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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1. 개요
서아시아의 이슬람 공화국으로 수도는 테헤란(تهران, Tehran)이다.
종교 국가로서 국교는 시아파 이슬람이며, 정치 체계는 최고 지도자인 라흐바르의 하위에 명목상으로 삼권분립이 되어있다.
그리고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로서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준한 법률 체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란 헌법에는 시아파의 마흐디가 재림할 경우, 마흐디에게 국가통치권을 양도한다는 구절이 있다.
종교 국가로서 국교는 시아파 이슬람이며, 정치 체계는 최고 지도자인 라흐바르의 하위에 명목상으로 삼권분립이 되어있다.
그리고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로서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준한 법률 체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란 헌법에는 시아파의 마흐디가 재림할 경우, 마흐디에게 국가통치권을 양도한다는 구절이 있다.
2. 국가 상징
2.1. 국호
정식 국호는 이란회교공화국 또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جمهوری اسلامی ایران / Jomhuri-ye Eslāmi-ye Irān)이다.
약칭 국호인 이란(ایران, Irân)의 유래는 초기 인도유럽어의 "아리아"이다.
따라서 이란은 문자적으로 "아리아인의 땅(سرزمین آریاییان / Sarzamin-e Âriyâyiyân)"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이 아베스타를 거쳐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가 되면 이란계 사람들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거의 굳어졌다.
베히스툰(Behistun) 비문이나 낙쉐 로스탐(Naqsh-e Rostam) 비문을 보면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1세가 아리아인이라고 써 있다.
고대 페르시아어로 아리아(ārya, ariya)라 하던 것이 사산 왕조 시대의 중세 페르시아어, 혹은 팔라비어로 에란(ērān)이 되었고, 이후 오늘날의 "이란"이 되었다.
이란 바깥에서는 오랫동안 페르시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이름은 고대 이란계 부족의 이름 혹은 지명인 파르스에서 유래했다.
이들이 주로 살던 이란 남서부의 땅을 파르사(Pārsa)라고 했는데, 이 파르사 출신의 키루스 2세가 아케메네스 왕조를 개창하면서 파르스 사람들이 주도세력이 되었다.
이 파르스·파르사를 그리스인들이 페르세스 혹은 페르시아라고 쓴 것이 서구 세계에 완전히 정착된 것이다.
이 두 이름 중 현지인들이 전통적으로 써 온 것은 "이란"이다.
당시 이란계 종족들은 출신 지역이나 종족별로 쪼개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문화적으로 유사성을 갖고 있었다.
이들 중 특히 현대의 이란 국경과 비슷한 강역을 지배했던 파르티아 시대에 "아리아인"이라는 종족 관념이 점차 확대된 것 같다.
전술했다시피 아리아인이라는 개념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지만, 아케메네스 왕조는 지배층인 페르시아인들이 아리아인의 한 분파였을 뿐이지 공통적인 민족 정체성 따위가 확산되지 않은 다민족 제국이었다.
파르티아 역시 다민족 제국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다하/파르니 정복자들, 파르티아인, 페르시아인, 메디아인, 박트리아인, 소그드인 기타 등등의 여러 이란계 종족들이 하나의 국가 범주 안에서 수세기 동안 부대끼면서 공통적인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체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 파르티아를 멸망시킨 에란샤흐르 제국, 즉 사산 왕조의 국가 건설 과정인데, 사산 왕조는 "아리아인/이란인의 국가(Ērānšahr)"이라는 개념을 이용했다.
종교적, 추상적 개념에 가까웠던 "아리아인의 땅"이라는 개념을 현실 정치에 끌어들여,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고, 조로아스터교를 믿으며 페르시아어를 쓰는 이란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구체적인 개념으로 바꾼 것이다.
또한 비(非)아리아인(ānērān)이라는 개념을 통해 다른 종족들(사산 왕조의 지배 하에 있든 아니든 간에)을 타자화함으로써 이란의 정체성을 강화하였다.
사산 왕조의 군주들이 "šahan šah ērān ud ānērān", 즉 이란과 비이란의 왕중왕이라는 칭호를 쓴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이후 아랍의 정복과 이슬람 시대의 도래로 이란인들은 이슬람 세계의 일부분으로 흡수되었다.
아랍 문자와 이슬람을 받아들였으며, 오래 부대끼고 사는 통에 생활 습관의 변화, 혼혈도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문자는 바뀌었을지언정 언어와 학문 분야는 대부분 유지되었고, 중세 이슬람 황금기의 '실질적 축'을 담당한 이란 출신 학자들과 문인들에 의해 이란이라는 이름과 독자적 문화, 정체성이 기억되었다.
7세기 아랍의 대홍수가 거쳐간 뒤에도 11세기 이후 튀르크의 대홍수, 14세기 몽골의 침공 등으로 인해 이란은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으나, 그 와중에도 이란의 독자적 정체성은 살아남아 현대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1935년 팔레비 왕조에서 공식적으로 국호를 "이란 제국(دولت شاهنشاهی ایران / Dowlat-e Šāhanšāhi-ye Irān)"으로 못박았다.
물론 이는 나라 이름을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바꿨다는 뜻은 아니며, 다른 국가에 스스로를 페르시아가 아니라 이란이라 불러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오늘날 페르시아라는 이름은 이란이라는 나라 이름보다는 이란 지역의 역사적인 지명이나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들의 총칭으로서 더 많이 쓰인다.
팔레비 왕조가 1979년에 이란 혁명으로 무너지고 호메이니가 이슬람 공화국을 세우면서 나라 이름도 이란 이슬람 공화국으로 바꿨다.
약칭 국호인 이란(ایران, Irân)의 유래는 초기 인도유럽어의 "아리아"이다.
따라서 이란은 문자적으로 "아리아인의 땅(سرزمین آریاییان / Sarzamin-e Âriyâyiyân)"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이 아베스타를 거쳐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가 되면 이란계 사람들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거의 굳어졌다.
베히스툰(Behistun) 비문이나 낙쉐 로스탐(Naqsh-e Rostam) 비문을 보면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1세가 아리아인이라고 써 있다.
고대 페르시아어로 아리아(ārya, ariya)라 하던 것이 사산 왕조 시대의 중세 페르시아어, 혹은 팔라비어로 에란(ērān)이 되었고, 이후 오늘날의 "이란"이 되었다.
이란 바깥에서는 오랫동안 페르시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이름은 고대 이란계 부족의 이름 혹은 지명인 파르스에서 유래했다.
이들이 주로 살던 이란 남서부의 땅을 파르사(Pārsa)라고 했는데, 이 파르사 출신의 키루스 2세가 아케메네스 왕조를 개창하면서 파르스 사람들이 주도세력이 되었다.
이 파르스·파르사를 그리스인들이 페르세스 혹은 페르시아라고 쓴 것이 서구 세계에 완전히 정착된 것이다.
이 두 이름 중 현지인들이 전통적으로 써 온 것은 "이란"이다.
당시 이란계 종족들은 출신 지역이나 종족별로 쪼개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문화적으로 유사성을 갖고 있었다.
이들 중 특히 현대의 이란 국경과 비슷한 강역을 지배했던 파르티아 시대에 "아리아인"이라는 종족 관념이 점차 확대된 것 같다.
전술했다시피 아리아인이라는 개념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지만, 아케메네스 왕조는 지배층인 페르시아인들이 아리아인의 한 분파였을 뿐이지 공통적인 민족 정체성 따위가 확산되지 않은 다민족 제국이었다.
파르티아 역시 다민족 제국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다하/파르니 정복자들, 파르티아인, 페르시아인, 메디아인, 박트리아인, 소그드인 기타 등등의 여러 이란계 종족들이 하나의 국가 범주 안에서 수세기 동안 부대끼면서 공통적인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체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 파르티아를 멸망시킨 에란샤흐르 제국, 즉 사산 왕조의 국가 건설 과정인데, 사산 왕조는 "아리아인/이란인의 국가(Ērānšahr)"이라는 개념을 이용했다.
종교적, 추상적 개념에 가까웠던 "아리아인의 땅"이라는 개념을 현실 정치에 끌어들여,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고, 조로아스터교를 믿으며 페르시아어를 쓰는 이란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구체적인 개념으로 바꾼 것이다.
또한 비(非)아리아인(ānērān)이라는 개념을 통해 다른 종족들(사산 왕조의 지배 하에 있든 아니든 간에)을 타자화함으로써 이란의 정체성을 강화하였다.
사산 왕조의 군주들이 "šahan šah ērān ud ānērān", 즉 이란과 비이란의 왕중왕이라는 칭호를 쓴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이후 아랍의 정복과 이슬람 시대의 도래로 이란인들은 이슬람 세계의 일부분으로 흡수되었다.
아랍 문자와 이슬람을 받아들였으며, 오래 부대끼고 사는 통에 생활 습관의 변화, 혼혈도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문자는 바뀌었을지언정 언어와 학문 분야는 대부분 유지되었고, 중세 이슬람 황금기의 '실질적 축'을 담당한 이란 출신 학자들과 문인들에 의해 이란이라는 이름과 독자적 문화, 정체성이 기억되었다.
7세기 아랍의 대홍수가 거쳐간 뒤에도 11세기 이후 튀르크의 대홍수, 14세기 몽골의 침공 등으로 인해 이란은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으나, 그 와중에도 이란의 독자적 정체성은 살아남아 현대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1935년 팔레비 왕조에서 공식적으로 국호를 "이란 제국(دولت شاهنشاهی ایران / Dowlat-e Šāhanšāhi-ye Irān)"으로 못박았다.
물론 이는 나라 이름을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바꿨다는 뜻은 아니며, 다른 국가에 스스로를 페르시아가 아니라 이란이라 불러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오늘날 페르시아라는 이름은 이란이라는 나라 이름보다는 이란 지역의 역사적인 지명이나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들의 총칭으로서 더 많이 쓰인다.
팔레비 왕조가 1979년에 이란 혁명으로 무너지고 호메이니가 이슬람 공화국을 세우면서 나라 이름도 이란 이슬람 공화국으로 바꿨다.
2.2. 국기
국기는 녹백적의 가로 삼색기이다.
뒤집으면 국장을 차치하고 타지키스탄이나 헝가리 국기가 된다.
녹색, 백색, 적색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 이전의 근대 왕정 시절에도 이란 국기에 쓰였던 색깔들인데, 1906년의 입헌 혁명 당시부터 혁명가들이 즐겨 쓰던 색깔이다.
그전에도 녹색과 흰색이 페르시아의 왕조를 상징하는 색깔로 잘 쓰이다가 붉은색이 추가된 것. 국기의 녹색은 성장, 행복, 통일, 자연 등을 상징하며, 흰색은 자유를 상징하고, 붉은색은 순교, 용기, 불, 생명, 사랑, 온화함 등을 상징한다.
중앙에 있는 문양은 국장이기도 하다.
이 국장은 하미드 나디미(حمید ندیمی, Hamid Nadimi)가 디자인한 것으로, الله라는 글자를 극도로 추상화한 것이다.
잘 보면 위에 샷다( ّ)가 있다.
또한 일부러 튤립 모양을 형상화하도록 만들었다.
튤립은 이란 혁명의 상징이다.
이 국장은 유니코드에도 U+262B (☫)이라는 이름으로 올라가 있다.
국기의 각 색깔의 경계에는 특이한 문양 같은 것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문양이 아니라 아랍 문자로 알라후 아크바르(الله أکبر, 하나님(알라)은 위대하시다)를 위아래 각각 11번 써넣은 것이다.
이러한 서체를 쿠파체(خط کوفی, Kufic script)라 한다.
이란 혁명 이전의 제정 시절에는 사자와 태양의 문장을 국장으로 썼으며 물론 국기에도 반영되어 있었다.
이란 혁명 이후에는 압제적인 친서방 제정을 상징한다며 폐기. 이란 혁명 이후 국외에 망명한 이란인들 사이에서 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반대하는 의미로 쓰고는 하지만 이란 현지에서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2022년 이란 시위에서는 이란 시민들이 현 이슬람 신정체제에 반대하는 뜻으로 이란 국내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뒤집으면 국장을 차치하고 타지키스탄이나 헝가리 국기가 된다.
녹색, 백색, 적색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 이전의 근대 왕정 시절에도 이란 국기에 쓰였던 색깔들인데, 1906년의 입헌 혁명 당시부터 혁명가들이 즐겨 쓰던 색깔이다.
그전에도 녹색과 흰색이 페르시아의 왕조를 상징하는 색깔로 잘 쓰이다가 붉은색이 추가된 것. 국기의 녹색은 성장, 행복, 통일, 자연 등을 상징하며, 흰색은 자유를 상징하고, 붉은색은 순교, 용기, 불, 생명, 사랑, 온화함 등을 상징한다.
중앙에 있는 문양은 국장이기도 하다.
이 국장은 하미드 나디미(حمید ندیمی, Hamid Nadimi)가 디자인한 것으로, الله라는 글자를 극도로 추상화한 것이다.
잘 보면 위에 샷다( ّ)가 있다.
또한 일부러 튤립 모양을 형상화하도록 만들었다.
튤립은 이란 혁명의 상징이다.
이 국장은 유니코드에도 U+262B (☫)이라는 이름으로 올라가 있다.
국기의 각 색깔의 경계에는 특이한 문양 같은 것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문양이 아니라 아랍 문자로 알라후 아크바르(الله أکبر, 하나님(알라)은 위대하시다)를 위아래 각각 11번 써넣은 것이다.
이러한 서체를 쿠파체(خط کوفی, Kufic script)라 한다.
이란 혁명 이전의 제정 시절에는 사자와 태양의 문장을 국장으로 썼으며 물론 국기에도 반영되어 있었다.
이란 혁명 이후에는 압제적인 친서방 제정을 상징한다며 폐기. 이란 혁명 이후 국외에 망명한 이란인들 사이에서 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반대하는 의미로 쓰고는 하지만 이란 현지에서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2022년 이란 시위에서는 이란 시민들이 현 이슬람 신정체제에 반대하는 뜻으로 이란 국내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2.3. 교육
대학입시 시험으로는 콩쿠르(کنکور)를 치른다.
3. 정치
서아시아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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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인권
이란은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로 인권 탄압 상황도 심각하며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나마 정권에 따라 사회 분위기나 색깔도 조금씩 변하지만 그래봤자 사우디아라비아와 탈레반 집권 하의 이웃나라 아프가니스탄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다.
1979년 이전 팔라비 왕조 시절에 백색혁명으로 여성이 참정권, 교육권을 얻고 사회진출도 하며 서구 문화도 어느정도 들어온다.
부패한 전제왕정을 무너뜨린 것은 좋았지만 이슬람 국가로 회귀한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공공장소에서의 공연을 법으로 금지하며 심지어 국영 방송에서도 음악 연주장면을 거의 방영하지 않는다.
성차별도 심각해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과 소수민족, 타종교 여성에게까지 히잡을 비롯한 이슬람 복식을 강요한다.
심지어 SNS상에서도 여성은 히잡 쓴 사진만 올리게 하며 쓰지 않은 사진을 올릴 경우 처벌한다.
그런데 정작 이란 고위층 자녀는 마음껏 올린다.
특히 이란 여성들은 스포츠경기 관람 등 공공장소에서의 사회활동에 심각한 수준의 제약을 받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6월 남자 배구 경기를 관전했다는 이유로 이란계 영국 여성 변호사인 무함마드 레자 다바르자니와 인권운동가 곤체 가바미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1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2017년 국제배구협회의 압력을 못 이겨 배구 경기에 여성의 입장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성의 스포츠경기 관람을 허용해 유일하게 여성이 경기를 관람할 수 없는 나라였으나 이듬해인 2019년 여성의 경기장 출입을 허용한다.
2022년 현재는 이란도 여성이 자유롭게 경기를 관람하게 되었다.
