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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에 민감한 당신을 위한 광명시에 대한 모든 것 (도서관,인구,보건소,육아종합지원센터)

by Nomangs 2023.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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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

1. 개요

 

경기도 중서부에 위치한 시.북부와 동부는 각각 영등포권인 서울특별시 구로구와 금천구, 남동부는 안양권인 안양시, 북서부는 범 인천권인 부천시, 남서부는 시흥시와 접한다.
도내에서는 부천시, 시흥시, 안산시와 같이 경기 서부권으로 분류되나, 정작 생활권으로 보면 경기도보다는 서울, 특히 영등포권의 지역색이 더 강한 도시.광명시는 현대에 서울 편입을 염두에 두고 개발(이른바 개봉 60만 단지)했기 때문에 도시 꼴을 갖추게 된 것이며, 본디 시흥군 내에서 그저 강 갈대밭 건너 바로 옆에 읍내, 그리고 그 읍내 너머에 시내가 있는 작은 마을이었을 뿐이다.
광명 시가지가 처음 형성될 무렵 이 도시 사람들은 서울시민이 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시 승격 전후의 신문기사, 1980년대 지리지, 인터넷 향토백과, 1991년판 광명시지, 광명동·철산동지(광명시청 편저) 등 각종 향토사료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위성도시 육성정책으로 인해 서울 편입이 좌절되고 1981년에 경기도 산하의 시로 승격했으며, 광명시 승격에 실망한 광명주민들이 서울 편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기도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도 딱히 광명시청에서 시흥군의 계승자로서의 성격을 강조하지도 않았다.

 

1.1. 상징물

 

문장
마스코트
광명시 CI 국문 포함  
2014년 8월 14일에 제정된 시 문장.
문장과 같은 시기에 제정된 시 마스코트. 저 두 캐릭터는 광명시의 푸르름과 미래를 상징하는 광이와 광명시민의 행복을 의미하는 명이로, 다채로운 색의 빛의 잔상들이 모여 광이와 명이의 머리를 구성한다.
슬로건
시정방침
 
함께하는 시민 웃는 광명
시민참여, 자치분권도시
안전하고 건강한도시
일자리 있는 경제도시
평생학습, 돌봄도시
꿈꾸는 문화·예술도시
시민헌장
우리는 구름산과 도덕산의 기상과 정기를 이어받아 날로 뻗어 갈 새 광명을 문화도시로 발전 시켜 쾌적하고 살기 좋은 행복의 터전으로 건설하기 위해 여기에 큰 뜻을 모은다.이곳에 삶을 은혜롭게 여기면서 자랑스런 광명시를 내 고장으로 기려 자손만대의 무궁한 번영과 영광을 위해 슬기와 지혜를 모아 우리 시민이 지켜 나아갈 바를 밝힌다.

 

1.2. 광명시민의 노래

 

 

 

2. 역사

 

광명시 행정구역 변천사
시흥군 서면
(始興郡 西面, 1896)
시흥군 서면
(西面, 1914)
시흥군 광명출장소
(光明出張所, 1974)
광명시
(光明市, 1981)
시흥군 남면
(始興郡 南面, 1896)
시흥군 소하읍
(所下邑, 1979)
인천부 황등천면
두길리 (斗吉里, 1896)
부천군 소래면 옥길리
(玉吉里, 1914)
시흥군 소래면
옥길리 (1973-83)
  • 참고 문서: 시흥군, 시흥시/역사

 

2.1. 지명 유래

 

'광명'이라는 지명은 1963년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 편입 이전만 해도 지금의 광명동 일대에 국한된 명칭으로, 광명7동 신광명변전소 인근의 원광명(굉메)라는 자연촌락에서 유래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광명이라는 지명이 듣보잡이었다가 갑자기 튀어나왔다는 얘기는 아니고, 이미 출장소가 설치되는 1970년대쯤 되면 광명리는 소하리와는 별개의 생활구역으로 취급되었다.
당시 광명리에서 버스로 소하리까지 가려면 영등포로 나가서 버스 타고 들어가야 했다고 한다.
읍 지역이 시로 승격될 당시에는 읍의 이름이 도시 이름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나, 1981년쯤엔 사실상 중심지가 소하리 서면초 부근이 아니라 광명리로 옮겨진 상태인데다가 광명출장소 관할지역을 서울 편입에서 배제시키는 의미도 있었기에 소하읍→소하시가 아닌 광명시로 한 것이다.
승격 당시 광명시 인구가 15만명인데 이 중 소하동 거주자는 2만여명, 하안동은 당시 미개발지였고 철산동 역시 시 승격 이후에나 주공아파트가 본격적으로 건설되었으니 사실상 광명동 지역에만 10만명 가까이 거주하고 있었던 셈이다.
일부에서는 '빛이 잘 드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광명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광명이라는 지명은 단지 광명7동에 있는 굉메마을의 음차일 뿐이다.

 

2.2. 의외로 빠른 도시화

 

경기도 내 30개 도시 중에서 시 승격이 광명시보다 더 빠른 도시로는 개성시(미수복), 수원시, 인천광역시(1981년 직할시 분리), 의정부시, 부천시, 안양시, 성남시 7곳 정도다.
특히 광명시는 성남시 다음으로 서울의 팽창으로 생겨난 두 번째 도시이다.
광명시는 서울(특히 영등포)의 인구 폭증에 대처하는 차원에서 서울 편입 예정지의 개념으로 개발되었지만 모종의 사정으로 서울 편입 대신에 시로 분리된 도시이다.
그래서 시 승격 초창기에는 경기 남부지역에선 얼마 안 되는 도시로서 나름대로 중심지 노릇을 하기도 했다.
당시 이미 업무 과부하였던 부천, 안양지역 관공서를 대신해 광명경찰서와 광명세무서가 시흥군 소래, 군자, 수암면 지역과 안산시까지 관할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광명시 교육청(현 경기도 광명교육지원청)도 마찬가지. 특히 북시흥 지역은 경찰서는 1999년, 세무서는 1996년(광명세무서 시흥지서 개서)까지 광명시 쪽에서 관할해 알음알음 그 영향력이 남아있다.
다만 역사적으로 중심지 노릇을 해 온 건 아니고 여건상 어쩌다보니 그런 기능을 잠시 부여받은거라 시흥과 안산이 어느정도 성장한 지금은 의식하고 찾지 않으면 깨닫기 어려운 수준이다.

