해도처럼 재화가 풍부한 것도 아니고 삼남 지방처럼 벼와 솜이 풍부하지도 않다며 위로할 정도였다.
심지어 북간도조차 발해시대 수도가 위치해 한때 크게 번영했었다.
그래도 한민족과 여진족의 성산인 백두산이 위치해있어 상징성 부분에서 의미가 있다.
근대에는 탈북민, 조선족, 고려인의 대부분의 고향이나 기원이 함경도이기에 주목받기도 한다.
2000년대까지는 실향민이 많은 평안도가 이 지역을 대표하여 북한 사람이 모두 '네다'라는 평안도 사투리만 쓰는 줄 알고 싱거운 음식만 먹는다는 등 오해가 있었으나 그 이후에는 탈북민, 조선족의 영향으로 'ㅁ까'라는 함경북도 사투리와 평안도 사투리가 섞인 묘사가 등장하는 등 다른 오해가 생기고 있다.
사실 함경북도는 '네다'를 안 쓰고, 평안도는 'ㅁ까'를 쓰지 않으니 구분을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함경도가 나오는 건 동예와 옥저와 말갈 언급할 때 정도며, 그 외 윤관의 동북 9성이나 세종대왕의 4군 6진 개척 때나 가끔씩 나오는 정도. 오히려 국어 교과에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들어 충청도 인구에 육박하게 되는 경제적 발전으로 이곳 출신 예술인이나 그 작품이 언급되는 정도다.
그 전에는 8도에서 가장 인구가 적었다.
삼수갑산 같은 극한의 오지에서도 해모수와 관련된 전설이 있기는 하고 나름 역사가 있긴 해도 분단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면도 있다.
이성계 가문이 함흥을 중심으로 세력을 길러 조선을 건국하긴 했지만 수도가 된 적은 없다.
게다가 태조의 출신지라는 위상도 얼마 안 있어 바닥을 뚫고 떨어져버리는데, 조선 초에 연달아 발생한 여러 반란들 때문에 함경도 전역이 반역향으로 찍혔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사건이 국경인의 난으로, 아예 왕자 두 명을 일본 장수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겼다는 이유로 조정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정약용도 이 사건을 들며 함경도에 대해 좋지 않은 서술을 남겼다.
평안도는 기자가 도읍한 곳이라고 하여 중화의 문명을 일찍이 받아들인 곳이라고 인식되었으나, 함경도는 여진의 유습이 남아있다는 인식도 있었다.
고려 때부터 이미 강동6주의 편입을 통해 4군 일대를 제외한 전역이 고유 영토로 인식된 평안도와 달리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지기 전에는 함경도 주민을 제외하면 조선의 영토는 맞으나 '고유' 영토라는 인식도 비교적 낮았고 여진으로부터 수복한 '점령지'라는 인식이 강했다.
또한 함경도의 전 주인인 여진족은 조선으로부터 야만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더욱 천대받기 일쑤였다.
이에 함경도 주민은 제대로 된 조선인임을 인정받기 위해 함경도가 조선 왕조의 중요한 근거지임을 알리려 하였고, 지역 반란이 있었다 해도 지역민들이 봉기하여 주모자들을 처단하였음을 부각시켰다.
이시애는 토호는 맞지만, 국경인의 난에서 국경인은 전라도 출신으로 유배되었으나 자신이 진압했다는 것이다.
또한 단군과 기자 이래 조선의 고유한 영역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변경지대라는 특성 때문에 고착된 무예에 능한 사람들이 주로 산다는 궁마지향이라는 관념을 극복하기 위해 지역마다 중앙의 주요 학자들과 학맥이 이어진 문학지사들이 있는 유교적으로 교화된 곳이라 강조하였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중국과 대항한 고구려·발해의 문화권과 연관된 백두산이 중시되는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영·정조 시기 조정이 함경도 지역의 왕실 유적을 현창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왕실과 관련된 비석 등을 세우도록 요청했다.
조선초 북부 지방 지명 중에는 대놓고 변방임을 드러내는 지명들도 보인다.
안변(安邊), 영원(寧遠), 삭주(朔州), 강계(江界) 등. 함경북도 지역은 조선 초 4군 6진 개척 등 여진족 정벌을 통해 얻은 영토이기에, 기존 여진식 지명을 조선식 지명으로 개칭하거나 아예 새로 지은 지명이 많다.