영화와 드라마도 미혼의 남녀 배우가 같이 주연을 맡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하며 반드시 부부배우만이 주연을 맡는다.
이란의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앨범 커버에 나온 여성들을 합성으로 지워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현재 이란에서는 이슬람 신앙생활을 관장하는 별도의 “도덕경찰(گشت ارشاد/gašt-e eršād/Guidance Patrol)”이 따로 있어서 인권을 탄압한다.
특히 도덕경찰들의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가 심해 여성이 음악에 맞춰 춤추는 동영상을 올렸다고 태형을 하며 여성이 진하게 화장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복장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여성을 단속하고 그 자리에서 매질까지 하며 또 복장에 문제가 클 경우 거액의 벌금과 함께 채찍형에 처한다.
심지어 파티장까지 급습한다.
또 이란은 국내의 공공장소에서 춤과 노래도 금지한다.
(다만 결혼식이나 노루즈라고 부르는 새해에는 집안이나 공터에서 밤을 세워가며 춤을 춘다) 언급했듯이 이란에서는 단순히 남자 배구경기를 관전했을 뿐인 영국계 여성을 샤리아를 어겼다면서 체포하고 징역형으로 처벌하고 월드컵에서 자국을 응원하며 춤추고 노래한 사람들을 타락했다며 체포했다.
또한 이란 여배우 골쉬프테 파라하니가 누드화보를 찍자 이에 이란 정부는 “그녀의 가슴을 잘라내서 아버지에게 전달하겠다”라는 망언을 했다.
결국 골쉬프테 파라하니는 망명을 가 프랑스인이 되었다.
2015년 9월에는 이란 사법 당국이 이성과 악수했다는 이유로 남녀에게 각각 99대의 채찍질을 선고해서 국제사회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실제로 여러 인권 단체들에 의하면 이란에서 친족 이외의 이성과 악수하는 것을 “간통까지는 아니지만 적절치 않은 성적 행위”로 간주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2015년 3월 이란 의회가 출산율을 높여 인구를 늘리기 위한 대책이 비난받는데 바로 피임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한것이다.
여성 인권을 침해한다는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이 법안은 하메네이가 2012년 7월에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가 심각하기에 머지않아 인구감소가 시작될 것이라서 현재 8천만 명 정도의 인구를 향후 50년간 배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입법 움직임이 일었는데 하메네이는 당시 "부부가 왜 아이를 1~2명만 낳거나 아예 출산하지 않으려 하는지 이유를 연구해봐야 한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머지 않아 이란은 '노인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법으로 이제부터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정관 절제 수술 등의 영구 피임을 위한 수술을 금지하고 이 법을 위반한 의사는 엄청난 처벌을 받는다.
또한 출산하지 않은 여성에게 취업 시 불이익을 주는 법안도 통과될 예정이다.
이 법안을 통과하면 고용주는 1순위로 아이 있는 남성 2순위로 아이 없는 남성 3순위로 아이 있는 여성 4순위로 아이 없는 여성을 고용해야 한다.
또 이란 정부는 정부가 지원하는 가족계획 프로그램을 없애고 이혼 절차를 어렵게 하는 등 출산 촉진책도 병행한다.
한마디로 정부가 국민에게 출산을 강요하는 것이다.
사실 이란도 출산율이 상당히 낮고 고령화도 빠르고 인구감소가 일어나 골칫거리다.
그래서 이란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추진한 건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기는 한데 강압적으로 해 문제다.
국제앰네스티는 2015년 3월 11일 이 두 법안에 대해 “이란 여성의 권리를 수십 년 전으로 후퇴시킬 것"이라고 했으며 “이란 정부가 여성의 핵심 권리를 박탈해 여성을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기본권을 가진 인격체가 아닌 ‘애낳는 기계’로 전락시킨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이란의 청년층은 실업과 고물가로 생활고에 시달려 출산을 많이 할 수 없다.
이런 판국에 강제로 하려고 하니 해결이 안 된다.
이란의 법 집행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샤리아법이라 마구잡이식으로 이루어져 억울한 옥살이를 하며 희한한 해석도 많다.
대표적으로 정당방위로 칼을 휘두른 20대 여성을 교수형에 처한 사건이 있다.
이란 사법 당국은 2014년 10월 28일 레이하네 자바리(26. 1987년생)에게 살인혐의로 교수형을 집행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자바리는 10대였던 2007년 이란 정보기관 요원 출신인 사르반디에게 취업 제안을 받고 집에 따라가 성폭행을 당할 뻔했는데 자바리는 성폭행을 피하려 갖고 있던 칼을 휘둘렀다.
경찰에 체포된 자바리는 재판에서 모두 정방방위이며 성폭행 당하려는 자신을 보호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자바리의 계획된 범행으로 봐 성인이라는 이유로 2009년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여러 인권단체들은 그녀가 사르반디를 죽였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재심을 요구했으며 국제 앰네스티는 자바리의 범행이 아닌 정체불명의 남자가 등장해 사르반디를 죽였다고 했으나 이란 정부의 거부로 재조사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국제 앰네스티는 “이 처형은 이란 인권 역사에 핏자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이란 정부를 비난했다.
기사 2016년에는 시스탄-발루치스탄 주에서 한 마을의 성인 남성 전원을 마약 혐의로 처형했다.
잔혹한 전근대적 형벌을 폐지하지 않고 여전히 시행하고 있어 문제다.
브뤼셀의 투석형 반대 퍼포먼스에 참여한 이란계 여인. 이 사진은 퍼포먼스이지만 실제로 이란 및 서아시아에서는 종종 저렇게 여자를 땅에 묻고 머리만 쳐서 죽인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가 강한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란 재판부는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몇몇 여성들에게 여성을 어깨까지 묻은 후 죽을 때까지 돌을 던져 결국 사망하도록 하는 투석형을 내린것이다.
2015년 한 여성은 남편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런 투석형을 당해 결국 엄청난 고통 속에 사망했다.
심지어 이란 정부가 세계 인권의 날(International Human Rights Day)에 이토록 잔인하게 한 여성에게 투석형을 선고해 죽게 한 것은 국내외로 큰 공분을 산다.
영국의 인권보호센터(Human Security Center)의 총무인 줄리 레나즈(Julie Lenarz)는 앞서 예루살렘 포스트(Jerusalem Post)에 "이란법에서 여성들은 간음죄에 대해 투석형을 선고하고 있고, 청소년들의 처형도 허용한다"면서 "이란에서는 매일 3명의 교수형이 집행되고 있으며 인권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불량국가(pariah state)"라고 비난했다 기사절단기로 손이 잘리는 사람이란에서 범죄자의 손가락을 자르는 형벌이 공개적으로 추진되어 논란이 됐었는데 실제로 집행하는 장면을 공개하여 집행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상에서는 대중이 모인 광장에서 눈을 가린 남성이 복면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집행관 2명에 붙잡혀 손가락 절단기에 손을 올려놓았으며 나머지 한 명이 절단기 장치에 부착된 핸들을 돌려 남자의 손가락을 잘랐다.
이후 남자의 피 묻은 손가락은 요오드에 담겨져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됐다.
이란 정부는 형이 집행되기 전 약을 먹어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하나 이 영상은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고 전세계에서 너무나 잔혹하며 도가 지나쳤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또 이란은 언론 탄압이 극심하다.
2019년 기준으로 언론자유지수가 170위로 세계 최하위권이며 현재 이란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언론인들과 사회 활동가들이 구금돼 있는데 이란은 언론 자유를 탄압해 중국에 이어 가장 많은 30명의 언론인을 투옥한 상태라고 인권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는 밝혔다.
실제로 워싱턴 포스트 제이슨 레자이언은 이란의 국가 안보에 반하는 행동을 한 간첩 혐의로 체포돼 1년 넘게 수감돼 있으며 이란 정보 당국이 ‘세계인권의 날’인 2014년 11월 10일 유명 여성 인권변호사 나스린 소투데를 이유도 밝히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체포해 구금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고작 몇 사례에 불과할 정도로 많은 기자들이 이란에 의해 불법적으로 구금돼 있다.
특히 이란에서 진보적이라는 언론사 카르고자란 신문사도 틈만 나면 이란 정부에게 탄압을 받는데, 카르고자란 신문은 2009년 1월에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저지르는 인권침해를 비판해 이란 정부에 의해 정간당하고 이 비판 글을 쓴 기자가 체포되었다.
이유도 기가 막힌 게 단순히 하마스의 인권침해가 너무 심하다고만 했는데 이것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정당화하고 하마스와 무장단체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다고 했다.
2020년에 이란 체제와 인권탄압을 비판한 언론인 루홀라 잠을 체포하려다 그가 프랑스로 망명하자 프랑스까지 쫓아가 납치하여 강제로 끌고와 재판에 세웠는데 1심 법원이 사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에서도 사형선고 받은지 나흘 만에 사형에 처해버려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학문의 자유도 허용하지 않고 심각하게 탄압한다.
, 이란의 시인 에크테사리와 무사비는 신성 모독 내용을 담은 책을 썼다는 혐의로 각각 11년 6개월과 9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책을 발간하기 전에 이란 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았고 결정적으로 이들이 증언하기로 신성 모독 혐의에 대한 자백을 고문까지 이뤄진 강압적인 수사 아래서 했다고 한다.
또한 두 시인과 유사한 혐의가 적용된 영화 제작자 카이반 카리미 역시 최근 6년 징역형 및 223대의 채찍질형을 선고 받았다고 미국에 있는 인권단체인 ‘이란의 인권을 위한 국제 캠페인’ 측이 밝혔다.
또한 이란에서는 영화산업에 대한 이슬람의 지나친 규제에 대해서 비판하는 작품을 찍었는데, 그 영화에 나온 여배우에게 태형 90대와 징역 1년을 선고하는 막장 독재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악마의 시를 지어 호메이니를 화나게 만든 인도계 영국인 살만 루시디도 이단으로 취급해 아직도 사형선고를 취소하지 않고 있으며 루시디가 정신질환자에게 피습당했을때 자업자득이라며 대놓고 모욕하는 행태를 보였다.
국경없는 기자회의 일원인 모이니는 이란에서 단순히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언론인이 200여 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란 교도소의 인권침해도 심각한데 카르지 지역에 있는 고하르다스트 교도소의 상황을 폭로한 이란의 한 정치범은 포화상태의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것을 지옥과 인간 재앙으로 표현했다.
이란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있는 한 정치범은 공개서한에서 이를 폭로했는데 이란 교도소의 수감자 학대가 심각하며 수감자는 벌거벗은 채로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이에 물린 붉은 자국아 온몸에 가득하다고 말했다.
교도소 안은 더럽고 오염된 공기와 쓰레기가 썩는 냄새 그리고 막힌 변기에서 나온 오물과 식중독 환자가 뱉어 놓은 토사물과 가래로 가득한 비참한 환경이라고 한다.
이란에서 망명을 와서 캐나다의 왕립군사대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하우창 하싼-야리 교수는 많은 수감자의 가족이 이와 비슷한 상황을 전한다고 해 이 정치범의 말은 사실로 보인다.
이란의 정치범은 신선한 공기와 제대로 된 음식 또는 의약품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며 심지어 이란 교도소 측은 거의 대부분의 수감자들에게 잠을 재우지 않고 목욕도 못하게 하며 정신적, 신체적 고문까지 하고 있다고 하싼-야리가 말했다.
이란의 사형제도 역시 문제가 심각하다.
이란은 2014년 세계에서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사형에 처했다.
이란 정부가 마약사범 척결에 나서서 2015년 7월까지 이란의 사형자 수가 최소 694명으로 역대 최고치였던 2014년의 753명에 육박하며 2015년 안에 1000명을 넘을 수 있다고 아흐메드 샤히드 유엔 이란인권 특별보고관이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밝혔다.
현재 이란의 사형 문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가장 심각한데 이란 정부는 흉악범과 마약사범에 대해서는 사형을 원칙으로 하기에 이렇게 사형수가 많은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여러 인권 단체들은 모두 거짓이며 실제로는 정치범에게 마약 사범이라는 누명을 씌워 사형에 처하거나 정치범들이 마약사범으로 처리되어 사형당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법원에 의해 형이 선고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모호하게 표현하고 지나치게 광범위한 범죄나 또는 범죄화조차 되어서는 안 되는 행위에도 사형이 선고되고 있다고 밝혔으며 이란에서 피고인이 조사 단계에서 변호사 접견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항소, 사면, 감형 절차도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아 사법 살인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또 이란에서 처형된 사형수 중에는 '신에 대한 적대'와 '세속적 타락' 혐의로 유죄가 선고된 쿠르드족 정치범과 수니파 이슬람교도, 배화교, 바하이교, 발루치족 등의 소수민족과 소수종교 및 친서방, 세속주의자, 무신론자, 동성애자도 있다.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의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이란에서 복역 중인 사형수는 수천여 명에 이른다.
이란 정부는 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의 80%가 마약사범이라고 밝혔지만 정확한 숫자는 공개하지 않으며 여러 증언에 의하면 마약 사범이라는 누명 아래 사형당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심지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도 사법살인을 당한다.
국제 앰네스티에 따르면 2015년 소년범 160명 이상이 이란에서 사형 집행을 받을 예정인데 문제는 고작 15살밖에 안 된 아이들을 사형에 처한다고 이란 정부를 비난한다.
2019년에도 17세 소년 2명을 채찍질한 다음 사형선고도 하지않고 비밀리에 처형했다.
이는 이란에서 만 15세 이상을 성인으로 분류했기에 이게 가능하다.
또한 대부분 사형이 집행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소식을 들으며 더 심한 경우엔 가족들이 사형집행 후 수일, 또는 수주가 지난 뒤에 생사를 알게 된다.
실제로 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언제라도 교수형이 집행될 수 있는 상태일 정도로 수감자에 대한 처우가 매우 나쁜 상태다.
또한 여성 죄수의 경우 처녀는 사형을 시키지 않는 법 때문에 사형 전에 교도관과 강제로 결혼식을 올리고 강간한 다음 처형하기도 한다.
그래서 종파만 시아파인 다에시가 따로없다.
이란의 사형은 교수형으로 집행하는데 척추를 부러트리는 롱드롭 방식도 아니고 공개처형이라 피형자에 대한 처우가 매우 나쁘다.
상황에 따라서는 크레인으로 교수용 밧줄을 끌어 올려 죽인다.
사실 이란이 사형수를 롱드롭으로 안 죽이는 이유는 일부러 고통을 줘서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고정적인 사형집행장을 만들어두지 않아서 그렇다.
사형이 확정되면 신속하게 날짜랑 장소 정하고 하루 만에 뚝딱 사형집행장을 가설하고 끝나면 바로 해체한다.
롱드롭 방식 교수형으로 처형하려면 구조상 고정 시설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사형집행이 실패해서 살아나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이 경우 율법해석을 통해 살인 등 중대범죄에 속하지 않으면 적당히 감형해 주기도 한다.
아무튼 이토록 억압적인 사회라 이를 견디지 못한 많은 이란인들이 해외로 이민한다.
특히 이란은 두뇌유출이 심하며 고학력자와 청년일수록 억압적인 조국의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싶은 욕망이 강해서 해외로 이민을 가고 싶어한다.
현재 해외에 거주하는 이란인들은 약 400만이며 주로 영미권과 유럽에 많다.
그러다보니 해외에 사는 이란인은 세속주의 성향이 강하다.
여성들의 경우 자국과 달리 베일을 안하며 서구적으로 꾸민다.
이민을 못 하는 사람은 아예 이란을 탈출하여 난민이 되는데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난민 중에 이란에서 온 난민도 있다.
