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최근 이슈가 되는 김정은에 대한 모든 것

by Nomangs 2023. 1. 1.
반응형

 프롬스의 최근 이슈 

김정은

조선로동당 총비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김정은
金正恩 | Kim Jong Un
본명
김정은
Kim Jong-un
출생
1984년 1월 8일 (38세)
강원도 원산시 송천동 특각 602호 초대소
현직
조선로동당 총비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1. 개요

 

   
2011년
2022년

 

2. 상세

 

한국사는 물론 세계사적인 측면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대단히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고조선 시대부터 현대까지를 통틀어 가장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사의 인물이라 표현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과 미국을 향한 핵무기 공격 등의 위협적인 발언들 때문에 미국을 포함한 서양의 여러 예능 프로그램, 토크쇼 등에서 자주 풍자되기도 한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 나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고, 이를 통해 비핵화와 종전을 약속하면서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 주인공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미국과의 협상 난항 등으로 북측이 비핵화를 위한 유의미한 조치를 전혀 취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평화를 위한 노력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정권 차원의 각종 폭압적이고 반인권적인 범죄 행위들이 줄어들지도 않았기 때문에 주목하는 만큼이나 경계해야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2019년에 들어서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 러시아 방문,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 남북미정상회담 등 다각도의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결정적인 변화나 성과는 거두고 있지 못한 상태다.
내부적으로는 권력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는데 장성택과 현영철을 숙청 및 처형하면서 당과 군부를 장악했고 선군정치의 영향으로 위상이 너무 막강해진 조선인민군의 권력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과거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이기도 했던 군 총정치국장의 지위를 강등시키고 국방위원회를 폐지시키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노동당의 신흥 젊은 관료들을 적극 등용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서서 위상이 높아진 대표적인 노동당 관료들은 김덕훈 내각 총리, 김재룡 중앙검사위원장 겸 비서국 비서, 조용원 비서국 비서 겸 조직지도부장도 있다.
또한 국가보위성과 사회안전성도 약화시키기 위해 노동당 검찰소 라인을 우대하고 있다.
그 증거로 우상철이 이례적으로 정치국 회의로 진입한 사례를 들 수 있다.
한편 경제개발을 강조하며 자력갱생(自力更生), 속도전을 내세웠으며 그 과정에서 경공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수많은 건설사업을 추진하며 중공업의 현대화를 추구했다.
그러나 대북제재를 풀면서 행하는 외부와의 정상적인 무역 없이, 국내 시장을 통해서만 이루어내는 식의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발전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거기다가 북한 체제 특성상 유명무실한 내각의 행정집행능력, 세계 최악의 부정부패, 2020년 한반도 폭우 사태라는 악재를 거듭한 끝에 2021년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경제개발이 실패했음을 스스로 인정했고 제2차 고난의 행군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2022년에는 북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과 비이성적인 무역 활동이나, 더딘 외부 지원 수용 등으로 인한 식량난까지 겹치면서 최소 2018년 수준의 전향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는 한 앞으로도 유의미한 경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내·외부발 체제 위기가 점차 도래하자, 그나마 개혁·개방을 추구하던 척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2020년대부터는 오히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및 청년교양보장법 제정,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탄광과 농촌 등 힘든 직장에 들어갔다고 주장하는 '탄원'의 강요 등을 통해 더욱 무자비하게 북한 주민들을 옥죄고 있다.
'젊고 외국 문물을 받아들인 김정은이 북한의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 정치인들의 예측을 조롱이라도 하듯, 안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폐쇄적이었던 북한 체제를 더더욱 퇴행시키고 있다.
다.

 

3. 생애

 

 

3.1. 태생 ~ 학창 시절

 

“주변 사람들이 그(김 위원장)를 그렇게 (권력자처럼) 대하는 상태에서 그가 보통 사람으로 성장하기는 불가능했다”김정은의 이모 고용숙,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한겨레김여정은 2018년 최문순 당시 강원도 도지사에게 직접 김정은은 원산 출생이라고 알려주었다.
그의 이모 고용숙은 그가 1984년생이라고 여긴다.
2013년에는 조선일보에서 김정은이 원산의 초대소(별장) 태생이라고 하였는데, 적어도 원산 출신임은 확인이 된 상황이다.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 등은 그가 원산의 '602초대소'에서 탄생했다고 추정한다.
고용숙 씨는 김정은은 “말썽꾼은 아니었지만, 성질이 급했고 인내심이 없었다”고 회고하며, 김 위원장의 어머니가 그만 놀고 공부를 더 하라고 꾸짖자 김 위원장이 단식투쟁으로 맞섰던 일을 소개하기도 했다.
키가 크고 싶어서 농구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8살에 선물받은 장군복을 입었고, 군장성들이 충성의 맹세를 하여 이때부터 후계자로 결정되었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지금 모습을 보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어린 시절 김정은은 매우 날씬한 체형이었다.
박운으로 기억하는데, 평범하지만 쾌활하고 자신감이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김정은 스위스 학교 동창생 이사벨라스포츠에서 경쟁하는 걸 좋아했지만, 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싫어했습니다.
그는 밤에 외출한 적도 없었고, 디스코나 파티에 나간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김정은 스위스 학교 동창생 주앙 미카엘루그에 대한 증언은 매체가 전달하는 바에 따라 다소 엇갈린다.
미카엘루가 한 인터뷰에서는 '가장 둔하지는 않았으나 자신과 김정은은 2군에 속했다'라고 했는데 김정은이 낙제생이라고만 알려진다든가, 2018년 즈음에는 미카엘루가 김정은에 대한 부정적인 증언도 많이 했는데 김정은에 대한 주관적인 기대를 담아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잘 대해주는 모습만 언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딱히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김정은은 대범하게 행동할 줄은 알거나 물의를 일으킬 부분에는 아주 조용했지만, 자신의 아래 사람들에게는 안하무인으로 변하는 모습도 있다는 증언도 있다.
실제로 북한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도 데니스 로드먼과의 자리나 문재인 대통령과 만났을 때는 깍듯하게 대하기도 했으나, 북한TV에서도 김정은이 아래의 사람들에게 호통을 치고 격노하는 모습이 보도되기도 한다.
김정일이 살아 있던 시절, 나이 든 장성 2명을 툭툭치며 화를 내는 모습이 북한TV에서 보도되기도 했다.
김정은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스위스 베른의 공립학교인 '리베펠트-슈타인횔츨리 슐레(Liebefeld-Steinhölzli Schule)'에서 재학했다.
당시에는 스위스에 있는 북한대사관 운전기사의 아들로만 알려졌었다고 한다.
김정은의 형인 김정철이 1994년에서 1997년까지 베른 국제학교를 다녔다.
스위스 유학 당시 그가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가 살던 베른 시 당국 조차도 그가 북한 대사관 직원의 아들 '박운'으로 알고 있었다.
학부모 참여 행사가 있을 때면 항상 갖가지 변명을 만들었다고 한다.
미카엘루가 2018년 JTBC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그는 오히려 조용한 성격으로 친구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수학에 뛰어나며 성적도 '좋은' 학생이었다.
하지만 미카엘루가 데일리 메일과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과 나는 가장 우둔한 아이가 아니었지만 가장 똑똑하지도 않았고, 항상 2군이었다.
'라고 했다.
북한 고향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의 안했지만 집에서는 서구 음악을 틀어놓는 광경을 보지 못하고 북한 애국가를 천 번은 넘게 듣는 '향수병'이 있었다고 했다.
심지어 그 기사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아예 끼지를(join in) 않았다고 한다.
다만 제임스 본드나 성룡의 쿵푸 액션 영화는 좋아했다고 한다.
2018년은 북미정상회담 등이 있어 김정은에 대한 기대가 컸던 시기였고, 김정은이 확인하여 미카엘루를 초대한 계기였던 '2013년 이전의 언론 인터뷰'의 내용 중 한국의 기대에 어긋나는 부분은 조명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김정은과 대화가 필요하지 않다는 식의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그의 잠재적인 문제점을 확인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시각도 가능하지만 전반적으로 낙관적인 분위기였다.
미카엘루의 JTBC에서의 언급에서는 김정은의 가장 큰 관심은 농구였는데, 그는 축구 밖에 모르던 친구들의 흥미를 농구로 돌려놓았다.
농구를 할 때면 항상 이기려는 승부욕을 보였다고 하는데, 미카엘루는 그 나이대에는 모두 이기고 싶어한다며 지나친 승부욕은 아니었다는 어감으로 이야기했다.
김정은은 농구를 할 때면 고급 나이키 농구화와 유니폼을 입고 다녔다고 하는데, 이에 체육 선생님은 김정은에게 '장비는 잘 갖췄는데 실력이 프로가 되려면 멀었다'는 농담을 했고 김정은은 웃어 넘겼다고 회고했다.
또 흥미로운 것은, 김정은은 학교에 다니면서 기본 과목 중 하나인 '고급 민주주의' 과목을 들었다는 점이다.
우엘리 슈투더(Ueli Studer) 교사는 그의 제자 김정은에게 고급 민주주의 수업을 가르치면서 그가 북한의 로동당 위원장이 될 것을 꿈에도 몰랐다고 CNN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김정은은 자신과 가장 친한 미카엘루와 또 다른 한 친구를 가끔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살던 집은 스위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세대 주택으로, 집 자체는 호화로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조용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학교를 도보로 걸어다닐 만큼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학교와 집이 있는 리베펠트(Liebefeld)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베른 구시가지에 대중교통으로 10분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다만 데일리 메일의 인터뷰에서는 내부에 플레이 스테이션 등이 있고 개인 요리사, 운전수, 개인 교사가 있었다고도 했다.
미카엘루는 김정은의 집에 갈 때마다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미카엘루는 김정은의 집에 갈 때마다 그의 여동생 김여정을 만났고 돌봐주는 어른들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후일 미국으로 망명한 김정은의 이모 고영숙 부부이다.
김정은의 농구사랑은 집에서도 계속됐다고 하며 미카엘루는 그와 마이클 조던이 나오는 미국 영화물을 보거나 같이 게임을 즐겼다고 했다.
이외에도 김정은은 이따금씩 스키를 타러 다녔다고 하는데, 마식령스키장에 큰 공을 들인 걸 보면 스위스 생활이 확실히 큰 영향을 끼친 듯하다.
9학년이 끝날 때쯤 김정은은 북한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미카엘루에게 자신이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미카엘루는 이 말을 전혀 믿지 않았고 믿을 이유도 없었다고 한다.
다만 미카엘루는 텔레그라프지와는 다른 면모도 증언했다.
제임스 본드의 영화 등을 즐겼지만 '북한 음악, 특히 북한 국가를 많이 들었으며, 북한에 있는 여자친구라며 10대 소녀의 사진을 보여준 적도 있지만 대체로 여자들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고'한다.
농구를 같이 했다던 다른 친구인 마르코 임호프는 숙소에서 운전사이자 요리사가 좀 차가운 스파게티를 건네주자 김정은이 급작스럽게 화를 냈다며, 보통 때의 행동 방식이 아니어서 매우 놀랐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맨 윗줄에서 왼쪽 세 번째 학생이 김정은이다.
혼자만 황인종이라서 구분이 쉽다.
또한 김정은은 트레이닝복을 많이 입었다.
그의 친구 마르코에 의하면 김정은의 옷장이 대부분 나이키 운동화와 나이키 트레이닝복들밖에 없을 정도로 아주 단순했다고 한다.
2013년 김정은은 미카엘루의 언론 인터뷰를 보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던 그에게 대사관 직원들을 보내 그를 평양으로 초청한다.
스포트라이트 측에 제공한 자료들에 따르면 미카엘루는 2012년 7월 21일부터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고 김정은을 만나 굉장한 환대를 받았다.
리설주는 물론 김여정도 참여한 식사자리가 있었고 김여정과도 반갑게 재회했다고 한다.
미카엘루는 자신이 알던 '박운'이 악명 높은 북한의 독재자가 되어서 자신 앞에 서자 어떻게 불러야 할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그는 하던 대로 그를 '운'으로 불렀고 따뜻한 포옹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북한 귀국 후에는 2005년부터 1년간 전사한 대남공작원의 아들이라는 위장신분으로 인민군 하전사 체험도 했다고 한다.
신분을 감췄다고 하지만, 김정일의 아들이니 신분을 감춘 호위병 1명이 대동했다.
그렇지만 나름 열심히 군 생활을 했다고 한다.
당시 김정은은 신분을 감춘 채 최전방 부대 신병으로 입소해 대략 6개월 정도 고된 군생활을 체험했는데, 일반 병사들과 똑같이 불침번도 서고 얼차려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김정은을 잘 돌봐준 군인들은 김정은이 집권하자 크게 출세했으며 김정은을 갈궜던 군인들은 날벼락을 맡기도 했다.
특히 김정은을 잘 보살펴준 군대 선임병은 군관이 되고 김정은의 최측근 현송월과 결혼하는 등 크게 출세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성하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현송월의 남편은 박시철이라는 사람인데 북한군 체육단인 7.27 사단 정치위원으로 겨우 중좌 계급밖에 안되고 김정은과 별 관계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탈북자들도 김정은이 언더커버로 군복무를 했다는 것을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믿지 않는다고 한다.
병사체험 그 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들어가 포병학을 전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2022년 들어 베일에 싸여 있던, 북한에서 현철해의 도움을 받아 후계 수업을 받은 과정도 북한의 기록영화 《태양의 가장 가까이에서》를 통해 알려지고 있다.
다.

