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프롬스의 최근 이슈
베트남
1. 개요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 동부에 위치한 국가이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정회원국으로 수도는 하노이(Hà Nội, Hanoi)이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정회원국으로 수도는 하노이(Hà Nội, Hanoi)이다.
2. 상징
2.1. 국호
정식 국호는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이다.
국립국어원의 베트남어 표기법에 따르면 '꽁호아 싸호이쭈응이어 비엣남'. 베트남 한자 독음법에 따라 한자로 옮기면 공화사회주의월남(共和社會主義越南)이 되는데 베트남어는 피수식어가 수식어 앞에 놓이기에 '공화(꽁호아)', '사회주의(싸호이쭈응이어)'가 '비엣남'보다 앞에 온다.
즉 "피수식어(수식받는 단어) + 수식어(수식하는 단어)"의 구조다.
베트남에서 역사적으로 오래 사용한 이름은 대월(大越)이었다.
왕조가 바뀌면 나라 이름도 바뀐 한국사나 중국사와 다르게 베트남에선 왕조가 바뀌어도 대월이란 이름을 계속 사용했다.
그러다 완조가 '남월'(Nam Việt)로 이름을 고치려 했고, 청나라는 중국 남부 지역을 점령한 과거 기원전의 남월 왕조와 연결지어 생각될 것을 우려해 '남월'을 뒤집은 월남(越南)이라는 호칭을 제안했다.
응우옌 왕조가 이에 찬성하면서 1806년 대월은 비엣남(越南, 월남)이 되었다.
영어로는 붙여서 Vietnam이라고 표기하지만, 베트남전 이전에는 영어에서도 베트남어 정서법에 가까운 Viet Nam이나 Viet-Nam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베트남 정부에서는 영어로 쓰더라도 Viet Nam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UN에서도 베트남은 Viet Nam이라 써준다.
영어에서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첫 음절과 둘째 음절에 모두 동일한 강세를 붙여 읽는 아나운서들이 많았다.
현재는 둘째 음절에만 강세를 붙여서 읽는 추세이다.
주월미군들은 둘째 음절만 잘라서 Nam이라고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인근 국가의 언어인 태국어로는 '위앗남(เวียดนาม / wiat-nam)', 버마어로는 비예난(ဗီယက်နမ် / biyaknam), 라오어로는 위앗남(ຫວຽດນາມ / wīat nām), 크메르어로는 위엇남(វៀតណាម / viət naam)이라 한다.
중국어에서는 '베트남'의 한자 표기를 자신들의 방식대로 읽어 '웨난(越南 / Yuènán)'이라 지칭한다.
한국에서는 '베트남'이란 표기가 표준어로 널리 쓰인다.
식민지 시기에는 베트남을 안남(Annam), 인도지나(Indochina) 등으로 표기했고 이 중에 제일 많이 표기 된 것은 '안남'이다.
'베트남'이라는 표기를 사용한 것은 1940년대 후반부터이다.
이는 일본어 전사 표기인 베토나무(ベトナ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국립국어원에 대한 질의 및 답변에 따르면 베트남이라는 표기가 표준으로 채택된 것은 널리 쓰이던 관용을 존중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이며, 2004년 제정된 베트남어 표기법을 따라 표기하면 '비엣남'이 된다.
한편 북한 문화어에서는 '윁남'으로 쓰고 있다.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던 시절에는 오늘날의 베트남(정치체제)의 전신이 되는 북베트남을 베트민(Việt Minh) 혹은 월맹이라 불렀다.
베트민이란 호찌민이 주축이 됐던 베트남 독립 동맹회(Việt Nam Ðộc Lập Ðồng Minh Hội, Ligue pour l'indépendance du Viêt Nam)에서 유래한 약칭이다.
당시에는 북베트남을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고 베트민(월맹) 정권에 의한 불법 정부로 간주했기 때문에 단체명으로 지칭했던 것이다.