해외의 이란인들은 'United for Iran' 같은 이란 난민 신문을 만들어 이란의 인권탄압을 국제사회에 고발하고 이란인들의 인권운동과 이란 난민에 대한 구제에 애쓴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갈수록 커져 2016년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시민 권리 장전'을 선언한다 하지만 이란의 신정체제가 근본적인 문제라 로하니 대통령의 선언이 제대로 지켜질 것이라고 국제사회와 이란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게다가 종교국가인 이란은 라흐바르의 말이 법이지 정부 수반에 불과한 이란 대통령의 선언은 그 무게가 떨어진다.
이란의 현실이 이런데 이란이 이웃 아랍 국가들보다 개방적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한국 웹에 퍼져 있다.
이란 젊은이가 SNS 등에 올린 서구 스타일 파티 사진을 보고 이란을 개방적인 국가라고 판단하면 이는 어이없는 오류다.
그런 걸 올리는 거 자체가 이란 사회에서는 일탈이며 도덕경찰이 눈씻고 찾는다.
그 파티를 안 보이는 곳에서 몰래 연다.
젊은이의 '일탈'은 결국 이런 식으로 끝나기도 한다.
또한 인터넷은 검열당하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SNS는 VPN으로 우회해서 접속한다.
과거 한국 사례처럼 두발 단속을 하고 2014년 퍼렐 윌리엄스에게 헌정하는 팬메이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체포됐다.
기사 2017년 찢어진 청바지를 단속했다.
이렇게 개방적인 것과 거리가 먼 모습을 이란에서 쉽게 본다.
도덕경찰에게 걸려서 태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례가 많다.
이란 이슬람 혁명 전이면 몰라도 아랍 나라보다 이란이 융통성 있고 개방적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사회나 문화가 개방적인 걸로 따지면 이집트는 비록 독재국가지만 정부의 강력한 세속 정책과 맞물려 문화 산업과 연예계가 발전해 아랍 전역에 영상 매체를 수출한다.
아랍 국가들중 세속화와 개방도의 끝판왕인 레바논 과는 비교가 불가능하고 이란과 비교 가능하거나 혹은 더 억압적인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도다.
우리에게 이슬람 막장 나라라고 알려진 이란의 이웃국가 파키스탄은 적어도 대도시 지역들은 이란에 비하면 훨씬 세속적이고 정상적이다.
도덕 경찰이 존재한다는자체가 개방적인 거와 거리가 멀다.
중동 종교경찰의 양대산맥이 이란의 도덕 경찰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타와다.
다만 사우디의 종교 경찰은 2020년대 들어서는 히잡을 안했다고 연행하지는 않는다.
미혼 남녀의 길거리 애정행각을 잡고 음란물을 규제하는 정도다.
하지만 이란의 종교 경찰은 2022년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흐사 아미니를 연행해 사망케 함으로써 2022년 이란 시위를 촉발시켰다.
언론의 자유도 물론 없다.
언론자유지수 지도를 보면 2022년 기준으로 178위며 이란은 중동의 대표적인 독재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등과 함께 새까맣게 칠해져 있다.
특히 2020년에 반정부 시위를 보도하여 프랑스로 망명한 자국의 언론인을 납치하여 이란으로 끌고와 사형에 처했다.
2022년 9월 한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않았다는 이유로 사설 경찰에게 끌려간 뒤 맞아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가뜩이나 경제난으로 인해 쌓여온 불만이 이 사건으로 폭발하여 탈히잡 시위와 2022년 9월 이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다.
그나마 정권에 따라 사회 분위기나 색깔도 조금씩 변하지만 그래봤자 사우디아라비아와 탈레반 집권 하의 이웃나라 아프가니스탄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다.
1979년 이전 팔라비 왕조 시절에 백색혁명으로 여성이 참정권, 교육권을 얻고 사회진출도 하며 서구 문화도 어느정도 들어온다.
부패한 전제왕정을 무너뜨린 것은 좋았지만 이슬람 국가로 회귀한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공공장소에서의 공연을 법으로 금지하며 심지어 국영 방송에서도 음악 연주장면을 거의 방영하지 않는다.
성차별도 심각해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과 소수민족, 타종교 여성에게까지 히잡을 비롯한 이슬람 복식을 강요한다.
심지어 SNS상에서도 여성은 히잡 쓴 사진만 올리게 하며 쓰지 않은 사진을 올릴 경우 처벌한다.
그런데 정작 이란 고위층 자녀는 마음껏 올린다.
특히 이란 여성들은 스포츠경기 관람 등 공공장소에서의 사회활동에 심각한 수준의 제약을 받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6월 남자 배구 경기를 관전했다는 이유로 이란계 영국 여성 변호사인 무함마드 레자 다바르자니와 인권운동가 곤체 가바미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1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2017년 국제배구협회의 압력을 못 이겨 배구 경기에 여성의 입장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성의 스포츠경기 관람을 허용해 유일하게 여성이 경기를 관람할 수 없는 나라였으나 이듬해인 2019년 여성의 경기장 출입을 허용한다.
2022년 현재는 이란도 여성이 자유롭게 경기를 관람하게 되었다.
영화와 드라마도 미혼의 남녀 배우가 같이 주연을 맡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하며 반드시 부부배우만이 주연을 맡는다.
이란의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앨범 커버에 나온 여성들을 합성으로 지워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현재 이란에서는 이슬람 신앙생활을 관장하는 별도의 “도덕경찰(گشت ارشاد/gašt-e eršād/Guidance Patrol)”이 따로 있어서 인권을 탄압한다.
특히 도덕경찰들의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가 심해 여성이 음악에 맞춰 춤추는 동영상을 올렸다고 태형을 하며 여성이 진하게 화장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복장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여성을 단속하고 그 자리에서 매질까지 하며 또 복장에 문제가 클 경우 거액의 벌금과 함께 채찍형에 처한다.
심지어 파티장까지 급습한다.
또 이란은 국내의 공공장소에서 춤과 노래도 금지한다.
(다만 결혼식이나 노루즈라고 부르는 새해에는 집안이나 공터에서 밤을 세워가며 춤을 춘다) 언급했듯이 이란에서는 단순히 남자 배구경기를 관전했을 뿐인 영국계 여성을 샤리아를 어겼다면서 체포하고 징역형으로 처벌하고 월드컵에서 자국을 응원하며 춤추고 노래한 사람들을 타락했다며 체포했다.
또한 이란 여배우 골쉬프테 파라하니가 누드화보를 찍자 이에 이란 정부는 “그녀의 가슴을 잘라내서 아버지에게 전달하겠다”라는 망언을 했다.
결국 골쉬프테 파라하니는 망명을 가 프랑스인이 되었다.
2015년 9월에는 이란 사법 당국이 이성과 악수했다는 이유로 남녀에게 각각 99대의 채찍질을 선고해서 국제사회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실제로 여러 인권 단체들에 의하면 이란에서 친족 이외의 이성과 악수하는 것을 “간통까지는 아니지만 적절치 않은 성적 행위”로 간주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2015년 3월 이란 의회가 출산율을 높여 인구를 늘리기 위한 대책이 비난받는데 바로 피임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한것이다.
여성 인권을 침해한다는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이 법안은 하메네이가 2012년 7월에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가 심각하기에 머지않아 인구감소가 시작될 것이라서 현재 8천만 명 정도의 인구를 향후 50년간 배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입법 움직임이 일었는데 하메네이는 당시 "부부가 왜 아이를 1~2명만 낳거나 아예 출산하지 않으려 하는지 이유를 연구해봐야 한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머지 않아 이란은 '노인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법으로 이제부터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정관 절제 수술 등의 영구 피임을 위한 수술을 금지하고 이 법을 위반한 의사는 엄청난 처벌을 받는다.
또한 출산하지 않은 여성에게 취업 시 불이익을 주는 법안도 통과될 예정이다.
이 법안을 통과하면 고용주는 1순위로 아이 있는 남성 2순위로 아이 없는 남성 3순위로 아이 있는 여성 4순위로 아이 없는 여성을 고용해야 한다.
또 이란 정부는 정부가 지원하는 가족계획 프로그램을 없애고 이혼 절차를 어렵게 하는 등 출산 촉진책도 병행한다.
한마디로 정부가 국민에게 출산을 강요하는 것이다.
사실 이란도 출산율이 상당히 낮고 고령화도 빠르고 인구감소가 일어나 골칫거리다.
그래서 이란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추진한 건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기는 한데 강압적으로 해 문제다.
국제앰네스티는 2015년 3월 11일 이 두 법안에 대해 “이란 여성의 권리를 수십 년 전으로 후퇴시킬 것"이라고 했으며 “이란 정부가 여성의 핵심 권리를 박탈해 여성을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기본권을 가진 인격체가 아닌 ‘애낳는 기계’로 전락시킨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이란의 청년층은 실업과 고물가로 생활고에 시달려 출산을 많이 할 수 없다.
이런 판국에 강제로 하려고 하니 해결이 안 된다.
이란의 법 집행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샤리아법이라 마구잡이식으로 이루어져 억울한 옥살이를 하며 희한한 해석도 많다.
대표적으로 정당방위로 칼을 휘두른 20대 여성을 교수형에 처한 사건이 있다.
이란 사법 당국은 2014년 10월 28일 레이하네 자바리(26. 1987년생)에게 살인혐의로 교수형을 집행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자바리는 10대였던 2007년 이란 정보기관 요원 출신인 사르반디에게 취업 제안을 받고 집에 따라가 성폭행을 당할 뻔했는데 자바리는 성폭행을 피하려 갖고 있던 칼을 휘둘렀다.
경찰에 체포된 자바리는 재판에서 모두 정방방위이며 성폭행 당하려는 자신을 보호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자바리의 계획된 범행으로 봐 성인이라는 이유로 2009년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여러 인권단체들은 그녀가 사르반디를 죽였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재심을 요구했으며 국제 앰네스티는 자바리의 범행이 아닌 정체불명의 남자가 등장해 사르반디를 죽였다고 했으나 이란 정부의 거부로 재조사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국제 앰네스티는 “이 처형은 이란 인권 역사에 핏자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이란 정부를 비난했다.
기사 2016년에는 시스탄-발루치스탄 주에서 한 마을의 성인 남성 전원을 마약 혐의로 처형했다.
잔혹한 전근대적 형벌을 폐지하지 않고 여전히 시행하고 있어 문제다.
브뤼셀의 투석형 반대 퍼포먼스에 참여한 이란계 여인. 이 사진은 퍼포먼스이지만 실제로 이란 및 서아시아에서는 종종 저렇게 여자를 땅에 묻고 머리만 쳐서 죽인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가 강한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란 재판부는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몇몇 여성들에게 여성을 어깨까지 묻은 후 죽을 때까지 돌을 던져 결국 사망하도록 하는 투석형을 내린것이다.
2015년 한 여성은 남편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런 투석형을 당해 결국 엄청난 고통 속에 사망했다.
심지어 이란 정부가 세계 인권의 날(International Human Rights Day)에 이토록 잔인하게 한 여성에게 투석형을 선고해 죽게 한 것은 국내외로 큰 공분을 산다.
영국의 인권보호센터(Human Security Center)의 총무인 줄리 레나즈(Julie Lenarz)는 앞서 예루살렘 포스트(Jerusalem Post)에 "이란법에서 여성들은 간음죄에 대해 투석형을 선고하고 있고, 청소년들의 처형도 허용한다"면서 "이란에서는 매일 3명의 교수형이 집행되고 있으며 인권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불량국가(pariah state)"라고 비난했다 기사절단기로 손이 잘리는 사람이란에서 범죄자의 손가락을 자르는 형벌이 공개적으로 추진되어 논란이 됐었는데 실제로 집행하는 장면을 공개하여 집행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상에서는 대중이 모인 광장에서 눈을 가린 남성이 복면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집행관 2명에 붙잡혀 손가락 절단기에 손을 올려놓았으며 나머지 한 명이 절단기 장치에 부착된 핸들을 돌려 남자의 손가락을 잘랐다.
이후 남자의 피 묻은 손가락은 요오드에 담겨져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됐다.
이란 정부는 형이 집행되기 전 약을 먹어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하나 이 영상은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고 전세계에서 너무나 잔혹하며 도가 지나쳤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또 이란은 언론 탄압이 극심하다.
2019년 기준으로 언론자유지수가 170위로 세계 최하위권이며 현재 이란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언론인들과 사회 활동가들이 구금돼 있는데 이란은 언론 자유를 탄압해 중국에 이어 가장 많은 30명의 언론인을 투옥한 상태라고 인권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는 밝혔다.
실제로 워싱턴 포스트 제이슨 레자이언은 이란의 국가 안보에 반하는 행동을 한 간첩 혐의로 체포돼 1년 넘게 수감돼 있으며 이란 정보 당국이 ‘세계인권의 날’인 2014년 11월 10일 유명 여성 인권변호사 나스린 소투데를 이유도 밝히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체포해 구금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고작 몇 사례에 불과할 정도로 많은 기자들이 이란에 의해 불법적으로 구금돼 있다.
특히 이란에서 진보적이라는 언론사 카르고자란 신문사도 틈만 나면 이란 정부에게 탄압을 받는데, 카르고자란 신문은 2009년 1월에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저지르는 인권침해를 비판해 이란 정부에 의해 정간당하고 이 비판 글을 쓴 기자가 체포되었다.
이유도 기가 막힌 게 단순히 하마스의 인권침해가 너무 심하다고만 했는데 이것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정당화하고 하마스와 무장단체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다고 했다.
2020년에 이란 체제와 인권탄압을 비판한 언론인 루홀라 잠을 체포하려다 그가 프랑스로 망명하자 프랑스까지 쫓아가 납치하여 강제로 끌고와 재판에 세웠는데 1심 법원이 사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에서도 사형선고 받은지 나흘 만에 사형에 처해버려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학문의 자유도 허용하지 않고 심각하게 탄압한다.
, 이란의 시인 에크테사리와 무사비는 신성 모독 내용을 담은 책을 썼다는 혐의로 각각 11년 6개월과 9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책을 발간하기 전에 이란 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았고 결정적으로 이들이 증언하기로 신성 모독 혐의에 대한 자백을 고문까지 이뤄진 강압적인 수사 아래서 했다고 한다.
또한 두 시인과 유사한 혐의가 적용된 영화 제작자 카이반 카리미 역시 최근 6년 징역형 및 223대의 채찍질형을 선고 받았다고 미국에 있는 인권단체인 ‘이란의 인권을 위한 국제 캠페인’ 측이 밝혔다.
또한 이란에서는 영화산업에 대한 이슬람의 지나친 규제에 대해서 비판하는 작품을 찍었는데, 그 영화에 나온 여배우에게 태형 90대와 징역 1년을 선고하는 막장 독재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악마의 시를 지어 호메이니를 화나게 만든 인도계 영국인 살만 루시디도 이단으로 취급해 아직도 사형선고를 취소하지 않고 있으며 루시디가 정신질환자에게 피습당했을때 자업자득이라며 대놓고 모욕하는 행태를 보였다.
국경없는 기자회의 일원인 모이니는 이란에서 단순히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언론인이 200여 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란 교도소의 인권침해도 심각한데 카르지 지역에 있는 고하르다스트 교도소의 상황을 폭로한 이란의 한 정치범은 포화상태의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것을 지옥과 인간 재앙으로 표현했다.
이란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있는 한 정치범은 공개서한에서 이를 폭로했는데 이란 교도소의 수감자 학대가 심각하며 수감자는 벌거벗은 채로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이에 물린 붉은 자국아 온몸에 가득하다고 말했다.
교도소 안은 더럽고 오염된 공기와 쓰레기가 썩는 냄새 그리고 막힌 변기에서 나온 오물과 식중독 환자가 뱉어 놓은 토사물과 가래로 가득한 비참한 환경이라고 한다.
이란에서 망명을 와서 캐나다의 왕립군사대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하우창 하싼-야리 교수는 많은 수감자의 가족이 이와 비슷한 상황을 전한다고 해 이 정치범의 말은 사실로 보인다.