 

3.2. 후계자 생활

 

원래 김정은은 초창기에는 별 존재감이 없었다.
일설에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김일성은 김정남을 귀여워했고 김정은은 찬밥 신세였다고. 링크 내용대로라면 김일성은 김정은을 손자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데, 이 기사가 과장이라고 쳐도 일단 김정은의 친모 고용희가 정실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므로 신빙성은 높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장남이며 언론 노출과 해외 출입이 잦았고 더불어 나이와 경력이 있던 김정남을 후계자로 지목하였으나, 김정남은 정식 결혼이 아니라 원래부터 유부녀와의 불륜의 소산이기 때문에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없었다.
김정은은 후처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정식결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정통성은 김정은쪽이 강하다.
전문가들의 의견과는 달리 유일하게 김정일 곁에서 요리를 했던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일찍이 저서를 통해 김정은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을 점쳤다.
동복형 김정철의 경우, "김정일이 '여자아이 같다'는 평가를 내리며 후계자 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후지모토는 김정은이 김정철과 달리 권력욕과 지도력이 있으며 어린 나이부터 부하들을 휘어잡는 능력을 엿보였다고 술회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김정남 후계자론이 대세였으며 김정남 대세론이 몰락한 후에도 김정철 대세론에 밀려서 김정은은 후지모토 겐지가 소개한 일부 일화만 주야장천 거론되며 "걔 성깔 있다더라~ 물론 증거는 없음" 정도의 평가를 받으며 고용희의 자식들이 대세인가 아닌가를 소개할 때 곁다리로 이름만 나오는 수준이었고, 2004년 고용희 사망 때도 형에게 밀려 거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잊혀졌다.
이후 5년간 주목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2008년 12월까지만 해도 김정철 세력과 김정남 세력이 알력다툼을 벌이고 있으며 김정철은 조선로동당 부부장 직위에 취임해서 적어도 북한의 실세가 되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국정원에서는 김정은 승계를 어느 정도 눈치챈 것으로 보이며 김만복 국정원장이 국정원 출입 기자들에게 세번째 아들의 승계가 가장 유력하다고 귀띔한 일도 있었다.
그러던 중 2009년에 플리커에서 황한밍이라는 중국인이 북한 원산에서 촬영한 사진이 발견이 되었는데, 여기에 "만경대혈통과 백두혈통을 이은 청년대장 김정은"이라는 문구가 발견된다.
이것은 이런 칭호는 김정일만이 받았던 것이기 때문에 후계자로 주목을 받았고, 2009년 6월 국정원이 김정은 후계자 등극을 국회에 보고하면서 김정은이 후계자임이 만천하에 알려진다.
왼쪽부터 김정각, 리영호, 최룡해, 김정은.2010년 1월 8일, 즉 그의 생일, 북한에선 TV에 연간 김일성 생일, 6.25전쟁 휴전일, 로동당 창단일로 딱 3번 트는 행사용 노래 <축배를 들자>를 틀었다.
그의 어릴 적 생일 축가로 지어진 노래 <발걸음> 또한 가사를 개사하여 북한 어린이들 사이에서 자주 불러서 여러 가지로 후계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후에도 위의 각주에서 언급된 시게무라 도시미쓰가 김정은은 오토바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서 후계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초를 쳤고 2010년 7월에는 신동아에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구해우가 김정은 후계자설은 뜬소문이라는 훈계조의 글을 게재하였으나 2010년 9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 당 중앙위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되는 등 후계자임이 명확해지면서 그야말로 개망신만 당했다.
그래도 청년 시절에 문화예술계(라고는 하지만 선전선동에 매우 중요한 요직이다) 쪽에서 들이대기 시작하면서 10년 넘게 자기 입지를 강화해 나왔던 아버지인 김정일과 달리 북한에서 아무 경력도 없다가 갑자기 띄워주려다 보니 넣을 게 없어서 별 해괴한 선전을 해댄다고 한다.
3살 때부터 백발백중의 사격실력을 갖췄다든가, 140km 이상의 거리를 승용차로 운전했다든가, 7살 이전에 전차 등의 중장비를 조종했다는 양판소, 무협지 수준의 소설이 북한 측의 선전 내용이라고.그러나 이 지도자에게 '권력 유지를 위한 능력' 말고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3살에 운전을 했니 백발백중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선전은, 반대로 말하면 '그것밖에 선전할 것이 없어서'인 것이다.
차라리 저런 황당한 소리를 선전이라고 할 바에야, 어릴 적부터 북한의 나아갈 길을 걱정한 속 깊은 아이였다거나, 오만한 미국인들을 말빨로 꺾었다거나 하는 소잿거리로 선전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실제로 이는 김정일 때 썼던 선전이다.
그들의 선전에 따르면 소련 대사가 거들먹거리며 김정일에게 "동무도 우리 소련 대학교에서 공부할 거죠?" 라고 묻자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좋은 대학교인 김일성종합대학이 있다.
난 거기서 공부할 거다.
" 라고 말해서 소련의 오만한 대국주의에 반대해 북한의 자존심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실제로 김일성대 경제학부로 진학하기는 했다), 3살 때 총을 쐈다느니 하는 것보다는 이런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그 밖에 김정일이 발에 땀나게 중국과 러시아 등을 오가며 건수를 벌어오면,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의 공이 컸다"는 식으로 밥을 떠먹여주었단다.

 

3.2.1. 2011년~2017년

 

김정일은 1970년대 후반에 김일성의 후계자로 결정되면서 20년 가까히 정치 일선에 나섰으며 김일성 말년에는 계승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실권을 장악했다. 김정은이 정치 전면에 등장한 것은 2~3년에 지나지 않으며 계승은 받았으나 실권을 장악했는지는 모른다. 직책은 로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다다.
반박
하지만 '김일성-김정일의 직계 혈통'이자 '차기 지도자'로 김정일 생전에 인정받았으니 겉으로 보이는 직책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북한은 혈통이 지배하는 전제 왕국이다.
김정일은 50대의 원숙한 나이였으나 김정은은 30대 초반의 젊은이일 뿐이다. 숙청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의 국회라 할 수 있는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에서 김정은보다 어린 사람은 거의 없다. 김정은은 나이 든 간부들을 숙청하려 들 테고, 이 때문에 권력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반박
다만 김정일이 생전에 김정은의 경쟁자로 여겨지는 이들을 미리미리 치워놨기 때문에 이점은 있다. 김평일은 해외를 떠돌며 유배된 상태고, 김정철은 몸이 너무나 병약해서 지도자로서는 부적합한 상태인 데다가 권력에 관심이 없어보인다. 김정남과 장성택은 아예 암살, 숙청되었다. 김정일처럼 확고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딱히 강력한 대항 세력은 없다. 오히려 김정은이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최소 몇 십 년은 살 테니 '구심점'이 될 수 있다.
김정일 김일성의 첫 번째 아내 김정숙에게서 태어난 적장자(嫡長子)였으며 이것을 자신의 우월한 혈통성으로 내세우는 데 널리 써먹었다. 반면 김정은의 어머니는 재일교포 무용수 고용희다. 게다가 김정은은 장남은커녕 아들 중에서 막내다. 북한은 겉으로는 공산주의를 내세우고 있음에도 철저하게 혈통의 순수성을 따지고 조선시대 유교 사회처럼 신분을 중시하는 사회다.
따라서 고용희의 신분은 북한에서는 오랑캐 출신의 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인지 김정숙과는 달리 고용희는 신격화하지 않고, 존재 자체가 숨겨져 있는 듯하다.
김정일은 후계자 시절에 충분한 홍보 기간이 있었으나 김정은은 몇 년간의 홍보에도 아직 대중에 명확하게 각인된 인물이 아니다. 김정일도 그리 대중에 많이 나서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김정은은 현재까지는 김정일 이상으로 비밀스럽게 움직이며 대중에 나서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북한 정치에서 일반 대중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지만 김정은은 아직 할아버지나 아버지 수준의 카리스마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정일이 어느 정도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면서 권력을 잡았다면 김정은에게 있는 것은 진짜로 '조상의 후광'밖에 없다는 것.
반박
하지만, 2015년 현재 김정은은 안정적으로 승계에 성공했고, 특히 제2권력자로 여겨지던 고모부 장성택을 제거했다. 이제 김정은에게 대항할 만한 인물은 최룡해뿐인데, 그 최룡해마저도 2014년 1월에 김정은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는 연설을 했다. 게다가 최룡해의 입장에서 보면 김정은에게 대들 여유조차 없다. 당장 황병서가 치고 올라와 최룡해의 라이벌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김일성 숭배'에 익숙한 북한 사람이라도, 난데없이 얼마 전에 나타난 새파란 20대 청년에게 복종하라는 것을 누가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게다가 집권 얼마 전의 북한의 2009년 화폐개혁 같은 실정이 벌어진 탓에 민심이 매우 나빠졌다. 그래도 김정은은 김일성이 살아 생전의 외모와 같은 점에 희망을 걸지만 글쎄? 실제 생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김정은이 북한에서는 1982년생으로 취급하는 것도 1942년생인 김정일과 정확하게 40년, 1912년생인 김일성과 정확하게 70년의 연령차가 난다는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반박
그래서인지 김정은은 포상과 처벌을 번갈아가며 남발하고 점점 자리를 잡아간다. 그리고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예 "어린 김정은을 계속 내세워야 실권자가 마구 바뀌는 대혼란보다는 낫다"는 판단을 할 확률이 높다. 일례로 새파랗게 어린 김정은이 원로인 장성택을 제거하고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게다가 김정은의 외모는 천연인지 성형인지 김일성과 상당부분 닮아 있어서 김일성을 생각나게 하는 얼굴과 몸매를 지니고 있다.
김정일은 어린 시절에는 일반인과 같은 삶을 살았다. 이 때문에 최소한의 현실 감각과 정치 감각은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은은 태어날 때부터 장군가의 인간으로 철저하게 우대를 받고 길러졌기 때문에, 현실 감각과 정치 감각이 제대로일지 의심스럽다. 김정은은 조선 숙종이나 일본 도쿠가와 이에미츠처럼 날 때부터 지배자인 자이므로 왕조 시대의 인간을 현대에 집어던져 놓은 것과 같을 수도 있다.
반박
그러나 주체사상 도입 이후 절대왕정국가가 된 상황에서 현실 감각을 운운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고 설레발이다. 애초에 북한 사회 자체가 다른 민주주의 사회 내지는 공산주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형태이기 때문에 딱히 어려울 건 없다. 추가로 김정은은 스위스 유학파이다. 이 때문에 되려 김정일보다 세상을 보는 안목은 더 넓다.