다만 현지에서는 여진족과의 관계는 한민족이 이들을 밀어냈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한국 배우 이순재는 두만강변 회령시에서 태어났는데 자기 조상이 6진을 개척했다고 믿는다.
일제강점기에도 나운규 등 문화적으로 유명한 사람도 있었다.
그래봤자 함경도는 애초에 명문가가 부재했고 평안도 역시 명문가가 이미 여말선초 이후로 홍건적의 난 같은 외침 등으로 초토화되어 거의 사라졌기에 조선 건국 무렵 평양 출신 조준까지만 영의정이 되고 그 후손은 능력이 없어 중앙 진출이 사실상 막혀 있었다.
조선 후기에 평안도 한정 과거 급제를 많이하나 예전부터 내려온 명문가가 없어 승진을 못하는 결과적 차별이 이어졌고, 이것에 대한 불만의 터진 예가 바로 홍경래의 난이다.
그 때문에 조선 왕조에 대한 적대감이 강했다.
다만 양반이 아닌 사람 끼리는 지역 구분 없이 어울리는 편이었다.
차별은 '상놈'이기에 받은 것이다.
애시당초에 평안도와 함경도 북부는 조선시대 들어 삼남 지방 출신이 개척한 곳이다.
죄다 북한에 있고 여기서 살았던 실향민도 거의 세상을 떠났으며, 북한도 실질적으로 전통을 중시하지 않아 정보가 부족해, 현재적 관점에서 지역차별을 언급하는 주장이 인터넷에 상당히 많다.
그러나 함석헌 같은 3.1운동을 기억하는 수준의 고령층 실향민 등의 발언이나 독립운동사, 일제강점기 이 지역 출신 인사 등의 행적으로 미루어 보면 단지 이 지역 출신은 신분이 천하다는 이유로 이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차별받은 것이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서로 동조하고 잘 어울렸다.
이런 모습은 가루지기 같은 작품이나 동학농민운동과 같은 움직임에도 호응하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홍경래의 난에서 자주 인용되던 정감록은 길한 곳으로 강원도나 그 남쪽의 지역을 언급한다.
실제 차별을 아는 사람인 함석헌의 증언은 이 글을 참조하자. "평안도 쌍놈이다 해서 차별대우하던 데에서도 임금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성을 향해서 며칠을 두고 통곡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러나 일반적으로 봐서 임금이 고맙다, 우리 임금이다 하는 그런 건 없었지요."라지만 여기도 고종 독살설 등으로 분개하여 3.1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조선은 신분 갈등이 더 컸지 지역 갈등은 서로의 역사성을 인정하기에 부수적인 문제였다.
그 함경도도 북부는 조선 왕조의 의지로 새로 얻은 곳이다.
분단이 되기 직전까지는 평안도 쪽이 우파가 득세하고, 함경도의 좌파는 수많은 인물들이 훗날 김일성에 의해 숙청 당하는 등 전혀 지금과 같은 분단을 예상하지 못했으며, 한국전쟁 때도 이곳을 대한민국이 차지하여 통일을 하려다가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성과 평양 축구팀이 상당한 라이벌이었는데 이건 그냥 평양이 큰 도시일 뿐이라 과거에는 민족화합, 현대에는 남북화합의 수단으로 인식된다.
괜히 경평전 부활이 남북교류 과정에서 언급되는 것이 아니다.
이건 조선일보가 주최한 대회인데 "조선의 양대 도회인 평양과 경성 두 도시의 친목을 위하여 실로 축복하여 마지 않는다"라는 안재홍 부사장의 언급이 있어 친목을 위한 대회라는 언급이 있다.
실제 경평전 참가자는 민족 단합을 위해 경기가 주최되었다고 한다.
마라토너 손기정 같은 평안도 출신도 경기도 출신의 심훈 등과 인연을 이어 현재 그 후손까지 잘 지낸다.
상해임시정부에서도 대립이 있었는데 이것도 결국 신분별로 모인 것이라 여운형 같은 신분 의식이 없는 사람은 경기권 출신 양반이었으나 평안도 출신인 안창호와 잘 지냈다.