이란의 정치범은 신선한 공기와 제대로 된 음식 또는 의약품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며 심지어 이란 교도소 측은 거의 대부분의 수감자들에게 잠을 재우지 않고 목욕도 못하게 하며 정신적, 신체적 고문까지 하고 있다고 하싼-야리가 말했다.
이란의 사형제도 역시 문제가 심각하다.
이란은 2014년 세계에서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사형에 처했다.
이란 정부가 마약사범 척결에 나서서 2015년 7월까지 이란의 사형자 수가 최소 694명으로 역대 최고치였던 2014년의 753명에 육박하며 2015년 안에 1000명을 넘을 수 있다고 아흐메드 샤히드 유엔 이란인권 특별보고관이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밝혔다.
현재 이란의 사형 문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가장 심각한데 이란 정부는 흉악범과 마약사범에 대해서는 사형을 원칙으로 하기에 이렇게 사형수가 많은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여러 인권 단체들은 모두 거짓이며 실제로는 정치범에게 마약 사범이라는 누명을 씌워 사형에 처하거나 정치범들이 마약사범으로 처리되어 사형당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법원에 의해 형이 선고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모호하게 표현하고 지나치게 광범위한 범죄나 또는 범죄화조차 되어서는 안 되는 행위에도 사형이 선고되고 있다고 밝혔으며 이란에서 피고인이 조사 단계에서 변호사 접견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항소, 사면, 감형 절차도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아 사법 살인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또 이란에서 처형된 사형수 중에는 '신에 대한 적대'와 '세속적 타락' 혐의로 유죄가 선고된 쿠르드족 정치범과 수니파 이슬람교도, 배화교, 바하이교, 발루치족 등의 소수민족과 소수종교 및 친서방, 세속주의자, 무신론자, 동성애자도 있다.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의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이란에서 복역 중인 사형수는 수천여 명에 이른다.
이란 정부는 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의 80%가 마약사범이라고 밝혔지만 정확한 숫자는 공개하지 않으며 여러 증언에 의하면 마약 사범이라는 누명 아래 사형당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심지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도 사법살인을 당한다.
국제 앰네스티에 따르면 2015년 소년범 160명 이상이 이란에서 사형 집행을 받을 예정인데 문제는 고작 15살밖에 안 된 아이들을 사형에 처한다고 이란 정부를 비난한다.
2019년에도 17세 소년 2명을 채찍질한 다음 사형선고도 하지않고 비밀리에 처형했다.
이는 이란에서 만 15세 이상을 성인으로 분류했기에 이게 가능하다.
또한 대부분 사형이 집행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소식을 들으며 더 심한 경우엔 가족들이 사형집행 후 수일, 또는 수주가 지난 뒤에 생사를 알게 된다.
실제로 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언제라도 교수형이 집행될 수 있는 상태일 정도로 수감자에 대한 처우가 매우 나쁜 상태다.
또한 여성 죄수의 경우 처녀는 사형을 시키지 않는 법 때문에 사형 전에 교도관과 강제로 결혼식을 올리고 강간한 다음 처형하기도 한다.
그래서 종파만 시아파인 다에시가 따로없다.
이란의 사형은 교수형으로 집행하는데 척추를 부러트리는 롱드롭 방식도 아니고 공개처형이라 피형자에 대한 처우가 매우 나쁘다.
상황에 따라서는 크레인으로 교수용 밧줄을 끌어 올려 죽인다.
사실 이란이 사형수를 롱드롭으로 안 죽이는 이유는 일부러 고통을 줘서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고정적인 사형집행장을 만들어두지 않아서 그렇다.
사형이 확정되면 신속하게 날짜랑 장소 정하고 하루 만에 뚝딱 사형집행장을 가설하고 끝나면 바로 해체한다.
롱드롭 방식 교수형으로 처형하려면 구조상 고정 시설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사형집행이 실패해서 살아나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이 경우 율법해석을 통해 살인 등 중대범죄에 속하지 않으면 적당히 감형해 주기도 한다.
아무튼 이토록 억압적인 사회라 이를 견디지 못한 많은 이란인들이 해외로 이민한다.
특히 이란은 두뇌유출이 심하며 고학력자와 청년일수록 억압적인 조국의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싶은 욕망이 강해서 해외로 이민을 가고 싶어한다.
현재 해외에 거주하는 이란인들은 약 400만이며 주로 영미권과 유럽에 많다.
그러다보니 해외에 사는 이란인은 세속주의 성향이 강하다.
여성들의 경우 자국과 달리 베일을 안하며 서구적으로 꾸민다.
이민을 못 하는 사람은 아예 이란을 탈출하여 난민이 되는데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난민 중에 이란에서 온 난민도 있다.
해외의 이란인들은 'United for Iran' 같은 이란 난민 신문을 만들어 이란의 인권탄압을 국제사회에 고발하고 이란인들의 인권운동과 이란 난민에 대한 구제에 애쓴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갈수록 커져 2016년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시민 권리 장전'을 선언한다 하지만 이란의 신정체제가 근본적인 문제라 로하니 대통령의 선언이 제대로 지켜질 것이라고 국제사회와 이란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게다가 종교국가인 이란은 라흐바르의 말이 법이지 정부 수반에 불과한 이란 대통령의 선언은 그 무게가 떨어진다.
이란의 현실이 이런데 이란이 이웃 아랍 국가들보다 개방적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한국 웹에 퍼져 있다.
이란 젊은이가 SNS 등에 올린 서구 스타일 파티 사진을 보고 이란을 개방적인 국가라고 판단하면 이는 어이없는 오류다.
그런 걸 올리는 거 자체가 이란 사회에서는 일탈이며 도덕경찰이 눈씻고 찾는다.
그 파티를 안 보이는 곳에서 몰래 연다.
젊은이의 '일탈'은 결국 이런 식으로 끝나기도 한다.
또한 인터넷은 검열당하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SNS는 VPN으로 우회해서 접속한다.
과거 한국 사례처럼 두발 단속을 하고 2014년 퍼렐 윌리엄스에게 헌정하는 팬메이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체포됐다.
기사 2017년 찢어진 청바지를 단속했다.
이렇게 개방적인 것과 거리가 먼 모습을 이란에서 쉽게 본다.
도덕경찰에게 걸려서 태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례가 많다.
이란 이슬람 혁명 전이면 몰라도 아랍 나라보다 이란이 융통성 있고 개방적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사회나 문화가 개방적인 걸로 따지면 이집트는 비록 독재국가지만 정부의 강력한 세속 정책과 맞물려 문화 산업과 연예계가 발전해 아랍 전역에 영상 매체를 수출한다.
아랍 국가들중 세속화와 개방도의 끝판왕인 레바논 과는 비교가 불가능하고 이란과 비교 가능하거나 혹은 더 억압적인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도다.
우리에게 이슬람 막장 나라라고 알려진 이란의 이웃국가 파키스탄은 적어도 대도시 지역들은 이란에 비하면 훨씬 세속적이고 정상적이다.
도덕 경찰이 존재한다는자체가 개방적인 거와 거리가 멀다.
중동 종교경찰의 양대산맥이 이란의 도덕 경찰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타와다.
다만 사우디의 종교 경찰은 2020년대 들어서는 히잡을 안했다고 연행하지는 않는다.
미혼 남녀의 길거리 애정행각을 잡고 음란물을 규제하는 정도다.
하지만 이란의 종교 경찰은 2022년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흐사 아미니를 연행해 사망케 함으로써 2022년 이란 시위를 촉발시켰다.
언론의 자유도 물론 없다.
언론자유지수 지도를 보면 2022년 기준으로 178위며 이란은 중동의 대표적인 독재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등과 함께 새까맣게 칠해져 있다.
특히 2020년에 반정부 시위를 보도하여 프랑스로 망명한 자국의 언론인을 납치하여 이란으로 끌고와 사형에 처했다.
2022년 9월 한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않았다는 이유로 사설 경찰에게 끌려간 뒤 맞아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가뜩이나 경제난으로 인해 쌓여온 불만이 이 사건으로 폭발하여 탈히잡 시위와 2022년 9월 이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다.
3.2. 분리주의
이란은 중동에서도 거대하고 다양한 다민족국가이다 보니까 분리주의 역시 존재한다.
특히 이란에서는 소수민족들이 차별을 받기에 이란의 소수민족들은 이란과 주류민족인 페르시아인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종교와 관련된 민족갈등도 있기는 하지만 시아파를 믿는 소수민족들조차도 페르시아인과 갈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서부 이란령 쿠르디스탄은 쿠르드족의 거주지로서 쿠르드족은 이라크, 터키랑 달리 이란과는 같은 페르시아어족이긴 하나 엄연히 별개의 민족에다가 종교 역시 수니파로 달라 이란으로부터 분리 독립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라크, 터키와 함께 쿠르드족이 100만명 이상으로 많이 거주하는 대표적인 나라. 터키처럼 쿠르드인이나 소수민족 통계를 자세히 하지 않아서 정확한 수치는 불명이지만 인구 8%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도 인구가 8,180만이 넘는 이 나라에선 500~600만에 이르기에 무시못할 수치다.
1946년에는 이라크와 인접한 이란 서부, 마하바드(مهاباد)라는 도시에 '모하바드 공화국(جمهوری مهاباد)'이라는 정부가 잠시 세워져 독립운동이 벌어지긴 했지만 가혹하게 진압해서 터키나 이라크와 달리 저항 세력이 아주 개발살나버렸다.
공교롭게도 쿠르드인 탄압에 팔라비 왕조가 큰 기여를 했던 점도 있다.
더불어 차별도 여전하고 대다수가 서북쪽 춥고 서늘한 산악지대에 모여살아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수준이고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지만, 감시의 눈길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근래에는 잠잠한 편이었으나 2010년대 들어서 다시 쿠르드 무장단체들이 결성되어 이란군과 교전을 벌이는 등 분리주의가 거세지고 있다.
동남부 발루치스탄에는 발루치족이 사는데 이들은 이란과 또다른 지배국인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강력한 운동이 있다.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오만에 분할 편입된 점을 봐서 가히 작은 쿠르드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파키스탄에는 690만 명, 이란에는 156만 명, 오만과 아프간에는 각각 43만 명과 30만 명이 거주한다.
이란의 발루치족은 대부분 시스탄오발루체스탄 주에 산다.
발루치스탄 이란령 쪽으로 가면 수니파 계열 살라피스트 테러리스트가 분포해 있긴 하지만 이들 조직의 지도자 대다수가 사살되어 현재는 별 다른 활동은 없다.
하지만 발루치스탄-시스탄의 주민들이 모두 수니파이며 시아파인 이란 정부에 대한 반감이 굉장하여 이 지역에 발루치 무장단체들이 다시 활개치고 있다.
특히 비민주 국가인 이란 정부는 발루치인들에 대한 처우 개선은 하지 않고 그저 극단적인 정책으로만 토벌하려고 하니 해결은 전혀 되지 않고 발루치 무장단체들은 이란 정부를 계속 게릴라전과 테러로 엿먹이고 있어 이란 정부에게서 골칫거리다.
북서부 아제르 투르크인이 아제르바이잔보다 이란에 더 많아서 역시 분리주의 및 아제르바이잔이랑 페르시아 아제리인이 서로 합쳐서 대아제르바이잔을 이룩하잔 대아제르 투르크주의(통칭 아제리스탄)가 있기도 하지만 발루치, 쿠르드의 분리주의에 비하면 훨씬 미미한 편.서남부 이라크랑의 접경지대 쿠제스탄은 아랍인의 땅이라 분리주의가 있는데 후세인 통치 시기 이라크는 쿠제스탄은 아라비스탄, 호람샤르는 모하마라라 불르면서 이라크의 영토로 주장하며 이란-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현재 이라크의 수니파 후세인 정권이 전복되어 시아파 정권이 세워져 친이란 정책을 펼침에 따라 잦아들은 상태이다.
특히 이란에서는 소수민족들이 차별을 받기에 이란의 소수민족들은 이란과 주류민족인 페르시아인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종교와 관련된 민족갈등도 있기는 하지만 시아파를 믿는 소수민족들조차도 페르시아인과 갈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서부 이란령 쿠르디스탄은 쿠르드족의 거주지로서 쿠르드족은 이라크, 터키랑 달리 이란과는 같은 페르시아어족이긴 하나 엄연히 별개의 민족에다가 종교 역시 수니파로 달라 이란으로부터 분리 독립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라크, 터키와 함께 쿠르드족이 100만명 이상으로 많이 거주하는 대표적인 나라. 터키처럼 쿠르드인이나 소수민족 통계를 자세히 하지 않아서 정확한 수치는 불명이지만 인구 8%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도 인구가 8,180만이 넘는 이 나라에선 500~600만에 이르기에 무시못할 수치다.
1946년에는 이라크와 인접한 이란 서부, 마하바드(مهاباد)라는 도시에 '모하바드 공화국(جمهوری مهاباد)'이라는 정부가 잠시 세워져 독립운동이 벌어지긴 했지만 가혹하게 진압해서 터키나 이라크와 달리 저항 세력이 아주 개발살나버렸다.
공교롭게도 쿠르드인 탄압에 팔라비 왕조가 큰 기여를 했던 점도 있다.
더불어 차별도 여전하고 대다수가 서북쪽 춥고 서늘한 산악지대에 모여살아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수준이고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지만, 감시의 눈길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근래에는 잠잠한 편이었으나 2010년대 들어서 다시 쿠르드 무장단체들이 결성되어 이란군과 교전을 벌이는 등 분리주의가 거세지고 있다.
동남부 발루치스탄에는 발루치족이 사는데 이들은 이란과 또다른 지배국인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강력한 운동이 있다.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오만에 분할 편입된 점을 봐서 가히 작은 쿠르드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파키스탄에는 690만 명, 이란에는 156만 명, 오만과 아프간에는 각각 43만 명과 30만 명이 거주한다.
이란의 발루치족은 대부분 시스탄오발루체스탄 주에 산다.
발루치스탄 이란령 쪽으로 가면 수니파 계열 살라피스트 테러리스트가 분포해 있긴 하지만 이들 조직의 지도자 대다수가 사살되어 현재는 별 다른 활동은 없다.
하지만 발루치스탄-시스탄의 주민들이 모두 수니파이며 시아파인 이란 정부에 대한 반감이 굉장하여 이 지역에 발루치 무장단체들이 다시 활개치고 있다.
특히 비민주 국가인 이란 정부는 발루치인들에 대한 처우 개선은 하지 않고 그저 극단적인 정책으로만 토벌하려고 하니 해결은 전혀 되지 않고 발루치 무장단체들은 이란 정부를 계속 게릴라전과 테러로 엿먹이고 있어 이란 정부에게서 골칫거리다.
북서부 아제르 투르크인이 아제르바이잔보다 이란에 더 많아서 역시 분리주의 및 아제르바이잔이랑 페르시아 아제리인이 서로 합쳐서 대아제르바이잔을 이룩하잔 대아제르 투르크주의(통칭 아제리스탄)가 있기도 하지만 발루치, 쿠르드의 분리주의에 비하면 훨씬 미미한 편.서남부 이라크랑의 접경지대 쿠제스탄은 아랍인의 땅이라 분리주의가 있는데 후세인 통치 시기 이라크는 쿠제스탄은 아라비스탄, 호람샤르는 모하마라라 불르면서 이라크의 영토로 주장하며 이란-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현재 이라크의 수니파 후세인 정권이 전복되어 시아파 정권이 세워져 친이란 정책을 펼침에 따라 잦아들은 상태이다.