 

3.2.2. 2018년

 

집권 이후 대남 대미 적대 정책으로 일관하다가 180도 돌변하여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2018년 1월 1일, 김정은은 신년사를 발표하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며 대화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를 계기로 개회식 당일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과 다음날 친서 전달 등이 이루어지며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2018년 3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특사를 파견했고, 남북정상회담뿐만 아니라 북미정상회담까지도 이어지게 되었다.
2018년 3월 25일부터 3월 28일까지 시진핑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집권 이후 처음으로 태양호를 타고 방중하여 베이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북중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대한민국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더불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섰으며 북중정상회담을 통해 본격적으로 국제 외교에 자신의 모습을 공식적으로 나타내게 되었다.
2018년 4월 27일에 열린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과 만남을 가지며 판문점 선언이라는 성과를 거둔다.
이때 김정은은 북핵(군사적 성취)보다 자신들의 정권 존립이 더 중요하다는 걸 드러냈고 체제 안전만 보장된다면 언제든지 핵무기는 포기할 수 있다며 미국, 대한민국 등에게 핵무기 포기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2018년 5월 7일부터 5월 8일에 이번에는 참매 1호로 재차 방중하여 시진핑 국가주석과 다롄에서 2차 북중정상회담을 가졌다.
2018년 5월 10일에는 방북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편을 통해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3명을 풀어줬다.
2018년 5월 16일 0시 30분에 김정은이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고위급회담을 취소했다.
2018년 5월 26일 15시 판문점에서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며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완화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을 가졌다.
6월 19일부터 6월 20일까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을 받아 1박 2일로 참매 1호로 방중하여 시진핑 국가주석과 베이징에서 3차 북중정상회담을 가졌다.
극비리에 이루어진 3월 1차 방중과 5월 2차 방중과는 달리 첫 공식 방중이었다.
2018년 9월 18일부터 9월 20일까지 2박 3일간 평양에서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여기서 9월 평양공동선언이라는 성과를 냈는데 특히 연내 서울 방문 추진이라는 파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2018년 서울 답방은 무산됐지만, 2019년이나 그 이후라도 만약 김정은이 실제로 서울을 방문하게 된다면 북한의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서울을 공식 방문하게 되는 사례가 된다.

 

4. 통치

 

 

4.1. 개혁·개방

 

그딴거 없다.
2018년 4월 27일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싶고, 획기적인 경제 개발을 통해 북한을 동아시아의 주요국으로 부상시키겠다는 야심을 내비쳤다고 한다.
실제로 북한이 그동안 베트남식 개혁·개방에 대한 연구 성과를 상당히 축적했다고도 한다.
베트남은 북한, 중국처럼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다.
베트남의 개혁 개방 정책은 '도이머이'(쇄신)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중국처럼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라는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시장을 개방하고 해외 자본을 유치해 시장 경제 자본주의를 접목시킨 정책으로 1986년 응우옌 반 린 서기장이 취임한 후 제6차 공산당대회에서 처음 도입했다.
도이머이 이후 베트남은 연평균 7.6%의 고도 성장을 달성하고 정책 추진 20년 만인 2006년에 세계무역기구에 150번 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는 일부 지역에 한해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고 거대한 내수를 바탕으로 생산성을 개선시킨 중국식 개혁·개방과는 차이가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국보다 자본에 대한 통제가 덜하고,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김정일과 달리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은 서유럽의 발전상을 보면서 북한 경제에 서구식 제도를 대거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중국의 개혁·개방 경험이 있지만 경제 규모나 국제 사회에서의 지위 등을 감안할 때 북한이 처한 여건이 중국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2000년대 초반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정부의 외교 전문에 따르면 당시 김정일의 후계자 후보로 부상한 김정은은 베트남식 개혁을 선호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또한 김정은은 중국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 이유는 중국의 내정 간섭 때문으로 장성택, 김정남 등 친중파 숙청의 이유도 이와 관련 있다고 추정된다.
이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견제와 균형을 취하는 줄타기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의 사이가 소원해졌을 때 양국 간 줄 타기 외교를 하며 실리를 취하려 했던 행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부적으로는 아버지의 선군정치 덕분에 세력이 비대해진 북한 군부를 반복된 숙청을 통해 약화시키고 길들이는데도 성공한 것 같다.
북한 군부는 우리나라의 안전과 마찬가지로 한반도-동북아 평화와 개혁 개방의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리 젊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아본 경험도 있다.
따라서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고립된 세계 최빈국 안에서만 신으로 숭상 받다가 죽는 전철을 밟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선 경제 문제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집권 첫 6년 동안 군부를 통제하는 것에 주력했고 이를 위해 선대에 이어 핵무기 실험을 이어 나갔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이 침공해올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라지만, 내부적으로는 핵무기를 앞세우면 재래식 무기의 발언권이 약해진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김정은이 집권하고 '선군정치의 시대'에서 '선당정치의 시대'로 변하자, 과거 선군정치의 영광과 특혜를 잊지 못하는 일부 군인들의 불만이 있다고 한다.
그간 공포의 대명사였던 북한군의 약탈과 횡포도 눈에 띄게 사라졌다고. 북 소장파 군인, 김정은 ‘선당정치’에 불만, 김정일 '선군정치' vs 김정은 '선당정치'또한 김정은은 그간 군부가 누려온 각종 특혜를 회수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군부의 불만이 있었지만 큰 갈등으로 치닫지 않았다.
이는 김정은이 그런 반발을 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넘기지 않는 냉엄함을 보여주었기 때문도 있겠지만, 핵무기 개발로 인한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와, 세계 최강국과 1년 내내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위기감을 느낀 북한의 엘리트층이 김정은과 운명 공동체라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다만 이와 다른 시각도 있을 수 있다.
북한은 매우 폐쇄적인 국가라서 권력층의 내부를 직접 취재하는 것이 불가능하여서 무슨 의도로 정책을 내놓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어렵고, 이에 따라 각 정치권에 입맛에 맞는 주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막말로 북한이 어떤 도발을 해도 '이것은 대화를 하자는 뜻이다'라고 설명할 수도 있으며, 반대로 북한이 어떠한 유화적 제스처를 취해도 면종복배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로는 표면적으로는 고립주의, 폐쇄주의 성향이 심해지고 있다.
“굶어죽고 얼어죽을지언정 버릴수 없는것이 민족자존”이라며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는 당정책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식의 주장이 노동신문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2020년의 연락사무소 폭파는 대화로 북한과 교류의 물꼬를 트고자 하는 더불어민주당마저 비난한 사건이었다.
2021년에는 국가정보원도 인정하였던, 북한이 전례가 없던 외부 문화 단속법인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채택이 확인되고, 반사회주의를 적발할 연합지휘부 조직에 나서 주민 통제에 열을 올린다는 분석이 있다.

 

4.2. 숙청

 

  • 김철 - 처형됨
  • 리영호
  • 우동측
  • 장성택 - 처형됨리룡하 - 처형됨(장성택의 최측근, 조선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 장수길 - 처형됨(장성택의 최측근, 조선노동당 행정부 부부장) 박광철 (장성택의 측근, 스웨덴 대사)박춘홍 (장성택의 측근, 조선노동당 부부장)량청송 (정성택의 측근, 조선노동당 부부장) 강민철 (장성택의 측근, 채취공업상)한효연 (장성택의 측근, 금속공업상) 림남수 (정성택의 측근, 석탄공업상) 장계순 - 처형됨(장성택의 누이)전영진 - 처형됨(장성택의 매형, 쿠바 대사)장용철 - 처형됨(장성택의 조카, 말레이시아 대사)장태령 - 처형됨(장용철의 아들)장태웅 - 처형됨(장용철의 아들)
  • 리룡하 - 처형됨(장성택의 최측근, 조선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
  • 장수길 - 처형됨(장성택의 최측근, 조선노동당 행정부 부부장)
  • 박광철 (장성택의 측근, 스웨덴 대사)
  • 박춘홍 (장성택의 측근, 조선노동당 부부장)
  • 량청송 (정성택의 측근, 조선노동당 부부장)
  • 강민철 (장성택의 측근, 채취공업상)
  • 한효연 (장성택의 측근, 금속공업상)
  • 림남수 (정성택의 측근, 석탄공업상)
  • 장계순 - 처형됨(장성택의 누이)
  • 전영진 - 처형됨(장성택의 매형, 쿠바 대사)
  • 장용철 - 처형됨(장성택의 조카, 말레이시아 대사)장태령 - 처형됨(장용철의 아들)장태웅 - 처형됨(장용철의 아들)
  • 장태령 - 처형됨(장용철의 아들)
  • 장태웅 - 처형됨(장용철의 아들)
  • 은하수관현악단 관계자들(2013년에 해당 악단 해체됨)문경진 악장(바이올리니스트) - 처형됨정선영(바이올리니스트) - 처형됨신원불명의 은하수관현악단 감독 - 처형됨총 10명의 단원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짐.
  • 문경진 악장(바이올리니스트) - 처형됨
  • 정선영(바이올리니스트) - 처형됨
  • 신원불명의 은하수관현악단 감독 - 처형됨총 10명의 단원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짐.
  • 김정남 - 암살됨
  • 김근섭 - 처형됨
  • 신원불명의 임업성 부상 - 처형됨
  • 변인선 - 처형됨
  • 조영남 - 처형됨
  • 신원 미상의 대동강 자라 공장 지배인 - 처형됨
  • 현영철 - 처형됨
  • 최영건 - 처형됨
  • 김용진 - 처형됨
  • 황병서
  • 김원홍

 

4.3. 선전

 

  • 마식령스키장
  • 문수물놀이장
  • 미림승마구락부

 

5. 특징

 

 

5.1. 성격

 

  •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술회에 따르면 김정은을 처음 만났을 때 김정은은 초등학생 정도 되는 나이였는데 후지모토를 대단히 적개심 어린 눈으로 봤다고 한다. 후지모토가 손을 내밀었는데 바로 잡아주지도 않았고 아버지 김정일이 '정은아, 후지모토 씨야. 악수해야지?' 라고 타이르자 마지못해 손을 잡아주었다고. 후지모토는 개인적으로 "김정은도 분명 반일 교육을 받고 자랐을 테니 자신을 처음 봤을 때 '이놈이 그 말로만 듣던 일제놈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그때를 회고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아주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 김정철과 김정은은 서로 팀을 꾸려 농구 시합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경기가 끝나고 난 뒤의 모습을 보면 두 형제의 성격 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한다. 형인 김정철은 시합이 끝나면 팀원들에게 "수고했다"면서 격려해 주고 웃으며 마무리 했지만, 김정은은 시합이 끝나도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팀원들을 불러 세워놓고 "동무, 그럴 땐 여기가 아니라 저기다 패스를 해야지!"라면서 꼭 짚고 넘어가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 후지모토는 김정은이 10대 시절에 후지모토와 몰래 담배를 피우면서 넌지시 "우리는 이렇게 재밌게 사는데 우리나라 인민들은 어떻게 살까?"라면서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에 관심을 표현한 적이 있다고 한다. 후지모토는 이때 김정은이 고작 지금의 중학생 정도 되는 나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일반 주민들의 삶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 제법 인상 깊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참배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애육원에서 고아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실제로 성격이 약한 편이라는 말도 있고, 연기라는 말도 있다.
  • 초등학생때는 후지모토 겐지가 물고기를 낚으면 보트 가장자리로 다가와 자기에게 달라며 낚시대를 빼앗고선 자기가 잡았다고 기뻐했단다.