평안도의 경우 조선 후기 중국(청나라)과 교류하는 길목이었기에, 무역을 통한 상업이 발달하기도 했다.
이 지역이 발전하던 시기는 전부 무역을 활발히 하던 시기였다.
상업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해방 직전까지 남아 있다고 할 정도다.
실향민도 이곳 출신은 공산주의가 싫어 월남한 면도 크지만 리버럴한 성향이 있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무역을 세계에서 유례없이 기피하는 북한 정권이 들어서며 이 지역은 크게 몰락하게 된다.
현재의 북한도 수출중심 정책을 펴야 성장할 수 있으나 자력갱생 강조와 같은 정반대의 정책을 펴서 경제적으로 큰 폐단을 낳게 된 것이다.
농업으로만 먹고 살기에는 청천강 상류 일대를 제외하면 소우지라 평안도도 '진압농법'으로 수분 증발을 막아야 벼농사가 제대로 될 정도였는데, 아래와 같은 이유가 있다.
신의주~철원을 잇는 선의 이북은 너무 춥고 산이 많아 농사를 잘 못하니 인구밀도가 낮은 편이다.
평안남도는 좀 예외지만... 개마고원과 중강진은 특히 악명이 높아서 쌀 농사를 못할 정도며, 해안을 빼면 연간 최저기온이 -2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지역이 없다.
심지어 10월이나 5월에도 눈이 오는 지역이 다반사다.
북부지역에서 가장 발달하고 온난한 남포 앞바다가 겨울이면 꽁꽁 얼 정도이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남한에서 겨울에 바다가 어는 것은 혹한이 올 때나 가끔 강화도-인천 앞바다가 어는 정도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추운 곳인지 잘 알 것이다.
게다가 함경도 지역은 평안도와 비교하면 그 곳에서 가장 적은 연강수량을 기록하는 대동강 하류가 800~900mm인데 반해 강수량이 매우 적어 함흥 남쪽을 제외하고 베이징 수준의 600mm 가량의 비가 온다.
조선시대에는 함경도는 수렵이나 인삼 채취, 북어 잡이, 광산 등으로 생계를 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공업으로 먹고 사는 지역이었다.
그나마 이 지역은 흥남에 세계 3위 규모의 거대한 비료공장이 들어서고, 무산 등지의 광업도 활성화 되었으며, 러시아와의 무역도 가능해지며 일제강점기에는 경제적인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흔히 춥다는 관념이 많지만, 강원 영서와 평안남도가 비슷한 수준이고 동부전선 고지 근처는 개마고원을 제외한 평안북도 산간과 비슷하다.
인구의 대부분은 당연히 그나마 기온이 견딜만한 수준인 곳에서 살며, 현대 북한에서도 개마고원은 추운 곳으로 손꼽힌다.
혜산이 그나마 크지만 평안도의 도시들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
평양과 신의주의 1월 평균 기온은 -5.5 ℃, -7.2 ℃로 남한에서 평균 기온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제천(-5.2 ℃), 철원(-5.7 ℃), 평창(-6.9 ℃)과 비슷한 수준이고, 김화(-7.9 ℃), 임남(-9.7 ℃)보다는 살짝 높다.
각각의 최저기온은 평양 -30.2 ℃, 신의주 -26.0 ℃, 평창 -28.9 ℃, 철원 -29.2 ℃로 오히려 평양이 더 낮다.
연평균기온은 평양 11.0 ℃, 신의주 9.1 ℃로, 철원(10.3 ℃), 평창(7.1℃)보다는 높지만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정도이고, 서울(12.8 ℃)에 비하면 확실히 낮은 편이다.
개마고원 일대는 한반도에서 기후와 식생, 지형이 유달리 이질적인 지역이다.
로저 셰퍼드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평안도의 산세는 남한과 비슷하나 개마고원의 차이가 심하다고 언급했다.
함경도 동해안 지역은 서쪽의 평안도, 남만주의 동위도 지역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따뜻하지만, 아무래도 남한보다는 위도가 높은 탓에 좀 춥다.
한반도 북부를 통틀어 가장 따뜻한 원산의 1월 평균 온도가 -1.8 ℃로 서울과 비슷한 수준이며, 함흥(-5.5 ℃), 청진(-6.5 ℃), 나선(-7.1 ℃)은 중부 지방보다는 확실히 춥다.