3.3. 국적법
- 이란인은 25세 전까지 이란 국적을 포기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국가로 귀화하고자 하는 25세 이하의 이란인은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다만 대한민국과 독일은 25세 이하의 이란 국적자가 귀화를 신청하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본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로 분류하여, 이란 국적을 유지하면서 자국 국적을 취득하여 복수국적을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 이란인과 결혼한 여성 외국인 배우자는 비자발적으로 이란 국적을 부여받게 된다. 한국인 여성이 이런 케이스에 해당하게 된다면, 대한민국 국적법이 대한민국 국적 자동 상실을 규정한 “외국 국적 자진 취득”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나이와 상관없이 6개월 이내 국적보유신고를 하면 대한민국 국적이 소멸되지 않으며, 한국과 이란의 이중국적을 2년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2년 이내로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고 한국과 이란의 이중국적을 평생 허용받거나 또는 하나의 국적만을 선택할 수도 있다.
4. 문화
이란을 얘기할 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란은 아랍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래 내용에도 아랍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지만 이란과 아랍권은 오랫동안 대립하는 문명권이었다.
이란은 한때 페르시아 제국의 지위를 누렸고 인종도 언어도 문화도 산업도 다르다.
이란을 아랍권이라고 부르는 건 마치 한국인이나 일본인을 중화권 민족으로 취급하는 것과 같은 실례이고 이란인은 화를 낸다.
이란은 아리아인 계통의 농경민족이고 이란의 공용어인 페르시아어는 인도이란어파 계통이다.
반면 아랍인은 셈족 계통의 인종이고 전통적으로 유목민족이었고 아랍어는 셈어파 계통이다.
또한 아랍인은 주로 아프리카 북부, 아라비아반도 주변에 한정돼 분포하지만 이란인종은 페르시아인 외에도 터키의 쿠르드족,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인, 파미르 고원의 파미르인과 같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종교와 사용 문자에 있어서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긴 하나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이고 (시아파는 그외 이라크에도 많고 아프간, 예멘 등에 일부 흩어져 있다) 아랍의 수니파 (이란, 이라크 외 대부분의 아랍 이슬람국 들) 와 크게 대립을 하고 있다.
즉 이란은 이슬람국이지만 아랍국은 아니다.
이란과 아랍의 관계는 터키와 아랍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문명권이라고 보면 된다.
이란에는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을 좋아하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만날 때마다 안부인사를 몇 차례나 주고받고, 처이(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모습은 이런 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란인들의 차 사랑은 각별하다.
어디를 가든 차는 빠지지 않는다.
친구네 집에 놀러가도 마시고, 가게에 물건 사러 갔다가 마시고, 버스 운전하면서도 마시고, 짬이 나면 설탕이나 사탕을 듬뿍 넣은 차를 시도때도 없이 마신다.
버스 제일 앞자리에 앉으면 차장이 차 같이 마시자고 주기도 한다.
택시에서도 준다.
심지어 여자를 꼬실 때도 차 마시고 갈래?라니 말 다했다.
손님 대접에 큰 신경을 쓰며, 아직도 시골동네에 놀러가면 나를 초대한 친구의 가족들은 물론 거짓말 조금 보태 근처에 사는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몰려와 함께 밥을 먹고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낸다.
외부인에게 뭔가 베푸는 일에 주저함이 없는 편인데, 돌아다니다가 곤란에 처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생면부지의 현지인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날이 갈수록 다른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될 정도의 호의가 일상적으로 오고간다.
몇 번 받다 보면 내가 다 미안해질 정도.물론 지역에 따라 온도차는 조금씩 있다.
또한 우리나라도 과거에 길손들에게 일상적으로 호의를 베풀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하자면, 이란의 이런 문화도 도시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조금씩 약해질 듯 하다.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도 강한데, 우리나라의 빈말과 유사한 '터로프'가 대화에 일상적으로 묻어난다.
가면을 쓰고 자기의 본심과는 다르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어, 진심으로 편의를 봐주는 줄 알고 덥썩 물었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즉, "우리집에서 편하게 있어~"라고 하길래 정말로 남의 집에 드러눕고 편하게 있다가는 집주인의 뚜껑이 열릴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한국인의 정서와 유사한 구석이 꽤 있어 흠칫 놀랄 때가 많다.
물론 이러한 정서는 2020년대에 들어선 현재는 중장년층 이상의 이란인에게서 한정적으로 나타난다.
난방시설은 일본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바로 '코르시'(کرسی)인데 겨울이 되면 탁자 밑에 불을 때는 장치를 설치하고 그 위를 카페트로 덮은 뒤, 그 안에 다리를 집어넣고 석류를 까먹는다는 것. 고타쓰와 아주 비슷하다.
(사진)다.
아래 내용에도 아랍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지만 이란과 아랍권은 오랫동안 대립하는 문명권이었다.
이란은 한때 페르시아 제국의 지위를 누렸고 인종도 언어도 문화도 산업도 다르다.
이란을 아랍권이라고 부르는 건 마치 한국인이나 일본인을 중화권 민족으로 취급하는 것과 같은 실례이고 이란인은 화를 낸다.
이란은 아리아인 계통의 농경민족이고 이란의 공용어인 페르시아어는 인도이란어파 계통이다.
반면 아랍인은 셈족 계통의 인종이고 전통적으로 유목민족이었고 아랍어는 셈어파 계통이다.
또한 아랍인은 주로 아프리카 북부, 아라비아반도 주변에 한정돼 분포하지만 이란인종은 페르시아인 외에도 터키의 쿠르드족,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인, 파미르 고원의 파미르인과 같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종교와 사용 문자에 있어서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긴 하나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이고 (시아파는 그외 이라크에도 많고 아프간, 예멘 등에 일부 흩어져 있다) 아랍의 수니파 (이란, 이라크 외 대부분의 아랍 이슬람국 들) 와 크게 대립을 하고 있다.
즉 이란은 이슬람국이지만 아랍국은 아니다.
이란과 아랍의 관계는 터키와 아랍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문명권이라고 보면 된다.
이란에는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을 좋아하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만날 때마다 안부인사를 몇 차례나 주고받고, 처이(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모습은 이런 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란인들의 차 사랑은 각별하다.
어디를 가든 차는 빠지지 않는다.
친구네 집에 놀러가도 마시고, 가게에 물건 사러 갔다가 마시고, 버스 운전하면서도 마시고, 짬이 나면 설탕이나 사탕을 듬뿍 넣은 차를 시도때도 없이 마신다.
버스 제일 앞자리에 앉으면 차장이 차 같이 마시자고 주기도 한다.
택시에서도 준다.
심지어 여자를 꼬실 때도 차 마시고 갈래?라니 말 다했다.
손님 대접에 큰 신경을 쓰며, 아직도 시골동네에 놀러가면 나를 초대한 친구의 가족들은 물론 거짓말 조금 보태 근처에 사는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몰려와 함께 밥을 먹고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낸다.
외부인에게 뭔가 베푸는 일에 주저함이 없는 편인데, 돌아다니다가 곤란에 처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생면부지의 현지인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날이 갈수록 다른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될 정도의 호의가 일상적으로 오고간다.
몇 번 받다 보면 내가 다 미안해질 정도.물론 지역에 따라 온도차는 조금씩 있다.
또한 우리나라도 과거에 길손들에게 일상적으로 호의를 베풀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하자면, 이란의 이런 문화도 도시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조금씩 약해질 듯 하다.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도 강한데, 우리나라의 빈말과 유사한 '터로프'가 대화에 일상적으로 묻어난다.
가면을 쓰고 자기의 본심과는 다르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어, 진심으로 편의를 봐주는 줄 알고 덥썩 물었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즉, "우리집에서 편하게 있어~"라고 하길래 정말로 남의 집에 드러눕고 편하게 있다가는 집주인의 뚜껑이 열릴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한국인의 정서와 유사한 구석이 꽤 있어 흠칫 놀랄 때가 많다.
물론 이러한 정서는 2020년대에 들어선 현재는 중장년층 이상의 이란인에게서 한정적으로 나타난다.
난방시설은 일본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바로 '코르시'(کرسی)인데 겨울이 되면 탁자 밑에 불을 때는 장치를 설치하고 그 위를 카페트로 덮은 뒤, 그 안에 다리를 집어넣고 석류를 까먹는다는 것. 고타쓰와 아주 비슷하다.
(사진)다.
4.1. 문학
페르시아어 및 페르시아 문자는 중동 지역의 유구한 전통 링구아 프랑카(국제어)로 이슬람 세계의 지식인의 언어와 문자로 쓰였다.
특히 이란 사람들은 시와 수필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가끔 뉴스 아나운서가 시를 한 수 읊는다든가, 태풍 등의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유명한 시인의 생가가 무사한지의 소식을 꼭 전하거나 시인의 묘에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을 지경. 실제로 피르다우시, 하페즈, 오마르 하이염, 사디, 잘랄 웃 딘 루미 등 전통적으로 유명한 시인을 수없이 배출해낸 나라.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오마르 하이염의 시집 <로버이여트>는 19세기에 서구에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루미의 시집은 페르시아어로 된 쿠란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란의 영화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시선(詩仙) 이태백이 이란계라는 설마저 있다.
그 외에도 중동인들은 시를 매우 사랑하여 시 낭송으로만 이루어진 오디션 프로그램도 있다.
특히 이란 사람들은 시와 수필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가끔 뉴스 아나운서가 시를 한 수 읊는다든가, 태풍 등의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유명한 시인의 생가가 무사한지의 소식을 꼭 전하거나 시인의 묘에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을 지경. 실제로 피르다우시, 하페즈, 오마르 하이염, 사디, 잘랄 웃 딘 루미 등 전통적으로 유명한 시인을 수없이 배출해낸 나라.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오마르 하이염의 시집 <로버이여트>는 19세기에 서구에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루미의 시집은 페르시아어로 된 쿠란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란의 영화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시선(詩仙) 이태백이 이란계라는 설마저 있다.
그 외에도 중동인들은 시를 매우 사랑하여 시 낭송으로만 이루어진 오디션 프로그램도 있다.
4.2. 종교
표면적으로는 신정국가답게 인구의 99.4%가 통계상으로는 이슬람을 믿는다.
국교는 시아파(시아파 중의 12이맘파)로 정해져 있고, 이란의 전체 인구 중 시아파가 인구 91.5%로 주류를 이루며, 수니파가 7.9%를 차지한다.
전세계 시아파의 본좌 국가로 시아파 인구 70%가 이란에 산다.
이란은 사파비 제국의 발흥으로 인구의 다수가 시아파가 되면서 시아파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만다야교, 바하이교나 조로아스터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에 유대교 등 많은 소수종교가 있다.
물론 이들은 차별을 받긴 하지만 요즘은 그래도 상황이 좀 나아졌다고 한다.
국가 공인 종교는 이슬람(시아파, 수니파), 기독교, 유대교, 조로아스터교이나, 이들은 극소수이며, 샤리아법 때문에 비이슬람 종교로의 개종도 전면금지인데다 그나마도 허울만 좋은 종교권리 보장과 계속되는 실질적 박해 때문에 상당수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수니 이슬람 신자들이 이란을 떠나 망명했다.
조로아스터교는 이란이 이슬람화된 이후부터 인도로 주로 망명해온 역사가 있다.
최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이스파한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반크 성당도 있는데, 아르메니아인들이 와서 수르프 바다락(성찬예배)을 보게 한다.
물론 오래전부터 살아오던 기독교인들에게 한하여 많이 개방적일 뿐, 외국 선교사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건 같다.
1979년 혁명 당시에는 이란 전국에서 가톨릭 사제 및 개신교 목사들이 살해당하며 성당들을 불태우는 테러가 벌어졌음에도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성당들은 대체로 무사했다.
이는 아르메니아인들이 팔라비 왕조 시절 유대인 우대정책 덕에 도외시된 점에 호메이니를 지지했던 점이 컸다.
그래서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소속 성당들이 많이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막상 가본 기독교 계열 선교사들이 이란은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아라비아, 터키에 견주면 기독교에 대하여 꽤 양호한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가톨릭이나 정교회, 개신교 종파들도 소수 존재한다.
물론 이슬람 근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선교 때문에 선교만큼은 절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이란은 종교의 자유가 없으며 악명 높은 종교 탄압국이다.
유대교 역시 이란에서는 배척받는다.
이란은 대표적인 기독교 탄압국으로 오픈도어선교회의 ‘세계 기독교 박해 순위(WWL·World Watch List)’에서도 9위에 올라 있다.
다만 사우디처럼 개종자를 마구 처형하는 일은 그나마 드물고, 대부분 징역형을 선고하는데, 문제는 이게 장기간 복역하는 중형이다.
게다가 이란은 배교와 개종을 금지하며 중죄로 다스리고 있다.
실제로 이란 법원은 이슬람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18명에게 최대 24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현재 이란에서 선교활동은 금지되며, 외국인 선교사는 입국금지에다 선교가 적발될 시 무조건 추방이다.
특히 페르시아어로 이루어지는 경우에 더 심각하다면서 기독교 전교에서 성경 공부 또는 성경이나 기독교 서적을 발간하거나 설교하는 것이 모두 불법이다.
2014년에만 최소 75명의 기독교인들이 체포되었으며 이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감옥행이 선고됐으며 이들은 구금 후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당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악랄한 인권탄압과 폭정을 저지르는데도 이란은 미국보다 살기 좋은 국가라며 한심한 정신 승리나 해댄다.
이 점에서 북한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스라엘 역시 이것을 빌미로 이란은 우리 욕할 자격 없다며 이란을 비난한다.
이스라엘과 원수라 유대교를 부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전혀 아니다.
호메이니조차도 살아 생전 말하길, 우린 히틀러 같은 미치광이와 다르다고 강조하고 유대인들 증오하고 없애자는 게 아니라 엉터리 유대인들이 정권잡고 유대인 괴롭히는 이스라엘이란 폭력적 제국주의 국가를 증오하고 반대하는 것이라며 이슬람 혁명 이후 자국에 살던 유대교인에 대하여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유대교는 이란에서 엄밀한 국가 공인 종교 중 하나이다.
중동 국가에 비하면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편이며, 이스라엘 국적이라도 이란 계통이라면 비자를 얻어 방문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이다.
그래서 국외 거주 유대인들이 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력 행사를 껄그럽게 여기는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반대로 반유대주의 역시 굉장히 심하다.
전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부터가 홀로코스트 부인론 개드립을 칠 정도. 게다가 자국의 유대인 여성들에게까지 이슬람 복식을 강요하고 있다.
또 이란에서의 복장에 대해 어이없는 것 중 하나는, 이란 시아파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넥타이를 서구 제국주의식, 기독교식 문화의 산물이라며 금지한다.
그래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란의 공직자들과 공무원, 외교관, 사회인사등을 보면 와이셔츠와 수트는 입어도 유독 넥타이는 안매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이들이 시아파 신정정권의 넥타이 금지령을 엄격하게 따르기 때문이다.
웃긴 건 넥타이를 뺀 수트, 서양식 구두, 와이셔츠 등은 서구 제국주의의 산물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넥타이 대신 조끼를 많이 입는 편이다.
단 이란, 헤즈볼라 등을 제외하면 이런 모습은 거의 없어서 비이란 계열의 시아파인 알라위파나 이란 외의 시아파 거주자들은 이런 교리에 신경쓰지 않고 넥타이를 일반인과 다름없이 잘 매고다닌다.
옆나라 이라크의 시아파인 누리 알 말리키 전 총리나, 시아파로 인정받은 알라위파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등 버젓이 넥타이를 착용하고 다니는 시아파 유명인들도 상당하다.
그 외에 소수 종파인 조로아스터교는 이란의 전통 종교라서 겉으로는 간판으로 삼고 있지만 보수적인 이슬람 율법을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강제로 강요받는 상황에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조로아스터교 계율은 술을 허용하고 담배를 절대 금지하지만 이슬람에서는 술을 금지하고 담배는 방치하는데, 조로아스터교도들 입장에서 무슬림들한테 함부로 앞에서 담배 피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 무척 애매하다고 한다.