한국은 자본주의 진영에 속했던 남베트남을 유일한 합법정부로서 승인하고 수교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남베트남을 베트남(월남)이라고 불렀었다.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공산당의 약칭인 '중공'으로, 타이완 섬의 중화민국을 '자유 중국'으로 불렀던 것과 같은 맥락. 물론 오늘날 한국은 베트민 정권이 베트남 통일 이후 수립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과 공식적으로 수교하고 있으므로 베트남은 곧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된다.
국립국어원의 베트남어 표기법에 따르면 '꽁호아 싸호이쭈응이어 비엣남'. 베트남 한자 독음법에 따라 한자로 옮기면 공화사회주의월남(共和社會主義越南)이 되는데 베트남어는 피수식어가 수식어 앞에 놓이기에 '공화(꽁호아)', '사회주의(싸호이쭈응이어)'가 '비엣남'보다 앞에 온다.
즉 "피수식어(수식받는 단어) + 수식어(수식하는 단어)"의 구조다.
베트남에서 역사적으로 오래 사용한 이름은 대월(大越)이었다.
왕조가 바뀌면 나라 이름도 바뀐 한국사나 중국사와 다르게 베트남에선 왕조가 바뀌어도 대월이란 이름을 계속 사용했다.
그러다 완조가 '남월'(Nam Việt)로 이름을 고치려 했고, 청나라는 중국 남부 지역을 점령한 과거 기원전의 남월 왕조와 연결지어 생각될 것을 우려해 '남월'을 뒤집은 월남(越南)이라는 호칭을 제안했다.
응우옌 왕조가 이에 찬성하면서 1806년 대월은 비엣남(越南, 월남)이 되었다.
영어로는 붙여서 Vietnam이라고 표기하지만, 베트남전 이전에는 영어에서도 베트남어 정서법에 가까운 Viet Nam이나 Viet-Nam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베트남 정부에서는 영어로 쓰더라도 Viet Nam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UN에서도 베트남은 Viet Nam이라 써준다.
영어에서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첫 음절과 둘째 음절에 모두 동일한 강세를 붙여 읽는 아나운서들이 많았다.
현재는 둘째 음절에만 강세를 붙여서 읽는 추세이다.
주월미군들은 둘째 음절만 잘라서 Nam이라고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인근 국가의 언어인 태국어로는 '위앗남(เวียดนาม / wiat-nam)', 버마어로는 비예난(ဗီယက်နမ် / biyaknam), 라오어로는 위앗남(ຫວຽດນາມ / wīat nām), 크메르어로는 위엇남(វៀតណាម / viət naam)이라 한다.
중국어에서는 '베트남'의 한자 표기를 자신들의 방식대로 읽어 '웨난(越南 / Yuènán)'이라 지칭한다.
한국에서는 '베트남'이란 표기가 표준어로 널리 쓰인다.
식민지 시기에는 베트남을 안남(Annam), 인도지나(Indochina) 등으로 표기했고 이 중에 제일 많이 표기 된 것은 '안남'이다.
'베트남'이라는 표기를 사용한 것은 1940년대 후반부터이다.
이는 일본어 전사 표기인 베토나무(ベトナ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국립국어원에 대한 질의 및 답변에 따르면 베트남이라는 표기가 표준으로 채택된 것은 널리 쓰이던 관용을 존중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이며, 2004년 제정된 베트남어 표기법을 따라 표기하면 '비엣남'이 된다.
한편 북한 문화어에서는 '윁남'으로 쓰고 있다.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던 시절에는 오늘날의 베트남(정치체제)의 전신이 되는 북베트남을 베트민(Việt Minh) 혹은 월맹이라 불렀다.
베트민이란 호찌민이 주축이 됐던 베트남 독립 동맹회(Việt Nam Ðộc Lập Ðồng Minh Hội, Ligue pour l'indépendance du Viêt Nam)에서 유래한 약칭이다.
당시에는 북베트남을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고 베트민(월맹) 정권에 의한 불법 정부로 간주했기 때문에 단체명으로 지칭했던 것이다.
한국은 자본주의 진영에 속했던 남베트남을 유일한 합법정부로서 승인하고 수교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남베트남을 베트남(월남)이라고 불렀었다.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공산당의 약칭인 '중공'으로, 타이완 섬의 중화민국을 '자유 중국'으로 불렀던 것과 같은 맥락. 물론 오늘날 한국은 베트민 정권이 베트남 통일 이후 수립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과 공식적으로 수교하고 있으므로 베트남은 곧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된다.