이 때문에 한국전쟁에서 미군은 근현대 들어 난생 겪어보지도 못한 동한기 전투를 한반도에서 치렀다.
특히 1950년 연말에 미국과 중국이 치른 장진호 전투는 기념비적인 동한기 전투로, 전사한 미군/중공군보다 얼어죽은 미군/중국군이 더 많았다.
이 지역은 너무 추워서 러시아와 견줄 만하거나, 그 이상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평안도는 조선 후기 쯤 되면 충청도의 인구를 앞질러서 8도 중 전라도와 더불어 2~3위의 인구를 기록했으며, 함경도도 충청도의 인구를 따라잡기도 했다.
이곳이 경제적으로 주로 발전하던 시기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다.
일제강점기에는 평안도는 경의선 일대의 도시가 새로 발전하여 의주 같은 기존 전통 도시가 몰락하였고 남포라든가 함경도의 여러 도시처럼 인천의 제물포와 비슷한 성장 과정을 거친 경우도 있다.
남남북녀라든가 북청 물장수, 명태의 고장 같은 여러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오지만 분단으로 인해 일부를 제외하고 그 존재감이 매우 낮아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원래의 인구도 제법 있었으나 도시화율도 높았기에 도시의 규모가 세간의 인식에 비해 컸다.
인구 순으로 따지면 평양이 2위, 청진이 6위, 흥남이 7위, 신의주가 8위, 원산이 9위, 함흥이 10위로 11위인 전남 광주, 14위인 충남 대전보다 인구가 많았다.
지금의 북한이 관리하듯 흥남과 함흥을 하나의 시로 합치면 대구급의 인구가 된다.
현재 주요 도시로는 평양시, 함흥시, 청진시, 신의주시, 남포시, 안주시, 강계시, 나진시, 원산시, 혜산시 등이 있다.
이 지역에 자원이 많아 일제강점기 한반도 유수의 공업지역으로 발돋움도 했다.
연은분리법이 처음 고안된 곳이 함경도의 단천이다.
만약 분단이 없었으면 강원도 태백시, 삼척시를 보면 북부의 엄청난 광물자원을 토대로 80년대까지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공업단지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민주당계 정당의 햇볕정책에 대한 반발로 '북한의 광물자원' 자체에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물론 캘 자원이 없는 상황을 대비하자는 주장은 타당하겠지만, 콩고민주공화국 마냥 자원이 많아도 광업 기술력 부족과 독점으로 가난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영월군의 상동광산처럼 시대에 따라 경제성이 없다가 2020년대 들어 다시 주목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상동광산도 캐나다 업체가 광업권을 가져 돈이 한국에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 등 광업으로 돈을 버는 문제는 상당히 복잡하다.
북한의 폐쇄성, 기술 부족 때문에 어떤 자원이 있는지는 북한 당국도 자세히는 모를 것이다.

 

6.3.2. 중부지방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특별시를 중심으로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까지를 일컫는 말. 대한민국 기준으로는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로 구분되는데 남북으로 분도되지 않은 도들이 대부분 중부지방에 있다.
다만 북한 기준으로는 개성시, 황해남도, 황해북도로 세분화 된다.
대략 북위 37~39° 사이에 해당한다.
다만 오늘날에는 황해도와 미수복 경기도, 미수복 강원도는 중부지방에 속하지만 상기 이유로 북부지방으로 보는 견해가 강해지고 있으며 이 경우 충청도를 중부지방으로 편입하는 경우가 많다.
중부지방 역시 인천 이남 서해안과 서울, 경기남서부, 강원도 영동지역만 온대기후에 속하고 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냉대기후에 속한다.
하지만 최근 지구온난화와 인구밀집으로 인해 서해안과 가까운 곳은 국지적으로 온대기후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폭염, 폭설, 혹한, 가뭄, 수해 등등 기후에 관련된 재해들은 거의 항상 북부와 같이 따라다닌다.
북부에 혹한이 찾아오면 중부지역도 어김없이 혹한이 찾아오고, 가뭄이 들면 똑같이 가뭄으로 몸살을 앓는다.