또한 조로아스터교는 개를 신성한 동물로 여기지만 쉬아 무슬림들이 개를 워낙 싫어하기에 갈등이 일어난다.
시아파에서 갈라진 바하이교 또한 잔혹한 박해를 일삼는다.
팔레비 왕조 시절에는 바하이들에게도 시민권을 주려고 했으나 보수적인 쉬아파 율법학자들이 대대적으로 반발해서 취소되었고, 이슬람 혁명 당시 바하이 중에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고 대거 미국으로 망명했다.
신정 정부에 의해서 많은 수의 바하이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만약에 신정 정부가 유대인, 조로아스터교 신자, 만다야교 신자, 아시리아인같은 고대 소수파 종교 신자들을 죽이면 국제 사회에서 맹비난을 받게 되지만, 바하이를 탄압하면 대내적으로는 보수 율법학자도 만족시키고 대외적으로는 걸프 순니 아랍 국가들의 호응을 받기 때문.이란은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이며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이슬람이긴 하나 수니파도 마찬가지로 억압의 대상이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의 주적으로써 수니파 무장단체 다에쉬와 알카에다 등이 이란 내에서는 크게 사고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2017년에 IS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국회의사당과 남부 호메이니 영묘에서 테러를 벌였다.
이 테러로 17명이 사망하고 52명이 부상당했다.
이로써 이란도 더이상 IS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니게 되었다.
이란은 테러의 배후가 미국과 사우디에 있다며 복수하겠다고 했지만 미국과 사우디는 부정하며 테러를 비난했다.
이란은 이슬람 탓에 주말은 오직 금요일뿐이며 현지에서 술을 마시면 징역을 살아야 한다.
다만 조로아스터교 때문인지 전체 공휴일 중 7일가량이 3월에 있다.
위에서 이슬람 이외 종교를 탄압한다고 하였지만 이란 현지에서 가장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종교가 아예 없는 무종교이다.
그러니까 한국인 관광객들은 혹시 본인이 종교가 없다고 해도 그냥 기독교나 잘 모르겠으면 하다못해 유교나 불교라도 대는 편이 아예 종교 없다고 말하는 것보단 낫다.
다만 이란이 종교탄압국이긴 하지만 이란인 개개인들은 어지간해선 외국인 단기 방문객의 종교 같은 걸 가지고 귀찮게 굴진 않는다.
현실은 2020년도의 네덜란드 대학의 온라인 통계에 5만명이상의 자가응답 조사 통계에서, 90%이상이 이란에 사는 이란 인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시아파나 그외 수니파, 그 이외 분파를 합쳐도 무슬림은 고작 40.4%에 불과하다.
무슬림식 1일 5회 기도를 드리는 비율은 불과 27%, 전혀 기도를 드리지 않는 사람이 60% 다.
기독교나 조로아스터 등 다른 종교를 포함해도 종교를 가진 사람은 60% 정도이고 나머지는 무종교, 무신론, 불가지론, 인본주의 등 비종교적 인구가 40% 가량이다.
즉 이란에서 무슬림보다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인 인구가 훨씬 많다.
여성들이 히잡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23% 정도만 찬성하고 56% 는 반대하며 더구나 법적인 의무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15%만 찬성이고 72%는 반대한다.
이 통계결과를 두고 이란 현지인들은 이 통계는 이란 현지인들은 공감하지만 외국인들은 신뢰못하는 전형적인 통계라고 말할 정도.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99.4%가 이슬람을 믿는다는 이슬람의 정부 통계는 명목상의 통계일 뿐이다.
표면적으로는 정부가 시아파 이슬람교를 강요하니 믿는 척은 하지만 내심으로는 절반 정도의 인구는 어떤 종교든 종교 자체에 관심이 없는 무종교인이라는 것이다.
이 비율은 무종교인 비율이 중국과 맞먹을 정도로 높다는 것을 말한다.
성직자나 이슬람 혁명 수비대와 같은 이란의 보수층은 대체적으로 독실… 한 것은 아니고 보수층의 자녀들 역시 종교 행위에 별 관심이 없고 놀고 먹는데에만 관심이 있다.
한국에서 관광 혹은 유학하는 이란인 여성 중 히잡을 쓰고 다니는 경우는 10명 중 한두명이 될까말까이다.
이란에 출장 혹은 여행 다녀온 사람들에 의하면 정부가 신정 정치 체제인 것과는 별개로 이란인들의 종교 성향은 사우디인보다는 외려 터키인에 가까워서 의외였다는 평도 있다.
그래서 앞머리를 아예 내놓는 수준의 히잡을 착용하는 이란 여성들이 차도르를 착용하는 여성들보다 많다.
도시의 젊은 남성들도 서구식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국교는 시아파(시아파 중의 12이맘파)로 정해져 있고, 이란의 전체 인구 중 시아파가 인구 91.5%로 주류를 이루며, 수니파가 7.9%를 차지한다.
전세계 시아파의 본좌 국가로 시아파 인구 70%가 이란에 산다.
이란은 사파비 제국의 발흥으로 인구의 다수가 시아파가 되면서 시아파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만다야교, 바하이교나 조로아스터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에 유대교 등 많은 소수종교가 있다.
물론 이들은 차별을 받긴 하지만 요즘은 그래도 상황이 좀 나아졌다고 한다.
국가 공인 종교는 이슬람(시아파, 수니파), 기독교, 유대교, 조로아스터교이나, 이들은 극소수이며, 샤리아법 때문에 비이슬람 종교로의 개종도 전면금지인데다 그나마도 허울만 좋은 종교권리 보장과 계속되는 실질적 박해 때문에 상당수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수니 이슬람 신자들이 이란을 떠나 망명했다.
조로아스터교는 이란이 이슬람화된 이후부터 인도로 주로 망명해온 역사가 있다.
최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이스파한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반크 성당도 있는데, 아르메니아인들이 와서 수르프 바다락(성찬예배)을 보게 한다.
물론 오래전부터 살아오던 기독교인들에게 한하여 많이 개방적일 뿐, 외국 선교사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건 같다.
1979년 혁명 당시에는 이란 전국에서 가톨릭 사제 및 개신교 목사들이 살해당하며 성당들을 불태우는 테러가 벌어졌음에도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성당들은 대체로 무사했다.
이는 아르메니아인들이 팔라비 왕조 시절 유대인 우대정책 덕에 도외시된 점에 호메이니를 지지했던 점이 컸다.
그래서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소속 성당들이 많이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막상 가본 기독교 계열 선교사들이 이란은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아라비아, 터키에 견주면 기독교에 대하여 꽤 양호한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가톨릭이나 정교회, 개신교 종파들도 소수 존재한다.
물론 이슬람 근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선교 때문에 선교만큼은 절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이란은 종교의 자유가 없으며 악명 높은 종교 탄압국이다.
유대교 역시 이란에서는 배척받는다.
이란은 대표적인 기독교 탄압국으로 오픈도어선교회의 ‘세계 기독교 박해 순위(WWL·World Watch List)’에서도 9위에 올라 있다.
다만 사우디처럼 개종자를 마구 처형하는 일은 그나마 드물고, 대부분 징역형을 선고하는데, 문제는 이게 장기간 복역하는 중형이다.
게다가 이란은 배교와 개종을 금지하며 중죄로 다스리고 있다.
실제로 이란 법원은 이슬람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18명에게 최대 24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현재 이란에서 선교활동은 금지되며, 외국인 선교사는 입국금지에다 선교가 적발될 시 무조건 추방이다.
특히 페르시아어로 이루어지는 경우에 더 심각하다면서 기독교 전교에서 성경 공부 또는 성경이나 기독교 서적을 발간하거나 설교하는 것이 모두 불법이다.
2014년에만 최소 75명의 기독교인들이 체포되었으며 이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감옥행이 선고됐으며 이들은 구금 후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당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악랄한 인권탄압과 폭정을 저지르는데도 이란은 미국보다 살기 좋은 국가라며 한심한 정신 승리나 해댄다.
이 점에서 북한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스라엘 역시 이것을 빌미로 이란은 우리 욕할 자격 없다며 이란을 비난한다.
이스라엘과 원수라 유대교를 부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전혀 아니다.
호메이니조차도 살아 생전 말하길, 우린 히틀러 같은 미치광이와 다르다고 강조하고 유대인들 증오하고 없애자는 게 아니라 엉터리 유대인들이 정권잡고 유대인 괴롭히는 이스라엘이란 폭력적 제국주의 국가를 증오하고 반대하는 것이라며 이슬람 혁명 이후 자국에 살던 유대교인에 대하여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유대교는 이란에서 엄밀한 국가 공인 종교 중 하나이다.
중동 국가에 비하면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편이며, 이스라엘 국적이라도 이란 계통이라면 비자를 얻어 방문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이다.
그래서 국외 거주 유대인들이 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력 행사를 껄그럽게 여기는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반대로 반유대주의 역시 굉장히 심하다.
전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부터가 홀로코스트 부인론 개드립을 칠 정도. 게다가 자국의 유대인 여성들에게까지 이슬람 복식을 강요하고 있다.
또 이란에서의 복장에 대해 어이없는 것 중 하나는, 이란 시아파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넥타이를 서구 제국주의식, 기독교식 문화의 산물이라며 금지한다.
그래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란의 공직자들과 공무원, 외교관, 사회인사등을 보면 와이셔츠와 수트는 입어도 유독 넥타이는 안매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이들이 시아파 신정정권의 넥타이 금지령을 엄격하게 따르기 때문이다.
웃긴 건 넥타이를 뺀 수트, 서양식 구두, 와이셔츠 등은 서구 제국주의의 산물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넥타이 대신 조끼를 많이 입는 편이다.
단 이란, 헤즈볼라 등을 제외하면 이런 모습은 거의 없어서 비이란 계열의 시아파인 알라위파나 이란 외의 시아파 거주자들은 이런 교리에 신경쓰지 않고 넥타이를 일반인과 다름없이 잘 매고다닌다.
옆나라 이라크의 시아파인 누리 알 말리키 전 총리나, 시아파로 인정받은 알라위파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등 버젓이 넥타이를 착용하고 다니는 시아파 유명인들도 상당하다.
그 외에 소수 종파인 조로아스터교는 이란의 전통 종교라서 겉으로는 간판으로 삼고 있지만 보수적인 이슬람 율법을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강제로 강요받는 상황에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조로아스터교 계율은 술을 허용하고 담배를 절대 금지하지만 이슬람에서는 술을 금지하고 담배는 방치하는데, 조로아스터교도들 입장에서 무슬림들한테 함부로 앞에서 담배 피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 무척 애매하다고 한다.
또한 조로아스터교는 개를 신성한 동물로 여기지만 쉬아 무슬림들이 개를 워낙 싫어하기에 갈등이 일어난다.
시아파에서 갈라진 바하이교 또한 잔혹한 박해를 일삼는다.
팔레비 왕조 시절에는 바하이들에게도 시민권을 주려고 했으나 보수적인 쉬아파 율법학자들이 대대적으로 반발해서 취소되었고, 이슬람 혁명 당시 바하이 중에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고 대거 미국으로 망명했다.
신정 정부에 의해서 많은 수의 바하이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만약에 신정 정부가 유대인, 조로아스터교 신자, 만다야교 신자, 아시리아인같은 고대 소수파 종교 신자들을 죽이면 국제 사회에서 맹비난을 받게 되지만, 바하이를 탄압하면 대내적으로는 보수 율법학자도 만족시키고 대외적으로는 걸프 순니 아랍 국가들의 호응을 받기 때문.이란은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이며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이슬람이긴 하나 수니파도 마찬가지로 억압의 대상이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의 주적으로써 수니파 무장단체 다에쉬와 알카에다 등이 이란 내에서는 크게 사고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2017년에 IS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국회의사당과 남부 호메이니 영묘에서 테러를 벌였다.
이 테러로 17명이 사망하고 52명이 부상당했다.
이로써 이란도 더이상 IS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니게 되었다.
이란은 테러의 배후가 미국과 사우디에 있다며 복수하겠다고 했지만 미국과 사우디는 부정하며 테러를 비난했다.
이란은 이슬람 탓에 주말은 오직 금요일뿐이며 현지에서 술을 마시면 징역을 살아야 한다.
다만 조로아스터교 때문인지 전체 공휴일 중 7일가량이 3월에 있다.
위에서 이슬람 이외 종교를 탄압한다고 하였지만 이란 현지에서 가장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종교가 아예 없는 무종교이다.
그러니까 한국인 관광객들은 혹시 본인이 종교가 없다고 해도 그냥 기독교나 잘 모르겠으면 하다못해 유교나 불교라도 대는 편이 아예 종교 없다고 말하는 것보단 낫다.
다만 이란이 종교탄압국이긴 하지만 이란인 개개인들은 어지간해선 외국인 단기 방문객의 종교 같은 걸 가지고 귀찮게 굴진 않는다.
현실은 2020년도의 네덜란드 대학의 온라인 통계에 5만명이상의 자가응답 조사 통계에서, 90%이상이 이란에 사는 이란 인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시아파나 그외 수니파, 그 이외 분파를 합쳐도 무슬림은 고작 40.4%에 불과하다.
무슬림식 1일 5회 기도를 드리는 비율은 불과 27%, 전혀 기도를 드리지 않는 사람이 60% 다.
기독교나 조로아스터 등 다른 종교를 포함해도 종교를 가진 사람은 60% 정도이고 나머지는 무종교, 무신론, 불가지론, 인본주의 등 비종교적 인구가 40% 가량이다.
즉 이란에서 무슬림보다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인 인구가 훨씬 많다.
여성들이 히잡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23% 정도만 찬성하고 56% 는 반대하며 더구나 법적인 의무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15%만 찬성이고 72%는 반대한다.
이 통계결과를 두고 이란 현지인들은 이 통계는 이란 현지인들은 공감하지만 외국인들은 신뢰못하는 전형적인 통계라고 말할 정도.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99.4%가 이슬람을 믿는다는 이슬람의 정부 통계는 명목상의 통계일 뿐이다.
표면적으로는 정부가 시아파 이슬람교를 강요하니 믿는 척은 하지만 내심으로는 절반 정도의 인구는 어떤 종교든 종교 자체에 관심이 없는 무종교인이라는 것이다.
이 비율은 무종교인 비율이 중국과 맞먹을 정도로 높다는 것을 말한다.
성직자나 이슬람 혁명 수비대와 같은 이란의 보수층은 대체적으로 독실… 한 것은 아니고 보수층의 자녀들 역시 종교 행위에 별 관심이 없고 놀고 먹는데에만 관심이 있다.
한국에서 관광 혹은 유학하는 이란인 여성 중 히잡을 쓰고 다니는 경우는 10명 중 한두명이 될까말까이다.
이란에 출장 혹은 여행 다녀온 사람들에 의하면 정부가 신정 정치 체제인 것과는 별개로 이란인들의 종교 성향은 사우디인보다는 외려 터키인에 가까워서 의외였다는 평도 있다.
그래서 앞머리를 아예 내놓는 수준의 히잡을 착용하는 이란 여성들이 차도르를 착용하는 여성들보다 많다.
도시의 젊은 남성들도 서구식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5. 지리 및 기후
자그로스 산맥 중에 있는 주요 도시 케르만샤의 전경이란 고원의 평범한 도시. 사진은 샤흐레코르드 인근의 하프셰잔이다164만 평방 킬로미터(한반도 전체면적의 8배)에 이르는 땅 면적은 서아시아 지역에서 사우디아라비아(215만 km2) 다음으로 넓은 나라이다.
아시아에서도 중국(960만)-인도(328만)-카자흐스탄(278만)-사우디아라비아-인도네시아(190만) 다음으로 큰 나라이다.
한반도 전체면적의 8배가 넘는 나라답게 엄청나게 더운 사막성 기후와 더불어 눈이 엄청 내리거나 춥고 시원한 날씨를 가진 알브로즈 지역이 골고루 자리잡고 있다.