 

3. 지리

 

경기도에서 광명시의 위치.다.

 

3.1. 자연지리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경기도 최강의 폭염도시 중 한 곳이다.
좁은 면적에 여기저기 골고루 도시화가 되있는 경기도에서 날씨가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겠냐만은,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시즌에 광명과 멀지 않은 안산시와 비교해보면 제법 체감이 될 정도며 이는 광명이 서울의 열섬 현상을 그대로 받는데다 시가지 남부가 쭉 산으로 막혀있는 지형의 영향으로, 여름엔 광프리카가 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는 더위가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겨울에 따뜻한 것도 아니어서 냉대기후 지대이며, 철산동 기준으로 특히 개봉동, 구로동, 대림동, 가산동, 신대방동과 기후가 거의 같다.
장마철에 안양천 물이 불어나 일부지역이 침수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대한민국 기상청 AWS 실시간 자료에서는 과천과 함께 서울권으로 분류되어 있다.
링크 참고로 부천, 시흥은 '경기남부서해안'(인천 포함) 권역에, 안양, 군포는 '경기남서내륙' 권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지질학적으로는 편마암 기반의 퇴적층 지대로 알려진 편이지만, 서울시립대 교수의 말에 따르면(기사) 영등포와 광명 일대가 석회암 지대라고 한다.
현재의 도덕산공원인 옛 방공호가 석회광산 입구였다는 말이 있고, 서울 지하철 7호선 철산역 건설과정에서 철산동 지하에 석회동굴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석회암 지대라는 지적이 틀리지는 않을 듯. 지질정보사이트 자료에 따르면 도덕산 산맥과 소하동 일부가 석회암 지대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목감천, 안양천 등의 하천이 흐르며, 목감천은 광명시와 서울시 구로구, 부천시, 시흥시와, 그리고 안양천은 서울시 구로구, 금천구, 안양시와의 실질적 자연경계이다.

 

3.2. 인구

 

경기도 광명시 인구 추이 (1985년~현재)1981년 시흥군 광명출장소·소하읍·소래면 옥길리 → 광명시 분리 승격1985년 219,544명1990년 328,423명1995년 343,899명2000년 338,139명2005년 327,828명2010년 343,982명2015년 344,978명2020년 298,599명2022년 11월 288,182명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50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시흥군 소하읍 시절에는 인구가 무려 15만 명이나 되었던 과대읍이었는데, 이는 읍 단위 행정구역 인구 기록 역대 1위에 해당한다.
이렇게 과대읍이 된 이유는 서울 편입 여부가 도통 결론이 나지 않았던 탓. 당시에는 남부 지역인 하안리(하안동), 노온사리(노온사동), 가학리(가학동), 일직리(일직동)는 미개발지였고, 철산리(철산동)는 철산1동 옛 광복아파트쪽만 개발되어 있었으며, 서면 중심지였던 소하리(소하동)는 조그마한 시가지가 전부였으니 사실상 당시 인구가 광명리(광명동)에 집중되었던 셈. 도시개발기에 지금의 광명시로 유입된 인구들은 외곽으로 밀려난 서울토박이들 아니면 삼남지방 출신 상경민들이었다.
1990년 초반에 하안동 아파트 단지 조성이 완료되면서 인구가 30만명대로 늘어났는데, 1990년대 중반 이후로 2010년대 중반 35만명 가량 정점을 찍고 2010년대 후반부터 다시 감소하고 있다.
1995년 도농복합시 출범 당시 용인군이나 파주군, 화성군보다도 인구가 많았지만, 이 시들의 도농복합시의 넓은 면적과 인구가 많은 인접도시인 수원시, 고양시, 성남시의 팽창으로 인해 인구가 증가한 반면, 광명시는 서울특별시와 인접해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서울특별시의 연담화 현상을 꺼리는 정부의 개발 정책(특히 신도시 계획)에서 철저하게 배제되는 바람에 인구 증가가 정체되어 있다.
만약 광명-시흥보금자리지구가 유지됐다면 광명시의 인구가 50만을 넘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도 엎어졌다가 3기 신도시 계획으로 사실상 부활. 그나마 KTX 광명역 덕분에 소하지구와 광명역세권지구가 개발될 수 있다는 게 위안이다.
그리고 가학동 지역에 광명시흥테크노밸리 사업이 추진된다.
서울의 과도한 땅값 상승으로 인한 서울시민의 경기도 전입현상에도 불구하고 근래 인구가 줄고 있는 두 도시 중 하나이다.
2010년대 중반만 해도 35만명대였으나 2019년 현재는 31만명대로 감소했다.
또 하나는 안양시. 그러나 군포시, 의왕시, 과천시 덕에 소위 안양권역 자체는 증가세라, 가구수는 그대로인데 가구당 인구가 줄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19년 2월 현재, 대강 재건축 이주중인 철산동과 소형평수가 많은 하안동이 줄고, 빌라 등이 새로 개발되는 소하동이 인구가 느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에는 재건축, 재개발로 인한 이주의 여파로 30만명대로 떨어졌으며 2020년 12월에는 결국 30만명 선이 무너지고 말았다.