 

5.2. 비만

 

  • 2013년 김정은의 신체는 키가 172cm, 몸무게는 90kg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문서 맨 위에서는 168cm이라고 나와 있는데, 이는 기쁨조의 선발 기준 중 하나가 "키 168cm 이상"인 것과, 김정은이 7cm 키높이 구두를 신는다는 것 등 여러 가지 증거가 나와 추정치가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 2014년 2월 6일, 북한전문언론 데일리NK에서는 2014년 2월 공개된 김정은의 사진을 내과전문의 박현종 원장에게 문의하여 '100kg 정도'로 보인다는 분석을 기사화했다.
  • 2014년 5월 8일자 조선일보에서는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이 살이 많이 쪘다"는 기사를 썼다. 고모부를 숙청한 이후 정신적인 고통 때문에 폭음과 폭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100kg으로 추정되던 체중이 120kg으로 불었다고 한다.
  • 김정은은 현대인의 건강을 좀먹는 삼신기인 비만, 흡연, 음주를 모두 지니고 있다. 비만의 경우는 그냥 비만도 아니고 저 젊은 나이에 벌써 고지혈증에 걸려있다.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은은 어린 시절부터 음주와 흡연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9년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할 때도 직접 성냥으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비만, 음주, 흡연이라는 건강에 안 좋은 삼신기를 모두 장비해서, 젊은 나이임에도 김정은의 건강이 나쁘리라는 분석이 나오는 판국이다. 특히 비만이야 고도비만만 아니면 큰 문제는 없다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고도비만으로 추정되는데다가 +음주와 흡연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실제로 2014년 신년사 음성을 분석한 결과, 4초 간격으로 숨을 허덕거림을 포착해 건강 이상을 의심받는다. 찍히는 사진마다 뒷짐을 지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데, 이건 숨이 차서 그런 거라고 한다.
  • 김정은의 흡연과 관련해 재밌는 일화 하나가 있는데, 일본 아사히 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서훈 국정원장 등과 함께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났을 때 정 실장이 김정은에게 금연을 권유했다고 한다. 지도자를 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북한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하는 발언이였기에 동석해 있었던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이 아연실색, 특히 김여정과 김영철은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었으나 딱 한 사람, 김정은의 아내 리설주만 "평소에도 건강을 생각해 담배를 끊으라고 부탁하는데도 남편이 안 듣는다"고 하소연하며 뜻밖의 '아군'의 등장에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고 한다. 다만 이후에 김정은이 딱히 불쾌한 감정을 가졌다는 증거는 없고 오히려 리설주의 말에 같이 웃음을 지었다고 하니 그냥 지나가는 덕담으로 여긴 듯하다. 달리 말하면 리설주는 동생 김여정조차 감히 간언하지 못할 정도로 절대권력자인 김정은에게 간언을 할 수 있고, 김정은도 아내의 말에는 화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김정은의 유일한 궐내 야당 같은 존재임을 알 수 있다.
  • 심지어 ICBM 발사 현장에서도 담배를 들고 다닐 정도로 애연가다. 자칫하면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아랑곳하지 않는 듯 하다. 담뱃불 때문에 미사일 옆에서 죽는게 북폭보다 현실성 있는 북한 정권 교체 시나리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
  • 맥주를 매우 즐긴다고 한다. 2013년 양조장을 갖춘 독일 맥줏집 비어가르텐을 평양에 열어달라고 독일 맥주회사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일화가 있고, 독일산 맥주를 꾸준히 구매했다. 행사장에서 북한산 맥주와 대한민국산 맥주를 비교하며 '남조선 맥주는 정말 맛이 없다'라는 평가를 내린 것이 한때 유명해지기도 했다.
  • 치즈를 굉장히 좋아하는 인물로도 유명한데 특히 스위스 에멘탈 치즈에 광적으로 집착한다고 한다. 이는 스위스 유학시절 즐겨 먹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뉴스위크와 영국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의 에멘탈 치즈에 대한 집착이 비만의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실제로 대북 제재로 인해 에멘탈 치즈 수입이 불가능해지자 치즈 제조법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에 북한 전문가들을 파견하려 한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평양 공장에서 똑같이 만들어내지 못하자 매우 분노했다고 한다.기사
  • 일본의 대북인권 단체 '구출하자 북한 민중, 긴급행동 네트워크'는 "김정은이 2008년 초 당뇨병으로 쓰러진 적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발표했다.기사
  • 201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20주기 추모식에 나타난 모습을 보면 다리를 저는 모습을 보였으며, 상당히 컨디션이 나쁜 표정으로 등장했다. 또한 이마에 흉터를 입은 것도 로동신문 사진에서 관찰되었는데, 특별히 숨기거나 하지 않는 걸로 보아 어디 넘어지거나 부딪쳐서 생긴 상처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아직까지는 건강 문제가 대두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30대 초반의 한창인 청년이 당장 나자빠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김정은이 불편한 몸이라고 언급했다.
  • 2014년 10월에는 1달 가까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의 건강이상설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최고인민회의에도 불참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듯하다. 이 때문에 대외적으로 사망설에 쿠테타 설까지 난무하였다. 이런 상황이 북한 입장에서는 꽤나 곤란했던지, 최룡해를 포함한 최고위급 인사가 급작스럽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폐막식에 참가하면서 대외적인 논란을 잠재우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양건 로동당 대남비서는 김정은 건강이상설에 대해 부인했다. 조총련 의장은 "김정은이 매우 건강하다"고 말했다.
  • 생각보다 건강이상이 심각하다고 한다. 최근 김정은을 치료하고 돌아온 독일과 프랑스 의료진이 자국 정보기관에 '다리뿐만 아니라 얼굴에 병색이 완연했으며, 내분비계 및 핵심 장기에 이상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 정부에도 통보되었는데, 김정은의 수명도 그리 길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중병설이 사실이라고 해도 불치병이 아니라면 김정은 본인이 작정하고 열심히 관리하고 치료를 잘 받으면 기대 수명이 늘어나겠으나, 한창 기반을 다져야 할 독재자에게 그럴 여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 정신이상설까지 나왔다.
  • 좌골 신경통을 앓고 있다는 설이 있다.
  • 급격히 불어난 몸에 이상이 와서 위 밴드 수술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 신부전증으로 투병 중이라는 설도 있다.
  • 10월 14일, 40일 만에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기사참조
  • 10월 16일 로동신문은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 발목낭종 제거 수술을 했다고 한다.
  • 2014년에 통풍으로 다리를 절면서 잠깐 지팡이를 사용했었다. 회복된 이후로는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최근 공식석상에서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서 있는 모습이 여럿 포착되면서 뭔가 다른 문제가 생긴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 2015년 8월 10일 동아시안컵에 참석하고 돌아온 여성 축구 대표팀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뒷모습이 찍혔는데, 뒷목 살이 심하게 접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자기 할아버지처럼 목 뒤에 혹이 난 사진이 확인되었고, 국가정보원에선 이에 대해 확인된 바가 없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정황상 혹까지는 아니고 그냥 살이 찐 것으로 보인다.
  • 2016년 10월,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김정은은 매주 3~4회 밤샘 술파티를 벌이고 무절제한 생활과 식습관으로 심혈관질환 고위험군에 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 2018년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함께 백두산을 방문했을 때 차를 타고 오르다 내려 10여분 간 걸음을 걷고는 숨이 차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때 같이 걸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정작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았는데, 이를 본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숨 안 차 하십니다"라고 말을 건넸고, 문 대통령은 "예, 이 정도는 뭐..."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 2020년 4월 21일 김정은이 심혈관 수술을 받은 이후 심각한 상태에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 정보 당국 관계자는 김정은이 수술을 받은 이후 심각하게 위험한 상태(grave danger)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현재까지 북한 내부에 특이 동향이 식별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태구민은 "말 안 하는 건 수상하나 핵심 권력도 알기 힘든 정보가 나오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장성민 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은 "중국 고위 관계자로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복이 불가능한 중태 상태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말했다. 로동신문 등이 관련하여 간간히 반박하기는 했으나, 명확하게 드러나는 증거가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설령 죽지않았다고 하더라도 "치명타를 입은게 확실하다"라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었다. 태영호 당선인은 건강이상설을 반박하는 여권 일부의 원산체류설의 주 근거인 열차사진의 열차가 블러핑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제기했다. 그러나, 5월 2일 순천 인 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하여 20일 동안 제기된 사망설 등 지나친 추측들은 모두 허구로 드러났다. 다만, 일부에선 건강과 관련한 수술이 있었다는 주장 또한 제기되었다. 일각에서 아직 증거가 불충분하기에 속단하지 말자는 주장이 나오자, 이에 대해 북측은 5월 1일 날짜까지 찍힌 사진 포함 21장을 보란듯이 증거로 공개했다. 관련하여 북측은 기존과는 조금 다른 방식인 롱테이크 방식의 영상 첨부까지 겸하여 편집이나 조작을 일축하며 보도의 자신감이 내비쳤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5월 6일에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의 보고에서 김정은의 건강에 이상 동향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못박았다. 김정은이 만약 위중한 상태였다면 5주 정도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 또한 내놓았다.
  • 2020년 11월 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참가한 여야 간사인 김병기 의원, 하태경 의원은 국가정보원의 보고를 토대로 김정은의 몸무게가 이제 140kg대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현재 무리 없이 계단과 언덕을 오르는 정상 보행이 가능한 상태'이며, '살은 쪘지만, 비만이 그렇게 큰 건강 문제는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있었다. 몸무게는 매년 평균 6~7kg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 2021년 6월 5일 조선중앙TV를 통해 김정은의 정치국 회의 주재 사실이 보도 되었는데, 손목시곗줄이 줄어든 등 눈에 띄게 살이 빠진 모습이 보여 각국 언론들이 김정은의 건강상태에 대해 주목했다. 하지만 통일부는 건강 이상 동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 2021년 7월 8일 국가정보원은 김정은이 10~20kg 정도 감량했다고 밝혔다. 건강에 대해서도 이전 보고와 같이 이상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 2021 9월 9일 정권수립 73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20kg보다 더 많이 감량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일본 언론에서는 대역을 내보낸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냈다.
  • 2021년 11월 15일 조중TV 보도를 통해 삼지연시 현지지도를 한 것이 알려졌다. 살이 빠지긴 했지만 이전 외모와 크게 달라지진 않게 나왔다.
  • 2021년 12월 29일 조선로동당 전원회의에선 셔츠 목둘레가 남는 정도인 것이 보여서 확실히 체중을 감량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 2022년 5월 들어 요요현상을 의심하는 보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2월 김정일 생일, 4월 김일성 생일 같은 정치적 행사, 특히 코로나19에 따른 통치 스트레스를 거론하는 시각이 있다.
  • 2022년 9월 28일 국가정보원은 김정은이 자신의 체중을 "많이 줄였다가 최근 과거의 몸무게인 140kg대로 복귀한 게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현재 말투나 걸음걸이에서 건강 자체의 이상 징후는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보고했다.