알브로즈 지역에 위치한 이란 최고봉인 다마반드 산(Damavand Mountain, 5610m)을 겨울에 보면 그야말로 히말라야급으로 눈이 와 쌓인다는 느낌이 들 정도. 또한 사계절이 뚜렷하고 숲이 우거진 지역도 꽤 있다.
북쪽으로 갈수록 무진장 추운 지역도 있다.
이게 이란을 남북으로 나누면 북부지방은 대한민국과 거의 같은 위도에 있고 이란 최북단은 북한의 중남부지역인 평안남도와 비슷한 위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남쪽인 것도 아니다.
이란 서북부 이란령 아제르바이잔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중부지방과 비슷한 위도이고 우르미아와 타브리즈는 서울과 위도가 같다.
그리고 이란 최북단은 평양보다도 북쪽에 있다.
당장 수도인 테헤란만 해도 일본의 도쿄, 전라북도 전주시,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과 거의 같은 위도에 속한다.
단, 남쪽은 대한민국보다 분명히 남쪽에 있으며 최남단이 위도상으로 대략 대만이나 방글라데시 북쪽과 비슷한 저위도이다.
지금까지 이란에서 기록된 최고기온은 섭씨 70.6, 최저기온은 섭씨 -36.0이다.
더운 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축에 속하며 여름에는 50도가 넘어가는 맹렬한 폭염이 맹위를 떨치며 추운 곳은 한국의 강원도만큼 추워지기도 한다.
이란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무덥고 뜨거운 곳이 존재한다.
이란의 남동부에 위치한 루트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최고 기온 섭씨 70.6도라는 엄청난 더위로 위용을 떨쳤다.
어찌나 더운지 박테리아들이 자동으로 멸균되어 우유가 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현재 유일하게 아시아치타가 서식하는 지역이기도 한데, 이란마저도 아시아치타가 멸종위기이며 그 숫자가 70마리정도 밖에 없다고 전해지고 있다.
아시아치타는 역사서에서도 페르시아 왕실 엽수로 사용한 유서 깊은 이란의 자랑거리인지라 당국은 악착같이 보호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갈수록 늘어가는 로드킬 사고와 밀렵이 아시아치타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시아에서도 중국(960만)-인도(328만)-카자흐스탄(278만)-사우디아라비아-인도네시아(190만) 다음으로 큰 나라이다.
한반도 전체면적의 8배가 넘는 나라답게 엄청나게 더운 사막성 기후와 더불어 눈이 엄청 내리거나 춥고 시원한 날씨를 가진 알브로즈 지역이 골고루 자리잡고 있다.
알브로즈 지역에 위치한 이란 최고봉인 다마반드 산(Damavand Mountain, 5610m)을 겨울에 보면 그야말로 히말라야급으로 눈이 와 쌓인다는 느낌이 들 정도. 또한 사계절이 뚜렷하고 숲이 우거진 지역도 꽤 있다.
북쪽으로 갈수록 무진장 추운 지역도 있다.
이게 이란을 남북으로 나누면 북부지방은 대한민국과 거의 같은 위도에 있고 이란 최북단은 북한의 중남부지역인 평안남도와 비슷한 위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남쪽인 것도 아니다.
이란 서북부 이란령 아제르바이잔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중부지방과 비슷한 위도이고 우르미아와 타브리즈는 서울과 위도가 같다.
그리고 이란 최북단은 평양보다도 북쪽에 있다.
당장 수도인 테헤란만 해도 일본의 도쿄, 전라북도 전주시,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과 거의 같은 위도에 속한다.
단, 남쪽은 대한민국보다 분명히 남쪽에 있으며 최남단이 위도상으로 대략 대만이나 방글라데시 북쪽과 비슷한 저위도이다.
지금까지 이란에서 기록된 최고기온은 섭씨 70.6, 최저기온은 섭씨 -36.0이다.
더운 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축에 속하며 여름에는 50도가 넘어가는 맹렬한 폭염이 맹위를 떨치며 추운 곳은 한국의 강원도만큼 추워지기도 한다.
이란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무덥고 뜨거운 곳이 존재한다.
이란의 남동부에 위치한 루트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최고 기온 섭씨 70.6도라는 엄청난 더위로 위용을 떨쳤다.
어찌나 더운지 박테리아들이 자동으로 멸균되어 우유가 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현재 유일하게 아시아치타가 서식하는 지역이기도 한데, 이란마저도 아시아치타가 멸종위기이며 그 숫자가 70마리정도 밖에 없다고 전해지고 있다.
아시아치타는 역사서에서도 페르시아 왕실 엽수로 사용한 유서 깊은 이란의 자랑거리인지라 당국은 악착같이 보호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갈수록 늘어가는 로드킬 사고와 밀렵이 아시아치타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5.1. 갤러리
호르모즈 섬의 무지개 산 이란의 카비르 사막을 위성 사진으로 보면 매우 다채로운 모습이 보인다.
다.
다.
5.2. 물부족
물부족은 이란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고대부터 이란의 물부족은 정말 심각했는데 ‘생명을 주는 강’이라는 뜻의 자얀데 강(자얀데루드)의 경우 천 년 넘게 이란 중부의 도시 이스파한의 젖줄 역할을 했지만, 오랜 개발의 역사와 인구증가로 인한 물수요의 증가로 점점 말라가 모래만 남은 황량한 땅으로 변해가고 있다.
물이 말라가는 사막화도 심각하지만, 강수량도 세계 평균의 3분의 1인 200㎜에 불과해서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는데 그나마도 기후 변화와 가뭄이 심해지면서 급감하고 있다.
그래서 지하수를 퍼내는 방식으로 물을 조달하고 있지만 이조차 갈수록 수위가 낮아져 바닥을 드러낼 정도다.
비록 세계 최대의 호수 카스피 해와 접하고 있다지만, 카스피 "해"의 물은 바닷물에 준하는 짙은 염분을 함유하고 있어 사실 쓸모가 없다.
물부족은 농업에도 큰 영향을 미쳐 많은 농민들이 농사를 망치고 파산해 농촌의 실업문제가 심각하다.
이란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불과한 농업이 이란 수자원의 90%를 소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이 파산하다보니 식량 자급도 불가능해져 식량수입국이 되기도 했다.
또한 이란의 도시와 마을들은 물부족이 심한 나머지 정부에서 통제하는 급수탱크에 의존한다.
수도 테헤란을 포함한 대도시들도 예외가 아니다.
오죽하면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도시로 가는 수도관을 파괴해 물을 탈취하는 사건이 터질 정도. 중부와 남부는 아예 수원 자체가 없으며 물 공급률도 40%에 불과해 물부족이 이란에서 가장 심각하다.
그러다보니 이란에서는 이상적인 집이 물이 마음껏 나오고 수영장이 있는 집이다.
물부족이 심한 나머지 부자집들조차 수영장을 가지기 힘들다.
수자원 문제 때문에 주변국들과도 갈등이 심해졌다.
이라크와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수자원 확보를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 남서부 후르 알 아짐 습지도 고갈될 위기에 처했고, 북동부 국경 하리루드 강은 비슷한 처지의 아프가니스탄이 농업용수 사용을 위해 상류를 막아 이란의 제 2도시인 마슈하드가 마실 물도 부족한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과는 헬만드 강으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남동부 하문스 지역에서도 갈등을 빚고 있다.
물부족은 오래전부터 우려되었기에 이란 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 지도자인 호메이니가 티그리스 강을 반드시 차지하고자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늘어나고 있고 산업화로 인한 물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수자원 고갈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란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수 담수화 산업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지만 해수담수화로도 수자원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버거운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이사 칼란타리 전 이란 농무부 장관이 물부족은 미국이나 이스라엘보다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7000년의 역사를 지닌 이란이 지하수의 빠르고 기하급수적인 파괴가 지속된다면 20년 안에 살지 못하는 땅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한탄할 정도다.
다.
고대부터 이란의 물부족은 정말 심각했는데 ‘생명을 주는 강’이라는 뜻의 자얀데 강(자얀데루드)의 경우 천 년 넘게 이란 중부의 도시 이스파한의 젖줄 역할을 했지만, 오랜 개발의 역사와 인구증가로 인한 물수요의 증가로 점점 말라가 모래만 남은 황량한 땅으로 변해가고 있다.
물이 말라가는 사막화도 심각하지만, 강수량도 세계 평균의 3분의 1인 200㎜에 불과해서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는데 그나마도 기후 변화와 가뭄이 심해지면서 급감하고 있다.
그래서 지하수를 퍼내는 방식으로 물을 조달하고 있지만 이조차 갈수록 수위가 낮아져 바닥을 드러낼 정도다.
비록 세계 최대의 호수 카스피 해와 접하고 있다지만, 카스피 "해"의 물은 바닷물에 준하는 짙은 염분을 함유하고 있어 사실 쓸모가 없다.
물부족은 농업에도 큰 영향을 미쳐 많은 농민들이 농사를 망치고 파산해 농촌의 실업문제가 심각하다.
이란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불과한 농업이 이란 수자원의 90%를 소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이 파산하다보니 식량 자급도 불가능해져 식량수입국이 되기도 했다.
또한 이란의 도시와 마을들은 물부족이 심한 나머지 정부에서 통제하는 급수탱크에 의존한다.
수도 테헤란을 포함한 대도시들도 예외가 아니다.
오죽하면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도시로 가는 수도관을 파괴해 물을 탈취하는 사건이 터질 정도. 중부와 남부는 아예 수원 자체가 없으며 물 공급률도 40%에 불과해 물부족이 이란에서 가장 심각하다.
그러다보니 이란에서는 이상적인 집이 물이 마음껏 나오고 수영장이 있는 집이다.
물부족이 심한 나머지 부자집들조차 수영장을 가지기 힘들다.
수자원 문제 때문에 주변국들과도 갈등이 심해졌다.
이라크와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수자원 확보를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 남서부 후르 알 아짐 습지도 고갈될 위기에 처했고, 북동부 국경 하리루드 강은 비슷한 처지의 아프가니스탄이 농업용수 사용을 위해 상류를 막아 이란의 제 2도시인 마슈하드가 마실 물도 부족한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과는 헬만드 강으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남동부 하문스 지역에서도 갈등을 빚고 있다.
물부족은 오래전부터 우려되었기에 이란 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 지도자인 호메이니가 티그리스 강을 반드시 차지하고자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늘어나고 있고 산업화로 인한 물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수자원 고갈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란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수 담수화 산업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지만 해수담수화로도 수자원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버거운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이사 칼란타리 전 이란 농무부 장관이 물부족은 미국이나 이스라엘보다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7000년의 역사를 지닌 이란이 지하수의 빠르고 기하급수적인 파괴가 지속된다면 20년 안에 살지 못하는 땅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한탄할 정도다.
다.
5.3. 이란의 행정구역
주
|
주도
|
주
|
주도
|
주
|
주도
|
알보르즈
|
카라지
|
에스파한
|
이스파한
|
마르카지
|
아라크
|
아르다빌
|
아르다빌
|
케르만
|
케르만
|
마잔다란
|
사리
|
동아제르바이잔
|
타브리즈
|
케르만샤
|
케르만샤
|
카즈빈
|
카즈빈
|
서아제르바이잔
|
우르미아
|
북호라산
|
보즈노르드
|
곰
|
쿰
|
부셰르
|
부셰르
|
라자비호라산
|
마슈하드
|
셈난
|
셈난
|
차하르마할에바흐티아리
|
샤흐레코르드
|
남호라산
|
비르잔드
|
시스탄오발루체스탄
|
자헤단
|
파르스
|
쉬라즈
|
후제스탄
|
아바즈
|
테헤란
|
테헤란
|
길란
|
라슈트
|
코길루예부예르아마드
|
야수즈
|
야즈드
|
야즈드
|
하마단
|
하마단
|
코르데스탄
|
사난다즈
|
잔잔
|
잔잔
|
호르모즈간
|
반다르아바스
|
로레스탄
|
호라마바드
|
골레스탄
|
고르간
|
일람
|
일람
|
5.4. 이란의 도시
- 테헤란
- 이스파한
- 타브리즈
- 쉬라즈
- 야즈드
- 케르만
- 니샤푸르
- 마슈하드
- 라슈트
- 카즈빈
- 고르간
- 코이
- 쿰
- 아몰
- 슈쉬
- 페르세폴리스
- 호라마바드
- 카라지
- 부칸
- 아바단
- 아바즈
- 호람샤르
- 람사르
6. 관광
파르스의 고대 궁전 도시 페르세폴리스 이란 중부 이스파한의 이맘 광장 수도 테헤란의 아자디 타워 후제스탄 슈슈타르의 페르시아 시절 관개 시설 이란 남부 쉬라즈의 나시르 앗 딘 모스크 (일명 핑크 모스크) 이란 서부 케르만의 샤즈데 정원 이란 북부 라슈트의 근대 거리우선, 언뜻 아랍 문자와 비슷하게 보는 페르시아 문자의 압박감을 극복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한때 아랍 대부분 지역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까지 다스리던 넓은 페르시아 제국의 유적들이 엄청나다.
쉬라즈 근처에 있는 페르세폴리스와 키루스 2세의 무덤인 파사르가드가 유명하다.
이후에도 여러 왕조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남긴 모스크들과 궁전들이 여행자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세계의 절반'이라 불리는 이스파한의 이맘 스퀘어와 샤 모스크, 알리카푸 궁전 역시 여행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만한 유적지들이다.
수도 테헤란에 위치한 카자르 왕조의 왕궁이었던 골레스탄 궁전, 중부 도시 이스파한을 대표하는 또한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 페르시아지방에 번성했던 조로아스터교의 흔적들도 야즈드를 비롯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야즈드 인근에 있는 '침묵의 탑'은 대표적인 조로아스터교 유적지다.
이란 서북부 아제르바이잔 지역에는 우르미아 호를 중심으로 타브리즈, 아르다빌, 술타니야 등 중세 도시들이 남아있다.
일 칸국에 관심이 있다면 일칸국 박물관과 천문대 유적이 있는 마라게를 특히 추천. 이란 남부 쉬라즈에는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다채로움을 뽐내는 핑크 모스크가 있는 반면 타브리즈에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블루 모스크가 있어 대조를 이룬다.
이스파한 북쪽의 휴양도시 카샨에는 세계문화유산인 핀 정원 등 사파비 제국 시절 별장들이 즐비하다.
쉬라즈의 나렌제스탄 카밤과 케르만의 샤즈데 정원 등은 페르시아 정원의 정수로 꼽힌다.
이란 북부 엘부르즈 산맥 쪽에는 어새신 크리드의 배경이 된 알라무트 요새가 있다.
산맥 북쪽 카스피해 연안은 10세기 이후에야 이슬람화 된 덕에 고대 페르시아 문화가 가장 잘 남아있는 곳으로 불리며 아몰, 고르간 등에 유적이 남아있다.
중세 호라산 지역에 관심이 있으면 동북부의 니샤푸르, 투스 등의 유적지를 찾으면 된다.
둘다 마슈하드 근처에 위치해 있다.
그외에 이란 서남부 후제스탄의 슈슈타르에는 다리우스 대제 때에 지어진,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관개 시설이 남아있다.
집 위에 집이 있는 특이한 구조의 마을들도 관광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그 중에서 사르 아가 세예드란 마을이 특히 유명하다.
국토가 큰 만큼 문화유산만이 볼거리는 아니다.
남쪽의 케슘섬은 독특한 자연환경으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렇게 찬란한 문화유산들을 보유하고 있어서 관광자원의 경쟁력이 상당하다.
그러나 미국 및 서방과의 대립과 제재, 신정국가라는 체제 등으로 여행지로서의 인지도는 떨어지고 포텐셜이 터지지 못한 상태다.