 

4. 도시구조

 

  • 참고 문서: 광명시/행정

 

4.1. 남부와 북부의 이질성

 

광명은 크게 북쪽의 광명·철산동 지역과 남쪽의 하안·소하동 지역으로 나뉜다.
과거에는 하안동+철산3동 > 나머지 철산동 > 광명동 > 소하동 순으로 동네 사이의 생활 수준 격차가 제법 컸다.
특히 도덕산 기슭에 있는 철산4동은 광명시 시가지 중에서 주거환경이 매우 열악한 곳으로 70년대에 지어진 낡은 집들이 많다.
사진작가들에게는 은근히 알려진 달동네이기도 해서 사진을 찍거나 환경정화 차원에서 벽화를 그리러 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 벽화 작업의 주관자가 서울특별시이다.
그나마 철산4동 남쪽은 고층아파트로 재건축이 이루어져서 '평균적'으로는 환경이 나아진 듯. 최근 들어서는 광명동 외곽에 아파트 단지가 대거 들어서고, 소하동쪽에 이마트 등이 생기고 개발이 많이 이루어지면서 전체적으로 평준화되는 분위기다.
북광명의 서울시 도시계획 편입 이후 2010년 소하동 개발 이전까지는 남광명은 사실상 버려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사실 광명시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지는 서면초를 위시한 소하동 남부로 시흥군 시절에는 서면의 중심지였다.
다만 서울특별시의 베드타운으로서 제일 먼저 조성된 곳은 광명동과 철산동 일부. 서울 편입이 무산되고 나서 시 승격 후 본격적인 베드타운으로 조성된 곳은 철산주공 12,13단지, 하안주공 고층 단지들이다.
1970년대에는 북부인 광명리에서 남부인 소하리로 시내버스로 가려면 서울 영등포를 거쳐야 했다고 하고, 통화권도 광명출장소 관할구역(북부)인 광명리와 철산리는 서울시내통화권(개봉전화국 관할), 소하읍 행정관할구역(남부)인 소하리 등은 서면 자체통화권(광명우체국 관할)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남부와 북부가 이질적인 이유는 각 동마다 개발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광명동 일대와 철산동 일부 지역은 주로 6-70년대에 개발되었고, 철산동 저층아파트단지는 주로 80년대, 하안동은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소하동은 주로 2010년대 초반(구시가지 제외)에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광명역이 있는 일직동은 2016년인 현재 활발하게 개발 중이다.
그래서 광명·철산 시가지와 하안 시가지, 소하 시가지는 서로 조금 따로 노는 편이다.
일단 도시 한가운데를 산줄기가 관통하기 때문에 도시가 길쭉한 모양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고, 결국 광명7동부터 시작해 광명사거리-철산역-하안사거리-소하지구에 이르기까지 나름 개발지역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상권은 이 좁고 길쭉한 도시지역 중간중간에 점점이 박히는 식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것. 이를테면 철산동과 하안동은 서로 이어져 있으나 약 1km에 걸쳐 주공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선지라 시가지 간 연계성이 약하다.
소하동의 경우 특히 비교적 최근까지는 서면초 부근 시가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비닐하우스 단지, 농지였기 때문에 철산동과 하안동 시가지와 분리되었다.
지금은 소하동 북부 지역이 아파트 단지로 많이 개발되었기 때문에 단절성은 덜해졌지만 그래도 소하동에도 이마트를 중심으로 나름대로 상권이 발달하고 있어 어느 정도 분리된 부분이 있는 건 사실. 특히 그린벨트 해제 여부와는 별개로 기아자동차 공장 인근 토지가 완충지대로 묶여있기 때문에 옛 서면, 소하동 남부와 그 외 지역들 간에는 여전히 생활권상 단절성이 크다.
주변 연계생활권에도 차이가 있는데, 광명동과 철산동은 구로구, 영등포구쪽에 가깝고, 하안동, 소하동은 금천구, 안양시쪽에 가깝다.
때문에 도시 자체의 인구는 32만에 이르는데도 정작 각 상권의 규모를 보면 산본보다도 못하다는 평가를 종종 듣고 있다.
광명시 도시계획 자체도 소생활권역을 광명동 생활권, 철산동 생활권, 하안동 생활권, 소하동 생활권으로 구분하고 있다.
남광명(정확히는 남동쪽)은 북광명에 비해 개발 가능한 부지가 많기 때문에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높다.
만약 광명시에 대학병원이나 이케아나 롯데아울렛같은 대형 쇼핑몰, SK테크노파크같은 시설이 들어온다고 치면, 북광명의 상권은 포화 상태에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광명에 건설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관공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철산동 상업지구 안에 있던 광명보건소가 하안동 구름산 옆으로 이전하기도 했으며, 철산동에 있던 광명소방서는 워낙 작았으나 소하동에 화려하게 건물을 지어 이전했다.
광명시 평생학습원도 철산동 상업지구에서 하안도서관근처 복합문화시설로 이전했다.
철산동 상업지구에있는 광명경찰서도 소하동으로 이전하려고 했으나 계획이 없어졌다.
아무튼 과거 서울시 편입 예정지였고 시 승격 이전부터 과거 서울시 도시계획의 직접 영향 하에 시가지로 개발되어 서울의 베드타운으로 성장해 온 북광명과 안양시의 영향권에 있던 농촌지역으로서의 남광명은 서로 이질적인 특성이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 문서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농촌지역의 남광명(남동지역)과 서울의 베드타운성격을 띄는 북광명간의 이질성을 설명한 것으로 보이나, 광명역이 건설되면서 남광명이 개발되고 북광명과 연담화 되면서 점점 이질성의 희석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이마트, 이케아, 코스트코, 광명역 등을 이용하는 북광명 주민들이 늘면서 남광명에 익숙해지는 북광명 주민들이 늘고있고, 북광명을 왕래하는 남광명 주민도 많다.
이 외에도 밤일마을(하안동), 가리대마을(소하동) 등 자연촌락이 지금도 남쪽에 일부 남아 있다.
다.