 

5.3. 사치

 

  • 국정원 첩보에 의하면 4년 간 김정은 사치품 구매에 쓰인 돈은 한화로 3조 80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 러시아산 말 품종인 오를로프 트롯터(Orlov Trotter) 수십 마리를 구매했는데 한 마리 당 가격이 수억 원에 달하는 최고가 품종이다. 2019년 10월과 12월 백두산에 갈 때 탄 백마는 지난 2003년 푸틴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준 '오를로프' 종 3마리 가운데 두 마리이다.
  • 한 척 당 수십억 원 이상에 해당하는 호화요트들을 다수 소유중이며 그중에는 수영장과 워터슬라이드까지 존재하는 요트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다가 제트스키들도 수십 대를 보유중이다.
  •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물려받은 다수의 특각(초대소)들을 수십여채나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당연히 이런 건물들은 북한의 최고지도자들이 휴식차원에서 묵는 건물이기 때문에 특급으로 관리되며 전력 공급도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 식생활도 매우 사치스러우며 술로는 보르도 와인과 크리스탈 샴페인을 즐긴다고 한다. 음식으로는 에멘탈 치즈, 최고급 와규, 스시, 샥스핀을 즐긴다고 한다. 김정은이 즐기는 음식들은 최고급 식재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일반인이 먹는 음식과는 비교가 안된다.
  • 기쁨조를 위한 속옷에 수십 억원 이상을 지불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 애플제품을 쓰는걸로 밝혀져 화제가 되었다. 맥북에어, 아이맥을 쓴다.
  • 메르세데스-벤츠, 랜드로버, 람보르기니, 부가티, 코닉세그, 마이바흐 등 총합 200억대의 고가의 외제차들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고 또한 2020년 현재 그의 주 관용차량은 메르세데스-벤츠 S650 풀만 가드와 마이바흐 62이고, 그 밖에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가드, 롤스로이스 팬텀, 렉서스 LX570,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등이 있다. 이중 풀만 가드와 S클래스 가드가 논란이 되었는데, 대북제재 대상 물품이기 때문이다. 북한을 대상으로 이러한 물품을 판매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음에도 김정은이 떡하니 타고 나타난 모습에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에서 구입 경로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네덜란드, 중국, 일본, 한국, 러시아를 경유하며 대북제재를 피해 8개월간 6개국을 거쳐 평양 고려항공으로 밀반입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퍼레이드 때 이 문제의 벤츠에 탑승한 일이 알려지면서 더욱 논란이 되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는 당시 모습이 담긴 사진을 연례보고서에 그대로 넣었는데, 이 과정에서 외교부가 게재하지 말라고 로비를 펼치다가 실패하면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한편, 이 사건 이후에 신형 마이바흐까지 평양에서 목격되면서, 대북제재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5.4. 헤어스타일

 

'김정은 헤어스타일 본받아야'…북, 교사들에 강조김정은의 헤어스타일은 북한 내에서 '패기머리'라고 불리고 있다.
이 헤어스타일은 김정은만의 전유물은 아닌데, 주민들 특히 주로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는 정보가 있다.
RFA 실제로 2014년 황병서 방남 당시 황병서를 수행한 경호원들이 모두 이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것이 관찰되었다.
채널A(동영상)데일리NK는 또 다른 소식통을 인용해 '두발규제 때문에 북한 남학생들은 김정은과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도록 당국에 강요당하고 있으며, 이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지 않으면 바리캉으로 밀어버린다'고 보도했다.
데일리NK이 제한은 학생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다.
교원(교사)에 대한 헤어스타일 통제는 북한 남학생과 맞먹는다.
북한의 '공식 이발소'는 무조건 이 헤어스타일로 만들어버린다.
개인 집 등에서 운영하는 이발소의 사용은 불법이고 몇배나 비싸지만 그런 사설 이발소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점점 늘고 있다.
적발시에는 빡빡 밀게 된다.
조선일보일본에서는 머리통에 검은색 전화 수화기를 얹어놓은 듯 하다 하여 검은 전화기라는 뜻으로 쿠로뎅와라고 부른다.
옆머리를 두피가 다 드러나 보이도록 너무 짧게 민 것을 제외하면 투블럭을 베이스로 가르마 혹은 포마드로 붙여 넘긴 스타일로, 사실 스타일 자체는 지금도 복고풍스럽게 해볼 만한 그럭저럭 멋쟁이 스타일인데, 저 옆머리와 요즘은 유행이 지난 지나친 후까시, 그리고 결정적으로 너무 살이 쪄서 안 어울리는 게 문제다.
또한 30대 중반이 넘어가며 이마가 넓어지고 옆머리가 파이는 탈모 증상을 보이고 있다.
최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10년 전과 비교하면 이마가 1.5배는 넓어졌다.
사실 이 이마라인이 달라진 것 때문에 대역 의혹도 나왔던 것인데, 대역이 아니더라도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그 나이에 탈모증상이 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하다.

 

5.5. 김일성 따라하기

 

외모가 할아버지 김일성과 굉장히 닮았다.
이 때문에 김일성을 닮게 성형수술을 했다는 성형설도 나오나, 북한은 성형설을 극력 부인하고 있다.
성형설이 사실이라 쳐도 차라리 미남으로 성형을 하지 왜 지금의 용모로 하겠는가 싶겠지만, 절대군주제의 전제국가 상태로 퇴행한 북한의 상황에서 북한 민중에게 김정은을 이미 신격화된 예전 지도자의 핏줄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된다.
북한 민중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하듯이, 김정은 역시 신격화된 존재로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충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역사상 한 왕조의 후계자가 민중에게 존경을 받던 부왕의 복장이나 외모를 흉내내어 민중에게 어필하는 일은 흔하고 특이한 일도 아니며, 몇 세기 이전 왕정 국가에서도 종종 있었다.
21세기인 지금 역시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빛나는 전임자의 이미지를 따라 하려는 후임자 등으로 형태가 변형되어 계승되고 있다.
그렇게 없는 일도 아니라는 것. 물론 용모까지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부족 단위 국가 정도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드문 일임에 틀림없지만, 대표적으로 어머니 육영수의 스타일을 벤치마킹하는 박근혜의 케이스를 보면 멀리까지 갈 것도 없다.
이때문에 김일성처럼 보이도록 성형한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며, 확실한 정보는 없다.
물론 굳이 성형을 하지 않아도 피를 물려받은 손자이기에 외모가 비슷한 것은 당연한데, 마침 체구도 비슷하겠다 스타일링만 살짝 해 준다면 정말 판박이처럼 보이는 것은 일도 아니라 굳이 성형까지 할 필요조차도 없기에, 성형설을 부정하는 쪽도 일리는 있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김일성의 행보를 비교적 유사하게 따라가고 있고, 엘리트 계층의 탈북민이자 그 중에서도 꽤나 대북 강경파에 가까운 김길선 기자는 김정은이 수령이 된 후에 이룬 것은 없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인지 김정일이 걸었던 행보를 상당 부분 부정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태영호는 이에 대해 고난의 행군 등 20세기 말~21세기 초 북한이 겪어온 경제적 고난을 모두 김정일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5.6. 무명의 후계자

 

그동안 세계의 관심 밖에서 있었던 인물인 만큼 초치에는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름이 김정운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그렇게 알려진 당시에도 "김정은을 잘못 쓴 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김정은, 김정운, 김정훈' 등이 거론되어 꽤 혼란스러웠다고. 기사.김정은이 후계자가 될 것임을 예측한 후지모토 겐지도 '김정운'으로 소개하였다.
일본어로는 '은'이든 '운'이든 'ウン'으로 옮기기 때문에 모종의 착각이 있었던 듯. 실제로 그의 저서에서 그가 직접 쓴 한글을 보면, 'ㅜ'와 'ㅡ'가 자주 뒤바뀌어 있다.
북한 구어체에서는 이 두 발음이 대한민국에 비해 구별이 힘든 것도 이유 중 하나. 일본에서 2003년 발간된 만화 <김정일 입문> 서두의 계보를 보면 생뚱맞게도 金正雄(김정웅)으로 표기했고 'ウン' 발음으로 되어 있다.
여동생 김여정은 아예 한자 표기도 없던 걸로 보아, 북한 매체는 이름이나 한자 표기는 거의 안 했던 듯하다.
이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한자 이름까지 金正恩으로 보도하자 중국, 일본 언론에서도 종래의 '은'에 해당하는 銀, 殷 대신 恩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름이 김정'은'임이 확실시되자 그 때문에 김정은이 슬슬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에 이름이 '김정운'이기를 바랐다는 배우 김정은은 자신과 이름이 완전히 같은 것을 알고 좌절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으며 농담으로 자신이 먼저 태어났으니 이름을 바꿔주셨으면 좋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일부 일본의 환빠 비스무리한 사람들은 "요코다 메구미가 김정은의 어머니"라고 주장한다.
요코다 메구미가 천황의 후손이라 일본의 고귀한 피를 이어받고 싶은 김정일이 요코다 메구미를 납치하여 김정은을 낳았고, 김정은은 그로 인해 한일혼혈이며 일본에 호의적이라는 것. 불쏘시개 책도 있다.
당시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이름 때문에 스위스의 한 언론매체에서 슈퍼주니어 예성을 김정은으로 만드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김정은의 이름을 김정운으로 잘못 알고 있었고, 해당 매체들은 예성의 본명인 김종운과 김정운을 혼동했다.
아마도 발음상 외국인들은 헷갈렸을 수도 있으며 김정은이 젊은 연령이었던만큼 더더욱 헷갈렸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예성은 당시 실시간 검색순위 1위를 굳게 지키기도 했다.
본인도 정말 깜짝 놀랐다고 한다.