2.2. 국기
베트남의 국기는 붉은 바탕에 커다란 노란색 별 하나가 새겨진 것으로 금성홍기(Cờ đỏ sao vàng)라고도 한다.
1940년 항불/항일투쟁을 하던 베트민에서 처음 사용된 깃발이며 이 깃발이 공식적인 국기가 된 것은 1945년에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이 세워지고 나서이다.
그리고 1975년에 베트남이 북베트남 위주로 무력 통일되면서 통일 베트남의 국기가 되었다.
1940년 반 프랑스 독립 투쟁당시 국기의 붉은 색은 독립을 위해 흘린 피, 노란색은 베트남인의 인종을, 별의 오각은 각각 사농공상병의 다섯 인민을 나타낸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통일 이후에는 노란색 별은 베트남 공산당의 리더십을, 붉은색은 프롤레타리아 공산주의 혁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국기의 상징이 바뀌었다.
1950년대 세워진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은 황저삼선기(Cờ vàng ba sọc đỏ)라고 하는 깃발을 사용했다.
지금도 미국이나 프랑스, 호주에 거주하는 반체제 베트남인들이 사용하고 있지만, 베트남에서 이 깃발을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베트남에서 이 깃발을 공공장소에서 내보이면 반정부주의자나 반공주의자로 취급되어 공안에 연행될 수 있다.
황저삼선기를 아예 볼 수 없는 것은 아니고, 베트남전이나 남베트남에 대해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 뉴스 같은 영상물이나 박물관, 교과서, 신문 등에서 황저삼선기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가위표가 쳐저 있는 등 온전한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남베트남 지지자가 적지 않은 미국의 리틀 사이공에 가면 지금도 많이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육군의 당직부관 완장과 흡사한 디자인의 이 깃발은 응우옌 왕조의 10대 군주 타인타이 황제가 고안한 것으로, 황저삼선기의 노란색은 베트남인과 베트남의 토지, 붉은색은 베트남인의 피를 뜻한다.
전세계의 베트남 요리 식당들 중 북베트남계나 통일베트남계가 운영하는 곳에서는 금성홍기를 걸며, 남베트남계가 운영하는 곳에서는 황저삼선기를 건다.
전자는 주로 구 공산권 국가들이 해당되고 후자는 서방 국가들이 해당된다.
한국은 남베트남 유민들의 정착이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국내의 베트남 요리 식당에서 금성홍기나 호찌민 전 주석의 사진을 건다.
다.
1940년 항불/항일투쟁을 하던 베트민에서 처음 사용된 깃발이며 이 깃발이 공식적인 국기가 된 것은 1945년에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이 세워지고 나서이다.
그리고 1975년에 베트남이 북베트남 위주로 무력 통일되면서 통일 베트남의 국기가 되었다.
1940년 반 프랑스 독립 투쟁당시 국기의 붉은 색은 독립을 위해 흘린 피, 노란색은 베트남인의 인종을, 별의 오각은 각각 사농공상병의 다섯 인민을 나타낸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통일 이후에는 노란색 별은 베트남 공산당의 리더십을, 붉은색은 프롤레타리아 공산주의 혁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국기의 상징이 바뀌었다.
1950년대 세워진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은 황저삼선기(Cờ vàng ba sọc đỏ)라고 하는 깃발을 사용했다.
지금도 미국이나 프랑스, 호주에 거주하는 반체제 베트남인들이 사용하고 있지만, 베트남에서 이 깃발을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베트남에서 이 깃발을 공공장소에서 내보이면 반정부주의자나 반공주의자로 취급되어 공안에 연행될 수 있다.