 

4.2. 서부와 동부의 이질성

 

광명시 남부와 북부 간의 이질성 못지 않게 서부와 동부의 이질성도 만만치 않다.
도덕산-구름산-서독산 구릉지대가 광명을 동서로 양분하는 모양새이기 때문. 구한말까지 광명시 서부는 시흥군 남면, 광명시 동부는 시흥군 서면이었다.
또한 광명시 서부인 광명동은 원래는 사실상 서울 개봉동의 연장선상으로 개발된 곳이라면, 철산동과 하안동은 구로공단의 베드타운 개념으로 개발된 곳이다.
그래서인지 서광명인 광명동은 단독주택, 다세대주택 위주인 반면에, 동광명인 철산동과 하안동(+소하동 북부)는 아파트 위주다.
이에 따라 서광명과 동광명 간에 생활수준 등의 차이가 존재한다.
생활권 면에서도 서광명은 개봉동, 오류동, 천왕동 및 시흥시, 부천시와 연계되어 있고, 동광명은 구로동, 신도림동, 양천구 목동, 영등포구, 금천구, 안양시와 연계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철산동이나 하안동, 소하동을 주 생활권으로 하는 사람들은 광명시장이나 그 주변 옷가게 말고는 광명동에 갈 일이 없기 때문에 광명동이 낯선 경우가 많다.
다만 철산동 출신은 하안동, 소하동 출신에 비해서는 그 정도가 약한 편. 특히 광명시장이라는 강력한 소비시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철산동에서는 광명사거리를 방문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반대로 광명동 출신들은 서광명 지역에 워낙 학교가 없다보니 동광명을 오가는 것이 그다지 낯설지 않은 편이다.
오죽하면 북한에서 발간된 각종 백과사전에서도 광명시 항목에서 시내 한복판에 산줄기가 있어 동서 왕래가 어렵다고 깐다.

 

4.3. 미개발지역

 

시 남서쪽에는 학온동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개발제한구역이 많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 밭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정도다.
이 구역에 분당신도시에 버금가는 광명-시흥 보금자리 지구가 형성될 예정이었으나 2012년 말에 한국토지주택공사 부채 문제로 시작, 부동산경기 침체 와 그로인한 사업자금 미확보라는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결국 4년여의 표류 끝에 2014년 5월 보금자리지구 사업 자체가 잠정 취소되었으며, 2014년 9월 4일 광명시흥보금자리지구 사업이 공식적으로 백지화되었으며, 2015년 4월부로 보금자리지구가 지정해제되었다.
이 발표로 광명-시흥보금자리는 난개발방지를 위해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되었고, 보금자리사업의 일부였던 지구 내 영세공장 및 주변 정비를 위한 산업단지 조성은 LH가 주관하여 이행하겠다고 약속하고 진행 중이다.
한편 위 LH가 주관하는 공업단지와는 별개로 2015년 7월에 경기도는 해당 옛 보금자리계획지구의 일부에 제2의 판교테크노밸리를 내세우며 첨단연구단지(광명시흥테크노밸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4.4. 광명뉴타운

 

시에서 광명동 일대를 재개발하는 계획인 광명뉴타운을 계획하였으며 광명동 거의 대부분이 포함될 만큼 그 규모가 굉장히 크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의 반발이 심하기도 했고 이 문제로 주민들끼리 갈등이 커져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는데, 뉴타운 사업 안에 든 일부 지역 주민들은 자기네 구역이 재개발할 만큼 노후화되지 않은 건물들이 많고 신축 건물들도 몇 있는데 사업을 추진했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광명1동 주민센터 관련해서도 말이 있었다.
결국 뉴타운사업은 백지화 되는듯 했으나 2016년 6월 부로 일부 구역을 사업 구역에서 해제하고, 그 외 나머지 구역에서 뉴타운 사업을 하기로 확정하였다.
가장 진척이 빠른 곳은 16R구역으로, 2021년 5월 현재 완공 후 입주하였다.
그 외에는 14R,15R구역이 현재 공사중, 1R,2R,10R구역은 철거중이다.
뉴타운 구역이 사실상 광명동의 거의 절반에 달하다보니 뉴타운 해제 지역은 집값이 엄청나게 뛰어오르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4.5. 광명시흥테크노밸리

 

옛날에는 광명시흥 보금자리주택지구였다.
보금자리주택 계획 철회 이후 산업단지로 용도변경.다.