당장 강추위로 유명했던 2010년 겨울엔 혜산이 -40도를 찍었다는 비공식 기록이 있었는데, 철베리아 짤방으로 유명한 딱 그 시점이었다.
그리고 2015년 전례가 없는 대가뭄조차 한반도 중북부가 같이 따라가고 있다.
원래 강수량이 적은 북부가 조금 더 심하지만 이쪽도 만만찮은데, 남부지방은 간간히 비가 내려서 매우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작물에 있어서도 경기도와 황해도 일부에서 재배 가능한 포도, 복숭아 정도를 제외하면 중부와 북부는 별 차이가 없다.
다만, 개마고원에 한정해서는 또다른 신세계가 펼쳐지므로 여기는 예외.다만 강원도(영서)의 경우 지리적, 기후적으로는 중부보다는 북부와 가까운 성격을 보이는 것이 많다.
두메산골이 워낙 많기 때문으로, 겨울 기온도 평양보다 추운 곳이 있을 정도로, 차라리 지리적, 기후적으로는 황해도가 중부지방 분류에 더 적합한 경향을 보인다.
물론 영동의 경우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함경도와 경상북도 동해안 외에는 묶을 곳이 없을 정도로 한반도의 그 어떤 곳과도 다른 기후 분포를 보인다.
딱히 중, 남, 북부라는 카테고리로 서술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예로부터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어서 삼국시대에는 이곳을 지배하는 자가 주도권을 쥐기도 했었다.
역시 산이 많은 건 똑같으나 북부에 비하면 그래도 온난하고 농사하기 무난한 편이고, 황해도와 경기도를 중심으로 평야도 어느 정도 있어서 이 지역들은 예로부터 유명한 곡창지대로 손꼽혔고 지금도 그렇다.
'북한이 황해도(연백평야, 재령평야)를 놓쳤더라면 지금까지 못 살아남았다.
'고 평가할 정도.역사 초창기에는 요동(남만주-평양 일대)이 한민족의 중심이었지만 삼국시대에는 오랜시간 백제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고구려가 강해지고 백제의 국력이 약해지면서 백제-고구려-신라로 이어지는 주도권 싸움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무척 치열해졌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수도 서라벌에서 멀었기 때문에 다시 변방으로 떨어졌지만 중국과의 무역에선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이러한 경제력을 발판으로 송악(개성)의 토호였던 왕건이 고려를 세웠다.
후삼국을 고려가 통일한 이래 지금까지 1100년을 역사의 중심에 있는 지역으로서, 개성과 서울 모두 중부지방에 있고 60km 정도 밖에 안 떨어져 무척 가깝다.
현재도 정치적 중요성은 어디 떨어지지 않고 있다.
서울특별시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휴전선이 중부지방의 한복판을 관통하는 것만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
중부지역에 한반도 전체 인구의 40%가 몰려있으며, 이 중 80% 이상이 서울 및 경기도 지역에 몰려있기도 하다.
사실 서울, 경기권의 인구가 북한 전체인구보다 많다는 것은 비밀이다.
주요 도시로는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개성시, 수원시, 원주시, 춘천시, 강릉시, 고양시, 성남시, 용인시, 의정부시, 평택시, 안양시, 부천시, 안산시, 해주시, 사리원시 등이 있다.
인구가 몰려있는 중부지역답게 도시도 많고,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위성도시가 상당히 발달하였다.
황해도의 사리원 일대는 사회문화적으로 평양과 훨씬 밀접해 사실상 북부 문화권에 속하기도 하는데, 같은 황해도인 해주는 전형적인 중부 문화권에 속한다.
강원도 역시 태백산맥을 경계로 영동과 영서의 생활방식이 완전히 달라 사실상 남남과 마찬가지로, 같은 지역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는 곳이 상당히 많다.

 

6.3.3. 남부지방

 

전통적으로 충청, 호남, 영남 지방을 일컫는다.
조선시대에는 삼남(三南) 혹은 하삼도(下三道)라고 불렀다.
본토의 행정구역은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경상북도,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충청북도, 충청남도로 나뉘고 본토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부속도서의 행정구역으로서 제주특별자치도가 있는데 이러한 지리적 특징 덕분에 제주지방은 같은 남부지방이여도 사회, 문화, 정치, 역사, 자연 등 여러 분야에서 사실상 다른 권역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이질적인 특징을 보인다.