 

6. 평가

 

 

6.1. 긍정론

 

북한 정권을 유지할 만한 능력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
먼저 1년 만에 자신의 지도력을 해칠 만한 노련한 군부실세인 리영호를 숙청하며 군부를 휘어잡고, 이를 통해 당과 장악하는 면을 봐서는 아예 권력장악에 숙맥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장성택을 처형한 뒤, 대규모 체제이탈 망명사태가 벌어지고, 숙청이 벌어지리라는 예상이나 보도가 이어졌고 4월의 당직·내각개편에서도 장성택 잔당 숙청 및 물갈이가 예상되었으나, 도리어 장성택의 심복이라며 숙청설이 나돌았던 여러 인물들(예를 들어 강석주)이 유임되었고 내각도 급격한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자신에게 잘 따르는 사람은 그대로 두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죽이는 방법으로 권력을 효과적으로 획득했다.
민심의 불만도 교묘히 컨트롤하는 노회한 모습도 있는데, 2013년에는 2012년에 대규모 수해로 식량난이 극히 악화해 특히 봄철의 보릿고개에 인민의 불만이 폭발, 김정은 체제가 흔들릴 것이라는 예상이 돌았다.
그러나 2013년 김정은은 고난의 행군으로 수십만을 굶겨 죽였던 김정일과는 달리 신성불가침이었던 군량미를 대규모로 풀어서 인민의 불만을 어느 정도 넘겼다.
뿐만 아니라 2013년 초의 박봉주의 시장 개혁조치가 일단 성공적이라 평가 받고 식량 생산이 크게 늘었으며, 중국에 헐값으로 자원을 넘긴 뒤에 받아온 외화로 비료를 대규모로 수입하는 등, 김정일처럼 산을 깎는 다락밭 개간 같은 뻘짓 없이 합리적으로 식량 증산에도 힘쓰는 등의 모습이다.
일단 미국의 평가로도 "식량난은 10년 후에는 거의 극복할 것"이라고 평가받는다.
미 농무부 "북한 식량 사정 점차 개선"북한이 신정 일치 국가인 만큼 내부적으로는 김씨 일가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나 세력이 없고, 외국에서 오래 생활해봤으니 세상 물정에도 그리 어둡지는 않으리라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식량 증산은 아비보다는 제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법을 쓰고 있는 듯하다.
1994년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때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3년 안에 쫓겨나리라고 했지만 되려 죽을 때까지 권좌에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김정은도 정권을 처음 10년 정도만 안정적으로 유지하면 선조들처럼 종신 집권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최근 김정은 치하에서 장마당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신흥 부유 세력인 돈주들이 수십만 명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북한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이었던 15년을 제외한 2012~2016년까지 연평균 1.2%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2016년에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3.9%가 성장했다.
이는 김정은이 대외적으로는 대중무역을 확대하고 대내적으로는 시장 경제를 일정 부분 허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인 2012년 6월 '우리 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방침에서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를 확고히 고수하면서 국가의 통일적 지도 밑에 모든 기업체들이 경영 활동을 독자적으로 창발적으로 해나가자"고 강조하였는데 이는 생산수단은 사회가 소유하고 중앙집권적인 경제 계획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인이나 기업의 자율성을 조금 늘려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농업 분야에서 초과생산분은 개인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공업 분야에도 개인의 투자를 허용하였다.
농업 부문에서는 협동농장의 생산단위 규모를 기존 10명~25명에서 세분하여 3~5명으로 축소했고 해당 생산단위가 일정 규모의 경지를 담당하도록 하는 '포전담당책임제'를 도입했다.
또 목표량을 초과한 생산물은 전량 농민들이 가져가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게 하는 등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공업 부문에서는 공장·기업소에 경영상의 자율권을 부여했고 개인의 투자를 통한 경영 참여를 허용했다.
전문가들은 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생산, 제품 판매(처분) 및 수익 처분에 이르기까지 기업 활동의 전 과정에서 기업의 권한을 확대하는 조치가 취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출처 이 모든 과정에서 신흥 부유층인 돈주들이 등장하여 달러를 축적하였으며 축적한 달러가 시장에 재투자되고, 그럼으로써 장마당 경제가 다시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이 돈주들은 유통업이나 건설업, 심지어는 광산 채굴업에도 투자를 하고 있다.
이렇게 성장한 비공식 사경제가 북한주민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을 올리고 있으며 김정은 정권의 명줄을 유지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 외에도 13개 경제특구를 개설하여 외자 유치를 노리고, 일부 경공업 소비재에 한해서 품질 개선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등, 적어도 경제 면에서는 김정은은 예전보다는 나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통일 연구원 소속 박영자 박사에 의하면 김정은은 김일성만은 못해도 적어도 이런 경제 성장으로 인해, 김정일보다는 지지를 더 많이 받고 있으며, 특히 젊은 층에게 더 큰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은 대에 부를 축적한 신흥 돈주들도 김정은과 유착관계를 맺으면서 지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김정은의 통치력에 대한 부정론에서 주장하는 대로, 적어도 경제면에서는 김정은이 "과거의 시스템을 바꿀 생각은 거의 없고 현상유지에 만족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라고 볼 수는 없다.
김정일이 북한 경제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장마당을 탄압한 것과는 달리, 김정은은 장마당을 대대적으로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김정은이 소양있고 성숙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북미 정상 회담이후 "김정은은 매우 훌륭하고 똑똑한 협상가"라고 극찬했다.
스포츠 경향 2018년 10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은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
"고 했을 정도다.
무엇보다, 미국과의 대화 과정에서 기존의 입장을 선뜻 뒤집지는 않을지언정 판까지 깨려고 무모한 도발을 감행하는건 자제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파 중 하나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협상 과정에서 방해가 된다는 불만을 내세우면서 정작 그 당사자를 직접 평양으로 보내라는 친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냈을 정도. 특히 그렇게 만나서 "CIA가 나를 암살하려 시도해온 것을 사과하라."는 말을 한데 대해 마이크 폼페이오가 "(우리는) 지금도 당신을 암살하려 하고 있다.
"는 독설로 되받아치자 도리어 웃으며 화기애애하게 회담한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위에 나온 성격 부분 정보에서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듯이 사생활과 개인사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비하면 훨씬 깨끗하여 권력투쟁이나 여성문제 등 각종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개인사에 대한 정보도 훨씬 적고 여성 편력으로 인한 대내외적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어 있지 않으며 선대의 수령들과는 달리 역대 한국 대통령들처럼 당당히 정식 영부인을 공식 석상에 대동하며 정치적, 사회적, 대외적으로 더욱 좋은 이미지를 보이고 있다.
김일성은 김정숙이 너무 빨리 사망하고 재혼한 김성애를 공식적으로 대동하기는 했으나 김성애는 어디까지나 김일성의 총애를 받아 대외적 이미지 메이킹 용도로 나섰을 뿐이며 아내로써도 어머니로써도 형편 없어서 김일성의 정식 부인 역할을 했다고 보기에도 민망한 수준에 별 지적 역량도 능력도 없는 주제에 야심과 권력욕과 오만함이 심해 김일성과 김평일만 믿고 함부로 나대다가 결국 의붓아들인 김정일과 졸개들에게 역관광을 당해 김일성의 대외적, 공식적 정식 부인이었음에도 결국 자신과 자신이 가장 든든하게 여겼던 김평일을 비롯한 집안 자체가 곁가지로 분류되어 갈려나가는 비극을 자초했다.
김정일은 애초에 부인을 공식적으로 드러낼만큼 당당한 적 자체가 없었고 공식 부인만 4~5명이었다.
여성편력 역시 김정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들 중 하나가 그 끔찍한 '기쁨조'일 정도로 난잡하고 지저분함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답게 여성 편력 논란 없이 늘 공식 석상에서 아무도 정통성과 도덕성을 부정할 수 없는 배우자로 영부인에 해당하는 리설주를 대동하여 한국이나 여러 선진국들의 대통령, 총리 등 문명국가들의 국가수반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좋은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젊은 편임에도 그런 부분에서 선대 지도자들보다 깔끔하고 자유롭다는 뜻이다.
선대 지도자인 김정일에 비해 건축 사업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에서도 고평가가 있다.
선대 지도자이자 아버지인 김정일도 건축 사업은 많이 벌였으나 자신과 아버지 김일성을 우상화, 신격화하는 것을 비롯한 선전선동과 그에 따른 후계세습과 권력 강화의 정당화 등을 위해 막말로 쓸데 없는 건설 사업을 벌여 결과적으로 인민들의 등골이나 빼먹고 국부나 소진하는 삽질과 악행에 가까운 건축에 열을 올렸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평양의 유명 건축물들이 김일성경기장, 주체사상탑, 평양 개선문 등이다.
려명거리나 미래과학자거리를 조성하고, 평양국제비행장과 평양종합병원, 그 외 관광 시설들을 현대의 미적 감각에 그나마 가깝게 재정비하고 있다.
없는 살림에 대체 건축 자재를 개발하게 해서 핵심계층은 물론 동요계층에 해당하는 지방 인민들에게까지 살림집을 선물하고 있다.
특히 삼지연시와 같이 중요도가 높은 일부 도시는 인프라 재구축 수준으로 시가지를 환골탈태시켜놓았다.
이를 통해 본인의 방식으로 관광객 유치 효과를 노림과 동시에 주민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건물들은 하나 같이 파스텔톤인 것이 눈에 띄는데,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당시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

 

6.2. 부정론

 

