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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와 함께 최근 이슈가 되는 소식 (주사파,문재인,김일성,통혁당)

by Nomangs 202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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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신영복
申榮福|Shin Young-bok
출생
1941년 8월 23일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칠곡리
사망
2016년 1월 15일 (향년 74세)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
국적
대한민국
직업
교수, 작가, 경제학자
학력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경제학 / 학사·석사)
부모님
아버지 신학상, 어머니
배우자
유영순 (1989년 결혼)
자녀
아들 신지용 
종교
무종교 (불가지론)
본관
평산 신씨
위경(葦經)
소당(紹堂)
우이(牛耳)
쇠귀

1. 개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문학가.다.

 

2. 생애

 

1963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육군 장교로 임관하여 육사 교관을 거친 후에 숙명여대 교수를 지내던 중 1968년 북한과 연계된 지하당 조직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아 구속되었다가 전향서를 쓰고 1988년 특별 가석방으로 20년 20일만에 출소하였으며 옥중의 시절을 경험하여 써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하였다.
이후 성공회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2006년까지 재직하였으며,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지식인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암 판정을 받게 되어서 흑색종 투병으로 요양 중 2016년 1월 15일 밤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의 자택에서 향년 74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유족의 뜻에 따라 화장 후 장지는 비공개로 하였다.

 

3. 약력

 

  • 1941년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칠곡리 유곡국민학교 교장 사택에서 태어남. 그후 고향인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중산리 평산 신씨 집성촌에서 자람.
  • 1959년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
  • 1963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 졸업
  • 1965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 1965년 숙명여대, 육군사관학교 경제학 강사
  • 1966년 8월 육군사관학교 경제학 교수사관 중위 임관
  •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 1988년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
  • 1989년 3월: 성공회신학대학 경제학과 강사
  •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
  • 1998년 5월 ~ 2006년 6월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 1999년 12월 성공회대학교 교육대학원 원장
  • 2002년 2월 동아시아문화공동체포럼 대표
  • 2003년 3월 성공회대학교 민주사회교육원 원장
  • 2004년 3월 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원장
  • 2006년 8월 정년퇴임
  • 2006년 ~ 2014년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석좌교수

 

4. 저서

 

  • 더불어 숲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 나무야 나무야
  • 변방을 찾아서
  • 느티아래 강의실
  •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 청구회 추억

 

5. 사건 사고 및 논란

 

 

5.1. 통일혁명당 사건

 

1998년 월간 말 인터뷰에서 전향서를 쓰긴 했지만 사상을 바꾼다거나 동지를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며, 통일혁명당에 가담한 것은 양심의 명령 때문이었고 향후로도 양심에 따라 통혁당 가담 때와 비슷한 생각으로 활동하겠다는 의견을 밝힌 바가 있다.
신영복의 경우는 통일혁명당이라는 지하 정당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엮여든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신영복 본인의 주장 외에는 검증할 길이 없다.
다만 신영복이 북한에 다녀왔다고 언급한 중앙정보부 수사기록은 당시 육군사관학교의 문서(출강기록)와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정측이 조작한 것으로 봄이 합리적일 것이다.
또한 저 당시 청맥이란 잡지가 합법적인 간행물이었던 것도 사실이므로 잡지사에서 주최한 모임의 실체를 모르고 참석했다는 것도 개연성은 있다.
하지만 북한에 다녀왔다는 부분이 조작되었다고 해서 김질락 등의 간첩과 북한 조선로동당이 위 단체와 사건에 연루되었던 사실이 변할 수는 없으며, 또한 모든 수사 기록이 중정측으로부터 조작되었거나 중정수사내용과 상반된 연루자들의 증언이 모두 진실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
일단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통혁당 사건에서 선고받은 인물들의 형이 재심되어 무죄가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신영복은 통일혁명당 사건에서 무고하게 죄를 뒤집어 썼다는 주장은 충분히 할 수 있겠으나, '무고하다'라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신영복과 통일혁명당의 관계에 대해선, 신영복은 자신이 가담한 조직을 단순한 반독재민주화운동 단체로 알았지, 북한과 연계된 지하당 "통일혁명당"이란 것은 몰랐던 무고한 피해자라는 현대사 연구자 김삼웅, 한홍구 등의 주장과 신영복이 처음부터 끝까지 통일혁명당에 깊이 관여했다는 김질락의 옥중수기 <어느 지식인의 죽음>에 실린 주장이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신영복이 실제 통일혁명당에 어떻게 가담했으며,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향후 실증적 연구가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다.