황저삼선기를 아예 볼 수 없는 것은 아니고, 베트남전이나 남베트남에 대해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 뉴스 같은 영상물이나 박물관, 교과서, 신문 등에서 황저삼선기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가위표가 쳐저 있는 등 온전한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남베트남 지지자가 적지 않은 미국의 리틀 사이공에 가면 지금도 많이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육군의 당직부관 완장과 흡사한 디자인의 이 깃발은 응우옌 왕조의 10대 군주 타인타이 황제가 고안한 것으로, 황저삼선기의 노란색은 베트남인과 베트남의 토지, 붉은색은 베트남인의 피를 뜻한다.
전세계의 베트남 요리 식당들 중 북베트남계나 통일베트남계가 운영하는 곳에서는 금성홍기를 걸며, 남베트남계가 운영하는 곳에서는 황저삼선기를 건다.
전자는 주로 구 공산권 국가들이 해당되고 후자는 서방 국가들이 해당된다.
한국은 남베트남 유민들의 정착이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국내의 베트남 요리 식당에서 금성홍기나 호찌민 전 주석의 사진을 건다.
다.
3. 지리
4. 기후
한국에서는 베트남 하면 1년 내내 더운 열대 국가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남북으로 길쭉한 나라인만큼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하노이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 지방은 대만 및 중국 남부와 흡사한 온대기후로 여름옷으로는 가끔 추울 수도 있을만큼 나름대로 뚜렷한 겨울이 있고 일부 고산 지대의 경우 온대 기후에 가깝고 눈도 내린다.
베트남은 한국보다 난방이 부실하기 때문에 추울 수도 있다.
2013년 12월 16일에는 폭설도 내렸고 1년 뒤에 또다시 폭설이 내렸다.
반면 호치민 시를 중심으로 하는 남부 지방은 전형적인 건기→혹서기→우기의 인도차이나 기후이며 다낭 등 중부 지방은 이 중간쯤 되는 기후를 띄며 12월 낮 기온이 25도 정도 된다.
그리고 중부와 남부는 북부 하노이 쪽과 달리 기온이 확 내려가는 겨울이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고 일 년 내내 한국의 여름과 비슷한 평균기온을 보인다.
어쨌든 베트남 전체를 두고 보면 전반적으론 덥고 습한 편이다.
강수량은 대부분 지역에서 2,000mm 조금 안 되는 정도다.
북부 지역은 아열대로 연간 온도 차가 커서 최저 기온과 최고 기온 차가 약 20°C에 달하는 지역도 있으나, 남부 지역은 열대 몬순기후로 연간 온도 차가 크지 않아 연간 최저 및 최고기온 차는 약 7°C 이다.
강우량은 전국적으로 연 평균 1,800mm 정도이나 우기 때는 더 높은 강우량을 기록한다.
호찌민시를 비롯한 남부 지역은 우기(5~10월)와 건기(11~4월)가 6개월씩 교차되며, 수도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 지역은 미묘한 사계절의 변화가 있어 연말과 연초의 기후가 한국의 4월 날씨와 유사하다.
우기(5~10월) 시에는 하루 30분 정도의 게릴라성 폭우가 내리는데 최근에는 기후 변화 현상으로 인해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때가 많다.
의외로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 지역은 강수량은 적은데 습도는 높은 경향을 보이며, 그래서 겨울 체감온도가 꽤 쌀쌀한 편이다.
분명 16~19℃대(2월 평균기온)인데도 현지인들은 두꺼운 오리털 잠바를 입을 지경. 2018년 12월 31일에 영상한파에 못 이겨 50대 인력거꾼이 동사(凍死)한 채 발견되기도 했다.
참고로 베트남의 기온이 영상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유치원, 초등학교가, 7도 이하로 떨어지면 중학교가 휴교하는 일이 벌어진다.
하노이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 지방은 대만 및 중국 남부와 흡사한 온대기후로 여름옷으로는 가끔 추울 수도 있을만큼 나름대로 뚜렷한 겨울이 있고 일부 고산 지대의 경우 온대 기후에 가깝고 눈도 내린다.
베트남은 한국보다 난방이 부실하기 때문에 추울 수도 있다.
2013년 12월 16일에는 폭설도 내렸고 1년 뒤에 또다시 폭설이 내렸다.