대체로 북위 37° 이남에 해당한다.
해양 및 열대성 기단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지라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온대기후가 주를 이루는 곳이다.
냉대기후는 충청북도, 그리고 경상북도의 일부 산악 지역 등 매우 한정적인 곳에서만 나타난다.
남북분단과 산업·교통의 발달 등으로 수도권과 충청권의 연계가 밀접해진 오늘날에는 북한 치하인 황해도와 미수복 경기도, 미수복 강원도까지 통째로 북부지방 취급하고 대신 충청도를 중부지방에 포함시키는 경향이 강해졌다.
사실 서울에서 충청도의 거리는 서울에서 황해도의 거리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어서 사회문화적으로 가장 중부와 가까운 곳이 충청도다.
충청도 사투리 또한 일부 어휘(~유, ~여/겨)를 제외하면 경기도와 차이가 많이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서울 북쪽이 휴전선으로 가로막히고 수도권이 한계에 다다른 현재는 수도권 개발규제의 혜택을 충청도가 집중적으로 맞고 있어, 중부 문화권에 사실상 종속된 상황이다.
지리적으로 북부, 중부와는 기후가 상당히 달라서, 충청 이남과 수도권 이북은 큰 차이를 보일 때가 많다.
경상도 상당수 지역과 호남 남해안은 눈 구경하기도 힘들 정도이고, 여름에는 거의 매년 태풍과 수해, 폭염 피해를 심하게 입는다.
그러나 가뭄 피해는 적은 편이어서, 중부와 북부에서는 한 번 시작되면 농사를 포기할 정도로 심각해지는 가뭄은 남부지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하여 옛부터 서울 사람이 평양에 내려가면 크게 다른 점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부산 사람이 서울에 올라가면 다른 나라에 온 것 같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한반도 지역에선 오로지 남부에서만 재배가 가능한 작물이 상당히 많다!. 가령 한민족이 무척 좋아하는 감나무만 해도 충청 이남에서만 자라고, 대나무를 비롯해 포도, 복숭아, 고구마, 보리, 녹차, 감귤 등등 상당수의 작물들을 충청 이남에서만 볼 수 있다.
다만 이는 지나치게 구시대적 교과서 농업에서나 할 법한 소리고 고구마 포도 감나무 복숭아 등 모두 강원도에서 잘만 재배한다.
남한에서 가장 추운 축인 강원도 평창에서도 마찬가지.가장 축복 받은 기후 덕택에 전근대 사회에서는 예부터 가장 부유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었다.
인구의 경우 북부와 만주로의 인구 이동이 심화된 일제강점기 말기에도 한반도 인구의 50%가 삼남지방에 몰려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옛 말이 되어버렸지만, 이는 도시화의 영향이지 농촌 인구에 한정하면 여전히 남부로 갈수록 인구밀도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경제적으로는 호남평야를 낀 호남 지역이 가장 부유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고려부터 조선 후기까지 세수의 1/3 이상이 전라도 지역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충청도는 고려 시절에는 남경길지설의 덕을 받아 후기에 위상이 커진 양광도의 일원으로 속했고, 조선 시절에는 기호 지방의 일원으로서 어느 정도 수도권과 연관이 있었다.
또한 경상도는 천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고, 고려 시절에는 동경이라는 행정 구역이 있을 정도로 이전의 위상을 어느 정도 유지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동인 학파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침으로써 학문적으로 위상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8도 중 인구가 가장 많았다.
그러나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와 마찬가지로 전라도는 견훤의 후백제 시절을 제외하고는 한반도의 주도권을 쥔 적이 없다.
고려 시절에는 후백제의 근거지였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홀대받았으며, 조선 시대에도 이성계의 본향이었다는 점과 붕당 초기때에 학파를 형성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역사의 주역에 오르지 못했다.
그나마 곡창 지대라는 특성이 있었기는 했지만.역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역 중 하나였다.
지리적 입지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기후가 좋아서 작물 생산량도 많고 사람도 많이 사는 만큼 지역 토착 세력의 위세가 상당히 드센 곳이었고, 그를 바탕으로 지역 유지들이 중앙 정치에서 강한 입김을 많이 내뿜었다.