대한민국과 이란은 딱히 대립하지도 않고 미국의 눈치를 봐 가면서 우호적으로 지내는 관계에 가까우므로 한국인 국적자는 후술할 선교 목적 같은 것이 아닌 순수 여행에는 제한이 없다.
다만, 터키, 이라크 국경은 여행 자제 지역이고,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국경은 철수 권고지역으로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래도 대표적인 관광 도시인 테헤란, 이스파한, 시라즈 등은 여행 유의 지역이여서 이란 법만 잘 지키면 여행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
주변 국가들 중에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나라 꼴과 치안이 막장인 나라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이란 여행 중 치안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단 평가를 받는 한국에 빗댈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준수한 편으로, 대부분의 아랍권보다는 훨씬 낫고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배낭여행 중 조심하는 정도만 신경 쓰면 큰 문제는 없으며, 실제로 아무리 서방과 사이가 안 좋다지만 페르시아라는 엄청난 이름값 덕분에 전 세계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나라다.
다만 신정국가라는 특수성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은 복장, 출입 가능한 장소 등 자유로운 여행에 좀 더 제약이 많은 편으로, 남성과 동행하지 않고 혼자 돌아다니는 외국인 여성 관광객은 현지 남성들이 외국인, 특히 동양 여성과의 성관계를 노리려고 추근대기도 한다.
혼자 헐벗게 노출하고 돌아다니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성범죄가 아직도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이란 남자가 전부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이란에 다녀오면 캐나다 시민권자를 제외하고 앞으로 미국 무비자 입국이 불가능해진다는 단점이 있으므로, 자신이 미국 혹은 중남미에 자주 다니는 사람이라면 아예 이란 여행은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만 중남미행은 미국 대신 유럽이나 캐나다, 멕시코를 경유하면 갈 수 있다.
그래서 이란과 교류가 많은 무역업 종사자들은 일부러 미국 비자를 받아둔다고 한다.
이스라엘 국적자는 이란 입국이 금지되어 있으며 제3국 국적자도 여권에 이스라엘을 방문한 흔적이 있으면 이란 입국이 거부되기 때문에 여권에 이스라엘 비자, 출입국 도장이 있다면 여권을 재발급받아야한다.
역사적으로 한때 아랍 대부분 지역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까지 다스리던 넓은 페르시아 제국의 유적들이 엄청나다.
쉬라즈 근처에 있는 페르세폴리스와 키루스 2세의 무덤인 파사르가드가 유명하다.
이후에도 여러 왕조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남긴 모스크들과 궁전들이 여행자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세계의 절반'이라 불리는 이스파한의 이맘 스퀘어와 샤 모스크, 알리카푸 궁전 역시 여행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만한 유적지들이다.
수도 테헤란에 위치한 카자르 왕조의 왕궁이었던 골레스탄 궁전, 중부 도시 이스파한을 대표하는 또한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 페르시아지방에 번성했던 조로아스터교의 흔적들도 야즈드를 비롯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야즈드 인근에 있는 '침묵의 탑'은 대표적인 조로아스터교 유적지다.
이란 서북부 아제르바이잔 지역에는 우르미아 호를 중심으로 타브리즈, 아르다빌, 술타니야 등 중세 도시들이 남아있다.
일 칸국에 관심이 있다면 일칸국 박물관과 천문대 유적이 있는 마라게를 특히 추천. 이란 남부 쉬라즈에는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다채로움을 뽐내는 핑크 모스크가 있는 반면 타브리즈에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블루 모스크가 있어 대조를 이룬다.
이스파한 북쪽의 휴양도시 카샨에는 세계문화유산인 핀 정원 등 사파비 제국 시절 별장들이 즐비하다.
쉬라즈의 나렌제스탄 카밤과 케르만의 샤즈데 정원 등은 페르시아 정원의 정수로 꼽힌다.
이란 북부 엘부르즈 산맥 쪽에는 어새신 크리드의 배경이 된 알라무트 요새가 있다.
산맥 북쪽 카스피해 연안은 10세기 이후에야 이슬람화 된 덕에 고대 페르시아 문화가 가장 잘 남아있는 곳으로 불리며 아몰, 고르간 등에 유적이 남아있다.
중세 호라산 지역에 관심이 있으면 동북부의 니샤푸르, 투스 등의 유적지를 찾으면 된다.
둘다 마슈하드 근처에 위치해 있다.
그외에 이란 서남부 후제스탄의 슈슈타르에는 다리우스 대제 때에 지어진,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관개 시설이 남아있다.
집 위에 집이 있는 특이한 구조의 마을들도 관광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그 중에서 사르 아가 세예드란 마을이 특히 유명하다.
국토가 큰 만큼 문화유산만이 볼거리는 아니다.
남쪽의 케슘섬은 독특한 자연환경으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렇게 찬란한 문화유산들을 보유하고 있어서 관광자원의 경쟁력이 상당하다.
그러나 미국 및 서방과의 대립과 제재, 신정국가라는 체제 등으로 여행지로서의 인지도는 떨어지고 포텐셜이 터지지 못한 상태다.
대한민국과 이란은 딱히 대립하지도 않고 미국의 눈치를 봐 가면서 우호적으로 지내는 관계에 가까우므로 한국인 국적자는 후술할 선교 목적 같은 것이 아닌 순수 여행에는 제한이 없다.
다만, 터키, 이라크 국경은 여행 자제 지역이고,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국경은 철수 권고지역으로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래도 대표적인 관광 도시인 테헤란, 이스파한, 시라즈 등은 여행 유의 지역이여서 이란 법만 잘 지키면 여행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
주변 국가들 중에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나라 꼴과 치안이 막장인 나라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이란 여행 중 치안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단 평가를 받는 한국에 빗댈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준수한 편으로, 대부분의 아랍권보다는 훨씬 낫고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배낭여행 중 조심하는 정도만 신경 쓰면 큰 문제는 없으며, 실제로 아무리 서방과 사이가 안 좋다지만 페르시아라는 엄청난 이름값 덕분에 전 세계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나라다.
다만 신정국가라는 특수성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은 복장, 출입 가능한 장소 등 자유로운 여행에 좀 더 제약이 많은 편으로, 남성과 동행하지 않고 혼자 돌아다니는 외국인 여성 관광객은 현지 남성들이 외국인, 특히 동양 여성과의 성관계를 노리려고 추근대기도 한다.
혼자 헐벗게 노출하고 돌아다니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성범죄가 아직도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이란 남자가 전부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이란에 다녀오면 캐나다 시민권자를 제외하고 앞으로 미국 무비자 입국이 불가능해진다는 단점이 있으므로, 자신이 미국 혹은 중남미에 자주 다니는 사람이라면 아예 이란 여행은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만 중남미행은 미국 대신 유럽이나 캐나다, 멕시코를 경유하면 갈 수 있다.
그래서 이란과 교류가 많은 무역업 종사자들은 일부러 미국 비자를 받아둔다고 한다.
이스라엘 국적자는 이란 입국이 금지되어 있으며 제3국 국적자도 여권에 이스라엘을 방문한 흔적이 있으면 이란 입국이 거부되기 때문에 여권에 이스라엘 비자, 출입국 도장이 있다면 여권을 재발급받아야한다.
7. 교통
2015년 기준 이란 철도 노선. 주요 도시들을 효과적으로 잇고 있으나 대부분 협궤인 것이 아쉽다 남한의 16배에 달하는 거대한 땅덩어리인 만큼 많은 항공노선이 이란의 교통을 커버하고 있다.
국적기인 이란항공을 비롯해 마한항공, 아세만 에어라인, ATA 등 열 개가 넘는 항공사가 국내선에서 경쟁 중이다.
기령의 노후화로 인해 국제선에서는 이란항공을 위시한 이란 국적 항공사들 보다는 외항사들이 힘을 내는 듯. 경제제재가 해제되고 노후기체들이 교체된다면 상황은 바뀔 수도 있다.
그 외에는 철도와 고속도로를 이용한 도시 간 이동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경우 고속도로의 중간중간에 서서 경찰의 검문을 받아야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일전에 마약을 운송하다가 적발된 사건이 크게 터졌기 때문이라는 듯. 다만 엄격한 검문은 아니고, 꽤 요식적으로 이뤄지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외국인이라서 따로 여권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버스는 크게 VIP버스와 일반 버스로 나뉘어지는데, VIP버스는 우리나라의 우등버스와 거의 같은 개념이다.
이란은 땅이 넓어서 장거리 이동을 할 경우에는 자리가 편한 VIP버스가 훨씬 좋다.
물론 버스에 타는 순간, 모든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여기저기서 말을 걸어와 '편안한 휴식'과는 거리가 먼 이동을 할 수도 있다.
VIP 버스는 물론 일반 버스에서도 승객들에게 과자박스를 제공하니, 입이 심심하지는 않게 갈 수 있다.
철도는 나름 근대화된 편으로 새마을호 객차가 모 사철로 수출되어 운행 중이었으나 최근 그 객차가 탈선하여 대형사고가 났다고 DC인사이드 철도갤러리에 알려졌다.
주의할 점은, 터미널에서도 회사별로 창구가 다 따로 떨어져있고 각기 요금표가 모두 다르다는 것. 같은 구간에 같은 등급의 버스를 타더라도 요금이 다를 수 있으니 타기 전에 꼭 확인이 필요하다.
여행자의 경우, 시내나 비교적 가까운 거리간의 이동에는 택시를 자주 이용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도 택시같은 회사택시가 있는 반면, 그냥 일반 승용차를 택시로 운용하는 사설택시도 있다.
일정한 목적지로 향하면서 자유롭게 합승이 가능한 모스타김 택시의 경우 짧은 거리라면 우리 돈으로 300~500원가량인 1000~2000토만의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합승이 불가한 다르 바스트의 경우는 조금 더 비싼데, 미터기로 달리는 정찰제가 아니라 협상을 통해 가격을 흥정하기 때문에 결국 개개인의 협상스킬이 가장 중요하다.
미터기로 달린다며 접근하는 택시들의 경우 엄청난 바가지를 쓸 수 있으니 탑승하기 전 꼭 가격흥정을 하는 것이 좋다.
이란 도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아 프라이드의 행렬이다.
길에 다니는 차의 절반 이상은 프라이드로 보일 정도. 이렇게 된 이유는 이란의 자동차 회사 SAIPA가 프라이드를 라이선스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란 현지에서는 SABA라는 모델명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값이 싸서 너나없이 사는 차종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러시아워만 되면 아수라장이 되는 도로사정에다가, 이란인 특유의 거친 운전, 구식 차량의 콤보가 합쳐져서 어디 한 군데 찌그러지거나 벗겨지지 않은 멀쩡한 차를 찾아보기 힘들다.
거리를 가득 메운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으로 인해 수도 테헤란의 대기는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는 상태다.
그래도 역시 손꼽히는 산유국답게 주유비는 아주 싸다.
2015년 초반 기준으로 휘발유 1리터에 1000토만, 약 300원 남짓이다.
이마저도 정부가 기습적으로 인상한 가격이라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불만이 상당하다고 한다.
많은 이슬람 국가들이 그렇듯, 지하철이나 굴절버스 등의 칸이 분리된 교통수단의 경우 여성전용칸이 따로 존재한다.
여성전용칸에 남성은 탈 수 없지만, 반대로 여성이 남성인 가족과 함께 일반 칸에 탑승하는 경우는 흔하다.
굳이 가족이 아니라도 같이 탄다 해서 딱히 제재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렇게 따지면 율법을 아주 엄격하게 적용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른 셈. 버스의 경우 내 옆자리에 다른 성별의 사람이 앉게 될 경우, 차장이나 운전수가 자리를 바꿔줄 것을 요구한다.
국적기인 이란항공을 비롯해 마한항공, 아세만 에어라인, ATA 등 열 개가 넘는 항공사가 국내선에서 경쟁 중이다.
기령의 노후화로 인해 국제선에서는 이란항공을 위시한 이란 국적 항공사들 보다는 외항사들이 힘을 내는 듯. 경제제재가 해제되고 노후기체들이 교체된다면 상황은 바뀔 수도 있다.
그 외에는 철도와 고속도로를 이용한 도시 간 이동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경우 고속도로의 중간중간에 서서 경찰의 검문을 받아야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일전에 마약을 운송하다가 적발된 사건이 크게 터졌기 때문이라는 듯. 다만 엄격한 검문은 아니고, 꽤 요식적으로 이뤄지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외국인이라서 따로 여권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버스는 크게 VIP버스와 일반 버스로 나뉘어지는데, VIP버스는 우리나라의 우등버스와 거의 같은 개념이다.
이란은 땅이 넓어서 장거리 이동을 할 경우에는 자리가 편한 VIP버스가 훨씬 좋다.
물론 버스에 타는 순간, 모든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여기저기서 말을 걸어와 '편안한 휴식'과는 거리가 먼 이동을 할 수도 있다.
VIP 버스는 물론 일반 버스에서도 승객들에게 과자박스를 제공하니, 입이 심심하지는 않게 갈 수 있다.
철도는 나름 근대화된 편으로 새마을호 객차가 모 사철로 수출되어 운행 중이었으나 최근 그 객차가 탈선하여 대형사고가 났다고 DC인사이드 철도갤러리에 알려졌다.
주의할 점은, 터미널에서도 회사별로 창구가 다 따로 떨어져있고 각기 요금표가 모두 다르다는 것. 같은 구간에 같은 등급의 버스를 타더라도 요금이 다를 수 있으니 타기 전에 꼭 확인이 필요하다.
여행자의 경우, 시내나 비교적 가까운 거리간의 이동에는 택시를 자주 이용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도 택시같은 회사택시가 있는 반면, 그냥 일반 승용차를 택시로 운용하는 사설택시도 있다.
일정한 목적지로 향하면서 자유롭게 합승이 가능한 모스타김 택시의 경우 짧은 거리라면 우리 돈으로 300~500원가량인 1000~2000토만의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합승이 불가한 다르 바스트의 경우는 조금 더 비싼데, 미터기로 달리는 정찰제가 아니라 협상을 통해 가격을 흥정하기 때문에 결국 개개인의 협상스킬이 가장 중요하다.
미터기로 달린다며 접근하는 택시들의 경우 엄청난 바가지를 쓸 수 있으니 탑승하기 전 꼭 가격흥정을 하는 것이 좋다.
이란 도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아 프라이드의 행렬이다.
길에 다니는 차의 절반 이상은 프라이드로 보일 정도. 이렇게 된 이유는 이란의 자동차 회사 SAIPA가 프라이드를 라이선스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란 현지에서는 SABA라는 모델명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값이 싸서 너나없이 사는 차종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러시아워만 되면 아수라장이 되는 도로사정에다가, 이란인 특유의 거친 운전, 구식 차량의 콤보가 합쳐져서 어디 한 군데 찌그러지거나 벗겨지지 않은 멀쩡한 차를 찾아보기 힘들다.
거리를 가득 메운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으로 인해 수도 테헤란의 대기는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는 상태다.
그래도 역시 손꼽히는 산유국답게 주유비는 아주 싸다.
2015년 초반 기준으로 휘발유 1리터에 1000토만, 약 300원 남짓이다.
이마저도 정부가 기습적으로 인상한 가격이라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불만이 상당하다고 한다.
많은 이슬람 국가들이 그렇듯, 지하철이나 굴절버스 등의 칸이 분리된 교통수단의 경우 여성전용칸이 따로 존재한다.
여성전용칸에 남성은 탈 수 없지만, 반대로 여성이 남성인 가족과 함께 일반 칸에 탑승하는 경우는 흔하다.
굳이 가족이 아니라도 같이 탄다 해서 딱히 제재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렇게 따지면 율법을 아주 엄격하게 적용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른 셈. 버스의 경우 내 옆자리에 다른 성별의 사람이 앉게 될 경우, 차장이나 운전수가 자리를 바꿔줄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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