 

6. 정치인들과의 인연

 

진보 진영의 지식인으로 오래 활동하여 정치인들과도 꽤 인연이 있다.
대표적으로 민주당계 정당의 주요 정치인인 노무현 대통령이나 문재인, 안희정을 비롯해 정청래, 손혜원 그리고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의 주요한 정치인인 심상정, 노회찬이나 기타 인사들과 상당한 친분이 있다.
이 중 몇몇 정치인들은 신영복을 존경하는 지식인으로 뽑고 있어, 생전 선거에 나갈 때 신영복에게 조언을 구하러 자주 방문하였다.
반면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쪽에서는 과거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점 때문에 그의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간첩 혹은 종북주의자로 보는 경우가 많으나, 그래도 사회에서 높은 위치의 지식인임은 부인하지 않는다.
일례로 신영복의 대학교 11년 후배인 김문수는 신영복을 거론할 때마다 김일성주의자라고 부르면서도, 훌륭한 문학가이자 나오기 힘든 천재라는 말도 붙이면서 그의 지위는 부정하지 않는다.
다.

 

7. 신영복체

 

일반인에게는 서예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어머니의 모필 서한에서 느껴지는 서민적 체취와 정서를 독특한 서풍에 담아내었다는 평을 받는다.
소설가 조정래의 '한강' 표지에 친필을 담았으며, 소주 처음처럼 포장지와, 교보문고 신용호 회장의 어록인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사람이 먼저다' 라는 슬로건,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문구에 주로 그의 글씨체가 쓰였다.
그의 서화 작품은 신영복아카이브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처음처럼은 본래 그가 쓴 책의 제호로 사용된 작품이었는데, 나중에 두산주류BG(현 롯데주류)에서 동명의 소주를 출시하면서 그의 글씨를 상표로 사용하였다.
어떻게 보면 그의 작품이 상업적으로 사용된 드문 사례이기는 한데, 서민의 술인 소주에 자신의 작품이 사용되는 것을 흔쾌히 허락하면서 저작권료 대신 성공회대에 장학금 1억 원을 기부하였다고. 처음처럼을 디자인한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나중에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 신영복 선생이 받은 금액은 5천만 원이었다.
손의원이 신영복 선생이 1억원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본인이 두산으로부터 받은 금액 중 5천만 원을 신영복 선생에게 주었지만 신영복 선생은 이 금액 모두를 기부하였다고 한다.
손의원은 신영복 선생이 지나치게 돈 욕심이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또한 제자 윤도현과의 인연으로 YB 8집 <공존>과 15주년 기념 앨범 <나는 나비>에 각각 '共存', '나는 나비' 글씨를 써서 주기도 했다.
굳이 말하자면 민체를 즐겨 쓴다고 할 수 있는데, 쇠귀체, 어깨동무체, 연대체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편 신영복체라는 이름으로 폰트가 개발되어 유료로 판매되었다.
그런데 그의 타계 1주기를 앞둔 2016년 12월 21일부터, 많은 사람과 글씨를 나누고 싶어했던 그의 유지를 받들어, 개인사용자에 한하여 무상으로 배포한다.
직지소프트 홈페이지에서 배포 중.이 문서를 읽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전반적으로 글씨를 남에게 써주는 데에 인색함이 없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사회 온갖 곳곳에서 신영복 선생의 글씨를 발견할 수 있다.
숭문고등학교 도서관에도 신영복 선생의 글씨가 걸려있었고(적어도 16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회관 근처 학생운동탑에 쓰여진 글씨도 신영복 선생의 글씨다.
2017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의 어록인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를 신영복 선생이 친필로 남긴 족자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되었고 청와대 집무실에 걸리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면 노무현 재단에 기증하게 될 예정.신 교수가 생전 마지막으로 대중에 공개한 필체는 2014년 10월 세월호 희생 학생들을 추모하기 위해 쓴 "아이들을 구하라!" 였다.
한편 보수 정당 소속인 정우택의 선거벽보와 선거공보에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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