신라 때는 천 년 동안 수도가 경주였으므로 말할 필요가 없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정치는 중부지역에서 하지만 사실상 영남, 호남, 충청 지역의 유지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할 정도였다.
고려 초중기 서경, 서해도 세력과, 조선 후기 경기출신이 장악하던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남부지역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오랫동안 불피웠고 이는 대한민국이 들어선 지금도 마찬가지. 초대 대통령(이승만), 임시 대통령(최규하), 현 대통령(윤석열)을 뺀 모든 대통령이 삼남 출신임을 생각하면 수도만 중부지역에 세워놓고 남쪽 사람들이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건 여전하다.
물론 그런 현상이 지속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6년 기준 서울, 경기의 인구가 전체 한국 인구의 절반을 넘고 소위 SKY와 인서울로 대표되는 교육적 환경, 정치적 환경 모두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대신 서울 출신보다 지역구에서 유리할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서울, 경기권에 거주하고, 경제적 비중은 그 이상이라 요즘은 빛이 많이 바랜 감이 있다.
전라권과 경상권이 서로 상반되어 충돌하고 충청북도는 가운데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원래 충청권은 김종필과 자민련을 밀어줬었지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의 역풍으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민련이 충남에서만 4석, 충북에서는 0석으로 떡실신당하고 비례대표 1번으로 나왔던 김종필 역시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결과적으로 김종필이라는 거대한 구심점을 잃은 자민련은 해체에 이르게 된다.
이후 충청권 특히 충청북도는 완전히 선거의 캐스팅보트가 되었다.
주요 도시로는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대전광역시, 울산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청주시, 천안시, 구미시, 포항시, 창원시, 진주시, 김해시, 전주시, 익산시, 목포시, 순천시, 여수시, 제주시 등이 있다.
전통 도시가 가장 많았던 지역이지만 정작 천 년이 넘게 지역 중심지였던 다수의 도시들(예를 들면 김천, 경주, 상주, 진주, 안동, 공주, 충주, 홍주, 전주, 나주, 남원 등)은 몰락하고 동남부 해안과 경부축을 중심으로 도시 분포가 상당히 바뀐 상황이다.
같은 지방이라도 소득 불평등이 매우 심한 지역 중 하나로서, 남동임해공업단지가 몰린 경상도 해안지역과 수도권 규제의 혜택을 입은 충청도 북서부, 경부선 인근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반면 경북 북부 일대와 호남 쪽은 도시 풍경이 1980~90년대에서 멈춘 곳이 상당히 많을 정도로 상당히 낙후되었다.

 

6.4. 사실상 섬

 

우주에서 본 한반도의 밤 심지어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은 그나마 빛이 있는데 북한 쪽은 평양을 제외하면 원산, 함흥, 라선 등 몇 군데 없어서 정말 섬처럼 보인다.
고대와 중세의 중동과 서양에서는 한반도 중남부를 섬이라고 인식했다.
남북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왔던 이슬람 상인들도, 개항기 프랑스 지도 등에도 그랬고. 예를 들면 알 이드리시의 세계지도에서 통일신라가 여러 개의 섬으로 그려져 있고, 쿠시나메에서도 통일신라가 6개의 섬으로 된 나라라고 전해졌으며, 1636년작인 테세이라의 일본전도에서도 한반도가 섬으로 잘못 그려져 있다.
이것은 주로 이들이 북쪽 육로를 이용하지 않고 동중국해를 항해해 한반도 해안에 도착한 후 남도에서 교역하고 갔기 때문이다.
배 타고 오가는 나라로 인식했고 북부지방에 대한 인식은 희박한데다, 한국과 중국의 국경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이 백두산을 경계로 거의 붙어 있는 것으로 묘사하다 보니 해협으로 오해받아 그렇게 인식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섬에 가까운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역사적으로 대륙세력의 침공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기도 했다.
다만 대륙세력의 침공으로부터는 안전해도 해양세력의 위협에서 안전한 것은 아닌데 실제로 섬나라나 반도 국가들은 가장 먼저 서양 해양세력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쿠바, 히스파니올라 섬, 필리핀처럼 일찍부터 식민지가 되어버린 경우도 많았다.