일각에서는 현존하는 세계 최악의 독재자로 거론되기도 하다.
권력에 취하여 국정운영을 보통 국가처럼 못하고 이성을 상실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부하들과 자국민들을 자신의 입맛대로 처형하고, 21세기 들어서도 개방을 막으면서 철저하게 국민의 알 권리를 봉쇄하는 중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챙기긴 한다고 보기에는 GDP의 23.5%라는 양을 국방비라는 명목으로 핵 위협에 사용하고 있으며 노동신문은 물론 김정은의 언급에서는 후술하지만 경제건설보다 사회주의 생활양식 고수가 중요하든가, 기술만능주의가 아니라 사상제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등 상식 밖의 주장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노동신문은 직접 2019년 3월에는 "전후 잿더미도 헤치고 고난의 행군도 해보았지만 현세기의 10년대에 우리(북한)가 겪은 난관은 사실상 공화국의 역사에서 가장 엄혹한 시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라고 하더니 2022년 7월에는 더욱 퇴보하여 “상반년 기간 우리가 건국 이래 일찍이 없었던 시련과 난관을 겪었다고 하지만 하반년에 들어선 지금 형편은 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라고 하여 갈수록 자기들이 말하는 '시련'이 심해진다고 한다.
기분에 따라 고위간부를 숙청하여 김일성이나 김정일보다 인명경시 성향을 좀 더 보이고 있거니와 사람 먹을 물도 없는데 자라 공장에서 자라를 키워내라 하는 등 얼토당토하지 않는 명령을 내리고, 명령만 하면 뚝딱 만들어내는 양 생각하는 것을 보면, 세상 물정에 밝은 것은 아닌 것 같다.
특히 건설 사업도 경루동 건설처럼 엘리트를 위한 건설, 당이 추진하는 사업이 아닌 돈주(자본가) 같은 민간인이 주도하는 건설을 빼고는 김정일 시대였던 2008년경부터 이어진 단순 페인트 색칠로 인민 생활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삼지연시 건설은 북한의 선전 성격의 방송에서조차 시멘트가 없어 진흙과 '감자가루찌꺼기'로 만든 벽돌로 건설을 했다는 주장이 나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조롱의 대상, 끔찍한 조건을 견디는 관계자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대상이 되었다.
여기에 인민에 대한 실질적인 연결성을 가진 농장과 같은 농업 관련 시설로 주로 현지지도를 나갔던 김일성과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은은 인민의 실생활과는 전혀 관계 없는 관광지 또는 사치성 시설에 대한 현지시찰이 대부분이라는 점에도 차이가 난다.
남북정상회담, 경제 개혁 등을 통해 나름 대내외적 지지를 얻기도 했으나 이를 다시 뒤엎기도 하고, 뚜렷한 이유없이 금강산 관광시설을 두고 욕하거나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며 핵개발을 하여 외부적 신임을 잃기도 한다.
선대처럼 보통 국가와 비교하면 인터넷 개방도 하지 않고 스스로 전면적인 무역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수입병을 부르짖고, 국경을 가두고 이민을 허용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극심한 정책을 펴고 있으나 그나마 정권 유지 측면에서 봐주어도 과욕이나 충동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외부에서 가장 큰 어그로를 끄는 것은 201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겠다고 한다든가 진지하게 '조국통일전쟁' 운운하며 남한 본토를 타격한 서부전선 포격 사건 등 김정일 이상으로 호전성을 드러낸 점, 김정일과 달리 한국 정부의 대북지원을 받지 않는 문제가 있다.
2018년에 보여주었던 모습조차 싱가포르 등의 방문을 제외하고 김정일이 이미 보여준 바가 있다.
이것은 북한의 언론에서도 기술만능주의, 기술지상주의가 아니라 사상제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며 실제로 주장하는 내용이다.
가령 드레스덴 선언이니 뭐니하여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대북지원을 받지 않은 것은 그렇다 쳐도, 문재인 정부가 대북지원을 하고자 하여도 '비본질적 문제'라고 하여 그나마 김정은에 유화적인 시각을 가졌던 사람마저 열받게 하기도 했다.
개성공단 가동 당시에도 초코파이에 사상이 들어간다고 여긴 모양인지 북한제 짝퉁 초코파이를 근로자에게 주라고 하기도 했다.
2022년에는 대한적십자사의 코로나19 지원 시도를 거절하기도 했다.
'인도적 지원'이란 말을 싫어한다고 하여 주민 생명보다 정치적 이득을 중시하는 잔인함을 드러내었다.
김정은은 사실 이런 과정에서 자신이 바라는 바를 드러내기도 했는데, 문재인 정부를 두고는 '상용무기개발사업'을 방해하지 말며, 윤석열 정부를 두고는 "때없이 우리를 걸고들지 말고 더 좋기는 아예 우리와 상대하지 않는것이 상책일것"이라고 2022년 7월에 주장하기도 하였다.
2020년 이후 주장하는 것은 어떤 건설적인 주장도 안하고 그냥 한국 정부는 대들지 말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라는 것뿐이다.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아버지였던 김정일의 능력에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부분들이 어느 정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아버지였던 김정일의 개막장처신이 그 첫 번째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여성편력으로 인해 후계자 선정을 어렵게 만든 것은 자업자득인 셈이다.
당장 김씨 가문의 우상화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백두혈통을 내세울 근거를 빼앗아버림으로써 명분면에서도 약했다.
더구나 1980년대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아와 논란은 많았지만 비교적 순탄하게 후계자로 임명받을 수 있었던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은은 후계자 수업도 받은 일도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인해 갑작스럽게 지명된 처지라 권력 기반이 약할 수밖에 없었으며, 여기에 결정타는 해외에서 자랐다는 약점이 있었다.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중국과의 관계도 김정일 시절보다 험악해졌는데, 최소한 김일성·김정일 라인까지는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면서까지 통제를 무시하려는 듯한 행동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3차 핵실험은 중국에게도 상당한 위협감을 주며 그 사이에도 김정은이 조용조용 지내려는 중국의 의도와는 반대로 나가니, 일반 중국인부터 중국 공산당 수뇌부까지 북한에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당장 북한의 전혀 가망없는 경제 상황은 중국 정부로서도 골칫거리다.
원조를 한다고는 하지만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도 않고, 큰 개선을 보이지 않는 경제난과 중국보다도 열악한 인권으로 인해 북한 주민의 탈북 동기가 늘어남으로서 이들의 처리도 고민해야 할 처지다.
물론 지금까지는 체포해서 다시 북한으로 넘기지만, 언제까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이렇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중국의 탈북자 북송 문제는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의 의견에서 드러나듯 한국 정치에서까지 초당적인 의제로 여겨지고 있다.
여기에 툭하면 도발로 나오는 북한의 태도 역시 중국의 인내심을 점점 한계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다.
2020년 이후 코로나 시국에 국경 차단을 하며 빠져 나가는 것, 무역도 막는 초강수를 두며 탈북은 일단 막았으나 민생을 심각히 나쁘게 만들었다.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뿐 아니라 '세계 유일 코로나 청정국'에서 '오염된 곳'으로 나가는 걸 막던 것이다.
중국이 북한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게 정말 한두가지가 아니다.
중국이 북한의 도발 때마다 '대화와 자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도 북한의 개짓을 그냥 두고 보기만 하기도 뭣한 상황이다.
이전 G20 정상회담을 광저우에서 개최했을때 중국은 이것을 통해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지만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하는 바람에 미국 등에 "야, 저런데 니네들 계속 그렇게 대화같은 소리할래."라고 핀잔만 들었고 망신만 당한 중국은 중국대로 이를 가는 상태로 빠지고 말았다.
중국이 아직도 '대화와 자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북한이 'ㅈㄹ하네!'라며 계속 중국의 의도에 어긋나는 행패를 부리고 있으니 중국도 정말 열이 날 대로 날 상황이다.
그래서 요즘은 대북제재 강도를 높이려는 시도도 한다.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며 북한에 손을 내밀면, 북한은 중국에 온갖 단물을 빨아먹으려는 시도를 한다.
문재인 정부 이전에는 대한민국과의 관계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극도의 긴장 상태를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이야 정권 교체와 함께 대북정책이 강경하게 변했다고 해도, 과거 대북지원을 받던 시절에서 10년도 안 지났는데 마치 그런 시절이 없었던 것처럼 호전적인 태도로 돌변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민간인의 생명까지 뺏는 무력도발까지 감행했다.
2018년 이전까지는 보수 정권의 정보 당국의 예상조차 뛰어넘는 막말을 해댔다.
최전방 서해 무도 방어대에서 “항복 문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도록 수장(水葬)시키라”라는 말을 할 때만 해도 특수부대 앞에서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고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하여야 한다”라는 말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선대처럼 한국의 정권과 주민을 분리시키는 최소한의 분별력마저 2018년 이후에나 생긴 것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로는 김여정의 막말을 묵인하고, 금강산 관광 시설에 대한 막말을 시작으로 2022년에는 한국 정부를 '전멸'시킬 수도 있다는 등 갈수록 2017년 이전의 호전성을 보이는 움직임이 있다.
2022년 9월의 핵무력정책법을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무력은 국가의 주권과 령토완정, 근본리익을 수호하고'라는 문구에서 진지하게 핵전쟁으로 적화통일을 꿈꾸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생겼다.
그나마 북한을 현상유지시키는 통치력을 그나마 능력이라고 과장해서 평가해도 외교능력에 있어서는 도저히 능력이 있다고 볼 수가 없다.
UN 상임이사국이라는 위치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현재의 형편상 북한을 언제나 감싸고 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다못해 미국까지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나와 줄 것을 중국에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북한을 그대로 버려두기에는 북한의 붕괴는 중국에게도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현재로서는 북한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대화로서의 협상' 또는 '기권'이라는 형태로서 대응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전 세계를 상대로 어그로를 유발하는 북한의 행태를 계속 이런 식으로 대응할 경우, 국제사회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부정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중국이 상당히 곤란한 형편에 놓인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
이러다보니 중국이 북한을 감싸주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가 미국과 일본이 좀더 능동적인 대북제재를 중국이 실시해주길 원하나 북한이 없어지면 중국이 처해질 입장 때문에라도 그렇게 하질 못한다.
하지만 북한이 이렇게 망나니 짓을 해대고 있으니 중국이 북한을 감싸는 것도 한계에 이르고 결국에는 홧김에라도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도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조족지혈이다.
그렇지만 2017년경에는 아예 북한에 등을 돌린 듯한 제스쳐도 자주 보였다.
자국으로 나온 북한 노동자들의 비자연장도 연장해주지 않고 있으며 합작으로 연 북한기업조차 폐쇄된 상태이다.
2014년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그동안 중국과 삐걱대던 외교관계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 3차 핵실험 이후 북·중 경제협력사업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급기야 중국이 북한의 항구를 빌려 동해를 통한 물류 통로를 개척하려던 계획을 수정해 러시아의 항구를 이용하려 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를 해봤자 북한이 지금처럼 호전적인 태도를 유지하면 전쟁이 일어나 투자회수를 못할 위험이 높은 데다가 도저히 통제도 안되고 예측도 안 되는 북한보다는 차라리 러시아가 낫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2000년대 북한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던 중국 기업들은 비참할 정도로 열악한 인프라와 북한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정책 때문에 하나 둘 등을 돌리고 있다.
돈 떼먹히는 게 기본이었고, 감시까지 하면서 송금도 제대로 못 하게 막았다고 하니, 중국 기업들의 신뢰를 얻지 못함은 당연하다.
통치 정당성이 할아버지나 아버지보다 훨씬 떨어지는 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김일성은 빨치산 항일무장투쟁 활동을 하며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을 알았고, 김정일은 1970년대부터 정치에 나서기 시작했고 김일성이 죽은 1994년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정치인으로서 활동하며 나름의 내공을 쌓았다.
그러나 김정은은 2010년에 갑툭튀해서 정치감은 전혀 없는 상태에서 2011년 겨울, 최고지도자가 된다.
그래서 집권 초기에 이전부터 권력이 엄청나게 강했던 고모부 장성택까지 죽이며 공포 정치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고 했던 것이다.
특히 어머니 고용희가 북한에서 천시되는 재일교포, 남한 출신이라는 설이 있어서 일각에서는 이것을 체제 위협 요인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간부들은 탈북까지 고려하고 있다.
하다못해 해외주재 북한공관원들은 본국으로의 소환도 거부할 정도이니 말 다한 것이다.
이는 2015년 4월 말에 일어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숙청으로 그 정점을 찍었는데, 심지어 현영철은 김정은 자신이 직접 임명한 인사였음에도 숙청시켰으니, 다른 일반 간부들의 속내는 더 다른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국제무대에 데뷔한 김정은은 온건한 성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유엔대북제재로 민생이 파탄나고 국내 문제에서 초기의 공포정치를 버리고 자애로운 어버이 지도자라는 컨셉을 잡는다는 인식이 있기도 하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김정은의 지지가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지지는 그가 개혁을 택하리라 믿은 주민들의 지지였으나,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그런 기대에 반하여 비사회주의와 투쟁하고, 백두산 정신을 지켜야 한다면서 내부 단속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주민들의 김정은 지지 이유를 스스로 없애는 것이다.
연단에서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잘 살게 해주겠다고 하더니, 뒤에서는 한국 정부가 보수층에게 비판 받아가면서 하는 지원까지 거절하기도 한다.
남북관계를 파탄내며 많은 책임을 남측에 뒤집어 씌우는 모습도 보이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북미관계를 개선하려고 했던 한국과 미국은 이를 계기로 그냥 엿 먹어버리고 만다.
결국 야당에서 문재인 정부를 비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성일종 의원이 "북한 정권은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폄훼를 중단하라.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의 대한민국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다.
"라고 북한을 비난한 것이 그 예. 2018년경에 스스로 비핵화를 해놓겠다고 당당하게 주장하고선 갑자기 말을 바꾸면서,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 대한 대처도 제대로 하지 않고 고립주의를 택했다.
2019년 돌연 국민의 정부가 제안해 김정일이 승낙했던 금강산 관광을 이유 없이 부정하며 '너절한 시설'을 철거하라며 본색을 드러내었다.
더불어민주당마저 유감을 드러낼 정도였다.
대북제재를 풀기 위해선 핵도 포기해야 하는데, 하노이 회담에서 무리한 요구를 함으로써 좋은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2018년 이후 탈북한 탈북자들은 대화가 있던 와중에도 남한에 대해 환상을 가지지 말라는 교육을 받기도 하였다는 증언을 하였다.
남한과 대화를 하겠다며 겉으로는 웃으면서, 젊은 세대에 많이 퍼진 한류를 차단하는 이중적인 움직임도 보인다.
핵을 포기하는 것을 두고 리비아, 우크라이나처럼 된다는 주장도 많으나 이들조차 북한보단 민생이 훨씬 나으며, 카자흐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핵포기로 북한과는 비교도 어려울 정도로 잘 사는 경우도 많다.
리비아는 단지 국제 사회가 시민의 편을 들어 몰락했고, 우크라이나와 달리 강대국이 북한을 침공할 역사적 근거가 적으며, 핵을 개발하여 오히려 국제 사회가 통제되지 못한 핵무기의 위험성을 들어 개입할 여지도 생겼다.
거의 북한의 핵개발이 알려지지 않던 김일성이 집권할 당시에도 북한 체제는 유지되었고 핵개발이 알려지며 대량살상무기 의혹을 구실로 미국의 공격을 받은 이라크의 상황이 될 수 있었으나 한국의 피해 우려 등 지정학적 여건 상 실현이 되지 않은 것을 무시한 것이다.
특히 카자흐스탄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가 공통으로 언급할 정도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룩한 곳이다.
핵을 포기하고 정권에 위협이 되는 사태가 일어난 나라들은 내치를 잘못해서 정권에 위협이 되는 사태가 일어나거나 민주화 같은 노력이 없던 점이 있을 뿐이다.
핵개발을 중도에 중단하고 가장 잘 사는 나라의 대표적인 예시는 대한민국이며,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은 이미 핵없이 북한보다 잘 살고 있다.
2021년 들어 핵무기는 남용하지 않겠다고 하여 먼저 자신들이 쏠 수도 있음을 암시하여 어그로를 끌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핵을 가지지 않아 침략당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우크라이나와 미국 제국주의자를 비난하는 러시아의 주장 중 어느 편을 옹호해야 할지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일단 외부적으로는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전쟁 방지라는 핵보유의 구실을 포기하는 모양새지만, 내부적으로는 로동신문에 아예 전쟁에 대한 언급 자체를 않으며 그냥 불리한 사실은 숨기는 행태를 보인다.
김정은이 묵인한 연락사무소 폭파는 일부 진보 진영에서도 우리의 제의에 대한 호응을 하지 않는다며 북한에 대한 회의감을 들게 하기도 하였고, 연평도 인근에서 피격된 공무원에 대한 해명에서 정부의 주장에 해명을 제대로 못하여 민주당 송영길 의원마저 최고지도부가 알고 있을 사실이 무시되고 있다며 비판하는 일이 있었다.
겉으로 보이고자 하는 모습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여 진보진영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정작 정부의 제안에 어깃장을 놓기도 하여 일부 인사가 반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긍정론에 서술된 식량 사정 등의 민생 개선도 결국 주민들의 생존 본능적 행위, 즉 자본주의를 막지 못해서이다.
체제 전환을 겪은 구 공산권 국가들은 위에서 개혁을 시작했지만, 김정은 정권은 제도를 그런 식으로 바꾸기 보다는 시장을 없애는 것은 체제 붕괴 위험을 증가시키므로 방치하고, 이용할 수 있을 때 이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코로나 직전까지도 식량난이 심하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건 인구로 국력을 부풀리려는 북한의 통계 조작을 두고 국제기구가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한 과장을 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면서도 2018년 신년사에서는 경제난을 관료주의 탓으로 돌리며 선대의 남탓하는 습관, '닭 잡아 먹고 오리발 내밀기' 수법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였다.
어떤 입장에서는 긍정론의 유화적 제스처도 결국 이런 태도로 보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잘해주지만, 너희는 대결을 일삼는다"는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피해자 코스프레 같은 것이다.
남북 관계 개선에 열심인 문재인 정부에게 유화적 제스처를 내밀다가도 '남조선 당국은 지난 보수정권 시기와 다름 없이 부당한 구실과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내세워 각계층 인민들의 접촉과 내왕을 가로막는다.
'는 개소리도 하였다.
2020년 10월 열병식에서는 마침내 면목이 없고 미안하다는 발언을 하였으나, 이 발언의 전제로 온 나라 인민이 자신을 열렬히 지지한다는 것을 드는, 언플을 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주민들의 뜻에 반해 통제를 하고선, 이제 주민들이 자신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특히 ICBM이 공개되자 웃는 모습, 고급 시계를 차며 우는 모습이 발언의 진정성에 의문을 갖는 시각을 불러일으켰다.
베를린 선언에서 문 대통령이 체제를 존중하겠다고 해도 그냥 무시하고, 자신은 자신의 나라가 세계적인 핵강국이 되었고 강위력한 국방력에 의거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긴다면서 "도발을 억제해야 한다는 망상과 심한 위기의식, 피해의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다.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 같은 강경책을 추진하고 나서 몇 달 후에도 대화에 나서더니 하노이에서의 무리한 요구가 실패하자 일관되지 못한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KBS의 통일의식조사에서, 2022년에는 김정은 정권에 '호감'이라는 응답은 2.7%에 불과한 한편, '반감'은 78.1%. 그중 '매우 반감'은 43.1%였다.
2018년은 호감 20.6%, 반감 35.4%, 매우 반감은 15.3%인 것을 감안하면 인식이 그야말로 바닥에 떨어진 셈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놓고 자신은 민생보다 자신에 대한 충성이 중요하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김일성종합대학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2021년 8차 당대회 보고에서 김정은이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힘을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고수하고 확립하는 것이 더 급선무라고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로동신문에 올라간 김정은 명의의 청년절 축하문에서도 탄원(탄광이나 염전 등 험지에 대한 자원) 분위기가 고조된 것은 몇만대 기계가 생산됐다는 것보다도 더 고무적인 소식이라고 주장할 지경이다.
코로나19와 수해로 민생이 더 악화되는 와중에도, 김정은은 직접 외부 지원을 거절하라는 선언을 하고, 외부 사회에 물품에 대한 방역을 요구한다는 선택지마저 고르지 않는다.
2019년 한국 정부는 9년 만의 정부 차원의 쌀 지원을 추진했으나 코로나 사태가 도래하도록 '한미연합훈련'을 이유로 쌀을 받지 않았다.
거칠게 말해서 자신의 안위는 민생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한국 정부의 인도적 지원이라면 무시하는 경향을 찾아볼 수 있는데, 자신은 유례가 없는 위기가 닥쳤다는 말을 해도 안 받는 경우가 꽤 있다.
이것 때문에 주민들의 생계가 다시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여기에 북한 연구자들을 경악케 했던 한류 유포만 해도 사형, 한국 말투 써도 징역이라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의 제정, 80일 전투로 주민을 쓸모 없는 노동에 동원시켜 주민들을 통제하는 모습도 보인다.
연락사무소 폭파에도 인내하던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환멸을 느꼈는지, 이 법을 언급하면서 "북한이 잘못하면 남한에 흡수당할 수 있다며 통일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 같다", "준다고 해서 쉽게 받을 것 같지도 않다", "분단의 고통과 불이익이 최소화되는 시점에서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라고 발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21년 8차 당대회도 경제 부분에서 '비사회주의'를 없애겠다, 상업봉사부문에서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는 등의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이를 두고 "장기적으로는 자살정책"이라고 일갈했다.
2021년 4월에는 아예 청년세대를 꼬집어 "우리식 사회주의의 참다운 우월성에 대한 실체험과 표상이 부족하다"라고 언급하는 열렬한 지지에 감사하다는 10월 열병식 발언과 모순된 발언을 하였다.
"간고한 시련 속에서도 우리 새 세대들과 인민들에게 베풀어지는 우리나라 사회주의 제도의 혜택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비싼 것인가를 모든 청년들이 다 잘 알도록 해야 한다"라는 발언은 나는 간고한 시련을 못 없애겠으며, 너희는 그냥 세뇌되어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의향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할 지경이다.
고난의 행군을 결심했다는 발언에도 당시 가족, 이웃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탈북민들이 격분하기도 했다.
단기적으로는 나라 경제가 나아지지 않아도 주민에 대한 통제와 세뇌로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나, 장기적으로 갈수록 어렸을 때부터 시장화와 한국을 비롯한 외부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눈높이,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 핵을 완성하여 잘살게 된다는 선전이 통하지 않는 미래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다.