 

4.6. 집값

 

  • 생활권: 누차 이야기하지만 행정구역은 경기도이지만 사실상 서울특별시 생활권이다.
  • 접근성: KTX, 수도권 전철 1호선, 서울 지하철 7호선 등으로 접근성이 모두 우수하다. 이미 서울 면허의 간선/지선 시내버스 노선이 많으며, 여의도와 강남 모두 30분 대에서 접근이 가능한 곳이다.
  • 산업 시설: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단지의 성장으로 중하류층의 배후 거주지로서 주목받고 있다.
  • 정주 여건: 경기도 내에서도 치안 정도가 상위권에 속하는 편이며 도덕산과 안양천 등 배산임수형 특성으로 거주하기가 쾌적한 편이다. 도덕산-구름산 산맥이 시 가운데를 지나가기 때문에 광명시의 웬만한 지역은 숲세권이기도 하다. 또한 신도시 형태로 아파트 단지들이 연속적으로 배치되어 근린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시궁창스러운 서울 서남부권의 거주 환경과 비교가 많이 된다.
  • 교육: 명문 학군인 목동 근처에 있기에 그쪽 학원을 부담없이 다닐 수 있으며, 인접한 구로구, 금천구보다 학군이 더 좋기도 하다.
  • 1990년대 개발 신도시의 노후화: 1기 신도시로 개발된 분당, 일산, 평촌 등의 신도시가 개발된 지 30년이 다 되어 간다.
  • 타이밍: 위의 1기 신도시 노후화와 기가 막히게 맞물려 2000년대 후반부터 철산주공 재개발단지, 소하지구, 광명역세권지구 등에 신규 고층아파트 단지가 줄줄이 공급되었다. 2000년대 초중반 영등포, 신도림 일대의 공장부지 재개발 이후로 마곡지구 입주 이전까지 서울 서남권에서 이 정도 신규 물량이 공급된 지역이 없다.
  • 외적인 요인: 정부청사 세종시 이전으로 인하여 KTX역 인근인 소하동 역세권 일대 집값이 올랐다.(매일경제 기사, 서울신문 기사) 30평형대가 3억원 후반~4억원 초반선을 형성하고 있다.

 

4.7. 기타

 

철산동 최북단에 있는 주공 리버빌아파트는 원래 '삼각주마을'이었는데 재개발 이전에는 상습 침수지역이었다.
장마철이 되면 이 지역 주민들은 시청의 지시에 따라 광명북, 도덕, 광명동초등학교에 피난을 가야 했다.
삼각주마을은 광명시 북부 일대가 1982년에 서울특별시 도시계획 구역에서 해제될 때도 서울시 도시계획 구역으로 잔류하였다가 2001년 이후 광명시 도시계획 구역에 편입된 후에 지금과 같이 아파트 단지로 재건축될 수 있었다.
광명시가지와 남부순환로로 단절되어 있어 생활권은 광명시보다는 구로구 쪽에 가깝다.
. 그리고 심야버스를 비롯하여 광명시 지역을 거치지 않는 여럿 서울 시내버스 노선들이 지나간다.
지금의 철산 한신아파트 자리도 안양천 주변 배후습지 지대이자 판자촌 지대였는데, 특히 1987년에 안양천 대범람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지금의 한신아파트가 준공된 것은 1992년 경. 철산동 북부에 모세로라는 도로가 있는데, 철산동에 있던 옛 자연취락 중 하나인 모세마을(이른바 '연서')에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연서라는 이름은 하안동에 있는 연서초등학교가 써먹고 있는 게 함정이다.
다.

 

5. 지역 특징

 

 

5.1. 베드타운

 

다른 수도권 도시들이 다 그렇지만 서울의 주거기능을 분산하기 위해 만든 위성도시로, 베드타운 성격이 강하다.
원래는 서울의 위성도시 개념이 아닌 서울 편입 대상지역으로 염두에 두고 현 광명시 북부인 철산동 일부와 광명동 일대에 주거택지지구를 조성했으나, 서울 집중화 현상 해소를 위해 서울에 편입되지는 못했다.
이후 철산동과 하안동 일대를 서울의 베드타운 성격으로 개발하였다.
<88년까지 광명시 철산 하안동 일대 대규모 베드타운 조성>1981년 철산동 모습. 철산대교와 여기에서 이어지는 디지털로, 그 아래의 철산주공3단지를 중심으로 왼쪽의 철산공원, 그 너머의 철산주공2단지, 두 단지 사이에 조성된 광명성애병원 부지가 보인다.
철산주공2단지 건너편의 논들이 지금의 철산상업지구 자리이며 가운데 쇠머리마을이 있던 지역에 철산역이 들어섰다.
마을 뒤편의 산에는 훗날 시청과 시민회관, 각종 관공서와 광명중/고등학교가 들어서게 된다.
전반적으로 우성아파트에서 시작해 철산주공12단지에 이르는 구역이 텅 빈 반면에 오히려 서울과 맞닿은 목감천변이 주택으로 빼곡한 것을 볼 수 있다.
철산주공3단지 왼편에는 현재는 삼거리 이름으로만 남아있는 '복개천'이 보인다.
안양천 방면에서 철산주공3단지를 찍은 모습. 오른쪽의 디지털로 끄트머리에 광덕초등학교가 보인다.
왼편 언덕이 철망산, 오른쪽 언덕은 철산공원이다.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는 철산주공3단지로 현재 철산래미안자이아파트로 재건축되었고, 두 언덕 사이에 있는 아파트는 하안본주공2단지로 현재 하안두산위브트레지움아파트로 재건축되었다.
철산공원 바로 뒤에 있는 아파트는 현재 철산푸르지오하늘채아파트로 재건축된 철산주공2단지이며, 도덕산 앞에 있는 아파트는 하안본주공1단지로 현재 광명e편한세상센트레빌아파트로 재건축되었다.
왼쪽 사진은 2006년 철산동의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2017년 철산동의 모습이다.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는 광명동, 철산동, 하안동, 소하동 중에서 광명동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대규모 아파트 단지이다.
특히 주공아파트 천지. 광명동은 몇 개의 아파트단지, 철산동은 1981년 철산주공아파트(저층)와 도덕파크타운 2개단지, 하안동은 1990년의 하안주공아파트 14개단지와 하안본 2개 단지, 소하1동은 2000년대 초반 일부 민영아파트와 2000년대 후반 소하휴먼시아 7개 단지, 신촌휴먼시아 2개 단지, 소하2동 광명역세권휴먼시아 5개 단지로 개발되었다.
심지어 일직동 광명역사 코앞에도 주상복합아파트들을 짓고 있다.
일부 지역은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광명시가 마냥 아파트그라드인 것만은 아니다.
광명시 인구 34만명 중 10만이 넘는 인구가 광명동에 거주 중인데, 광명동은 아파트보단 단독주택이나 다세대 주택이 많다.
그렇다고 광명동에 아파트가 없는 것은 아니고, 광명사거리역 근처에 한진아파트 단지가 있으며 광명6동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신축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만약 광명뉴타운사업이 진행된다면 아파트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5.2. 지역 정체성과 인지도 개선