물론 한반도는 20세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해양세력의 침공으로부터도 안전한 편이었는데 당연히 이는 한반도가 섬에 가깝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일단 한반도 자체가 유럽과는 완전히 정반대편인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위치해서 거리 자체가 너무 멀었고 또 일본 열도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라 해양세력이 들어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지리적 요건은 양날의 검으로서 서양세력과도 계속 교류를 한 중국, 일본과는 달리 조선이 해양세력과 교류를 하는 것을 늦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일례로 데지마를 통해 네덜란드로부터 국제정세(아편전쟁 등)에 대한 정보를 얻어 쿠로후네 사건 당시 빠르게 개항을 결정한 일본과 달리 이러한 정보를 얻을 통로를 명나라, 청나라에 간접적으로 얻어야했던 조선은 일본보다 개항이 늦어지게 되었다.
현재 남한은 자연지리적으로는 분명히 반도이지만 북한 때문에 육지를 통해 다른 나라로 못 간다.
그리고 북한도 사실상 들어가기는 자유지만 나오기는 힘든지라... 현재 인문지리적으로는 섬의 성격이기도 하다.
특수한 때를 빼면 외국으로 나갈 때 비행기나 배를 써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북한도 대부분의 주민이 해외여행의 자유가 없으며 러시아 극동에서 중국으로 유입되는 호랑이나 표범등의 맹수류도 북한으로 유입이 쉽지 않은 상태이다.
사실상의 섬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참고로 이런 특성은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특이한 경우이다.
다.

 

7. 해외 명칭

 

북한은 자국의 국호가 조선이므로 말할 것도 없이 조선반도(朝鮮半島)를 쓰고 있고 그와 같은 공산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과 베트남도 조선반도라고 표기한다.
일본은 공산국가가 아니지만 과거부터 써오던 조선반도라는 표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위키백과 중국어판과 일본어판에도 조선반도로 등록되어있다.
베트남어로는 Bán đảo Triều Tiên. 한자로 쓰면 半島朝鮮이다.
서한만, 동한만도도 이들은 서조선만, 동조선만. 대한해협도 조선해협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과거 대한민국과 수교했던 대만의 경우 북한을 북조선(北朝鮮)이라고 부르지 않고 북한(北韓)이라고 부르는 등 한국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일단 중화인민공화국과 베트남은 공산권에 속해서 북한의 표기를 따라가서, 일본은 남북한 중 한 쪽을 정통정부로 인정하기를 피하느라 이전까지 쓰던 '조선'을 남북한을 모두 합친 표현으로 사용한다.
결국 대한민국 스스로와, 과거에 대한민국과 동맹으로 공산권과 대치한 대만이 韓을 한반도 전체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한다.
북한이 붕괴해서 대한민국 주도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한자 문화권에서 한반도의 표기가 자리잡을 여지는 있다.
일본에서 韓国은 현대의 대한민국만을 의미한다.
문화권으로서의 한국 또는 지리학적인 의미의 한반도는 각각 朝鮮, 朝鮮半島라고 지칭한다.
한반도의 전반적인 역사를 아우르는 명칭도 한국사가 아닌 '조선사'로 표기하며 현대의 대한민국도 한국사가 아닌 조선사의 개념으로 바라보고 있다.
단 한민족의 언어와 문자인 한국어/한글의 경우 조선어/조선글보다는 한국어/한글로 표기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라 직접 통치구역도 아니고 영국령 시절부터 꼬박꼬박 Korea는 남한만을 의미해서 중국식과 영국식이 섞여있다.
실제 언론 등의 표기는 남한이라고 하지 조선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땅 자체는 조선 반도라는 중국어 표기와 Korean Peninsula라는 영어 표기가 혼재되고 남한은 南韓, 북한은 北韓으로 중국어 명칭부터 韓자를 쓰며 남북을 확실히 구분한다.
북한은 차오센(조선), 한국은 한궈(한국)라고 하는 중국 대륙과 다르다.
마카오 역시 마찬가지로 南韓, 北韓이라는 중문표기와 Coreia do Sul, Coreia do Norte라는 포르투갈어 표기를 쓴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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