반면 호치민 시를 중심으로 하는 남부 지방은 전형적인 건기→혹서기→우기의 인도차이나 기후이며 다낭 등 중부 지방은 이 중간쯤 되는 기후를 띄며 12월 낮 기온이 25도 정도 된다.
그리고 중부와 남부는 북부 하노이 쪽과 달리 기온이 확 내려가는 겨울이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고 일 년 내내 한국의 여름과 비슷한 평균기온을 보인다.
어쨌든 베트남 전체를 두고 보면 전반적으론 덥고 습한 편이다.
강수량은 대부분 지역에서 2,000mm 조금 안 되는 정도다.
북부 지역은 아열대로 연간 온도 차가 커서 최저 기온과 최고 기온 차가 약 20°C에 달하는 지역도 있으나, 남부 지역은 열대 몬순기후로 연간 온도 차가 크지 않아 연간 최저 및 최고기온 차는 약 7°C 이다.
강우량은 전국적으로 연 평균 1,800mm 정도이나 우기 때는 더 높은 강우량을 기록한다.
호찌민시를 비롯한 남부 지역은 우기(5~10월)와 건기(11~4월)가 6개월씩 교차되며, 수도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 지역은 미묘한 사계절의 변화가 있어 연말과 연초의 기후가 한국의 4월 날씨와 유사하다.
우기(5~10월) 시에는 하루 30분 정도의 게릴라성 폭우가 내리는데 최근에는 기후 변화 현상으로 인해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때가 많다.
의외로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 지역은 강수량은 적은데 습도는 높은 경향을 보이며, 그래서 겨울 체감온도가 꽤 쌀쌀한 편이다.
분명 16~19℃대(2월 평균기온)인데도 현지인들은 두꺼운 오리털 잠바를 입을 지경. 2018년 12월 31일에 영상한파에 못 이겨 50대 인력거꾼이 동사(凍死)한 채 발견되기도 했다.
참고로 베트남의 기온이 영상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유치원, 초등학교가, 7도 이하로 떨어지면 중학교가 휴교하는 일이 벌어진다.
4.1. 소수민족 문제
베트남 정부가 공인한 민족 수는 54개이다.
하지만 전체 인구의 85.7% 정도를 베트남인(Người Việt)=월족=경족이 차지하기 때문에 나머지 53개 민족은 소수민족이고 그중 가장 많은 타이족조차 1.9%밖에 안된다.
주변 동남아 나라들이 거의 그렇듯이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소수민족들에게 악랄하게 탄압과 차별을 자행했다.
예를 들어 이슬람과 힌두교를 믿던 참족에게 종교별로 돼지고기와 쇠고기, 도마뱀 고기를 강요하였고 힌두교, 이슬람 사원을 허물고 그 자리에 베트남인들이 믿는 대승 불교 절을 지었다.
캄보디아를 잠깐 합병했을 때에는 합병 1년 만에 직할 행정구역 설치 및 지명 개명, 창씨개명, 풍습 개조, 캄보디아 왕족과 관리들에게 베트남식 단령 착용 강요 등을 시행하는 동시에 남부 베트남의 크메르족 마을의 경우 베트남인 정착촌으로 크메르족 촌락을 포위하고 강제 통혼 혼혈을 시켜가면서까지 동화시키려고 하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므엉족(몽족)이나 참족같은 일부 소수민족들은 미군의 도움으로 20,000명 정도 되는 부대를 창설해서 결사항전을 벌였을 정도다.
이들을 활용하기 위해 미국은 그린베레 등의 특수부대를 보내 훈련시켰다.
베트남전에서 북베트남이 승리한 이후 이들은 베트남 전역에서 엄청난 학살과 탄압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이웃 나라로 수많은 난민들이 탈출하기도 했고 지금도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출연한 미국 영화 <그랜 토리노>를 보면 이런 소수민족 출신의 이민자들의 삶이 묘사되고 있다.
영화 자막에서는 '몽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므엉'족이다.
베트남 다수민족인 킨족의 역사가 참족의 나라인 참파를 정복해 나가는 역사인데다가 19세기가 되어야 지금의 베트남의 영토가 확정되었기 때문에 남북간의 문화가 상당히 이질적이다.