 

베드타운이고 도시 내에 외지인이 시간을 내서 찾아올 만한 별다른 시설이 2010년대 중반 전까지 없다 보니 한동안은 이 도시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광명시' 출신이라고 말하면 "광명시가 뭥미?"하는 반응이 나오며 초기에 거의 듣보잡 도시로 취급 받기 일쑤였으며, 서울에서 많이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다.
때문에 생활권이 서울 서남부권쪽이겠다 지역번호도 02이니 그냥 서울 산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서울 출신이고 그 중에서도 출생지가 인근의 구로구, 영등포구, 금천구, 양천구(목동)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사실 8,90년대까지는 광명시는 개봉동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었다.
광명동과 철산1동 지역이 개봉지구와 함께 개발되었기 때문에 관습적으로 '개봉동'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지금도 영등포 지역에서는 광명을 개봉동이라고 부르는 어르신들이 종종 보인다.
물론 이후 철산동과 하안동이 개발되고, 서울 지하철 7호선 이 들어오면서 광명 일대를 개봉동으로 칭하던 관행이 점차 사라졌다.
다만 광명에서 초중고를 나온 사람들 중에 서울 출생자가 대부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그것은 편견이다.
실제로 80년대 후반 출생 광명 초중고 출신자 가운데서 광명 출생자가 적지 않다.
시흥군 소하읍 시절에도 인구가 15만명이었으니 시 승격 이후에 태어난 그 또래 나이대에 광명시 출신자가 적은 게 이상한 거다.
도시 기반이 거의 자리잡은 9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이들이 대부분인 광명시 재학 초중고생의 경우는 광명 출생자가 더 많을 듯. 하지만 광명시가 전통적으로 물갈이가 심한 도시이기 때문에(즉, 정주의식이 약한 도시) 의외로 그 비율이 높지 않을 수도 있다.
지역정체성이나 생활권 문제가 아니더라도 광명이라는 동네를 잘 모를 법한 비수도권 출신이나 외국인한테 '서울'이라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있으며, 자신이 사는 곳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서울'이나 '구로 근처'라고 얼버무리는 경우도 있다.
또한 노원구, 강동구와 같이 광명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서울 동부권 자치구의 주민들 중 일부는 광명시가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는 편견을 가지기도 한다.
시 승격 이후 20년 간의 암흑기를 지나 대외적 인지도 상승을 위해 2000년 서울 지하철 7호선 개통 이후 한때 '철산'역의 역명을 '광명시청'으로 변경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거리가 멀어 그냥 묻혔다.
그러나 2000년 서울 지하철 7호선 개통, 2004년 KTX 광명역 개통, 2006년 광명돔경륜장 개장, 2012년 코스트코 본사 이전, 2014년 한국 첫 이케아 광명점 개장 및 롯데프리미엄아울렛 개장 등으로 최근엔 많이 알려진 상태. 특히 이케아 최초 개점의 임팩트가 워낙 컸다 보니 광명=이케아로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다.
최근에는 광명동굴도 적극적으로 밀고 있다.
다.

 

6. 도시행정

 

 

6.1. 주요 행정기관 권역

 

  • 서울권(영등포권): 실질적인 생활권을 반영한 케이스. 전화 및 KT 소유 광케이블 관리(KT 개봉지사, 금천지사), 서울남부출입국관리사무소, 택시, 하수도(서남물재생센터, 일직동 제외), 안양세관 산하 구로세관비즈니스센터, 서울지방병무청(징병검사 한정), 공항버스(공항리무진), 기상청 AWS 자료, 응급의료센터권역
  • 안산시흥권: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 예비군훈련장(반월교장), 천주교 수원교구 구 안산대리구, 한빛방송.
  • 안양권: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안양지청, 박달하수처리장(일직동 역세권 한정), 안양세관, 우정사업본부 안양우편집중국/안양물류센터
  • 인천권 (부천권): 광명이 수원시보다는 인천광역시가 더 가까운 경기 서부권이라 인천권으로 조정된 케이스. 인천보훈지청, 인천병무지청(징병검사를 제외한 나머지 병무행정), LH인천지역본부(산하 광명시흥지사), 성공회 서울교구 서부교무구, 대한적십자사 인천혈액원, 인천지방국세청(신설), 의무경찰 자대배치 권역
  • 자체 권역: 광명세무서, 경기도광명교육지원청, 광명등기소, 상수도

 

6.2. 사법

 

가장 가까운 법원은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서울남부지방법원이지만, 예비군훈련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서울이 아닌 탓에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관할한다.
철산동에 광명시법원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소액사건 등 일부 업무만을 담당하고 있다.
검찰도 법원과 마찬가지로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에서 관할한다.
단 과거에는 시흥군 자체가 서울지방법원 본원(1971년 이전) - 서울지방법원 영등포법원(1976년 이전) 관할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수원지방법원 본원이 관할했었다.
최근접 기관인 서울남부지방법원 관할로 변경하는 것은 서울 편입이 아니고서는 비현실적이므로, 광명 시민들은 관할 법원을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이나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광명시가 가까운 안양지원을 두고 멀리 떨어진 안산지원 관할이 된 이유는, 되게 간단한 내용이지만, 안산지원 설치 당시에는 안양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수원지방법원 관할 중 최근접 기관이 안산지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위와 같은 문제로 2015년 이후에는 지역사회 차원에서 관할 법원을 안양지원으로 변경하는 시도가 법률안 발의를 포함하여 여러 번 이루어졌으나 2019년 현재까지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2017년에는 안양권에서 일어났던 안양지방법원 승격 운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2심 관할 법원은 서울 서초동 소재의 서울고등법원에서 수원 소재의 수원고등법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다.