 

7. 창작물

 

  • 2011년 게임 홈프론트의 2010년 트레일러에서는 날씬하고 나름 잘생긴 모습으로 유엔 총회에서 자신만만한 연설을 하면서 등장하지만 제3차 당대표자회를 기점으로 김정은의 실제 모습이 공개되면서 흑역사가 되었다.
  • 2011년 웹툰 스틸레인(웹툰) 시즌 1에서는 미국의 오폭으로 인해 중상을 입어 김정일이 죽었음에도 전면에도 나서지 못하고 휠체어에 실려 벙커에 숨어있는 비참한 신세가 된다.
  • 2013년 영화 지.아이.조 2에서 핵보유국 정상회담에 참석한 '북한의 지도자'가 등장하긴 한데 김정일하고도 김정은하고도 닮지 않은 중년 아저씨가 나왔다. 핵을 폐기하라는 자탄의 요구에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승질 내면서 결국 핵을 자폭시킨다.
  • 2014년 미국 영화 디 인터뷰는 김정은을 암살하는 내용의 영화로 재미교포 배우 랜들 박(Randall Park)이 연기하였다.
  • 2017년 한국 영화 강철비에서는 '북한 1호'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누가 봐도 김정은임을 알 수 있는 장면이 많지만 직접적으로 실명이나 얼굴은 등장하지 않는다. 배우는 최성환. 관련 기사
  • 2019년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는 대북 핫라인을 통해 통화를 하는 장면이 나옴으로써 직접 얼굴과 전신 등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출연한다. 실제 김정은과 매우 흡사한 외모와 목소리를 가진 배우가 등장하며 배우 역시 김정은과 유사하게 보이도록 신경 써서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2020년 강철비의 후속작 강철비2: 정상회담과 그 원작인 웹툰 '스틸레인 3: 정상회담'에서는 '조선사'라는 이름의 꽃미남으로 등장하며 영화판에서는 배우 유연석이 연기하였다. 유학파임을 반영하여 실제 김정은이 영어에 능통하지 않았음을 고백했음에도 영어에 능통한 설정이며, 북한 창작물이 다 그렇듯이 과할 정도의 사투리를 써댄다. 누가 봐도 김정은이고 원작 웹툰에선 중간에 '김 위원장'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오타낸 대사도 있다. 스틸레인 1보다 훨씬 나아진 대접.
  • 2020년, 한 레진 피규어 제작 업체에서 1/35 스케일로 출시되었다.

 

내용이 도움이 되셨으면 공감 버튼 꼬옥 눌러주세요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