인종적으로도 확 구분이 갈 정도다.
반중 감정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종종 간과되는데 사실 베트남의 소수민족 탄압과 소수종교 박해는 베트남이 제국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중국을 아득히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중국에서 가끔 벌어지던 문화 대혁명 기간 수준의 소수민족 강경 탄압이 베트남 내에서는 상시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베트남 남서부의 떠이응우옌(Tây Nguyên) 고원 지역의 경우 현재도 베트남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934년 기준으로 떠이응우옌 지역 인구의 95%는 소수민족이었으며, 킨족의 인구수는 33,000명에 그쳤다.
그러나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정권은 중부 고원 지역에 225곳의 지역 개발 중심지를 만들어 베트남화 정책의 일환으로 27만 명의 킨족을 이주시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베트남 전쟁이 격렬해지면서 중부고원지대는 치열한 전투지역으로 변했고, 1975년 북베트남의 통일 이후 북부 지방에서의 이주까지 더해지면서 베트남인의 이주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1979년 83만 명이었던 킨족 인구는 1989년 160만 명으로 증가했고, 2010년대가 된 현재 떠이응우옌에는 50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데 이 중 400만여 명이 킨족이다.
2001년에는 베트남의 커피 산업이 발달한 떠이응우옌 지역에 킨족을 자꾸 이주시키자 곤란한 상황에 처한 소수 민족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그 해 4월의 제9차 베트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는 소수민족 출신인 농득마인 (당시 의회의장)이 예상을 뒤엎고 베트남의 최고지도자인 당대표로 선출되는 변화를 낳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정부의 킨족 이주정책은 계속된 상황. 바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캄보디아 동부의 몬돌끼리와 라따나끼리 주의 경우 크메르인의 인구가 20~30% 수준에 불과하다.
인구밀도도 km²당 20명 미만으로 km²당 100명 정도인 떠이응우옌보다 인구가 확실히 적은 편이다.
오늘날 베트남은 소수민족 문제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편이다.
베트남 전쟁 시기 물론 라오스쪽의 몽족이나 중부고원지대쪽에 살던 참족과 같은 일부 산악 소수민족들은 공산정권에 반대하여 미국 편에서 싸우기도 했지만, 북베트남군이나 베트콩 또한 대부분의 북남베트남의 소수민족들을 잘 설득하여 자신들 편에 설 수 있도록 했다.
베트콩이나 북베트남군들에게 있어서 소수민족들의 도움은 필수였기 때문이다.
현재 베트남은 주로 태국이나 중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소수민족 정책을 세워나가고 있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소수민족 출신인 농득마인이 제6대 베트남 공산당 대표를 지낸 적도 있으나 생색내기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베트남 내 힌두교와 이슬람은 씨가 마르다시피 했는데 중국 내 후이족이 나름 배려를 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거기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떠이응우옌 같은 지역은 이미 킨족들이 압도적 다수가 된 상황이고, 설사 분리주의를 하더라도 그 지역에 존재하는 여러 소수민족들 간의 극심한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 지역에 대한 베트남의 집착과 커피 산업과 관광 산업을 비롯한 경제적 이익이 상당한 곳이기에 현 베트남 정부가 곱게 포기할 리가 없다.
지금은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 금지가 베트남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베트남 헌법에 있는 민족 간 평등 보장 원칙이 베트남의 법 체계 전체에 걸쳐서 명시되어 있고, 많은 법률 문서에서 체계화하고 구체화되어 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정부의 차별 금지 노력에도 여전히 소수민족에게 비공식적으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여 항상 사회문제로 지적받는다.
하지만 전체 인구의 85.7% 정도를 베트남인(Người Việt)=월족=경족이 차지하기 때문에 나머지 53개 민족은 소수민족이고 그중 가장 많은 타이족조차 1.9%밖에 안된다.
주변 동남아 나라들이 거의 그렇듯이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소수민족들에게 악랄하게 탄압과 차별을 자행했다.
예를 들어 이슬람과 힌두교를 믿던 참족에게 종교별로 돼지고기와 쇠고기, 도마뱀 고기를 강요하였고 힌두교, 이슬람 사원을 허물고 그 자리에 베트남인들이 믿는 대승 불교 절을 지었다.