 

6.3. 치안

 

광명시의 치안은 경기도남부경찰청 산하 광명경찰서가 맡고 있다.
광명시는 아파트 단지가 많은 지역 특성상 경기도 지역 중에서도 강력범죄 발생률이 낮은 편. 옆동네인 구로구, 금천구, 부천시, 시흥시, 안양시보다도 나은 편이다.
중앙일보 기사에서 공개된 성범죄 지도에 따르면 광명시는 인근의 부천, 시흥, 구로, 금천, 안양에 비해 성범죄율이 낮은 것으로 나와있다.
다만, 중심지이자 유흥가가 밀집되어 있는 철산상업지구와 광명전통시장 주변에는 가끔가다 강력범죄가 발생하기도 한다.
한때 이 동네 일대를 활동했던 조폭인 광명사거리파와 철산리파까지 있었을 정도. 1차적인 도시화가 끝나자 2000년대 무렵부터는 치안이 안정된 것으로 보인다.

 

6.4. 세무행정

 

수원세무서(수원시, 화성군, 시흥군) → 안양세무서 (안양시, 시흥군) 관할이었으며, 1985년 광명세무서가 설치되었다가 1999년 부천세무서 광명지서로 격하되었고, 2004년 시흥세무서가 개청하면서 그 산하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2016년 6월 9일 광명세무서로 재승격했다.
원래 광명세무서는 경기도, 인천, 강원도를 관할하는 중부지방국세청 산하였는데, 2019년에 인천지방국세청이 분리 신설되면서 광명세무서도 인천지방국세청 산하로 편입되었다.
관세 업무는 안양세관에서 담당하고 있다.
안양권 4개 도시에 광명시와 서울시 일부가 안양세관의 관할이기 때문. 옛 구로세관은 조직개편으로 안양세관 산하의 구로비즈니스센터(서울 금천구 가산동 소재)가 되었는데, 구로비즈니스센터의 관할구역은 서울특별시 관악구·동작구·영등포구·구로구·금천구·강서구(김포공항세관의 관할구역은 제외한다)·양천구, 경기도 광명시다.

 

6.5. 병무행정

 

광명시의 병무행정은 종전에는 수원시에 소재한 경인지방병무청(구 인천경기지방병무청)이 담당했지만, 2015년 7월부터는 인천광역시 남구에 소재한 인천병무지청(구 인천징병검사장)에서 담당하고 있다.
징병검사 관할이 2011년까지 광명시 거주자는 인천광역시 남구 학익동에 있는 인천검사장(현 인천병무지청)에서 징병검사를 받았으나, 2012년부터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는 서울지방병무청으로 넘어갔다.
물론 동원지정 등 나머지 병무행정은 인천병무지청 관할이다.
참고로 보훈 업무는 국가보훈처 산하 서울지방보훈청 산하 인천보훈지청(인천 남동구 구월동 소재) 관할이다.
참고로 인근의 구로, 금천은 서울남부보훈지청(서울 서초구 소재) 관할.다.

 

6.6. 전화

 

  • 1964년 이전: 서울 시흥우체국 (시흥군 서면, 동면 자체 통화권) → 1964년 서면우체국 분설로 서면 분리
  • 1964년~1970년 12월 (광명동, 철산동) / ~ 1980년 (하안동, 소하동, 학온동): 서면우체국 → 1974년 광명우체국 (시흥군 서면/소하읍 자체 통화권) → 1980년 서울통화권으로 흡수되면서 시흥군 소하읍 자체 통화권 폐지
  • 1970년 12월~1976년 (광명동, 철산동): 영등포전신전화국 양서분국 오류분실 (서울통화권)
  • 1980년~현재 (학온동): 개봉전신전화국 → KT 개봉지사 (서울통화권)
  • 1976년~현재 (광명동, 철산동): 영등포전신전화국 개봉분국 → 1977년 개봉전신전화국 → 1978년 광명동, 철산동 미가입구역 서울시내전화 준가입구역 설정(서울통화권 편입 완료) → KT 개봉지사 (서울통화권)
  • 1980년~현재 (하안동, 소하동, 일직동): 노량진전신전화국 시흥분실 → 1983년 구로전신전화국 시흥분국 → 1995년 금천전화국 → KT 금천지사 (서울통화권)

 

6.7. 상하수도

 