캄보디아를 잠깐 합병했을 때에는 합병 1년 만에 직할 행정구역 설치 및 지명 개명, 창씨개명, 풍습 개조, 캄보디아 왕족과 관리들에게 베트남식 단령 착용 강요 등을 시행하는 동시에 남부 베트남의 크메르족 마을의 경우 베트남인 정착촌으로 크메르족 촌락을 포위하고 강제 통혼 혼혈을 시켜가면서까지 동화시키려고 하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므엉족(몽족)이나 참족같은 일부 소수민족들은 미군의 도움으로 20,000명 정도 되는 부대를 창설해서 결사항전을 벌였을 정도다.
이들을 활용하기 위해 미국은 그린베레 등의 특수부대를 보내 훈련시켰다.
베트남전에서 북베트남이 승리한 이후 이들은 베트남 전역에서 엄청난 학살과 탄압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이웃 나라로 수많은 난민들이 탈출하기도 했고 지금도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출연한 미국 영화 <그랜 토리노>를 보면 이런 소수민족 출신의 이민자들의 삶이 묘사되고 있다.
영화 자막에서는 '몽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므엉'족이다.
베트남 다수민족인 킨족의 역사가 참족의 나라인 참파를 정복해 나가는 역사인데다가 19세기가 되어야 지금의 베트남의 영토가 확정되었기 때문에 남북간의 문화가 상당히 이질적이다.
인종적으로도 확 구분이 갈 정도다.
반중 감정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종종 간과되는데 사실 베트남의 소수민족 탄압과 소수종교 박해는 베트남이 제국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중국을 아득히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중국에서 가끔 벌어지던 문화 대혁명 기간 수준의 소수민족 강경 탄압이 베트남 내에서는 상시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베트남 남서부의 떠이응우옌(Tây Nguyên) 고원 지역의 경우 현재도 베트남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934년 기준으로 떠이응우옌 지역 인구의 95%는 소수민족이었으며, 킨족의 인구수는 33,000명에 그쳤다.
그러나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정권은 중부 고원 지역에 225곳의 지역 개발 중심지를 만들어 베트남화 정책의 일환으로 27만 명의 킨족을 이주시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베트남 전쟁이 격렬해지면서 중부고원지대는 치열한 전투지역으로 변했고, 1975년 북베트남의 통일 이후 북부 지방에서의 이주까지 더해지면서 베트남인의 이주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1979년 83만 명이었던 킨족 인구는 1989년 160만 명으로 증가했고, 2010년대가 된 현재 떠이응우옌에는 50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데 이 중 400만여 명이 킨족이다.
2001년에는 베트남의 커피 산업이 발달한 떠이응우옌 지역에 킨족을 자꾸 이주시키자 곤란한 상황에 처한 소수 민족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그 해 4월의 제9차 베트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는 소수민족 출신인 농득마인 (당시 의회의장)이 예상을 뒤엎고 베트남의 최고지도자인 당대표로 선출되는 변화를 낳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정부의 킨족 이주정책은 계속된 상황. 바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캄보디아 동부의 몬돌끼리와 라따나끼리 주의 경우 크메르인의 인구가 20~30% 수준에 불과하다.
인구밀도도 km²당 20명 미만으로 km²당 100명 정도인 떠이응우옌보다 인구가 확실히 적은 편이다.
오늘날 베트남은 소수민족 문제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편이다.
베트남 전쟁 시기 물론 라오스쪽의 몽족이나 중부고원지대쪽에 살던 참족과 같은 일부 산악 소수민족들은 공산정권에 반대하여 미국 편에서 싸우기도 했지만, 북베트남군이나 베트콩 또한 대부분의 북남베트남의 소수민족들을 잘 설득하여 자신들 편에 설 수 있도록 했다.
베트콩이나 북베트남군들에게 있어서 소수민족들의 도움은 필수였기 때문이다.