일부 사람의 편견과 다르게 상수도(수돗물)는 서울특별시로부터 독립한지 꽤 되었다.
그런데 1988년에 완공한 노온정수장은 한동안 인천광역시 관할이었다.
이게 사실 인천시 단독정수장이 아니라 부천, 시흥, 광명 등의 인천권을 인천시가 책임지는 광역정수장 개념으로 지어졌기 때문. 노온정수장 통수가 시작된 것은 1989년 6월 15일. 1986년 인천직할시 노온정수장 설치에 관한 조례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면 애초부터 인천광역시 산하 정수장으로 지어진 모양. 1990년 서울시 수돗물 공급 중단 이후 2008년까지는 광명시는 상수도 한정으로 인천권에 속했던 셈이다.
1990년 6월 15일 서울시 수돗물 공급 중단 이후부터 2009년에 광명시로 이관되기 전까지는 광명시민들은 노온정수장 완공 이후로 인천시 수돗물을 먹어온 셈이다.
광명시내 여기저기 널려있는 구 인천직할시 시절 문장이 붙어있는 맨홀 뚜껑들은 그 시절의 흔적. 서울특별시 옛 문장이 붙은 맨홀 뚜껑들도 어렵지 않게 광명시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실 노온정수장은 광명시 뿐만 아니라 부천시(소사구), 시흥시 북부, 인천광역시 일부(광명시 이관 후로는 공급 중단)에도 수돗물을 공급할 목적으로 지어진 정수장이라 정수가용능력은 광명시의 수돗물 수요보다 훨씬 많은 편이다.
노온정수장의 취수장은 풍납취수장이 아닌 팔당취수장이다.
다만 철산1동 월경지는 서울시 수돗물이 공급된다.
참고로 독산1동 월경지는 행정구역 상 서울특별시이고 서울의 행정상 공백지역도 아니기에 당연히 서울시 수돗물인 아리수가 공급된다.
서울시 수돗물이 공급되던 시절에는 관할 정수장이 신월정수장(현 서서울호수공원)이었다.
그런데 그 신월정수장도 원래는 김포, 부천 지역을 관할하던 인천시 산하 정수장이었다가 1979년에 서울시가 인수한 것.광명시에서 나오는 하수의 대부분은 서울특별시 강서구에 있는 서남물재생센터(구 가양하수처리장)에서 처리한다.
해당 하수는 안양천~한강 둔치 지하에 매설된 광역하수관을 따라 강서구의 하수처리장으로 흘러간다.
1987년 서남물재생센터 준공 당시에 광명시 예산 지분 70억원이 투입되었다.
다만 일직동 역세권(제2경인고속도로 이남 지역)에서 나오는 하수는 광명시-안양시 경계에 있는 박달하수처리장(1992년 준공)에서 처리된다.
단, 옥길동, 노온사동, 학온동은 하수처리 제외지역이다.
산업단지가 조성된다면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자체 하수처리장이 조성될 계획이라고 한다.
광명시 나머지 지역은 기존대로 서울 서남물재생센터, 안양 박달하수처리장이 관할.1987년 3월 서울 가양하수처리장(당시 명칭 '안양하수처리장'. 현 서남물재생센터) 준공으로 1988년 9월 7일에 실질적으로(이날에 서울-광명 간 하수관거 연결) 서울시 하수처리구역에 편입되기 전까지는 광명시의 하수가 안양천, 목감천으로 그대로 유입되었다.
사실 1986년부터 정부에서 광명시 자체 하수처리장 건설 계획을 세워 광명동에 광명시의 독자적인 하수처리장 건설이 추진되었으나 광명동과 인접한 구로구에서 쓰레기소각장 건설이 추진된 것과 맞물려 양쪽 주민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불렀고, 그것이 행정학에서도 회자되는 협력 거버넌스 사례인 2000년 환경 빅딜로 이어졌다.
환경 빅딜의 결과 광명시는 자체 하수처리장 건설 대신에 서울의 가양하수처리장(현 서남물재생센터)을 연장 이용하게 되었고, 구로구는 자체 쓰레기소각장 건설 대신에 광명시의 가학동 쓰레기소각장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광명시 자체 하수처리장 건설 계획 자체가 아예 백지화되었다.
다만, 최근에는 광명시흥 테크노벨리 계획과 맞물려 학온동을 관할할 자체 소규모 하수처리장 건립 계획은 있다고 한다.
서울 서남물재생센터의 하수처리 용량증설이나 노후화 시설 개선 사업에 대한 비용에 대해 지금도 광명시는 일부를 분담하고 있다.
분뇨는 광명시청 관할 분뇨수거차를 통해 광명시내 각 가정/건물별 정화조에서 수거되면 광명스피돔 근처에 있는 분뇨처리장에서 처리되며, 일부 신축 아파트단지들의 경우는 정화조 없이 분뇨관을 통해 서울 소재 서남물재생센터에서 처리한다.

 

6.8. 차량등록 관련

 

차량등록소는 부천시에 위치한 차량등록사업소에서 1992년까지 계속 전담되었다.
당시 차량번호는 경기 서부권이기에 김포군, 강화군, 옹진군과 마찬가지로 경기X러/로/루/르YYYY의 차번호판이 존재하였으나, 1993년부터 정식으로 신설된 후부터 차량번호판은 경기X추/처YYYY로 바뀌었다가 1996년 번호 체계 개정으로 경기 번호판을 그대로 두되, 승용은 39, 승합은 72거~머, 화물은 84고~무, 특수는 98거로 각각 배정되었다.
1990년대 중후반 무렵부터는 광명시 차량등록소가 광명성애병원 근처 주차장 부지에 있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하안동 광명공영차고지 조성으로 광명시 소재 서울 면허 시내버스 차고지들이 그쪽으로 통폐합되면서 광명실내체육관 옆 옛 보영운수 차고지로 이전했다.

 

7. 교통

 

서울과 연담화되어 있는 도시 특성상 서울과의 도시교통은 매우 잘 발달한 상태이다.
상대적으로 시외로 나가는 교통편은 빈약하나, 광명역이 관내에 건설됨에 따라 경부/호남축의 장거리 이동이 매우 편리해졌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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