현재 베트남은 주로 태국이나 중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소수민족 정책을 세워나가고 있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소수민족 출신인 농득마인이 제6대 베트남 공산당 대표를 지낸 적도 있으나 생색내기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베트남 내 힌두교와 이슬람은 씨가 마르다시피 했는데 중국 내 후이족이 나름 배려를 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거기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떠이응우옌 같은 지역은 이미 킨족들이 압도적 다수가 된 상황이고, 설사 분리주의를 하더라도 그 지역에 존재하는 여러 소수민족들 간의 극심한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 지역에 대한 베트남의 집착과 커피 산업과 관광 산업을 비롯한 경제적 이익이 상당한 곳이기에 현 베트남 정부가 곱게 포기할 리가 없다.
지금은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 금지가 베트남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베트남 헌법에 있는 민족 간 평등 보장 원칙이 베트남의 법 체계 전체에 걸쳐서 명시되어 있고, 많은 법률 문서에서 체계화하고 구체화되어 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정부의 차별 금지 노력에도 여전히 소수민족에게 비공식적으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여 항상 사회문제로 지적받는다.
5. 행정구역
베트남의 성급행정구
|
- 중앙직할시군방현시사사
- 군방
- 방
- 현시사사
- 시사
- 사
- 성성할시방사시사방사현시사사
- 성할시방사
- 방
- 사
- 시사방사
- 방
- 사
- 현시사사
- 시사
- 사
- 서북부 (Tây Bắc) - 6성
- 동북부 (Đông Bắc) - 9성
- 홍강 삼각주 (Đồng bằng sông Hồng) - 8성 2직할시 (하노이, 하이퐁)
- 북중부 (Bắc Trung Bộ) - 6성
- 남중부 (Nam Trung Bộ) - 7성 1직할시 (다낭)
- 서부 고원 (Tây Nguyên) - 5성
- 동남부 (Đông Nam Bộ) - 5성 1직할시 (호치민)
- 메콩강 삼각주 (Đồng bằng sông Cửu Long) - 12성 1직할시 (껀터)
6. 인구
CIA the Worldfactbook에 따르면 2020년 현재 베트남의 인구는 9,616만 163명으로 1억 명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그래서 2020년대에 1억 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전망되었지만, 현재 급격히 저출산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 중이라 이제는 추계 전망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거기에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빠르게 진행되자 은퇴연령을 올리고 두자녀운동폐지를 검토 중이다.
인구의 34.9%가 도시에 살고 있다.
합계 출산율은 2019년 기준 약 2.1명으로 인구대체수준이다.
영아 사망률도 1,000명 당 17.3명으로 다소 높다.
구성 민족은 킨족이 85.7%로 가장 많다.
그래서 2020년대에 1억 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전망되었지만, 현재 급격히 저출산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 중이라 이제는 추계 전망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거기에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빠르게 진행되자 은퇴연령을 올리고 두자녀운동폐지를 검토 중이다.
인구의 34.9%가 도시에 살고 있다.
합계 출산율은 2019년 기준 약 2.1명으로 인구대체수준이다.
영아 사망률도 1,000명 당 17.3명으로 다소 높다.
구성 민족은 킨족이 85.7%로 가장 많다.
7. 평균 수명
현재 베트남의 평균 수명은 73.7세이며, 남성의 평균수명은 71.2세이고 여성은 76.4세이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는데 2017년에 베트남의 65세 이상 노년층은 전체 인구의 8.9%로, 현재는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2030년에는 노인 인구가 전체의 17%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는데, 그 경우 베트남은 불과 18년 걸린 한국보다 더 빠르게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것이다.
0~14세 유년층의 인구는 전체의 24%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위 연령은 32.5세로 인도보다는 높고 중국보다는 낮은 상태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는데 2017년에 베트남의 65세 이상 노년층은 전체 인구의 8.9%로, 현재는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2030년에는 노인 인구가 전체의 17%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는데, 그 경우 베트남은 불과 18년 걸린 한국보다 더 빠르게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것이다.
0~14세 유년층의 인구는 전체의 24%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위 연령은 32.5세로 인도보다는 높고 중국보다는 낮은 상태다.
내용이 도움이 되셨으면 공감 버튼 꼬옥 눌러주세요 ♥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